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od] ‘최고의 식당’ 목록은 잊어라
영국의 요리 전문 월간지 ‘레스토랑’은 매년 “800명의 국제 레스토랑 전문가”를 동원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을 선정한다. 이 잡지는 ‘최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행 경험이 풍부한 이 믿을 만한 미식가(gourmet)들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목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음식 맛을 평가하는 공정한 조사(an honorable survey)이며 세계에서 가장 가볼 만한 식당들을 소개하는 믿을 만한 지표(a credible indicator)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믿을 만한 미식가들에게 “여행 경험이 풍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지나친 칭찬이다. 물론 유럽과 뉴욕 곳곳, 그리고 리우데자네이루 정도는 두루 돌아다닌 듯하지만 아시아 쪽은 어땠는지 의문이다. 이 목록에서 1위는 예상했던 대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가 차지했다. 그 다음엔 스페인 히로나의 엘 셀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와 뉴욕의 퍼세이(Per Se), 런던의 ‘디너 바이 헤스턴 블루먼설(Dinner by Heston Blumenthal) 등이 이름을 올렸다. 파리의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L’Atelier de Joel Robuchon)은 12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의 이기스(Iggy’s)는 26위, 도쿄의 나리사와(Narisawa)는 27위에 머물렀다. 이 톱50 안에 포함된 아시아 레스토랑은 총 6개에 불과하다[마지막 50위는 내가 좋아하는 방콕 메트로폴리탄 호텔의 남(Nahm)이 차지했다]. 나머지 44개는 모두 서양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늘 그게 그거 같은(relentlessly ordinary) 뉴욕의 모모푸쿠(Momofuku)가 아시아 레스토랑 6곳 중 3곳을 제치고 37위를 차지했다. 내 불만이 바로 여기 있다(Therein lies my beef).
사람들은 어떤 목록에도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애초에 목록을 작성하고 순위를 매기는 일 자체가 부질없는(gratuitous) 짓이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작성한 목록을 보고 속으로 화가 나서 씩씩대거나 이를 갈기도 한다. 모두가 스스로 작성한 목록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대로 “어떤 시각으로 봐도 적은 제정신이 아니다(In all matters of opinion our adversaries are insane).”
내가 왜 방콕의 남을 파리의 라틀리에 로뷔숑보다 더 훌륭한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자니 짜증이 난다(could throw a little tantrum). 보그의 주류 칼럼니스트로 일할 때 라틀리에 로뷔숑 바로 옆의 몽탈랑베르 호텔에 묵으면서 매일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it was not torture) 그렇다고 세계 12위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긴 한다. ‘레스토랑’의 독자 대다수가 뉴욕과 런던, 파리에서는 외식을 해봤겠지만 방콕이나 도쿄, 홍콩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1인당 15달러면 먹을 수 있는 방콕의 길거리 음식이 웬만한 고급 식당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문화적 우월주의(cultural chauvinism)를 정도껏 표현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 우월성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자세만 돼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선 그렇지 않다. 음식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아주 옳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목록을 작성할 땐 특히 그렇다. 물론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에 오른 식당은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그 식당들이 위치한 지역에 대한 인식은 서양의 경제적 우월성이 두드러졌던 2007년 이전에 머물러 있다.
일례로 도쿄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세계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더 많은 별을 따내면서 2위 도시와의 차이를 크게 벌렸다. 미슐랭 조사관들이 도쿄의 음식에 대한 평가를 시작한 지 몇 년 안 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도쿄에는 뉴욕과 파리의 식당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식당이 있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조사관들은 이 미식 천국(this gastronomic orgy)을 아직 수박 겉핥기 정도로밖에 알지 못한다(have barely scratched the surface). 하지만 “여행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쿄의 음식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어에 능통한 내 아들은 내게 “도쿄에는 외부인들이 가보기 어려운(no outsider can fully penetrate) 식당들이 꽤 있다”고 자주 말했다. 테이블이 하나뿐인 곳이나 한 종류의 생선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 등 서양 경쟁 식당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destroy the pretensions of many Western competitors) 만한 식당들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내가 방콕에 대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 난 방콕에 꽤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곳의 음식은 국제 식도락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뻔하다. 인간 본연의 뿌리 깊은 편협함(ingrained insularity)과 자존감 때문이다. 음식 전문가들의 경우 이런 편혐함은 지적 정확성에 반비례해서(in direct inverse proportion) 나타난다.
한 식당에 대한 평가가 그 식당이 있는 도시나 나라 전체의 전반적인 음식 수준을 말해주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의 1위 식당 노마가 있는 덴마크의 음식이 일본은 고사하고 싱가포르나 태국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노마가 덴마크의 음식 수준을 대표하진 않지만(Noma is not Denmark) 유럽 내에 있다(And yet it is Europe)는 사실은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만약 그 식당이 콸라룸푸르에 있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노마의 주방장 르네 레드제피가 말레이시아 요리사라고 가정해 보자. 허브용 가위를 든 그가 말레이시아의 논밭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구해 먼 옛날 ‘야생문화(wildculture)’의 원칙을 고수해 음식을 만든다고 말이다. 그가 선갈퀴아재비(woodruff) 소스와 염소젖 커드(curd, 산이나 효소로 응고시킨 동물 젖)에 담근 골풀(bulrush), 헤이즐넛 프랄린(praline, 설탕에 견과류를 넣고 졸인 것) 등을 열대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는 어떨까? 맛이 좋고 특이할지는 몰라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할 것이다. 내 경우엔 그런 음식이 코펜하겐에 있다고 해도 별로일 듯하다.
노마의 음식은 맛있고 꾸밈이 없다. 하지만 내겐 좀 밋밋하고(bland) 도덕적, 또는 “친환경적” 설교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난 차라리 방콕에 있는 내 단골 베트남 음식점 수안마이(Xuan Mai)가 더 좋다. 1973년 미스 사이공 출신의 전쟁 난민 메융 롭슨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독학으로 요리를 공부한 그녀는 내가 아는 최고의 요리사다. 그녀는 정말로 가위를 들고 신비로운 풀들을 찾아 베트남 시골의 논밭을 돌아다닌다. 식당 안엔 아기 고양이의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다. 난 이곳에서 네온 불빛에 눈을 깜빡거리면서 메콩강의 메기(catfish)가 통째로 나오는 멋진 요리와 기막히게 맛있는 패션푸르트 크렘브륄레를 먹는 편이 훨씬 더 좋다. 내겐 이 음식들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에 선정된 식당에서 내놓은 어떤 특이한 음식(the severe oddities)보다 더 맛있다.
물론 이런 견해는 ‘난 제정신이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I am sane and you are not)’는 생각의 한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음에 아시아에 갈 기회가 있을 때 그곳의 음식을 먹어보면 당신의 ‘최고의 식당’ 목록도 바뀌게 될 것이다.
[필자는 작가로 최근작으로는 여행기 ‘방콕 데이즈(Bangkok Days)’가 있으며 소설 ‘더 포기븐(The Forgiven)’이 올해 안에 출간될 예정이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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