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n 올림픽은 스토리다
Game On 올림픽은 스토리다
짐 벨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페인에 미식축구 코치로 건너갔지만 일자리가 없었다. 그때 NBC의 1992년 바르
셀로나 올림픽 중계팀이 심부름꾼이나 다름 없는 자리(a glorified gofer)에 그를 채용했다. 부상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중역을
모시고 다니는 게 그의 임무였다. “나는 그를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맸다”고 키 193cm의 벨이 돌이켰다. “돈이 필요했다.”
그런 투지(hustle)가 NBC 올림픽 중계를 담당한 전설적인 프로듀서 딕 에버솔의 눈에 띄어 그의 곁에 남게 됐다. 그 뒤 20년 사이 벨은 투데이 쇼의 책임 제작자 자리까지 올랐다. 이번에 NBC의 2012 런던 올림픽 게임 중계를 맡았다. NBC에서 그런 TV 중계를 에버솔이 직접 지휘하지 않기는 20년 만에 처음이다.
트위터 시대에 올림픽 중계방송의 과제는 에버솔이 바르셀로나에서 맞닥뜨렸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각종 스포츠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일이다. 카약부터 체조, 배구, 레슬링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라도 열성 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알려지지 않았다. 에버솔이 창안한 모델은 오늘날까지 이 문제에 대한 NBC의 해법으로 남아 있다.
시청자 특히 여성 시청자의 취향에 맞춰 정교하게 짜여진 고전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이다.이 공식은 극히 간단하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다룬 복잡한 이야기들을 짜맞추는 게 에버솔의 장기였다. 남자들은 통계와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수익성 높은 프라임타임대 시청자의 60%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4년에 단 한번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 사람들의 인간 스토리에 끌렸다.
에버솔은 전 세계를 돌며 선수들을 만나 인간 스토리의 금맥을 캐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과학으로 승화시켰다. 아나운서들은 플레이를 해설할 때마다 조사 결과를 엮어 넣었다. 그들의 모습이 담긴 녹화 테이프를 보며 시청자는 감동적인 배경 스토리를가진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얼마 전 런던에서 성화가 봉송되는 동안 NBC 나이틀리뉴스는 허들 선수 롤로 존스, 그리고 그녀의 홀어머니가 밤낮으로 온갖 일을 다하며 다섯 자녀를 먹여 살리는 모습을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에버솔 체제에서 올림픽 중계의 총책임은 오랫동안 스포츠캐스터 밥 코스타스가 맡아 왔다. 가끔씩 코스타스는 네트워크가“방금 세상을 등진 85세의 할머니에게 자신의 메달을 바치는 메달리스트의 이야기를 너무 부각시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이따금 그 속에 저널리즘과 논평의 요소가 섞여 있어야 한다고 정중하게 반론을 제기해왔다.
내가 바라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때가 분명 있었다.” 실제로 코스타스는 시나리오가 너무 선정적으로 여겨지는(deems too purple) 경우 수위를 낮춰 왔다고 알려졌다.올림픽 경기에도 “조작하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드라마(legitimate drama)”가 많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밥 코스타스 신파 스토리 투성이(a bunch of Bob Costas sob stories)”라는 비판에 맞서 전체적인 논조는 적절하다고 옹호한다.벨은 “모든 것”을 에버솔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NBC의 올림픽 중계팀에서 신진세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컴캐스트의 스티브 버크 선임 부사장도 이번 올림픽이 처음이다.
컴캐스트는 지난해 NBC를 인수한 뒤 곧바로 44억 달러에 육박하는 2020년까지의 올림픽 중계권 협상에 착수했다.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5명의 직원을 이끌고 스위스의 올림픽 위원회 본부를 무작정 찾아갈 때는 “가슴 떨렸다”고 버크가 말했다.
또 다른 새 얼굴은 최근 NBC 스포츠 사장으로 부임한 마크 라자루스다. 그도 20년 전 에버솔에게 발탁됐다. 라자루스는 대놓고 미국을 응원한다(be rooting for the red, white,and blue). 미국 시청자들에게 올림픽은 애국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조국을 응원한다. 우리는 미국 팀이 잘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열광한다.” 게다가 그것이 시청률에도 좋다. 올림픽 대회 기간 중 방송사의 역할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이라고 라 자루스는 말한다. 이는 언론인들의 일반적인 사명의식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NBC는 이번 대회를 감동적인 이벤트로 만들려 애를 쓰는 듯하다.
“사람들은 희망과 따뜻한 스토리를 원한다”고 벨이 말했다.NBC는 내로라하는 스타들로 올림픽 중계팀을 구성해 영국으로 파견한다. 마치 모든 무명 선수들(수영 스타 마이클 펠프스는 제외)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 채우려는 듯하다. 벨이 이끄는 투데이 쇼의 가족들이 선봉을 맡는다.
주 진행자 매트 라우어를 필두로최근 물러난 공동 진행자 앤 커리, 인기를 모았던 그녀의 전임자 메리디스 비에이라가 뒤를 따른다. 코스타스, 스포츠 캐스터 알마이클스, 테니스 스타 출신 존 매켄로가 지원 사격을 한다. 그리고 코미디언 지미 펄론이 한 주 동안 사람들에게 웃음 보따리를 선사한다.
어쩌면 중계팀에서 라이언 시크레스트보다 더 밝게 빛나는(그리고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스타는 없을 듯하다. 왜 NBC가 스타발굴 리얼리티 쇼 ‘아메리칸 아이돌’의 진행자, ‘아메리칸 톱 40’의 DJ이자 킴, 클로에, 커트니 카다시안 가족을 내세운 리얼리트 쇼의 프로듀서를 영입했을까?
방송사 경영진은 그의 직업정신(work ethic)을 높이 평가하고 700만 명에 달하는 그의 트위터 팔로어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시크레스트의 기용은 네트워크 책임자들의 세대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벨은 44세다.
64세의 에버솔이 시크레스트를 선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에버솔의 손길이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다. 지난해 그가 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방송사 스포츠 총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BC는 그를 컨설턴트로 재고용했다.올림픽 시청자가 특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는 수두룩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일부라도 시청했던 2억 명 이상의 미국인 중 프로 미식축구 리그 경기를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6900만 명,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1억800만 명에 달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올림픽을 보기 편하게 미리 포장된 쇼로 만들어야 한다. 프라임 타임 대에 미국에 생중계되는 경기는 하나도 없다. 그 시간이면 런던에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논란이 되는 이 같은 결정은 또 다시 언론으로부터 “마땅한 분노(righteous indignation)”를 사게 되리라고 코스타스는 말한다. 하지만 어떤 TV책임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고돼 휴양지로 보내지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선수의 개인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는 에버솔의 검증된 전략과 함께 이번 올림픽 개최지가 NBC에게 비장의 무기가 될지 모른다. 올림픽을 영국 왕실 결혼에 ‘아메리칸 아이돌’을 접목한 형태로 만드는 식이다. “런던은 마법의 도시”라고 벨이 말했다. 역시 예상대로 그는 윌리엄 왕자, 그의 신부 케이트와 인터뷰를 잡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한 온갖 낙관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NBC 경영진은 이번 올림픽에서 적자를 예상한다. 3500명에 달하는 대부대를 런던과 뉴욕에 분산 배치하는 게 한 가지 이유다. 어쨌든 중계방송을 내보낼 매체는 부족함이 없다. CNBC,MSNBC, 브라보, 텔레문도, NBC의 새 스포츠 케이블 네트워크, 웹사이트 등 모두 5535시간의 올림픽 프로그램을 방송하게 된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때 NBC가 중계방송을 170시간밖에 편성하지 못하는 현실을 걱정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컴캐스트에서 수익성에 관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회사의 정신적 토대를 다지기 위해” 올림픽은 중요하다고 스티브 버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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