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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at large]King Khan
파키스탄의 차기 총리를 꿈꾼다

[Reporter at large]King Khan
파키스탄의 차기 총리를 꿈꾼다

파키스탄 크리켓 스타 출신의 정치인 임란 칸은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은색 랜드 크루저 운전석에 앉아 펀자브의 밤길을 달린다. 자동차는 가축과 갖가지 장식이 달린 대형 화물트럭들 사이를 비집고 위태롭게 질주한다. 파키스탄에서 칸의 얼굴은 꽤 잘 알려졌지만 그가 사람들을 가득 태운 픽업 트럭과 삼륜차들을 지나쳐 속도를 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의 차는 갑자기 반대 차로로 들어서서 역주행하는가 하면(swerving into oncoming traffic) 갓길(the shoulder of the road)을 달리기도 한다. 밀밭에서 나온 두 여인이 갑자기 전조등 불빛 앞에 나타나자 그는 민첩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 사이에 차를 멈춰 세운다. 칸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으면서(quickly collects himself) “(이럴 땐) 반사신경이 뛰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포린 폴리시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칸은 마치 왕이 될 사람처럼 말한다. 론 폴(미 텍사스주 하원의원)처럼 오랫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선거운동을 해 왔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칸은 수년만에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치 집회를 열어 파키스탄과 서방의 관측통들을 놀라게 했다. 만약 그가 내년 초 선거에서 총리에 당선된다면 1971년 이후 최초로 부토-자르다리(고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 그녀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 가문이나 군사독재자, 또는 나와즈 샤리프(전 총리)의 후계자가 아닌 인물이 파키스탄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셈이다. 그는 “우리는 선거에서 이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 계획대로라면 압승을 거둘 것이다(we will sweep it).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칸은 중도파인 자신의 정당 파키스탄 정의운동당이 집권할 경우 90일만에 파키스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마치 쉽게 이길 수 있는 크리켓 경기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탈레반과 다른 이슬람 무장세력을 다루는 칸의 전략은 극단주의자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소수종족 거주지역(the unruly tribal areas)에서 군을 철수시키고 무장세력들과 대화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에게 아프가니스탄 내부와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진행 중인 전쟁은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광기(madness) 그 자체다. “똑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a different result)을 말한다. ... 파키스탄군은 자국민을 죽인다. 지금은 파키스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시기다. 우리는 무고한 희생자(collateral damage)를 냄으로써 무장세력을 탄생시켰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돈에 눈먼 지배층이 국민을 배신했다.”

그는 국경 지역의 전쟁을 끝내는 일 외에 두 가지 공약을 더 내걸었다. 부패척결(battling corruption)과 미국 정부에 대한 저항(standing up to the American administration)이다. 이 약속으로 그는 아주 흥미로운 정치적 입장에 놓이게 됐다. 국내에서 부패가 심해질수록, 또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악화할수록 그에겐 더 유리하다.

“유권자들이 다른 정당들에 환멸을 느낀 것이 임란 칸에겐 기회가 됐다.” 라호르에서 발행되는 독립 주간지 프라이데이 타임스의 발행인이자 칸을 자주 비난해 온 주그누 모신의 말이다. 칸이 어떤 총리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칸은 역사나 정치, 경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 특히 옳지 않은 말에 현혹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그가 총리가 된다면 십중팔구 군부가 계속해서 나라를 쥐고 흔들 것이다(the military would probably continue to call the shots).”

파키스탄 기업인들은 칸의 선거운동을 후원한다. 또 라호르의 분석가 하산-아스카리 리즈비에 따르면 칸은 “종교 정당에는 투표하기 싫지만 그 정당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원하는” 중산층과 젊은이들, 우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모신과 다른 관측통들은 칸이 비밀리에 군부와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지지를 받는다고 말했지만 칸 자신은 비밀스러운 관계(clandestine connections)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ISI의 국장을 지냈으며 “탈레반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미드 굴은 일부 보안군이 칸에게 동조하지만 칸이 그들의 명령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지지하지만 그들은 그저 개인일 뿐이다.”

칸에게 파키스탄 군부나 정보 당국이 파키스탄 내에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그들이 알고도 숨겼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하급 장교들이 (빈 라덴의 은신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국의 행동이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지독한 모욕감(total sense of humiliation)”을 안겨줬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사살하지 말고 생포했어야 했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 병력 3만5000명이 희생됐다. 이래도 미국과 파키스탄이 우방인가?”

칸의 대중영합주의적 발언은 미국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적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가 바라는 큰 결정을 내릴 힘이 없다”고 비난한다. 일부 시사해설가는 칸을 반(反)미주의자라고 평하지만 그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이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노예가 주인님의 정책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slaves are not supposed to disagree with the policies of the masters)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거침없는 발언으로 여론조사에서 칸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68%에 이르렀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칸이 총리가 되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그의 정당이 전국적인 승리를 거둬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그에게 좋은 기회인 듯하다. 현재 파키스탄 인구의 거의 60%가 25세 미만이며 그들은 현상황에 진저리를 친다. 그들은 군부의 권력장악(the military’s grip on power)과 지긋지긋한 정치적 왕조(political dynasties: 특정 가문이나 파벌의 사람들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 경제적 기회의 부족 등을 규탄한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파키스탄 대사를 지냈으며 칸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친구인 말리하 로디의 말이다. “그가 큰 실수를 저지른다면 모를까 현재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다.”

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촌 미안왈리 출신이지만 칸은 라호르의 사립고등학교를 나와 옥스포드대에서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1992년에는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파키스탄에 최초로 크리켓 월드컵 우승을 안겨줬다. 당시 그는 세계 최고의 크리켓 선수로 인정 받았다. 그뿐 아니라 런던에서 남성적인 기질을 한껏 발휘한 일련의 사건들(testosterone-charged exploits)로도 주목받았다. 그는 지금도 그 호방하던 총각 시절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당시 내가 세계 제일의 크리켓 선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칸은 미국 여배우 골디 혼 등 여러 명의 여성과 연인 관계였으며 믹 재거,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의 전 여자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단한 플레이보이로 이름을 날렸고 아주 매력적이었다. 한 여자와 함께할 때는 그녀에게 충실하다(When you’re with him, he’s very much with you).” [그녀는 칸이 자신과 “은밀한 시간(intimate moments)”을 보낼 때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고 말했다.]

칸은 여전히 날씬하고 멋진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바람에 날리는 듯한 헤어스타일(feathered haircut)도 여전하다. 비록 머리 숱이 적어지고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기자가 그를 만나던 날 런던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의 두 아들(열다섯 살의 술라이만과 열두 살의 카심)이 그를 보러 오기로 돼 있었다.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그의 전 부인인 제미마 칸(결혼 전 성은 골드스미스)은 영국의 언론인으로 부유한 가문의 상속녀다. 제미마는 1995년 칸과 결혼하던 당시 스물한 살의 금발 미녀로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it“ girl)이었다. 그 무렵 칸은 파키스탄의 국가적 스포츠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막 시작했다. 그들은 1996년 라호르로 이사했고 칸은 정당을 창당했다. 그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제미마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converted to Islam)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어를 배우고 파키스탄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누군가가 묘사한 대로 “지저분한 소파가 있는 답답하고 비좁은 집에서 살았다.”

칸은 라호르에 전문적인 치료(specialized treatment)를 받을 돈이 없는 가난한 암환자를 위한 병원을 지으려고 모금을 했다. 그는 1994년 개원한 이 병원을 '샤우카트 카눔 메모리얼 암 병원 및 연구소'로 명명했다. 1985년 63세에 대장암(colon cancer)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름을 땄다. 2년 후 칸의 정적들이 병원을 폭파해 여덟 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했다. 칸은 그날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폭탄이 터져 무사했다.

이 매력적인 부부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life had clearly taken a harder turn). 칸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미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의 앞길을 막는다는 생각(sense of being a kind of terrible Achilles’ heel)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선거운동을 할 때마다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가 터져나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녀는 중상모략과 살해협박(smears and death threats)도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전화해 “칸이 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도 허리에 큰 총을 차고 나갔다. ... 지난번 선거운동 때는 내가 관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I was better off just not being involved)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칸은 2002년 의회에 당선됐고, 2년 뒤 이들 부부는 이혼했다. 그즈음 칸은 독실한 무슬림으로 자리잡았다(had established himself as a devout Muslim). 지금은 종교적 우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반대파는 그를 “수염을 기르지 않은 탈레반(Taliban without a beard)”이라고 부른다[작가 살만 루시디는 최근 그를 “잘생긴 카다피(a better-looking Gaddafi)”로 묘사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종교 정당과 무장세력 모두 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탈레반 사령관 물라 말랑은 “칸은 파키스탄에서 흔히 보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과거는 죄악과 스캔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그가 선량한 파키스탄인이자 독실한 무슬림이었다면 유대계 영국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미마(유대인이 아니다)는 칸을 가짜(a phony)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다(He has all sorts of bits in him). 파키스탄인이라는 측면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아주 복잡하고 모순된 사람이다.”

파키스탄에서 그와 같은 과거를 지닌 사람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a man with his past must walk a very fine line). 육군 중장 출신의 정치평론가 탈라트 마수드는 이렇게 말했다. “칸은 극단주의자들의 반감을 살(antagonize) 만한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해 왔다. 그는 탈레반이 수용할 만한 정책과 공약을 내세웠다. 탈레반과 대화하고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고 늘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해 칸은 그들과의 대결을 피한다(he avoids taking them on).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에게서 교훈을 얻은 듯하다. 부토는 극단주의자들에게 강경한 입장을 취해 그 대가를 치렀다(suffered as a result). 칸은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길 원치 않는 동시에 보수파의 표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난 4년 동안 파키스탄은 재무장관을 네 번이나 갈아치웠다. 거리에는 수거하지 않은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고(trash doesn’t get picked up) 정전도 잦다(power outages are frequent). 또 교사와 간호사와 경찰관이 제때 봉급을 받지 못한다. 이제 파키스탄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 지금이 칸에겐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실한 경제 관리(economic mismanagement)를 바로 잡고 고질적인 부패(endemic corruption)를 척결하기 위한 그의 계획은 모호하다. 칸의 멘토였던 전 ISI 국장 굴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칸이 과연 어떤 변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그는 그동안 부패에만 초점을 맞춰 왔는데 파키스탄엔 좀 더 구조적인 변화(more structural changes)가 필요하다.”

제미마에게 칸이 총리가 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한편으론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그렇게 위험한 위치에 오르길 원치 않는다. 또 한편으론 그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파키스탄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만 그가 치른 큰 희생이 의미 있지(it makes sense of some of the really big sacrifices that he did make) 않겠는가? 그 희생의 대상 중 하나는 가정생활이다. 만약 그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희생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칸은 한 유세장에서 흥분한 주민들에 둘러싸여 왕처럼 앉아 있었다. 닭고기와 양고기가 담긴 그릇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의 보좌관들은 포크를 사용했지만 칸은 파키스탄 전통 방식대로 기다란 손가락을 그릇 속으로 쑥 집어넣어 음식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불만과 요구사항을 외치기 시작하자 축제분위기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새 병원과 더 나은 초등학교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칸은 답답하다는 듯(seemed exasperated)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정의운동당이 집권하면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랜드 크루저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With reporting by JAHANZEB ASLAM, SAMI YOUSAFZAI, and NAZAR UL ISLAM.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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