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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누구에게 바가지 씌워 돈 버는 사람 아닙니다

[CEO]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누구에게 바가지 씌워 돈 버는 사람 아닙니다

이 구멍을 막으니 저 구멍이 샜다. 여기 저기서 강펀치가 들어왔다. ‘마이 묵었다’ 싶었는데도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아웃도어 1위 브랜드 노스페이스 얘기다.

“브랜드가 사회 문제와 결부됐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죠. 모두들 내가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알고 보니 학생들이 만든 노스페이스 계급도 중 최하위인 ‘찌질이’라는 옷이 25만원짜리 다운재킷이더군요. 이 옷은 아웃도어 다운 웨어의 클래식인데, 세계 아웃도어 제품들의 등급을 1에서 100까지 나눌 때 1위에 들어가는 제품이에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모델이죠. 그 옷을 찌질이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겁니다.”

성기학 회장은 망설임 없이 잘라 말했다. “‘등골 브레이커’ 문제는 부모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조르면 다 해주지요. 금전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이 찌질이라고 하는 25만원짜리 재킷을 제 힘으로 사 입으려면 1주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 됩니다. 하루에 4~5만원을 버니까요. 일주일이라도 직접 일해서 번 돈으로 옷을 산다면 그 옷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겁니다. 부모가 그냥 사주는 순간부터 가치관은 전도됩니다. 그래서 25만원짜리 좋은 옷을 ‘찌질이’라고 부르게 되는 거죠.”

성 회장은 소위 ‘대장’ ‘날라리’ 등 높은 계급으로 분류되는 최고급 다운재킷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50만 원대의 비싼 옷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입는 것이죠. 극한의 추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그 때는 50만원 재킷이 비싼 게 아니에요. 투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한번 사면 5년에서 10년 정도 입으니까. 10년이면 1년에 5만원이죠. 하루 일하면 1년 동안 그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옷은 지나치게 비싼 게 아니죠. 다른 브랜드에는 그보다 비싼 재킷들도 많아요.”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에 거품이 많다는 논란을 의식한 설명이었다. 업계 1위라서 그런지 거품 논란과 관련해 노스페이스가 가장 호되게 얻어맞았다.

“아웃도어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킵니다. 다른 업종을 생각해보면 캐주얼 의상이 싼가요? 수량을 많이 만들어 처음에 비싸게 팔다가 나중에 덤핑을 하는 게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하는 거죠. 우리 제품은 아웃도어 온라인 쇼핑몰인 ‘오케이 아웃도어’보다 더 싸요. 좋은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서 회사를 재무적으로 건실하게 이끌어나가야 사업을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을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지요.”

앞서 서울YMCA는 노스페이스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이 미국보다 비싸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스페이스의 아콘카구아 재킷의 국내 가격(32만원)이 미국(16만7300원)보다 91.3%나 높다는 것. 하지만 이 조사는 곧 잘못됐음이 드러났다. 제품명만 같을 뿐 실제는 다른 제품의 가격을 비교한 것.

성 회장의 딸이자 마케팅 담당자인 성가은 이사는 이를 지적하고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YMCA에서는 공정거래법 위반과 가격담합으로 노스페이스를 고발했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YMCA 처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집단은 확인을 잘하고 자료를 냈어야지요. 소비자시민모임에서 나온 것도 전혀 맞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사회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기업과 소비자의 피해가 크죠. 우리는 정직하게 좋은 제품으로 돈을 번 회사입니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금지 조항’은 본사에서 대리점이나 소매점의 판매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낮추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막는 조항이다. 소비자의 권익을 헤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공정위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평소 ‘노세일’을 고수하던 노스페이스는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백화점 등에서 대폭 할인 행사를 해 화제를 모았다.

“공정위 결과는 계속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 베스트 제품을 평균 25% 할인하는 행사를 했죠. 앞으로도 소비자분들께 다양한 혜택을 드릴 수 있도록 한시적인 행사가 아닌 정기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 회장은 지금의 회사를 손수 일궜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아웃도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던 1980년대 중반에 다운웨어, 스키웨어, 방수복, 고어텍스 등을 먼저 선보이고 직접 개발했다. 이후 미국 브랜드인 노스페이스를 97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2000년대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회사 규모도 커졌다. 노스페이스는 단일 브랜드로 매년 30% 내외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 매출 6000억원을 달성했다.



혁신과 모험을 즐기라영원무역은 현재 전 세계 노스페이스 물량의 25%를 생산하고 있다. 또 나이키, 폴로 등 외국 유명 브랜드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를 포함해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총 22개의 생산공장과 14개 해외 마케팅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제가 성공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항상 모험을 즐긴다는 것이죠. 생산성 향상이나 신제품 개발 시 혁명적인 방법이 없는지 궁리합니다. 어려운 현장이 있으면 달려가서 직접 일하고 싸웁니다.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않고 공장에서 밤을 새울 때가 많습니다. 1년에 250일씩 해외로 나가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익힙니다. 혁신이 성공 요인입니다. 누구한테 바가지 씌워서 돈 버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 회장은 최근 일본 골드윈 사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시가총액 4300억원 상당의 골드윈은 노스페이스 아시아 지역 독점 판매권을 가진 회사다. 영원무역은 97년 합작법인 골드윈코리아를 설립해 노스페이스를 판매하고 이익배당을 해왔다. 2010년에는 565억원의 배당을 했다. 비싼 로열티와 배당금을 주기보다는 아예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인수할 생각은 없을까.

“사실상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 사업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브랜드를 잘 경영하고 좋은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하면 되죠. 브랜드를 안 사더라도 성과를 내면 됩니다. 지금도 영원무역은 세계에서 고급 아웃도어 제품을 가장 많이 만드는 신뢰받는 기업입니다. 문제되는 건 없어요.”

자신만만하던 그도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포화 상태라 밝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카테고리 킬러들이 들어오고 있어 건실하게 운영하는 회사들만 살아남을 겁니다. 이제 곧 물러나는 곳들도 생길 겁니다. 요즘처럼 곳곳에서 악의적으로 덤비면 아웃도어의 품위가 손상될 수 있죠. 적극적인 훼방꾼이 나타나면 산업은 힘들어집니다.”



노블리제 오블리주 실천, 무슬림적 생활66세인 성 회장은 세 딸을 경영에 참여시키고 있다. 경영수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큰 딸인 시은 씨는 지주회사 영원무역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와이엠에스에이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래은 씨는 영원무역과 영원무역홀딩스 이사를 맡고 있다. 셋째 가은 씨는 골드윈코리아에서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회사가 세 개 있는데 한 회사에 한 사람씩 관여하고 있어요. 첫째는 성격이 적극적인 편이어서 뒤에 앉아있을 스타일이 아니죠. 둘째는 조금 다른 편이지만 셋째 가은이는 경영에 취미가 있어요. 회사를 어떻게 누구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결정된 게 없어요. 그것도 자신에게 맞아야 하는 거죠.”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 성 회장의 경영자 DNA는 선친에게 물려받았다. 그의 선친은 환금 작물을 재배해 파는 사업을 했다. “아버님은 실사구시를 중시했죠. 경험적인 것을 우선하는 분이셨어요. 또 가르치신 것의 80%는 정직에 관한 것이었죠. 그게 가풍이었습니다.”

경남 창녕에서 자란 성 회장은 고향에 있는 고택을 복원해 한옥 마을을 만들고 있다. “지금 어느 정도 복원이 된 상태고 너 댓 개의 집이 더 있었는데 그 공사까지 마치면 95% 완성됩니다. 마을에 미니 컨벤션 센터를 하나 만들어 한옥에 모여 여러 사람들이 회의도 할 수 있게 할 겁니다. 그 동안 수집해온 한국 고가구와 가야 토기도 진열해놨죠. 요즘 거기서 학회 같은 것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카메라 수집광인 그는 박물관을 차려도 될 만큼의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공장이 있는 방글라데시와 태국, 서울 등에 갤러리를 세 개정도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은퇴 후의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등산 가고 카메라나 닦고 그래야지….”

그는 알게 모르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 그러면서 무슬림적 생활을 한다. “우리 회사가 부자인지 몰라도 내가 부자는 아닙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그저 아버지나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뿐이죠. 개인 재무 관리사도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약간 무슬림적인 생활을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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