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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전시 ‘권오상 개인전’ - 사진조각으로 만나는 시대의 자화상

[Culture] 전시 ‘권오상 개인전’ - 사진조각으로 만나는 시대의 자화상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 갤러리에 들어서자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조각상 3점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다양한 포즈를 한 사람과 사물·동물이 뒤엉켜 거대한 형태를 이루기도 하고, 건장한 남성이 또 다른 남성을 어깨에 이고 있는 묘한 자세의 조각도 있다. 그리스 신전에 어울릴 법한 포즈와 구도를 하고 있는 조각은 사실 현대 미디어에서 정형화된 광고 속 포즈를 따라 한 것이란다. 이처럼 ‘반전’이 있는 34점의 조각을 6월 24일까지 ‘권오상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다.

반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그저 덩치 큰 조각상이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사진을 보는 듯하다. 권오상(38)의 작품은 실제 크기의 모델을 촬영한 수백장의 사진을 하드 스티로폼으로 만든 조각에 정교하게 붙이고 코팅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부터 인화지를 조각조각 잘라 입체화한 작품으로 ‘사진조각’이란 영역을 개척했다. 그가 미술계에서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작가로 불리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권오상은 사진조각으로 뉴욕·독일·이탈리아·일본 등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삼성미술관 리움, 싱가포르 미술관 등 세계각국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매년 ‘몸값’도 뛰고 있다.



현대사회 욕망 다룬 ‘더 플랫’권오상은 유명인물이나 모델을 선정한 뒤 독특한 포즈를 취하게 해 마치 광고로 보이는 작품을 만든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의 삶을 대변한다. 대형 조각에 등장하는 사자는 작가가 미디어 내에 존재하는 여러 사자의 이미지를 조합해 형상화 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현시대의 정물화’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사진조각에서는 2차원 평면인 사진이 3차원 조각이 되는가 하면, 3차원 입체가 2차원 평면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이제 시공간을 넘어서서 어떠한 대상도 재현할 수 있는 현대조각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브론즈나 대리석처럼 무거운 재료로 만들어진 전통조각과 달리 사진 인화지와 형태를 유지할 정도의 가벼운 구조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는 “무겁고 웅장한 전통조각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할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가벼운 조각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가벼움은 사진조각의 시리즈 제목에서도 엿보인다.

권오상은 2001년 ‘데오도란트 타입’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니베아 데오도란트’ 광고를 보며 이름을 붙였다. 데오도란트는 겨드랑이 땀내를 제거하기 위한 화장품이다. 작가는 “냄새를 본질적으로 없애주는 게 아니라, 다른 냄새로 가려주는 데오도란트처럼 사진조각도 핵심을 찌르지 않고 표피를 다루는 작업”이라면서 “실제 그 사람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지만 결과물은 그와 다른 뭔가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2003년에는 잡지에 게재된 광고 이미지를 오려서 한 화면에 담은 ‘더 플랫’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잡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광고 이미지를 한데 모은 이 시리즈는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권오상 개인전에서 특이한 점은 조각의 주재료인 사진 이미지의 원천이 대부분 인터넷 서핑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전 사진조각 모델에서 보여준 고해상도 사진의 화려한 디테일을 포기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낸 다양한 해상도의 이미지로 대체했다. 그런 탓에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미지를 확대했을 때 픽셀이 깨져서 보이는 현상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6년 천안개인전 이후 6년 만에 갖는 이번 전시에는 ‘데오드란트 타입’ 19점과 ‘더 플랫’ 시리즈 15점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이냐, 조각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작가는 굳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권오상은 “내 작품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다양하게 해석되길 바란다”면서 “엉뚱한 감각을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야 말로 현대미술이 가지는 기능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 해외작가 전시 3■

상상의 세계를 넘어장 프랑소와 라리유, 톨라, 프랑소와즈 아브라함 등 해외 중견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봄을 맞아 기획된 만큼 화려한 색채가 캔버스를 가득 메운다. 라리유의 작품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진 듯 달콤하다. 프랑스 파리나 미국 마이애미 같은 현실적 공간에 비현실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 독일의 여성작가 톨라는 차가운 브론즈라는 재료로 우리 삶 속의 이상향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골프채를 쥐고 있는 여성과 어린아이, 춤을 추듯 테니스를 즐기는 여성 등 생생한 동작 하나하나에 입혀진 화려한 원색의 바탕 위에 콜라주 조각을 만드는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 아브라함의 작품은 양감이 돋보이는 조각 위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 같은 강렬한 느낌을 전한다. 마치 발레의 한 장면처럼 손끝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아름다운 곡선과 함께 과장되게 표현된 인체임에도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5월 20일까지 오페라 갤러리.



올라퍼 엘리아슨 개인전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조명과 유리·거울 등의 인공적인 재료와 물·이끼와 같은 자연요소를 접목시킨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는 2007년과 2009년에 이어 PKM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의 신작들이 대거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최신 설치작품 및 조각, 회화 등 총 21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나무를 주요매체로 하는 ‘유목(Driftwood)’ 연작은 빛과 색채의 지각적 인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 기존작업을 연장하면서, ‘여정(emotional journey)’이라는 시간성의 개념을 새롭게 부여한 신작이다. 또한 고반사율의 특수유리를 내부에 장착한 2미터 높이의 ‘용암만화경(Lava kaleidoscope)’에서는 반사체와 빛 사이에 발생하는 물리적 시각반응, 즉 잔상과 가상이 모여 이루는 아름다운 시각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5월 31일까지 PKM 트리니티 갤러리.



레안드로 에를리치 개인전송은 아트스페이스는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보는 이의 눈과 지각을 속이는 ‘트릭’을 이용해 다양한 설치와 조각·사진·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다. 199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베니스 비엔날레(2001, 2005), 부산 비엔날레(2002), 리버풀 비엔날레(2008) 등 주요 국제전시에 참여하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4점의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언어유희적인 전시제목 ‘Inexistence’는 ‘존재하지 않음’ 혹은 ‘실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inexistence를 in existence로 띄어 쓸 경우 ‘현존하는’이라는 상반되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실재와 가상 사이의 역설적인 교차를 깨닫게 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에를리치의 과거 주요작품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7월 7일까지 송은 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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