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vel Cambodia] 나만의 섬
LAWRENCE OSBORNE캄보디아의 너저분한 시하누크빌 항구에서 몇 해리(nautical miles) 떨어진 곳에 크메르 말로 송사(Song Saa: 연인들)라는 작은 섬 한 쌍이 있다. 캄보디아의 은밀한 해안선에 위치한 60개의 섬 중에서 이들은 안내책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종됐다(they are lost). 오후에 고급 리넨 모자와 프라다 에스파드리유 신발 차림의 백만장자 한 명만을 태운 채(with the odd solitary millionaire in a linen hat and Prada espadrilles) 시하누크빌 항구를 떠나는 모터보트(motor launch)가 아니라면 거기에 그런 섬들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송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들이다. 코오우엔과 코봉으로 불리는 이 쌍둥이 섬에는 현재 단 하나의 ‘리조트’만 들어섰다. 전쟁과 내전의 영향으로 아름다운 폐허의 상태로 보존된(war and civil war have preserved in a state of beautiful ruin) 해안으로부터 조용히 격리된 채로 남아 있는 곳에 리조트라는 호칭은 지나치게 거창한 듯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실패로 아름다워진 곳이라고 할까(A place made beautiful by failure)?
나는 프놈펜에서 살 때 켑을 즐겨 찾곤 했다. 그 해안을 따라 더 멀리 떨어진 옛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지방 수도다. 이 섬들은 공유하는 미적 요소가 많다(have much the same aesthetic). 고독하고 장엄한 절망 속에(in isolate and magnificent desperation) 서 있는 프랑스식 주택들, 맹글로브 나무와 좁은 해변들, 캐슈나무가 우거진 산기슭의 우림들. 크메르 루주에 쑥대밭이 됐던 켑은 아직 원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매력은 서서히 진행되는 쇠퇴(slow-burning decay)에 있었다. 그 쇠퇴는 캄보디아의 대학살, 베트남전에서의 의도하지 않은 역할과 그 나라를 따로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는 외부세계로부터의 고립을 나타냈다. 태국은 그들의 섬을 마구 훼손했지만 캄보디아는 그들의 섬을 방치했다(While Thailand rushed to despoil her islands, Cambodia was left to abandon hers).
폴포트는 1977년 그 캄보디아 섬들에 소개령을 내렸다(had the Cambodian islands evacuated). 한동안 그 섬들은 크메르 루주 전사들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송사 바로 옆의 더 큰 섬인 코롱에는 홍콩 크기만한 우림이 있다. 그들은 코롱에 베이스 캠프와 포진지를 설치했다(당시 발생한 원인 불명의 총격전에서 미군 해병대원 25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역사는 전진했다. 어민들이 돌아오고 30년 뒤 호주인 멜리타와 로리 헌터 부부가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 ‘캐스트어웨이(Castaway)’의 환영처럼 송사 섬을 발견했다.
헌터 부부는 브로콘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브로콘은 프놈펜의 프랑스 식민지 건물들의 개축에 앞장섰다. 그리고 프놈펜에서의 개발사업처럼 크메르족 사회의 연약한 조직을 지탱해 주는 섬 리조트의 개발에 착수했다. 우선 해양 보호구(marine reserve)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주민들이 물에 시안화물을 풀어 기절시키는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했다(the locals were no longer permitted to fish by dropping cyanide into the water to stun their prey). 그러나 서방의 부자들이 캄보디아 같은 나라의 바다를 찾아갈 때 정말로 무엇을 원했을까?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고 어디에 가고 싶어했을까?
미국인들은 2000년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이 만든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어웨이’를 안다(안타깝게도 앞서 나온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버전이 훨씬 낫다). 하지만 원작 소설은 1983년 루시 어빈이라는 이름의 젊은 영국여성이 썼다. 어빈은 25세때 런던의 한 신문에 실린 광고에 응했다. 제럴드 킹슬랜드라는 이름의 중년 모험가가 동아시아의 무인도(a deserted island)에서 자신과 같이 지낼 ‘동반자’를 구한다는 광고였다. 킹슬랜드와 어빈은 뉴기니의 투인 섬에서 함께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로빈슨 크루소 풍의 판타지 소설이었다(It was the Crusoe fantasy with a sexual edge). 남녀가 쉽게 빠져나올 길이 없는 열대 섬의 물리적 마법에 의해 고립돼 어쩔 수 없이 함께 생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시 읽어보니 아름답고 여운이 남는 책이다(a beautiful and haunting book). 현대의 특유한 갈망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it holds the clue to a peculiarly contemporary longing). 바로 바다에 의해 한정되는 일시적이지만 원시적인 고독에 대한 갈망이다. 그와 함께 절실히 요구됐던 섹스의 단순화까지(a much-needed simplification of sex).
이런 신화는 상당히 많은 버전이 있었다(영화 ‘스웹트 어웨이’도 그중 하나다). 산업사회의 불행으로 이젠 더 멀리까지 나가 해방구를 찾아야 하며 그것도 이젠 기술의 도움으로 설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one wonders if industrial society’s unhappiness is leading it to search further afield for a release that now has to be contrived with the aid of technology). 리나 베르트뮬러 감독의 1974년 원작 영화의 원래 제목은 ‘8월의 푸른 바다에서 별난 운명에 휩쓸린(Swept Away by an Unusual Destiny in the Blue Sea of August)’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 천국의 섬은 남자와 여자들을 동물적인 본능만 남겨놓고 발가벗기는 더 거친 곳이었다(a rougher place that stripped men and women down to their biological roots). 하지만 송사 섬에 있는 내내 나는 이 베르트뮬러의 경치를 생각했다. 바위, 기만적인 파도, 나른하게 만드는 숲(the somnolent forests),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미묘한 불가사의…. 섬들은 우리에게 신비로운 뭔가를 상징한다. 다른 사람이 없는 원시의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걸 알지만 다행스럽게 우리는 자신의 리얼리즘에 마치 시인처럼 무관심하다(wonderfully enough, we are poetically indifferent to our own realism).
바다를 향한 빌라에서는 모두 코롱의 실루엣만 보인다. 내 빌라에서 보이는 해변을 따라 늘어선 코코야자 나무들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그 모습을 간직한 듯했다. 기록되지 않은 나비와 희귀종 비단뱀들이 서식하는 숲이 그 배경을 이룬다. 마을 어민들의 새우잡이 배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밤에는 메마른 천둥 아래서(underneath tremendous rainless thunderstorms) 새우잡이 배들의 녹색 불빛이 물 위에 반짝였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다. 보이지 않는 직원들이 온갖 요구에 응하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들어 신선한 굴, 크메르식 쇠고기 록록, 소금에 절인 생선을 24시간 내내 언제든지(around the clock) 주문할 수 있다. 모두 막대기에 바구니를 걸어 나르는 아름다운 소년들이 배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에선 돈이 필요 없다. 손님에게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다. 어디에도 사인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모두 선불로 결제됐기 때문에(since everything has been paid for in advance) 모두 부담 없는 ‘공짜’이며 현금의 지겨운 마찰에서 해방된 듯하다.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질 만큼 현실의 삶과 너무 다르다(This is so unlike real life that one sinks into a voluntary trance). 상냥한 바텐더들과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는 선물들이 잇따르는 이런 삶을 언젠가는 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실제로 유토피아를 믿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전제를 받아들이도록 프로그램됐다(programmed to both disbelieve in Utopia and to accept its premise).
나는 두 ‘연인’ 섬을 연결하는 나무 다리를 건넜다. 밤에는 대나무 등불들이 줄지어 서서 외로운 행인을 인도한다(It is lined at night with a row of bamboo lanterns set to steer the loner). 저편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끝 쪽에 짙은 회색 쿠션이 놓인 넓은 고급 디자이너 소파와 은제 식기류가 놓인 테이블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돌봐주면서도 감시의 눈이 없는 곳에서(in a place that looks after you but that leaves you unmonitored) 홀로 지내다 보니 소년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게 된다. 이 섬의 자연스러운 매력뿐 아니라 희한하게 파리가 없다는 사실까지 내 꿈을 더 생생하게 사적이고 무섭게 만들었다(made my dreams more vividly intimate and terrifying). 돌아가신 엄마가 매일 밤 찾아와 침대 발치에 앉았다. 한번은 재떨이에 담긴 땅콩을 먹으며 크메르 말로 내게 이야기를 건넸다. 또 한번은 유령처럼 하얀 선크림을 덮어썼다. 하지만 왜 이곳에서 어머니가 나타났을까?
한편 무더운 오후에는 보트를 타고 코봉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흥에 겨운 레몬색 나비들이 날아와 우리를 맞이했다(Exhilarated lemon-colored butterflies came out to greet us). 오징어잡이 배를 찾아 바다를 향해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나비들이 무슨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어떻게 죽기를 바라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 원시적인 섬의 맞은 편 모래사장에는 단 한 사람의 발자국도 없었다. 우림이 작은 모래언덕까지 내려오지만 백사장에 어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따라서 리조트 측이 차양막 아래 아이스박스와 함께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먹을거리를 사냥할 필요가 없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자리에 앉았다(you sit there like a Crusoe who doesn’t have to shoot his own food). 딱딱한 얼음조각을 손에 쥔 고독이다. 고독은 얼음처럼 손 위에서 녹아 흘러내린다(One dissolves and seeps away). 머지 않아 나도 이보다 훨씬 못한 어딘가에서(somewhere in a place far less perfect than this)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송사에서의 밤은 호화롭기보다 기이하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포성처럼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려 퍼진다(Lightning and thunder like distant artillery barrages). 작은 줄무늬 물고기가 어두운 바다 속에서 불안에 떤다. 수많은 저녁 나절 고급스러운 고독, 그리고 자연과의 동화를 연출하도록 세심하게 공 들인 구조물 속을 거니는 만큼 내 생각 속을 산책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처럼 간단한 일에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다니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이 같은 안락한 고립의 환경을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는 자연스럽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때때로 시하누크빌에서 오는 보급선을 타고 구슬 목걸이를 목에 건 유령처럼 나타나는 가련한 배낭여행자들도 자신들이 와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내디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seem aware that they are stumbling into something that they don’t deserve). 보석을 손에 들고 아직 달아나지 못한 도둑처럼 불안하고 놀란 얼굴을 한다(They have a nervous, stunned look, like thieves who have not yet made off with the jewels).
나는 아무리 많이 봐도 송사가 질리지 않는다. 여자와 함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을 뿐이다. 무인도 영화나 소설 속의 불행하고 고통 받은 영혼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대화상대를 찾아 모래밭 길과 방파제, 산책로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도, 미식을 즐기며 도를 닦는 생활에 빠져든다고 느낄 때도(even as I felt myself tipping into gourmet monasticism) 사람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느꼈다. 따분하고 진이 빠지는 자신과의 대화는 외부를 향해 나아갔다. 수평선에서 슬로 모션으로 밀려드는 은색 파도를 향해(toward the silvery tumuluses piling up in slow motion on the horizons), 길게 이어지는 파도의 꼬리 속에서 손에 그물을 쥐고 참을성 있게 미동도 하지 않는 크메르인들을 향했다(toward the Khmers immobile in their long-tails, patient nets in their hands). 그들의 얼굴은 구겨진 흰색 테니스복 차림의 이 외계인을 향한 무표정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with a glassy curiosity about this extraterrestrial dressed in creased tennis whites). 나의 대화는 또한 섬의 곡선을 향해서도 나아갔다. 냉동된 공허, 불신의 유예(a suspension of disbelief, 허구의 세계임을 알면서도 일시적으로 사실이라고 믿는 일) 속에 나를 며칠 동안 붙잡아 뒀다가 다시 살려주는 곳 말이다.
[필자의 근저로 ‘방콕에서의 나날들(Bangkok Days)’이 있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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