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점입가경 기름값 논란 - 알뜰주유소가 대안 VS 유류세 인하 공방

점입가경 기름값 논란 - 알뜰주유소가 대안 VS 유류세 인하 공방

인천 부평구에서 서울 을지로 부근으로 출퇴근하는 윤모 씨는 얼마 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거리가 멀어 그동안 윤씨는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했다. 윤씨는 “기름값이 지난해에 비해 150원 가까이 오른 것 같다”며 “감당할 수 없어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일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는 리터당 1815.24원이었다. 꾸준히 오른 기름값은 3월 23일 현재 2039.81원이 됐다. 불과 1년 여 만에 200원 이상 오른 것이다. 경유는 1611.79원에서 1857.77원으로 더 크게 올랐다. 주유소 판매가격이 가장 비싼 서울지역은 휘발유가 2114.43원, 경유가 1938.62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100원이나 더 높다.

올 들어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오름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1월 2일 배럴당 104.43 달러였던 두바이유는 석 달 새 15% 이상 올라 3월 22일 122.28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도 배럴당 107.38 달러에서 123.14 달러로,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98.83 달러에서 105.35 달러로 올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 순수입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이 있다는 대형 악재가 터진데다 이라크 등 산유국의 내정 불안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유가가 안정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국 평균 휘발유값 2000원 넘어석유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대책마련에 나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1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재 운영 중인 385개의 알뜰주유소를 3월 말까지 433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박 장관은 “고유가 부담을 덜기 위해 알뜰주유소 확대를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며 “관계부처와 함께 대책을 마련해 알뜰주유소를 서울 등 수도권 핵심지역으로 빠르게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에 지식경제부는 석유공사가 서울시 공영주차장 부지를 임대 받아 간이주유소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서울에 두 곳뿐인 알뜰주유소를 조만간 10여 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름값이 가장 비싼 서울에 정작 알뜰주유소가 없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농협이 서울 시내 주유소 매물을 인수해 NH알뜰주유소로 운영하는 방안과 기부 채납을 전제로 민간 사업자에 국유지를 임대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알뜰주유소가 낮은 가격에 기름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석유공사가 2주 동안 1억5000만원 한도에서 무이자 외상 거래를 제공한다”며 “현재 매출액의 4분의 1수준인 신용보증기금의 보증한도도 3분의 1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원도 늘려 대출금리를 현재 5.1~7.6%에서 4.6~7.1%로 낮추기로 했다.

정부가 대안을 내놨지만 정작 소비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인하 폭을 실감할 만큼 알뜰주유소의 판매가격이 싸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최근 문을 연 부산의 한 알뜰주유소를 찾은 장모 씨는 “인근 주유소에 비해 20~30원 정도 싼 것 같다”며 “소문을 듣고 집에서 4㎞ 떨어진 이 곳까지 찾아왔는데 100원 정도는 저렴해야 체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3월 23일 이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리터당 1968원이었다. 5만원을 주유하면 리터당 2000원 정도인 집 근처 주유소보다 0.5리터 가량 더 주유할 수 있다. 장씨가 소유한 차량의 연비 10㎞ 정도다. 5㎞ 정도를 더 달릴 수 있게 됐지만 왕복 8㎞를 달려 이 곳에 온 장씨는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우리은행, NH농협카드 등이 출시한 알뜰주유소 전용카드를 사용하면 추가적인 할인혜택이 있지만 카드를 별도로 발급해야 하는데다 일반 주유소 역시 카드 할인혜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늘고 있다지만 아직 알뜰주유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주유소협회와 한국납세자연맹이 기름값 논란에 불을 붙였다. 고유가 시대에 서민의 부담을 줄일 대안은 알뜰주유소가 아닌 유류세 인하라는 주장이다. 3월 22일 열린 ‘유류세 불평등 폭로 기자회견’에서 정상필 주유소협회 중앙회 이사는 “알뜰주유소로 국민이 받는 혜택은 리터당 10~20원에 불과한 반면 유류세 중 11.37%의 탄력세율을 조정하면 200~300원의 인하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납세자연맹 관계자 역시 “세금형평성의 측면에서 지금의 유류세는 서민이 더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구조”라며 “연봉 2000만원의 근로소득자가 연소득의 13%을 유류세로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연봉 1억5000만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의 경우 회사에서 유류비가 전액 지원된다”며 “회사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근로자가 오히려 더 많은 유류세를 부담하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유소 혼합판매 20%까지 허용”현재 기름값에 고정으로 붙는 세금은 교통세 529원, 주행세 137.54원, 교육세 79.35원 등이다. 여기에 최종가격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와 원유수입가격의 3%가 관세로 포함된다. 문제는 교통세. 현재의 교통세는 기존의 475원에 탄력세 54원을 더한 금액이다.

2009년 5월 정부는 교통세에 11.37%의 탄력세를 적용해 교통세를 529원으로 올렸다. 납세자연맹 측의 주장은 정부가 이 탄력세를 적용하지 않거나 최대 30%까지 조정하면 휘발유 가격을 최대 277원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탄력세는 다른 세율과 달리 국회의 동의 없이도 30%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다. 납세자연맹 관계자는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던 2009년 탄력세를 적용해 세금을 올린 만큼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지금 다시 조정해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유류세를 인하하면 오히려 부유층이 더 혜택을 보게 된다는 반론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가 급등에도 소비는 줄지 않고, 특히 자동차의 경우 대형차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인하하면 상대적으로 세금 인하 효과는 부유층이 더 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조세연구원 관계자 역시 “2008년에 유류세를 인하한 경험이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보다는 소득과 연계해 유류세 환급제도를 확대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정부는 새로운 대책을 내놨다. 주유소가 혼합석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해 공급가격을 낮추겠다는 것. 3월 23일 박재완 장관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전량 구매계약 관행을 손질하기 위해 혼합 판매에 관한 거래기준을 마련했다”며 “주유소의 혼합석유 판매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월 판매량의 20%까지 혼합석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와 계약할 경우 100% 해당 업체의 제품만 사용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여러 정유사의 석유를 함께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정유사가 주유소 유치경쟁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공급가격의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며 “조만간 열리는 석유 전자상거래 시장과 동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물 석유제품을 주식처럼 거래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을 3월말 개설할 계획이다. 정부는 거래활성화를 위해 전자상거래 시장을 통한 석유제품 판매자에게 공급가액의 0.3%까지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2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3"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4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5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6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7고령화·저출산 지속되면 "2045년 정부부채, GDP 규모 추월"

8해외서 인기 폭발 'K라면'…수출 '월 1억달러' 첫 돌파

9한국의 ‘파나메라’ 어쩌다...“최대 880만원 깎아드립니다”

실시간 뉴스

1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2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3"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4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5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