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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폐기되는 경제·민생 법안

[Focus] 폐기되는 경제·민생 법안

46.5%. 18대 국회에 묵혀 있다가 폐기될 운명에 처한 법률안 비율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1만2184건,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1693건이었다. 이 중 4월 6일 현재 의원발의 법안은 49.6%(6043건), 정부제출안은 24%(407건)가 계류 중이다. 이전 국회보다 두 배 가까운 법안이 쏟아졌지만, 절반 가량은 5월 29일 18대 국회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된다.

상임위 별로는 보건복지위원회가 1033건으로 가장 많고, 행정안정(762건), 법제사법(475), 교육과학기술(475), 환경노동(475), 기획재정(455) 순이었다. 4·11 총선 후, 한 차례 임시국회가 열릴 예정이지만 계류 중인 법률안이 대거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본지가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6450건의 미처리 법안을 검토한 결과, 민생·복지·산업 육성·일자리 창출 등 경제 관련 법안이 수두룩했다. 상당수는 여야 대립이 심하거나 쟁점이 많은 것도 아닌데 특별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미뤄진 법안들이었다. 정부가 2008년 말 제출한 ‘신항만·신공항 개발촉진법안’이 그런 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방치된 법안 많아신항만과 신공항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민간 참여를 확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검토보고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1200일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광단지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지역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제출한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3년 가까이 국회에 방치됐다. 엔젤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대상에 창업 3년 미만 신생기업을 포함하도록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기술 도입단계의 중소기업에도 중기청 기술혁신개발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소기업기술혁신 촉진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통화옵션이나 환변동보험 피해 기업에 대해 정부가 특별보증을 해주도록 하는 법률안도 ‘키코(KIKO)’ 관련 이슈가 잠잠해지면서 국회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서비스무역협정으로 발생하는 중소유통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중소기업 인력 지원 대상을 금융·부동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을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의 무관심 속에 폐기 직전에 있다.

규제 완화 법안들도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한국투자공사의 차입·채권 발행을 허용하고 자산운용 자율성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투자공사법’은 1000일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주회사 관련 규제와 금융회사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첨단산업의 경우 수도권에 공장을 신·증설할 수 있도록 한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계가 조속한 국회 통과를 바랐던 법안들도 많다. 연구개발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제출한 ‘연구개발서비스업 진흥법안’,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대형 투자은행(IB)에 기업 신용 공여를 허용하고 거래소 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대한 법률 개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금융계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서울IB포럼은 지난해 12월 말 “자본시장의 발전과 금융투자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시장법개정안이 이른 시일 안에 통과·시행될 것을 요청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도 마찬가지다. 관련 공무원들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맨투맨’ 설득 작업을 벌이면서 국회 통과를 기대했던 이 법안은 2월 9일 국회 경제재정소위에는 올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 위기에 몰렸다. 서비스산업 발전법은 제조업에 비해 한참 쳐져 있는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학생·여성 위한 법안도 많아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5년 단위로 서비스산업 육성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연도별로 시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간 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도 만든다. 법제처에 따르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 주요 정부 입법 11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심을 끌었던 민생·복지 법안들도 폐기 직전이다. 대학 등록금 관련, 재학 중에는 이자 부담 없이 대출을 받고 졸업 후에 소득 수준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도록 한 ‘소득연계 학자금 융자 특별법안’, 해킹 피해를 입을 경우 전자금융사업자가 이용자에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납세자의 과세 불복청구가 받아들여졌을 경우 국가가 소송 비용을 보전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은 발의·제출 당시 화제가 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결혼·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고용하는 사업주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건설직 근로자도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에 대해 비과세를 적용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학습지 교사·보험모집인·방송사 구성작가 등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직업군을 근로자로 규정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역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국회에 잠들어 있다

장례식장에 화장로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낱개로 팔 수 있게 한 ‘약사법 개정안’, 불법대부업자의 과도한 채권추심 행위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증권사가 판매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도 예금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금융판매업자에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하고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연체와 이자율 변경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사항이 발생할 경우 은행이 즉각 고객에게 통보하는 것을 의무화한 ‘은행법 개정안’, 반복·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 대한 벌금형 하한을 정하고, 명단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 등도 국회의 무관심 속에 처리되지 못했다.



주요 법안 19대 국회서 되살려야물론 법안이 폐기된다고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제출하면 된다. 17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폐기됐던 3574건의 법률안 중 상당수는 18대 국회 때 재발의 됐다. 18대 국회 개원 첫 날 발의된 첫 법안인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의 환수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이 그런 예다. 양승조 민주통합당(옛 민주당) 의원이 낸 이 법안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양 의원은 초선 시절인 2006년 8월 같은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8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한 양 의원은 이 법을 재발의 했고, 2009년 말 다른 유사 법안과 묶여(대안 폐기) 국회를 통과했다.

실제로 폐기 직전인 민생·복지 법안 중에는 4·11 총선 공약으로 재등장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임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는 자유선진당 선거 공약은 2008년 7월 최규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주택임대차 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같은 내용이다. 이 법안은 1300여 일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택임대차 보호법 관련 법안은 18대 국회에서만 24건이 발의됐지만 5건만 국회를 통과했다.

복지 공약 중에도 발의 법안을 재탕한 것이 많다. 민주통합당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준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이는 2008년 12월에 국회에 발의된 ‘고용보호법 개정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정년 60세 연장 공약 역시 강성천 새누리당 의원이 2010년 8월 발의한 법안에 포함돼 있다.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노인 일자리 창출과 인력개발 지원을 골자로 한 ‘노일 일자리 창출 및 인력개발에 관한 법률안’, 마이로크레딧(소액대출)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액 무담보·무보증 자립자금 대출에 관한 법률안’은 여러 국회의원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발표했다.

여야가 서로 베끼기라도 한 듯 내놓은 불공정 하도급 근절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에는 현재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14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에는 공공기관 발주 사업의 겨우 대금을 원청업체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 업체에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 포함돼 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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