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VISION] 60년대의 향수 ‘매드맨’과 직장 여성
[TELEVISION] 60년대의 향수 ‘매드맨’과 직장 여성
LA의 비 내리는 아침. TV 드라마 ‘매드맨’(3월 25일 AMC 채널에서 시즌5를 시작한다)에서 페기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모스가 촬영장 뒷문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촬영 중에는 니코틴 성분이 없는 허브 담배(herbal cigarettes)만 허용되기 때문에 그녀는 ‘진짜 담배(the real thing)’가 그리워 슬쩍빠져 나왔다. 그녀에게 다가가 뉴스위크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나도 극중의 페기처럼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기사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모스는 “어머나, 내가 바로 당신이네요(I am you)!”라고 반색했다.
모스가 연기하는 페기 올슨은 노르웨이계 미국 여성으로 브루클린 베이 리지 출신의 가톨릭 신자다. 모스에 따르면 집안 형편이 어려운 페기는 1960년 비서학교를 갓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여성 대다수가 택한 진로였다(That was the path then for women). 페기는 가상의 광고대행사 스털링 쿠퍼 드레이퍼 프라이스의 제작부에서 글솜씨를 인정받아 돈 드레이퍼의 비서에서 그의 신임 받는 2인자 자리에 오른다. 그녀의 성공에는 대가가 따른다(Her success is not without cost). 개인 생활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she puts her personal life on hold). “페기 같은 여성은 남자들을 넘어뜨리며 법석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는
다(didn’t want to take men down and cause a ruckus)”고 모스가 말했다. “그녀는 글쓰기를 좋아할 뿐이며 그런 기회를 원한다.”
1960년대는 여성의 노골적인 야심이 용인되지 않던 시대였다(Women weren’t supposed to be openly ambitious in the ’60s). 나는 뉴스위크에 비서로 입사하면서 타이핑하는 내용이 재미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미국에 이민 온 부모의 딸로 아버지는 식품점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감자 샐러드와 라이스 푸딩을 만들었다. 당시 내가 기자나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뉴스위크에서 여직원들의 좌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고 60년대가 끝나기 직전 거기서부터 여권운동이 시작됐다.
‘매드맨’ 촬영장에서 보낸 이틀 동안 60년대로 돌아가는 타임캡슐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펜슬 스커트(길고 폭이 좁은 치마), 밴
드 스타킹부터 최신 기계인 전동타자기까지... 당시엔 흡연이 만연했다. 이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등장인물 모두가 담배
를 피운다는 점을 지적하며 건강에 나쁜 습관을 미화한다(glorifying a nasty habit that carries significant health risks)고 공격하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그랬다(that’s the way it was then). 퀸즈에서 내가 다닌 공립 고등학교는 교실 밖에서 담배 피울 시간을 주었다(let us out for a smoking break).
‘매드맨’은 매디슨 애브뉴의 광고 문화를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그 문화는 ‘말보로맨’을 만들어냈고, 의사들을 내세워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 브랜드를 추천하게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광고대행사의 제작감독 돈 드레이퍼는 러키 스트라이크 담배의 광고 문구로 ‘덖었다(It’s toasted, 열을 가해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다)’는 표현을 생각해 낸다. 그러자 누군가 모든 담배가 다 그렇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드레이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다른 담배는 전부 유독하지만 러키 스트라이크는 덖은 담배다(Everybody else’s tobacco is poisonous. Lucky Strike’s is toasted).” (덖으면 독성이 사라진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지만 잘 먹혀 들었다.)
그 한마디가 ‘매드맨’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다. 민권운동, 여권운동, 반전시위로 지배 계층이 어쩔 수 없이 각성을 하기 전인 60년대 초, 매디슨 애브뉴가 만들어 내고 판매한 아메리칸 드림(the making and selling of the American Dream by Madison Avenue)을 말한다. 이 옛 시대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전부 나이가 적어 60년대 시대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좋았던 시절(the good old days)’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백인, 남자, 이성애자로 태어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여자의 숙명?: ‘매드맨’은 대부분 드레이퍼의 혼외 여성편력(extramarital exploits)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아내를 포함해 잠자리를 함께 하는 모든 여자를 냉담하게(callous) 대한다. 하지만 그는 겉보기와 다르다(But he isn’t exactly what he seems). 어떤 면에서는 다른 어떤 등장인물보다 여성을 존중한다. 자신의 남성다움을 위협받지 않고 여성의 장점을 인정하고 보상해 줄만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페기가 가장 큰 혜택을 입는다. 그녀는 카피라이터로 발탁된다. 여성에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일도 많아 고민한다. 모스는 자신이 연기하는 페기의 심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해야 할까? 아기를 가져야 할까? 26세
의 여성으로서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이 매우 크다.” 페기는 임신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가 갑작스러운 진통으로 아기를 낳은 뒤 은밀히 아기를 포기한다.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전이었지만 당시 20대 여성에겐 그 시계가 요란하게 째깍거렸다. 30대 이전에 출산을 해서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페기는 직장에서 성공할수록 개인 생활에 주어진 선택은 더 적어진다고 믿는다.
비서들 중 요부형인 조앤(크리스티나 헨드릭스가 연기한다)은 페기의 승진을 받아 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당시 사회가 원하던 여성상의 전형이다(Joan is the embodiment of what society has told her). 여성에게 직장은 가정을 이루어가는 징검다리이며, 임자(the right person)를 만날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과 데이트할 기회일 뿐이다. 조앤은 직장 상사와 격정적인 정사를 벌이지만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 동료들이 자신에게 성적으로 이끌린다는 사실을 안다. 잘만하면 일이 잘 풀릴지 않을까? 그녀는 의사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보기와 다르다.
그가 그녀를 강간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엔 데이트 강간(date rape)이나 결혼 강간(marital rape)이라는 말은 없었다. 헨드릭스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실에 분통을 터뜨린다. 촬영장 밖에서 사람들이 “극중에서 당신이 강간 비슷한 걸 당했을 때(When you sort of got raped)…”라고 말하면 그녀는 “비슷하다(sort of)는 게 무슨 뜻이죠?”라고 따진다. “단지 목에 칼을 들이대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나요(Just because there wasn’t a knife to your throat)?”
안정된 결혼생활의 덫: 매디슨 애브뉴의 현실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장주부 베티 드레이퍼(주인공 돈 드레이퍼의 아내)도 만들어냈다. 멋쟁이 남편, 사랑스러운 자녀, 교외 부자 동네의 저택 등 행복한 삶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녀만이 아니라 안정된 결혼생활이라는 환상에 속았다고 생각하게 된 대졸 여성 수백만 명의 이야기다. 베티는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린 베티 프리던이 1963년 저서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에서 말한 “이름을 붙이기 불가한 문제(the problem that has no name)”의 완벽한 본보기다.
재뉴어리 존스가 연기하는 베티는 현모양처 역할에 환멸을 느끼고 모델 일을 다시 해보려고 하지만 남편의 반대에 부닥친다. 그래서 승마도 하고 아기도 더 갖지만 결국 드레이퍼와 갈라선 뒤 재혼한다.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자녀에게 냉담한 그녀는 불만투성이다. 존스는 자신이 연기하는 베티를 두고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I understand her psyche)”고 말했다. “그녀의 사정은 잘 알지만 그녀가 싫을 때가 있다.”
특히 베티와 딸 샐리(12세의 키어넌 쉬프카가 연기한다)의 관계가 폭발 일보 직전이다. 10대인 샐리가 자신이 얼마나 힘이 있는 지 알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질 듯하다. 이혼한 부모를 서로 맞서게 만들면(playing her divorced parents against each other)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60년대의 시대상으로 생각하는 격동(turbulence) 그 자체다.
‘매드맨’은 당시의 성별 계층화(gender stratification)를 정확히 반영한다. 만연한 흡연(prevalence of smoking), 폭음 문화(heavy drinking culture), 문란한 성문화(a fair amount of sleeping around) 등. 60년대의 뉴스위크에서도 결혼한 남자 기자와 편집자들, 젊은 독신여성 리서처(당시는 “여성에게 아주 좋은 직업”으로 간주됐다)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뉴스위크는 연수 프로그램으로 일류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들을 채용해 처음에는 우편물 담당(mail desk), 그 다음엔 클리핑 담당(clipdesk, 신문에서 기사를 오려 분류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탐내는 리서처(researcher, 기사 내용의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로 승격시켰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나를 제외하고 뉴스위크에서 일하는 여성 모두가 미국의 7대 명문 여대(Seven Sisters colleges)나 다른 엘리트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유럽에 가봤고, 점심 시간에 고급 백화점 삭스피프스 애브뉴(Saks Fifth Avenue, 뉴스위크 바로 부근에 있었다)에서 쇼핑을 하거나 단골 전문 치료사(therapist)를 찾았다. 똑똑하고 재능 있고 야심 만만한 이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뉴스위크에 실리는 기사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일(fact checkers)을 했다. 그러나 가끔 지시에 따라 취재도 했고, 남자 기자나 편집자들이 일하는 동안 연필을 깎아주고 세탁물을 찾아주는 등 정서적인 지원(emotional support)도 했다.
‘매드맨’의 열성팬들(diehard fans)은 시즌3의 한 회에서 어느 뉴스위크 리서처의 이야기가 언급된 장면을 기억할지 모른다. 당시 라디오 뉴스에서 재니스 와일리와 에밀리 호퍼트라는 두 젊은 여성의 살인 사건이 보도됐다. 뉴스위크 리서처였던 와일리는 1963년 8월 28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녀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행진시위[킹 목사는 거기서 유명한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했다]에 참가하려고 결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와 룸메이트가 시체로 발견되자 언론은 ‘직장여성 살인사건(Career Girls Murders)’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여성이 가정의 보호 울타리를 벗어나 맨해튼 같은 곳에서 독신으로 살면 그런 일을 당한다(this is what happens when girls leave the fold and live as single women in Manhattan)는 메시지였다.
물론 독신 직장여성 대다수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평범했다(prosaic). 뉴스위크 리서처로 일한 한 여성은 동료 두 명이 남자 기자들의 심부름으로 회사 근처의 술집에 가서 마티니를 주문한 뒤 종이컵에 담아 가방에 넣어온 일화를 기억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술은 마티니였다(The drink of choice was the martini). 피터 골드먼 전 뉴스위크 기자는 “새 물통만한 크기의 잔(glasses the size of birdbaths)”에 마티니를 마시곤 했다고 돌이켰다. ‘마티니 세 잔을 곁들이는 점심(three-martini lunch)’은 사업가나 기업 간부들이 즐기는 호화로운 오찬의 비유가 아니라 실제였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
다른 전직 뉴스위크 기자는 “이 일의 최고 장점은 취해서 할 수 있다는 것(the great thing about this job is you can do it drunk)”이라고 말했다. 골드먼은 뉴스위크의 전통인 금요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얼큰해져 힘이 솟았고, 마치 신경안정제를 먹은 듯 긴장이 풀렸다(lightly buzzed—it was relaxing, like a Valium)”고 돌이켰다.
돈 드레이퍼가 뉴스위크에서 일했다면 아마도 물 만난 물고기였을 듯하다(Don Draper would have felt right at home at Newsweek). 나는 편집부 간부들 사무실에서 미니바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몇몇 기자는 책상 서랍 맨 아랫칸에 술병을 감춰뒀다. 뉴스위크의 많은 젊은 독신 여성도 드레이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지 모른다 (would have been easy prey). 극에서 드레이퍼의 여성편력(prowess with women)은 사람들이 서로,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속이는지 보여주는 끝없는 반전(plot twists)을 제공한다. 밝혀 두지만 드레이퍼 역을 맡은 존햄은 극중 인물과 달리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다.
햄의 아버지는 60년대 식의 가족회사 대표로 고급 정장이 옷장에 가득했지만 결국 파산했다. 따라서 드레이퍼의 복잡한 심리를 잘 안다. 시즌4의 마지막 회에서 드레이퍼는 새 비서와 약혼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약혼 소식을 그동안 만나던 애인에게 전화로 전해 충격을 던졌다. 그녀는 그와 직업상 동격인 소비자 심리학자(consumer psychologist)였다. 햄에 따르면 두 가지 길이 있을 때 드레이퍼는 늘 쉬운 길을 택한다. 이 경우는 훨씬 젊고,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으며, 영웅을 숭배하는 비서를 말한다.
아내와 연인들: 당시에는 언론사 간부와 기업 임원들이 드레이퍼처럼 외진 교외에 가족을 가둬두고 자신은 마치 신이 내린 권리인양 시내에서 즐겼다. 피터 골드먼은 1962년 뉴스위크에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그는 한 동료로부터 뉴스위크에서 가장 기혼티를 내는 남자(the most married man at Newsweek)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칭찬이 아니었다(he didn’t mean it as a compliment)”고 그가 말했다. 뉴스위크에선 불장난부터 사내 부부 비슷한 더 깊은 관계까지 모든 연애가 만연했다. 일부 관계는 사외로까지 이어졌다. ‘매드맨’의 한 장면에 딱 어울릴 만한 사건도 있었다. 한 전직 리서처는 유부남 편집자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야한 잠옷과 그에 어울리는 슬리퍼와 깃털 목도리를 받았다. 친구로 점심 몇 번 같이 먹었는데 그가 오해했다고 화들짝 놀란 (horrified) 그녀는 그 원치 않는 선물을 사무실에 가서 돌려주었다. “농담이었는데(It was a joke)…”라고 그가 계면쩍게 말했다.
당시 뉴스위크 13층에는 안에서 문이 잠기는 방 두 개를 갖춘 의무실이 있었다. 직원들이 즐겨 찾는 밀회 장소였다(a favorite place for trysting). 나는 그런 ‘과외활동(extracurricular activities)’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조가 굳어서가 아니라(Not that I was super-principled) 이전 직장인 광고대행사 앨버트 프랭크-귄터 로에서 비서로 일했을 때 만난 TV 담당 국장 브룩스 클리프트와 이미 동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력적이고 세상 물정에 밝았다. 그는 내게 읽으라고 책도 주고 내 견해가 중요한 듯이 묻곤 했다.
세 번 결혼 전력이 있는 그는 나보다 21세 연상이었다. ‘매드맨’에 나오는 남자와 흡사했다. 그는 결국 내 남편이 됐고 나는 그와 세 아들을 낳았다. 우리는 그의 동생인 인기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시어머니가 되실 분은 내 어머니에게 우리 결혼이 잘 될지는 오직 신만 안다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는 클리프트 가족과 곧 친해졌다.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던 어머니는 몇 번 홀짝거리고는 취해(got tipsy on a few sips of liqueur) 소파에 앉아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키득거렸다.
아 옛날이여!: ‘매드맨’의 제작 총책임자 매튜 와이너는 자신의 부모가 결혼선물로 받은 고색창연한 ‘칩 앤 딥(chip and dip, 감자칩 등을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뜻이다)’ 접시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야한 진녹색에 한가운데 붉은 토마토 모양으로 소스를 담는 곳이 있었다. “이 접시가 내가 자란 시대를 상징한다”고 와이너는 말했다. “난 1959년 결혼한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나처럼 운 좋게 부모를 잘 만난다면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된다.” 80년대에 성장한 와이너의 세대는 ‘매시(한국전 당시 미 육군 이동외과병원을 배경으로 한 코디미 드라마)’와 ‘해피 데이즈(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의 이상화된 삶을 그린 드라마)’, 그리고 50년대식 간이식당(diners)을 좋아했다. 아주 보수적인 시기였다고 와이너는 말했다. 그 세대의 대학시절에는 에이즈 때문에 여러 상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60년대는 자유로운 사랑이 있었고, 그리고 사회가 족쇄를 풀어 던진 영광의 시대(glorious period when there was free love and society threw off its shackles)로 기억됐다. 그래서 와이너는 그 시대를 더 많이 알고 싶어했다.
와이너의 부모는 그가 열 살 때 이혼했다. 그는 신경전문의(neurologist)였던 아버지를 “매우 고결한(very virtuous) 분”이라고 표현했다. 낸시 여사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알츠하이머병을 밝혔을 때야 그는 아버지가 레이건의 주치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 출신으로 전업주부가 됐다. 베티 드레이퍼와 닮은 꼴이다. “권한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았지만 여생을 후회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라고 그가 말했다. 시즌5는 어떻게 진행될까? 와이너가 주는 드문 힌트 중 하나는 끝없이 불만인 베티의 이야기다. 베티는 드레이퍼와 이혼한 뒤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의 홍보 ・조사 담당인 헨리 프랜시스와 재혼한다. “베티 드레이퍼가 책을 읽고 여권운동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와이너는 말했다. “성립될 수 없은 아이디어다. 아마 그와는 다른 식으로 깨달음을 얻을 거다(She may find enlightenment some other way).”
영화사 라이언스게이트가 제작한 ‘매드맨’은 역사적 사실성(historical accuracy)으로 격찬 받으며 에미상을 여러 번 탔다. 내가 촬영장에 갔을 때 의상 디자이너 제이니 브라이언트가 와이너에게 드레이퍼의 셋째 아들 유진 때문에 디자인한 옛날식 플라스틱 기저귀 커버의 스케치를 보여줬다. 요즘은 아기용으로 생산되지 않는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독성 때문이란다(because they’re toxic). 당시와 지금 사이에 우리가 건강과 안전의 문제를 얼마나 많이 알게 됐는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시즌1의 한 장면에서 어린 딸 샐리 드레이퍼는 친구들과 우주인 놀이를 하면서 플라스틱 봉지를 머리에 쓰고 뛰어다닌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베티는 단지 딸아이의 옷이 구겨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와이너는 머리 속으로 예닐곱 명의 등장인물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 그는 일어서서 서성이며 작가의 조수에게 줄거리(storylines)를 불러준다. “낯선 사람에게는 정신이상처럼 보일 수 있다(It would appear psychotic to a stranger)”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는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아주 질서 정연하다(It is not stream of consciousness, it’s very organized).” 그는 작가실에서 작업한다. 십여 명의 작가들이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대본 초안을 만들면 와이너가 수정한다. “무에서 시작하기보다 수정하기가 훨씬 쉽다(It’s way easier for me to rewrite than starting at zero)”고 그는 말했다.
기대하시라!: ‘매드맨’은 논란 많은 협상 끝에 세 시즌을 더 하기로 결론이 났다. 와이너는 벌써 대단원을 어떻게 내릴지 많은 질
문을 받는다. 현 시대를 배경으로 막을 내릴까? 그러나 드레이퍼 같은 사람을 현시대로 불러오기는 힘들다. “그들이 자연의 변종이 아닌 다음에야((unless they’re freaks of nature)” 그처럼 술 담배를 많이 하는데 2010년대까지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그가 말했다.
“베티가 80세 이상까지 살며 스판덱스 옷(신축성이 좋아 주로 노인들이 입는다) 을 입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I don’t want Betty to be in her 80s and in spandex)” 고 그녀 역을 맡은 존스가 말했다. “제발 그 전에 죽게 해달라(Kill me off before then, please).” 그러나 존스는 자신에게도 할머니가 두 분 계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말을 고쳤다. “우리 할머니들도 스판덱스 옷을 입는다. 원한다면 록춤도 출 수 있다.” 와이너는 ‘매드맨’의 팬들이 만족스럽게 마무리를 짓겠다는 확약을 자신에게 바란다고 생각한다. “무 자르듯 그냥 덜컹 끝내지 마라는 뜻(Don’t just use a scissor to cut the ribbon)” 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내가 그런 사실을 알기를 원할 뿐이다. 나도 내가 그 점은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다.”
‘매드맨’의 세계는 시즌5에서 6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돈 드레이퍼와 친구들은 성별과 세대 격차에서 불리한 쪽에 서게 된다. 실제로 60년대가 끝나면서 미국 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뉴스위크의 ‘여성 반란(Women in Revolt)’ 표지기사는 1970년 가판대에 등장했다. 바로 그날 뉴스위크의 여성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성차별(gender discrimination)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발표했다. 그 소송은 뉴스위크 뉴욕 사무실의 리서처 6명이 시작했지만 나중엔 소송인이 46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편집인이던 오스본 엘리엇은 진보주의자를 자처한 훌륭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여직원의 집단 소송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여직원들과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변호사 엘러너 홈스 노턴(현재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이다)을 만난 자리에서 엘리엇은 뉴스위크가 흑인 기자, 특파원, 편집자를 고용하는 데 힘써 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노턴은 “엘리엇씨, 그건 당신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Mr. Elliott, all you’re telling me is you’ve got two problems)”라고 잘라 말했다.
뉴스위크는 그 이전까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남성 편집자들이 여성운동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사내에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법적 보상이 불가피했다(legal redress was essential). 나의 경우는 차별철폐 정책(affirmative action)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얻었다. 인턴 과정을 끝낸 뒤 지미 카터의 백악관 도전을 취재하게 됐다. 그래서 워싱턴으로 갔고 지금까지도 워싱턴에 있다. 나의 신데렐라 이야기다(It’s my Cinderella story). 드라마 ‘매드맨’이 정확히 포착하는 바로 그 시대의 이야기다. 그후 미국 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
가 일어났다. 역사책에 오르지 못한 숱한 사람들이 벌인 투쟁의 결과였다. 미력하나마 거기에 기여할 기회가 주어져 기뻤다(To be part of it in even a small way sure was fun).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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