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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Britain] 진보적 보수주의자

[Politics Britain] 진보적 보수주의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미국과 함께 시리아와 소말리아에 군사적 개입을 원한다. 오바마가 동의할까?

데이비드 캐머런의 전기를 읽으면 영국의 귀족 집안을 다룬 시대 드라마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캐머런의 조모는 영국 국왕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캐머런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먼 사촌뻘이다. 외조부는 준남작(baronet)이었다. 부친은 스코틀랜드 동북부 애버딘셔의 블레어모어 하우스가 본가였다. 캐머런은 엘리트가 다니는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교 브레이스노즈 칼리지를 나왔다. 옥스퍼드에선 오만하기로(toffee-nosed) 악명 높은 부유층 사교클럽 불링던(Bullingdon Club)의 회원이었다. 그의 장인 역시 준남작이다.

그러나 캐머런을 직접 만나보면 에드워드 시대의 귀족 같은 인상이 전혀 아니다(he’s anything but a throwback to the Edwardian era). 우월의식(snobbery)이 없고 소탈하다. 측근 사이에서는 ‘데이브’로 불린다. 정장을 싫어하고 ‘다운튼 애비’ 만큼이나 ‘30 록(미 NBC 인기 코미디 시트콤)’을 즐겨 본다. 기품과 우아함을 타고난 귀족이라는 유일한 단서(the only clue that Cameron is to the manner born)는 권력의 짐을 짊어져도 전혀 힘들어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재임 2년이 다 돼가는데도 더 젊어 보이는 사상 최초의 총리다.

46세인 캐머런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보다 다섯 살 아래다. 그러나 이번주 그가 오바마를 만나면 나이차가 10년은 돼 보일 듯하다. 오바마는 권력의 스트레스 때문에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인다(Power has visibly aged Barack Obama). 반면 캐머런은 권력 때문에 오히려 젊어진 듯하다(It has rejuvenated Cameron).

캐머런의 미국 방문을 바로 앞두고 그를 영국 총리 관저(다우닝가 10번지)에서 만났다. 체격이 탄탄하고 느긋한 느낌이었다(he is looking fit and relaxed). 집무실 벽에 걸린 초상화에서 아래를 노려보는 윈스턴 처칠과는 정반대였다. 처칠은 늘 과식했고, 샴페인과 브랜디를 줄곧 들이켰으며, 쿠바산 시가를 즐겨 물었다. 그리고 꼭두새벽까지 일하기를 좋아했다(liked nothing better than to work into the small hours of the morning). 캐머런의 생활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아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캐머런이 말했다. “5시 45분에 주방 식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조모는 자정 전 시간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다(My grandmother always said it’s the hours before midnight that count). 나의 활동시간은 처칠과는 정반대다.” 캐머런은 일요일마다 테니스를 치고, 일주일에 한번씩 하이드 파크를 뛴다. 직무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Only rarely do the pressures of the job disturb his sleep).

이처럼 그와 처칠은 기질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캐머런은 처칠과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Cameron clearly identifies strongly with Churchill). “각료 회의실(총리 집무실과 붙어 있다)을 둘러보며 1940년 영국이 히틀러에 홀로 맞섰을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한다.” 지난해 12월 캐머런은 유로화를 구제하려는 EU 재정통합 강화 방안에 홀로 반대했다. 그때 영국의 보수당원 다수는 그의 행동을 처칠 같은 저항의 몸짓으로 봤다. 캐머런도 그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른 면에서도 캐머런과 처칠은 심적으로 궁합이 맞는다(kindred spirits). 종종 잊혀지는 사실이지만 처칠은 보수당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1904년 자유당으로 옮겼다가 1925년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갔다. 캐머런도 미국인의 귀에는 모순어법처럼(oxymoronic) 들리지만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liberal conservative)’라고 말한다.

캐머런은 자신의 그런 성향을 외교정책으로 설명한다.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원대한 계획에 회의를 품고 우려하는 보수파의 본능을 유지하면서도 우리가 이곳에서 누리는 민주주의와 권리, 자유를 세계에 전파하고 싶다는 면에서 진보적이다.”

실제로 캐머런과 처칠의 가장 비슷한 면은 외교정책에 있다(It is in the realm of foreign policy that Cameron is most obviously Churchillian). 토니 블레어 전 총리처럼 캐머런도 국익만이 아니라 인권을 위해서도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끌린다. 지난해 리비아 사태에 군사 개입을 밀어붙인 쪽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영국의 캐머런 총리였다(It was he, not President Obama, who pressed for military intervention in Libya last year). 나토가 무아마르 카다피의 근거지를 공습할 당시 오바마는 신중하게 뒷자리에 타는데 머물렀지만 캐머런은 앞자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핸들과 가속페달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퉜다.

그렇다면 캐머런이 시리아 사태에서는 리비아의 경우처럼 군사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현재 기준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카다피보다 자국민을 훨씬 많이 학살하지 않았는가? “사실 시리아의 상황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어서 너무 괴롭다”고 캐머런이 말했다. “리비아 사태 때는 유엔 결의와 아랍연맹의 지지가 있었다.” 반면 시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도 캐머런은 ‘개입 불가’ 논리를 전적으로 납득하지는 않는 듯했다(But he doesn’t sound wholly persuaded by these arguments for nonintervention).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리아의 기득권 체제를 흔들고… 정권에 맞서는 반대세력을 좀 더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특히 무기가 훨씬 뛰어난 아사드 정부군에 맞서 힘들게 내전을 벌이는 자유시리아군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엔 결의 없이 ‘유지연합(有志聯合: coalition of the willing, 뜻이 맞는 국가들의 연합)’으로 시리아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걸까? 캐머런의 답변은 단호했다. “인명을 보호하고 구하며 학살을 막고 도덕적으로 만이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코소보 사태가 입증했다. 유엔 결의 없이도 개입이 가능한 상황을 말한다. 유엔에는 러시아의 거부권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 논리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을 난 늘 억지라고 생각한다(I’ve always thought it odd the argument that because there’s a Russian veto at the U.N., suddenly all the other moral arguments are washed away).” 유엔의 승인 없이도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란의 핵무장 야심과 관련해서는 덜 강경한 입장이다. 캐머런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로 의심되는 곳을 일방적으로 타격하는 데 반대한다. “나도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면 솔직해야 한다(but good friends should be candid).” 그는 “제재와 압박(sanctions and pressure)”을 한층 강화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그러나 만약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nothing is off the table)”는 입장이다.

처칠 시대 이후로 영국 총리들은 걸핏하면 미국 대통령에게 군사행동을 부추겼다. 싸움을 좋아하는 동생이 태평스러운 형에게 싸우러 가자고 떼를 쓰듯이 말이다(like the pugnacious little brother, egging on the more laidback big brother).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그랬다.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심약한(wobbly)’ 조지 H W 부시에게 군사개입을 다그친 일화는 유명하다. 아들 부시는 그런 부추김이 별로 필요 없는 매파였지만 그런데도 블레어의 종용을 받았다. 이제 데이비드 캐머런이 버락 오바마에게 전쟁의 길로 가자고 끌어당길 차례일까(Is it now David Cameron’s turn to goad Barack Obama onto the warpath)?

만약 그렇다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그의 편을 들지 모른다. 내가 캐머런을 만나기 하루 전 그 두 사람은 소말리아 사태를 논의하는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1993년의 낭패(‘블랙 호크 다운’) 이래 미국은 소말리아라면 유독 몸을 사렸다. 소말리아는 전쟁으로 황폐했고 기아가 만연하는 나라다. “조각이 몇 개 빠진 조각그림 맞추기(jigsaw puzzle)”와 비슷하다고 캐머런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말리아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클린턴과 의기투합한다(in agreement about the need for an international effort to stabilize Somalia)고 생각한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답게도 개입의 명분은 인도주의와 국익 둘 다다(the case for intervention is both humanitarian and self-interested). 그대로 두면 소말리아는 자국민에게 죽음의 덫(deathtrap)이 될 뿐만 아니라 이슬람 테러주의의 온상(breeding ground)이 되고 만다.

캐머런은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는 강화하고 싶어하지만 유럽연합(EU)을 보는 시각은 그와 정반대다. 지난해 말 캐머런은 유로화 위기를 끝내려는 EU 재정통합안을 거부해 유럽 지도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어떤 면에서 보면 캐머런의 유럽회의론(Euro-skepticism)은 전혀 새롭지 않다. 40년 전 영국이 유럽 공동시장(European Common Market)에 가입한 이래 영국 정부는 유럽 본부와 양면적인 관계(ambivalent relationship)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유럽 공동통화인 유로화가 도입됐을 때 파운드화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캐머런은 이전 영국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 전임자들의 경우 영국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유럽의 중심(at the heart of Europe)’인 체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캐머런과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유럽대륙이 곤경에 처한 이유가 ‘돌이킬 수 없는 논리(remorseless logic)’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은 이미 통화를 통합했기 때문에 재정통합(federal fiscal system)을 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렵다는 논리를 말한다. 영국은 ‘좋다. 유럽연방공화국을 만들어라(Have your Federal Republic of Europe). 하지만 우리는 들어가지 않겠다(But count us out)’는 입장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유럽의 미래상을 고전적인 연방체제로 그려냈다. 캐머런은 그와 다른 비전이 있을까? “대서양에서 우랄까지 펼쳐진 유럽이다. 터키가 포함돼야 한다. 그러면 혁신과 발명이 번창하는 단일시장이 된다. 정치적 의지가 매우 강하지만 연방체제는 아니어야 한다. ‘유럽’으로 불리는 하나의 나라가 돼선 안 된다(It wouldn’t be a country called ‘Europe’).”

영국이 궁극적으로 EU를 완전히 탈퇴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정색하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다. 영국은 이미 선택했기 때문이다.” EU의 실질적인 회원이지만 유럽통화연합(European Monetary Union)의 회원은 아닌 길을 택했다는 뜻이다. 유럽의 외교와 무역 정책에 관한 결정에는 참여하지만 통화와 재정 정책은 다른 회원들에게 맡겨두겠다는 이야기다. 대륙의 유럽국들이 영국의 그런 반쯤 발을 뺀 상태를 참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Whether the continental Europeans will tolerate that semidetached status remains to be seen).

영국에서 이전에 캐머런의 나이에 총리가 된 사람은 로버트 뱅크스 젠킨슨(리버풀 백작, 1812~27년)이다. 그는 역사책에서 좋게 기억되지 않는다. 1815년 나폴레옹의 워털루 패전 후 젠킨슨은 영국 정부의 고통스러운 지출삭감을 시행했다. 그러면서 실업률이 높아졌고, 대중의 소요가 들끓었다.

캐머런이 그런 역사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고 누군가 말할지 모른다.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적자 감축만 이야기하지만 캐머런의 정부는 이미 세금을 올렸고 공공지출을 크게 줄일 계획이다. 독립기관인 재정연구소(Institute of Fiscal Studies)에 따르면 계획된 삭감 규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유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효과를 내기 전에 이미 영국 경제는 곤경에 빠졌다. 국내총생산(GDP)이 2011년 마지막 분기에 0.2% 줄었다. 실업률이 현재 8.4%로 15여 년 만에 가장 높다. 경제가 더블딥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세입은 줄어들고 복지 지출은 늘어간다. 그 결과 재정적자 감축은 거의 진전이 없다. 지난 2월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영국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AAA 지위를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미국으로서도 상당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더라도 2013년에는 영국과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삭감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긴축재정 전력을 보면 미국도 상당히 어려운 앞날을 맞을 수 있다.

그래도 캐머런은 당황하지 않는다. 전임자에게서 물려받은 위태로운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경기부양책은 결코 대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과감한 긴축정책이 아니었다면 그리스와 포르투갈 같은 유럽대륙 나라들을 침몰시킨 채권시장의 반란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캐머런은 “부채위기의 해답이 더 많은 부채라는 생각은 잘못(The idea that the answer to a debt crisis is more debt is wrong)”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우리는 부채, 적자, 공공지출을 감당할 아주 구체적인 다년간 계획을 수립했다. 거기에다 독립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통화정책도 추가했다. 우리는 재정적으로는 보수주의지만 통화적으로는 적극적인 활동주의다(We are fiscal conservatives but monetary activists). 거기에 위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적인 영국 중앙은행이 돈을 계속 찍어내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 성장을 늘릴 다른 대안은 없을까? 캐머런은 세제 개혁(tax reform)을 꼽는다. 그러나 책임 있는 세제 개혁이어야지 무모한 감세는 용인할 생각이 없다. 캐머런은 “내린 세금을 충당할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실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식의 긴축정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와 그의 정부가 여전히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비결이 뭘까? “우리는 힘든 결정을 내리도록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았다(We have a mandate for taking tough decisions). 우리는 긴축정책이 반드시 필요하고, 공정하며, 궁극적으로 가치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킨다.” 캐머런의 목표는 금융에 치우쳐진 영국 경제의 균형을 잡고, 특히 제조부문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다. “우리는 장부를 정확히 기재하는 회계사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We’re not just a bunch of accountants getting the books right).”

영국의 다음 총선은 2015년으로 예정돼 있다. 캐머런은 그때까지 잘 끌어가면 총선의 승리만이 아니라 연정 파트너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보수당 득표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올해가 지나면 경제가 나아진다는 전망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자신감이 결코 아니다(Given that the economy is forecast to improve after this year, that is far from unrealistic).

만약 미국이 내일 해야 할 일을 영국이 지금 하고 있다면 캐머런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바마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 경험으로 보면 다년간 계획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공공지출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 공공부문의 연금과 복지 프로그램 등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무슨 말일까? 비용이 많이 드는 복지정책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적자 해소를 바라선 안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고령자 의료보장(Medicare)과 사회보장(Social Security) 프로그램을 손봐야 한다.

그렇다고 캐머런이 오바마에게 긴축재정 비용과 편익에 관해 한수 가르치려고 미국에 가는 건 아니다. 이번 방미의 주목적은 중동 문제에서 양국의 견해와 정책 조율이다(to ensure that the U.S. and the U.K. are singing from the same hymn sheet on the Middle East).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 캐머런은 미 공화당 경선의 최대 행사인 수퍼화요일 직후에 미국을 방문한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 경선에 전적으로 매달린다. 보수주의의 본색을 다투는 릭 샌토럼이나 뉴트 깅그리치 같은 후보들과 비교할 때 캐머런의 진보적 보수주의는 다른 별에서 나온 듯하다. 현실적으로 말해 캐머런은 어떤 공화당 후보보다 버락 오바마와 공통점이 더 많다.

그런데도 캐머런의 미국 방문은 의미가 있다. 미 공화당이 미트 롬니의 후보 지명 쪽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하는 가운데 더 치명적인 경쟁이 중동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무기 경쟁이다. 이란은 핵무장을 원하고 이스라엘은 이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아랍의 봄’ 이후 이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각축전이기도 하다(a race to establish who rules in the region in the wake of the Arab Spring).

리비아 개입의 결과에 고무된 캐머런은 이 문제에서 미국과 영국이 손잡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기를 원한다. 물론 이라크 철군의 순탄치 않은 과정 때문에 가슴이 쓰린 오바마를 다시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면 상당한 설득이 필요할 듯하다(Obama will take some convincing). 하지만 소말리아는 물론 시리아 문제를 미국이 나서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는가(But if we don’t sort out Syria—not to mention Somalia—who will)?

미국인들이 블레어처럼 캐머런도 좋아할까? 젊고, 대담하고, 언변이 뛰어난 점에서 블레어와 캐머런은 공통점이 많다. 아울러 영국이 과거처럼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이 아니라는 약점도 같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영국 경제는 중국과 브라질에 따라잡혔다(the U.K. economy has been overtaken by both China and Brazil). 국방예산도 삭감됐다.

미국인들은 흔히 영국을 한물간 구식 나라로 생각한다. 지배 엘리트 계급은 우월감에 빠졌고 하층계급은 걸핏하면 폭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주변의 켈트족 반란도 무시 못할 일이다. 캐머런은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허용하기로 과감히 결정했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승부수였다(call the Scottish nationalists’ bluff). 그가 영국의 분할을 우려할까? 캐머런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나의 모친 쪽은 웨일스의 레웰린 가문이었고, 부친 쪽은 스코틀랜드의 캐머런 가문이었다. 나는 잉글랜드 피가 대부분이고 포르투갈계 유대인의 피가 약간 섞였다(그의 고조부가 유대인 금융업자 에밀 레비타였다). 상당히 바람직한 혼합이다(good mixture). 영국의 전형적인 국민(a classic citizen of the United Kingdom)이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상류층 출신이지만 ‘다운튼 애비’에 나오는 잉글랜드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의 꿈은 진정한 영국이다. 다민족으로 구성됐고(multiethnic), 유럽 대륙과 가까우면서도 포함되지 않으며(close to but not subsumed by Europe),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굴종하지 않는(allied with but not subservient to the United States) 유나이티드 킹덤. 처칠도 고개를 끄덕이리라(Churchill would surely have approved).

[필자는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이며 뉴스위크 칼럼니스트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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