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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vs 피노 럭셔리 대전

아르노 vs 피노 럭셔리 대전

세계 명품 시장의 양대 산맥인 LVMH의 아르노 회장과 PPR 그룹의 피노 회장이 한달 간격으로 잇따라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은 자존심을 걸고 한국 시장에서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6월12일 프랑스 피노 프랭탕 르두트(PPR) 그룹의 프랑소아 앙리 피노(Frncois-Henri Pinault·50) 회장이 방한했다. PPR 그룹은 프랑스 1위 백화점 프랭탕을 비롯해 명품 브랜드 구찌·입생로랑(YSL)·발렌시아가·스텔라매카트니·푸마 등을 거느린 글로벌 명품그룹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4만7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명품과 스포츠 브랜드로만 지난해 122억 유로(약 17조9500억원)의매출을 올렸다.

세계 명품 시장을 호령하는 ‘럭셔리 황제’의 방한 소식에 국내 명품업계와 유통업계는 술렁였다. 언론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첫 방한이기도 했지만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해 했다. 이번 방한에는 PPR 그룹 내 주요 브랜드인 구찌·YSL·발렌시아가 등의 임원들이 동행했다.

지난 달 내한한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회장과 한 달 간격으로 움직인 것 또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뭘까.

해답은 그의 3일간 일정에 있다. 피노 회장은 12일 한국에 도착한 직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롯데 면세점을 찾았다. 지난해 구찌코리아와 롯데면세점이 입점 시기를 놓고 분쟁을 벌였다가 화해한 일이 있다. 이를 직접 점검하고 ‘동맹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원준 롯데면세점 대표를 만나 함께 PPR그룹이 소유한 브랜드의 매장들을 둘러봤다.

다음 날인 13일 오전에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만나고 신라면세점 내 매장을 둘러봤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과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국내 주요 백화점 사장단과 저녁 만찬 자리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 박건현 신세계백화점 사장, 박세훈 한화갤러리아 사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진욱 구찌코리아 과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 시장을 둘러보고 면세점, 백화점 등 유통업계 대표들과 만났다”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서일호 신라면세점 과장은 “이번 피노 회장의 방문을 계기로 매년 1~2번씩 유통업계 대표들과 정례 미팅을 갖게 될 것”이라며 “그만큼 한국 시장에 관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피노 회장이 내년 푸마 아웃도어 제품 출시를 앞두고 사전 점검을 위해 방한했다는 얘기도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피노 회장이 백화점 방문 시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푸마 매장도 꼼꼼히 둘러봤다”며 “푸마의 또 다른 라인 론칭에 대한 이야기를 경영진과 깊숙이 나눈 걸로 안다”고 말했다.





아르노, 면세점 강자 롯데와 손잡을까피노 회장은 PPR그룹의 창업자 프랑소아 피노의 아들이다. 피노의 이번 방한은 한때 아버지의 친구였지만 이제 는 극복의 대상이 된 아르노 회장과의 경쟁으로 더욱 관심을 끈다.피노 회장의 방한 한달 전인 5월17일 아침 일찍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을 태운 전용기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아르노 회장의 방한은 신라면세점과 루이비통 인천공항점 운영 계약을 체결한 2010년 11월 이후 1년6개월 만이다. LVMH는 루이비통·디올·셀린느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갖고 있는 세계 최대 럭셔리 제국이다.아르노 회장은 공항에서 내린 직후 곧바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만나 15분간 신라면세점 루이비통 매장을 함께 둘러봤다. 크리스찬 디올과 펜디 매장도 찾았다.

서일호 호텔신라 과장은 “아르노 회장은 세계에서 유일한 루이비통 공항매장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 사장과는 중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라 루이비통 매출이 안정적으로 늘고 있는 점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으로 이동해 명품관 에비뉴엘과 면세점에 있는 자사 브랜드 매장을 둘러봤다. 이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을 찾아 30분 가까이 환담했다. 곧이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으로 옮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함께 40분 가량 매장을 둘러봤다.

이날 오후 5시에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방문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함께 30분 동안 LVMH소속 브랜드 매장을 꼼꼼히 살펴 봤다. 이어 인근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도 들러 박세훈 한화갤러리아 대표와 한 시간가량 매장을 돌아보고 당일 출국했다.

정다정 루이비통코리아 차장은 “아르노 회장은 1~2년마다 주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매장을 점검한다”며 “이번에도 새로운 사업을 협의하기보다는 자사 브랜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이 한국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데 만족했다”고 전했다.

아르노 회장은 지난 2월 인도네시아에 면세점을 개점하는 등 해외 면세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제휴 방안을 깊숙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면세점은 아시아 1위, 세계 5위 면세점 사업자다.LVMH는 전세계 13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1위 면세점 업체 DFS그룹의 최대주주다. 롯데그룹은 DFS그룹의 지분 인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4973억원, 영업이익 574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각각 16.4%, 9.8% 성장했다. 한국에서 부동의 ‘명품 1위’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적으로두 회장의 한국 행보는 많이 닮았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일정이 비슷했다. 하지만 세계 명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명품 제국 오너는 복잡한 애증관계를 갖고 있다.부부동반 만남을 가질 정도로 각별했던 프랑소아 피노와 베르나르 아르노의 관계는 PPR의 구찌 매입을 기점으로 악화됐다.

1999년 구찌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아르노 회장은 피노 회장이 구찌를 매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르노회장은 구찌 인수를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아르노는 무려 10년 가까이 구찌를 지켜보며 때를 기다려왔다. “구찌는 좋은 브랜드다. 그들이 나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평소 ‘명품업계의 사냥꾼’이라고 조롱했던 아르노에게 구찌를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 도메니코 데 솔레 구찌 대표이사(CEO)는 피노를 찾아갔다. 솔레는 “아르노가 구찌를 훔쳐가려 한다”며 피노에게 ‘백기사’가 되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뼛속까지 철저한 사업가인 피노는 기꺼이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전쟁터에서 친구를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1999년 3월19일 구찌경영권 매각이 전격 발표됐다.바로 그날 아르노는 파리 외곽의 디즈니랜드에서 고위 경영진 회의를 마치고 솔레를 만나려고 했었다.

결국 그는 간발의 차이로 구찌 측을 설득할 기회를 놓쳤다. 아르노는 피노의 경영권 인수가 발표되기 두 달 전 14억 달러를 들여 구찌 주식 34.4%를 은밀히 매수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피노 회장이 사전에 자신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불쾌했다.

배신감을 느낀 아르노는 피노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PPR이 우리 LVMH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소식을 전해들은 피노 회장은 “그러면 내가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보게 친구, 내가 자네에게서 구찌를 훔쳐가려 하네’라고 말해야 했겠냐”며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그 후에도 피노의 승리가 이어졌다. 입생로랑·보테가 베네타·부쉐론·세르지오 로시·발렌시아가 등 명성 있는 브랜드들이 피노 회장의 수중에 떨어졌다. 구찌를 놓친 아르노 회장은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룹 규모가 커지고 브랜드 성장세도 높아지면서 PPR은 명품업계에서 LVMH에 필적하는 최대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이런 PPR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탓인지 2003년 아르노는 “LVMH의 진정한 경쟁자는 샤넬과 에르메스 정도”라며 구찌그룹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2005년 프랑소아 피노는 40년간 지켜온 경영권을 아들 프랑소아 앙리 피노에게 넘겼다. 피노 회장의 이번 방한이 아르노 회장을 의식한 점도 있다. 두 명품업계 거물이 탐을 낼 만큼 한국의 명품 시장은 커졌다. 피노 회장은 “세계가 유럽 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겪고 있고 기업들이 매출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아시아의 명품 수요는 견고하다”며 “이는 앞으로 20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두 사람 행보가 명품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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