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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신재정통합 이후 유럽은 어디로 - 한숨 돌리고 ‛위험한 동거’ 시작

[Global] 신재정통합 이후 유럽은 어디로 - 한숨 돌리고 ‛위험한 동거’ 시작

그리스의 국채 교환에 참여한 민간 채권단 비율이 3월 9일 85.8%로 집계됐다. 금액 기준으로는 1720억 유로에 달한다. 이번 국채교환은 민간 채권단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에 53.5%의 손실률을 적용하고 나머지 46.5%의 국채에 대해서는 최고 30년 만기 그리스 국채와 2년 만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채권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민간 채권단의 참여율이 그리스 정부가 정한 마지노선인 75%를 넘어 나머지 채권단도 국채교환에 끌어들일 수 있는 집단행동조항 적용 요건을 갖췄다. 1300억 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인 국채교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리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는 잦아질 전망이다.



돈 풀어도 기업·가계로 가지 않아그리스가 큰 고비를 넘기면서 유로존이 한숨을 돌렸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채권시장도 안정을 찾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돈을 푼 덕이 컸다. ECB는 최근 2개월 동안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에 따라 자금난을 겪고 있는 시중 은행에 1조 유로가 넘는 돈을 풀었다. 2011년 12월 21일에 시행된 1차 LTRO에서 523개 은행에 4892억 유로를 공급했다. 2월 29일에는 2차 LTRO 입찰을 통해 유럽 내 800개 은행에 5295억 유로의 3년 만기 장기 유동성을 공급했다. ECB가 돈을 풀자 유럽 시중 은행들은 수익률이 높은 국채를 매입했다. 이에 따라 국채가격이 상승하고 국채금리가 하락했다. 한때 7%를 웃돌던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4%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시장이 계속 안정세를 보이려면 신용경색이 풀리고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 ECB가 공급한 돈은 애초 기대와 달리 민간 부문으로 가지 않고 ECB로 돌아오고 있다. 유럽의 시중은행들이 ECB에 예치하는 초단기 예금이 사상 최고치(7770억 유로)를 기록했다. 기업이나 가계에 돈을 별로 빌려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ECB가 푼 돈이 기업과 가계부문으로 흘러 들어가 경기회복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느냐가 시장의 안정을 좌우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 재정통합의 토대가 될 새로운 협약도 체결됐다.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25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3월 2일 브뤼셀 EU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재정협약에 서명했다. 신(新)재정협약의 공식 명칭은 ‘안정, 조율 및 거버넌스조약’이다. 1997년에 제정된 안정성장협약의 실행력을 강화해 재정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신재정협약은 연간 구조적 재정적자(경기변동이나 일시적 충격을 배제한 재정적자)를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내로 억제하도록 하는 균형예산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는 국가는 초과되는 국가채무를 20년에 걸쳐 매년 5%씩 감축해야 한다. 다만,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밑도는 재정 우량국에 한해 GDP 대비 1% 미만의 구조적 적자를 용인하고 있다.

회원국은 신재정협약 발효 후 1년 이내에 균형예산원칙을 각국의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 균형예산원칙을 준수하지 못하면 자동조정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위반 국가는 GDP의 최대 0.1%까지 벌금을 유럽안정메커니즘(ESM)에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은 국채 발행 때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균형예산원칙을 입법화하지 않고 준수하지 않은 국가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를 당한다. 신재정협약을 주도한 독일은 균형예산원칙을 확립함으로써 회원국의 재정준칙이 강화되고 엄격한 감시체제가 작동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재정협약은 통화통합에 이어 재정통합으로 가는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된다.

신재정협약은 유로존의 12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즉시 발효된다. 따라서 설령 한두 개 국가가 반대하더라도 발효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회원국들은 2013년 1월 1일 발효를 목표로 비준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결코 비준이 만만치 않다. 현재 문제가 되는 국가는 국민투표로 신재정협약의 비준 여부를 결정하는 아일랜드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프랑스다.

아일랜드는 그동안 중요한 조약의 비준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2001년 6월 니스조약과 2008년 6월 리스본조약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와 아일랜드와 EU 모두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현재 아일랜드는 경제침체로 반(反)EU 정서가 강하다. 특히 긴축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비준이 호락호락 하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이번에는 아일랜드 국민이 비준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도 우세하다. 조약 비준을 거부해서 얻을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재정협약에 따르면 EU·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국가가 비준을 거부하면 7월 출범 예정인 유럽안정메커니즘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준을 거부하면 아일랜드는 위기 극복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고, 유로화 탈퇴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아일랜드 정부는 5월 말 또는 6월 초에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민간 채권단의 그리스 국채 교환작업이 마무리되면 시장의 관심은 아일랜드의 국민투표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선은 신재정협약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프랑스는 4월 22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야당인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가 사르코지 현 대통령을 줄곧 앞서 있다. 만약 올란드 후보가 승리하면 신재정협약의 개정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올랑드 후보는 긴축을 강조하는 현재의 신재정협약을 수정해 성장과 경기부양, 유로본드 도입을 포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동조해 독일의 야당인 사민당도 신재정협약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신재정협약에 대한 개정 논의가 본격화 되면 어렵사리 합의한 협약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개정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우파 정권과 공동으로 ‘반올랑드, 친사르코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성장과 결속’을 근거로 협약의 개정을 요구하는 좌파 정당과 신재정협약을 밀어붙이려는 우익 보수당 정권 간에 대립이 첨예화될 전망이다. 프랑스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신재정협약의 비준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개정작업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신재정협약이 발효되면 독일과 EU집행위의 바람대로 재정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신재정협약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긴축을 단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 신재정협약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이유다.



스페인 돌출행동으로 출발부터 삐걱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경제대국이 동시에 신재정협약을 준수하지 못할 경우 제재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벌써 좋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3월 2일 스페인의 라호이 총리는 안정성장협약에 따라 이전의 자파테로 정권이 약속한 2012년 재정적자 목표치를 애초 4.4%에서 5.8%로 상향 조정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로 낮추는 목표는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긴축의지를 의심받기에 충분한 폭탄 발언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이 ‘제2의 그리스’ 사태를 부르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이번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강행하면 신재정협약이 발효되기도 전에 신뢰성이 크게 훼손되는 것이다. 앞으로 ’긴축’과 ‘성장’ 사이에서 유로존 국가들이 어떤 타협점을 찾느냐가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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