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신약전쟁 - 신약개발 도전 20년 절반의 성공
국내 제약사 신약전쟁 - 신약개발 도전 20년 절반의 성공
1980년대 국내 제약사들은 거대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의약품을 갖다 팔거나, 값싼 복제약(제네릭)을 만들어 파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뛰어든 것은 물질특허가 국내에 도입된 1980년대 후반이다. 번듯한 제약공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른 모든 성장산업이 그랬듯 국내 제약사들도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 제약회사의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으로 신약개발에 뛰어들었다.
신약개발에 뛰어든 지 20여년. 국내 제약사들은 18개의 혁신신약을 개발했다. 천연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약으로 만든 천연물 신약도 6개 개발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적이다. 하지만 이들 신약 중 상업화에 성공한 신약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산 신약 개발의 방향도 신약기술 보유라는 ‘상징성’에서 보다 현실적인 ‘상업적 성공’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80년대 후반 개발 시작2001년 개발된 국산 3호 신약인 동화약품의 ‘밀리칸주’(간암치료제)가 올해 초 조용히 시장에서 사라졌다. 동화약품은 임상3상 시험을 완료하는 조건으로 신약 허가를 받았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보고 임상시험을 포기하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동화약품은 밀리칸주 연구개발비 43억원만 날리게 됐다. 국산 신약 중에서 시장성이 없어 철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CJ제일제당은 국산 7호 신약 ‘슈도박신주’(농구균예방백신)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2003년 허가를 받은 이 신약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을 비롯해 2000년대 초반 개발된 국산 신약들은 상업적인 성과가 미미한 상황이다. 국산 1호 신약 선플라주의 매출은 거의 없고, JW중외제약의 큐록신, LG생명과학의 팩티브, 종근당의 캄토벨 등의 매출도 수십억원대에 불과하다. LG생명과학이 30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항생제 팩티브정의 경우 연간 매출액이 200억원도 안 된다. 여재천 신약개발조합 상무는 “글로벌 신약은 개발에 성공할 경우 1~5년 이내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며 “각종 특허로 15~20년간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 충분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돼 있지만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신약은 팔 수 있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혁신성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독점권을 보장받더라도 R&D비용을 회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기초기술을 익히는 단계로 보면 된다”며 “시장성을 고려해 신약개발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보유한 기술을 신약으로 현실화하는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2005년 이후 개발된 신약들은 상업적인 성과가 과거보다는 양호해졌다. 유한양행의 레바넥스,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부광약품의 레보비르 등 상당수는 연매출 100억원 이상을 올리기도 했다. 무턱대고 신약개발에 나서기보다는 상업성을 고려한 연구개발을 진행한 덕분이다. 스티렌과 자이데나로 적잖은 상업적인 성과를 올린 동아제약의 김순회 연구본부장은 “신약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뛰어난 약효는 물론 시장성이 높아야 한다”며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비용투자로 개발된 신약이 경제성을 지녀야만 제2, 제3의 신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발된 신약은 상업적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큰 상황이다. 2010년 개발된 국산 15호 신약 보령제약의 ‘카나브’는 발매 10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상업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또 17호 국산신약인 JW중외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제피드’와 18호 국산신약인 일양약품의 백혈병치료제 ‘슈펙트’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신약의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 경쟁 제약사의 신약 후보물질이 어떤 것인지, 기존 의약품에 비해 얼마나 효능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를 파악할만한 정보력과 기술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도 최근 해외 정보력이 좋아졌다”며 “해외 제약사들과 정면승부를 하든지 틈새시장을 공략하든지 각자 상황에 맞는 신약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제약사별로 다양한 분야에서 신약을 개발 중이며,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을 위해 개량 신약과 바이오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이제부터 본격적인 신약개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미 출시된 신약들도 시장 영역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다. 정부도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에 나서는 등 신약개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시장·기술 동향과 의료 수요 현황 등을 종합으로 분석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잠재력이 큰 전문 특화 분야를 발굴해 이 정보를 국내 제약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신약 강국의 꿈 부풀어일부 상위 제약사들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 진출을 넘보고 있다.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등 굴지의 제약사의 신약과 직접 맞붙어 보겠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동아제약, 녹십자, 한미약품, 유한양행, LG생명과학 등 5개 회사의 R&D 파이프라인(후보물질) 중 임상3상 시험 중인 후보물질은 총 26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해외 임상3상 시험이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은 6개였다. 해외 임상3상 시험은 LG생명과학 3개, 동아제약 2개, 녹십자가 1개를 보유하고 있다. 임상2상 시험은 총 24개이며 이 중 해외 임상시험은 10개였다. 동아제약과 한미약품이 해외임상을 각각 4개씩, LG생명과학과 녹십자가 각각 1개씩 보유하고 있다. 신정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외 신약 파이프라인이 많은 제약사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해외 신약개발 여부에 따라 한국 제약산업 구조는 새롭게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부 제약사는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할 수 있는 좋은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4~5년 내 성과가 가시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제약은 미국에서 임상3상 후기시험을 진행 중인 수퍼항생제 DA-7218에 대한 임상3상 시험이 올 연말 종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의 경우 하반기 미국 시판 신청이 이뤄질 전망이다. 녹십자는 현재 미국 임상3상 시험 중인 면역결핍치료제 글로블린의 임상시험을 올해 안에 마치면, 2014년부터 미국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미약품은 최근 미국 스펙트럼사와 백혈병치료제 LAPS-GCSF의 글로벌 개발 및 판권이전 계약 체결을 맺어 올해 임상2상 시험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LG생명과학은 DPP-4 기전의 새로운 당뇨병치료제를 하반기에는 국내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회사들의 계획대로 신약개발이 이뤄지면 ‘신약 강국’이라는 제약업계의 오랜 염원이 서서히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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