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S. Politics] 공화당 온건파의 몰락
[THE U.S. Politics] 공화당 온건파의 몰락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는 영국 비밀요원 오스틴 파워스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 이블 박사의 대결을 그린 SF 코미디다. 1967년 이블 박사는 오스틴 파워스 암살계획이 실패하자 미래에서 성취할 계획을 세우고 초저온 냉동실에 들어가고(cryogenic freeze) 오스틴 파워스도 따라 들어간다. 두 사람은 30년 뒤 깨어나 대결을 벌인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지나고 1990년대에 깨어난 두 사람이 새 시대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그런데 만약 오스틴 파워스가 1997년이 아니라 2012년 깨어난다면 그 반 세기라는 세월 차이를 잊게 해주는 정치 기사 제목이 하나 있다. “롬니, 공화당 보수파와 힘겨루다(Romney Struggles With Republican Party Conservatives).”
1966년 조지 롬니는 공화당 온건파(moderate)로서 보수파를 무너뜨리려고 애썼다. 반면 2012년 그의 아들 미트 롬니는 보수파로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다. 1966년엔 온건파가 공화당을 영원히 지배할 듯했다. 조지 롬니가 그들의 유망주(great hope)였다. 그러나 2012년 온건파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on the verge of extinction). 미트 롬니는 자신을 온건파처럼 보이게 하는 이력과 거리를 두려고 안간힘을 쓴다(distance himself from those aspects of his record that make him look like one of them).
미트와 조지 롬니는 몹시 가까웠다. 그러나 부자(父子) 정치인치고 그들만큼 기질이 다른 사람들도 없다. 조지는 퉁명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었다(direct to the point of bluntness). 1964년 배리 골드워터(공화당 보수파의 대부격이다)가 각종 쟁점에서 자신과 조지 롬니의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자 롬니는 정확히 어떤 점에서 어떻게 견해차가 나는지 12쪽짜리 서한에 촘촘히 적어 보냈다.
조지 롬니는 대공황이라는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뒤 자동차회사 CEO로 갑부가 됐고 미시간 주지사를 지냈다. 그런데도 80세가 넘은 지금 그는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아들의 선거대책본부를 찾을 때면 보스턴 로건 공항에서 지하철을 탄 뒤 다시 버스로 갈아탄다.
조지 롬니는 아들 미트 같은 달변가는 아니었다. 정신적인 민첩함도 아들보다 못할지 모른다(not as adept with words as his son, perhaps not as mentally nimble). 하지만 그는 자신을 정확히 알았다. 그를 포함한 공화당 온건파는 1964년 골드워터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되면 공화당이 망하는 길(a ticket to disaster)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혼쭐난 공화당은 다시 중도로 돌아선 뒤 1966년 중간선거에서 이겼다.
1966년 11월 중간선거 결과 매사추세츠주에선 흑인 에드워드 브루크가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남북전쟁 후 재건시대(Reconstruction) 이래 처음이었다. 일리노이, 오리건, 테네시 주에서도 공화당 온건파가 민주당 진보파를 제치고 상원의원 자리를 차지했다. 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약진했다(scored big wins). 주지사 선거 역시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에서 조지 롬니를 포함해 공화당 온건파가 압도했다.
앞을 내다본 온건파: 온건파의 시대가 도래한 듯했다. 1968년 그들은 자신들 중 한 명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하려 했다. 조지 롬니가 유력했다. 그랬다면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보여준 멋진 장면을 다시 연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공화당 온건파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이젠하워의 대선후보 지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토머스 듀이 뉴욕 주지사는 보수파가 지명되면 “공화당은 완전히 죽은 비둘기로 묻히게 된다(you can bury the Republican Party as the deadest pigeon in the country)”고 말했다.
그 중대한 해였던 1966년 당시 ‘공화당 온건파’는 어떻게 정의될까? 최선의 답은 온건파의 역사를 다룬 제프리 캐버서비스의 책 ‘지배와 몰락(Rule and Ruin)’에 나온다. 60년대의 공화당 온건파는 자유기업 체제(free-enterprise system)의 지지자들이었
다. 그들은 당시 막강했던 노동조합의 힘을 불신했고, 뉴딜 프로그램의 까다로운 관료주의 규정을 혐오했다.
그러나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에 전면적으로 반대하진 않았다. 그들은 까다로운 관료주의 절차 없이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바우처(voucher, 복지 서비스 구매의 비용을 직접 보조해 주는 정부의 지불 보증전표)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호했다. 다수는 밀턴 프리드먼(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의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념에 이끌렸다. 소득의 일정 수준에 못 미친다면 그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금액을 정부의 세수로부터 보조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 개념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60년대에 공화당 온건파가 매력을 느끼는 다른 여러 아이디어는 법으로 만들어졌다. 그 법들이 미국의 현대 복지 체제의 근간을 이룬다. 이제 공영주택(public housing) 대신 민영 아파트 임대 보조금이, 연방식품청 대신 푸드 스탬프(food stamps, 식료품 구매권)가 제공된다.
민권운동의 기수: 공화당 온건파는 60년대 중반 민주당의 두 주요 지지기반에도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북부의 도시 정치 세력(urban political machines)과 남부의 인종차별주의파였다(racist Bourbon Democrats). 공화당 온건파는 30년대부터 연방정부의 민권법을 누구보다 앞장 서서 지지했다.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의 통과에 민주당보다 공화당의 지지율이 더 높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1965년 그리스월드 대(對) 코네티컷 재판(Griswold v. Connecticut)의 판결이다. 헌법상 자기 결정권으로서 사생활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례였다(정부가 부부의 피임제 구입을 금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1941~59년 그 금지법을 폐지하려는 법안이 코네티컷주에서 17건이나 상정됐다. 공화당이 지배한 하원에서는 전부 통과됐지만 민주당이 지배한 상원에서는 전부 거부됐다.
공화당 온건파의 딜레마는 조지 허버트 워커(H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프레스콧 부시의 정치 경력에서 잘 드러난다. 프레스콧은 미국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의 재원조달 책임자를 지냈고 미국 흑인연합대학기금(United Negro College Fund)의 회장도 역임했다. 그런데도 1950년 프레스콧 부시가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두 단체 모두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현지 가톨릭 세력이 지지하는 민주당 현직 상원의원에게 패했다.
조지 롬니는 공화당 온건파의 사고방식을 상징했다(George Romney epitomized the thinking of moderate Republicans). 민권법 지지가 특히 그랬다. 조지 롬니 부부는 모르몬교의 독실한 신자였지만 그 교회의 인종차별 관행의 폐지를 적극 주창했다.
배리 골드워터가 민권법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지 롬니는 1964년 그의 대통령후보 지명에 반대했다. 골드워터가 대선후보로 지명됐을 때 롬니는 그의 지원 유세를 거부했다. 골드워터의 지명을 “수용(accept)”하지만 “지지(endorse)”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직설적인 태도(outspokenness) 때문에 68년 조지 롬니의 대통령후보 지명도 무산됐다.
196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인물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는 64년엔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온건파에 동조한다는 뜻을 교묘하게 내비쳤다. 2006년 이후 미트 롬니가 즐겨 쓴 수법과 유사하다. 대통령에 선출된 닉슨은 공화당의 양대 파벌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보수파의 수사법을 쓰면서도 환경과 차별 문제에선 온건파의 입장을 견지했다(He used conservative rhetoric, but on environmental and discrimination issues he governed with the GOP moderates). 닉슨은 연간소득 보장과 전국민 건강보험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지배한 의회가 반대했다.
온건파의 침몰: 당연히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And yet of course history went in a different direction). 과거의 위그당(the Whigs)처럼 공화당 온건파는 몰락했다. 그래서 미트 롬니의 대선 전략이 위기에 처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부패 추문(corruption scandal)에 휩쓸리자 미트 롬니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는 그 업적을 바탕으로 유타주에서 정치 경력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 매사추세츠주로 돌아가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매사추세츠는 오랫동안 공화당 온건파의 보루였다.
주지사로서 롬니는 공화당 온건파의 전통을 따라 업적을 쌓았다. 주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책임소재를 확실히 규명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특히 민간 보험사를 통한 전 주민 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08년 대권 도전에서는 그의 업적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올해 백악관 도전에선 그의 건강보험 개혁이 가장 위험한 악재(most dangerous liability)로 작용할지 모른다.
변화의 희생자: 조지 롬니를 지지한 공화당 온건파들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 미국의 문화적, 인구 구성적 변화의 희생자가 됐다. 남부의 기독교 복음주의를 견지하는 보수파(evangelical Southern conservatives)와 백인 근로계층(white working-class ethnics)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돌아섰다. 대신 종교를 중시하지 않는 북부의 전문직 종사자들(Northern professionals and managers)이 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제프리 캐버서비스는 ‘지배와 몰락’에서 공화당 온건파가 조직동원 능력이 부족하고 명확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moderate Republicans were doomed by their weak organizational skills and their lack of a clear program)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보수파가 그들을 능가했다.
그러나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공화당 온건파는 미국 경제의 변화에 따른 희생자이기도 하다(casualties of changes in the U.S. economy). 조지 롬니와 그의 지지 세력은 경제적인 승자였다. 재력도 학력도 높았다. 그러나 당시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혜택은 돌아가는 시대였다. 1950~60년대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이익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 사회 결속력(social cohesion)을 위한 좋은 투자로 보였다. 특히 대공황의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랬다.
반면 오늘날의 경제는 그보다 훨씬 각박해 보인다(Today’s economy looks much more pinched). 요즘의 승자는 이익을 공유할 여지가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지금의 환경이 적대적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줄 지도자를 원한다.
돌이켜보면 공화당 온건파는 미국 정치에서 남을 배려하는 가장 고결한 파벌이었다(the ultimate “good sports” of American politics). 그러나 지금 같은 ‘승자 독식(winner take all)’의 시대에는 그들의 입지가 너무도 좁다(there isn’t much room for such people).
번역 이원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2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3“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4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
5“교통 대란 일어나나”…철도·지하철 등 노조 내달 5~6일 줄파업
6‘조국 딸’ 조민, 뷰티 CEO 됐다…‘스킨케어’ 브랜드 출시
7 러 “한국식 전쟁동결 시나리오 강력 거부”
8경주월드, 2025 APEC 앞두고 식품안심존 운영
9구미시, 광역환승 요금제 시행..."광역철도 환승 50%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