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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금리 담합 의혹 신중히 처리”

“CD금리 담합 의혹 신중히 처리”



“지난해 초 취임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또 기업과 소비자 간에 따뜻한 균형추노릇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공정위는 경쟁 당국이자 소비자 정책 당국입니다.”김동수(57)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소비자 정책의 주무기관인데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잘 모르더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에 나선 7월 18일 오후 공정위 접견실에서 김 위원장과 마주앉았다.

그는 CD금리 조사 경위에 대해 “신문에 날 만한 일도 조사에 대해서는 사전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조사처리 방향에 대해 묻자 “파장이 큰 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담합에 대한 조사는 공정위 사무처장 전결사항이다. 중요한 사건도 부위원장까지만 보고한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측이 “이번 조사 전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게 안타깝다”고 반응한 데 대해 김형배 공정위 대변인은 “어느 나라나 카르텔 조사는 007 작전처럼 극비리에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요즘 관가의 뉴스 메이커이다. 임기를 다해가는 정부에서 공정위만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취임 초엔 한국은행보다 공정위가 더 물가당국 같다는 생각이 다 들던데요?“당시 조사를 해보니 우리 국민의 60%가 물가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켜 국가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공정위의 역할입니다.물론 가격도 올릴 요인이 있으면 올려야죠.이걸 막으면 품질이 떨어진다든지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문제는 서로 짜고 값을 올리는 이른바 담합입니다. 이렇게 담합을 하거나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가격을 올리는 건 경쟁당국이 나서서 막아야죠.따뜻한 균형추의 따뜻한이란 수식어엔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해 고민하겠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약자 보호는 결과적인 정책 효과일 뿐 공정위의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물론 물가 안정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공정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두는 부수적인 효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어쨌거나 생필품을 중심으로 가격인상을 유발하는 답합에 적극 대처한 결과 해당 품목들의 가격 안정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담합을 비롯해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율하는 건 경쟁당국 본연의 임무죠.”


경제민주화가 화두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공정위가 이 문제의 주무부처라고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아직은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다만 공정위로서는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균등이라는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한편 시장경제의 성과가 우리 사회의 전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힘쓰려고 합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대기업집단 정책을 편 지난 25년 동안 우리 경제는 규모가 커졌을뿐더러 경쟁의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개별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틀로 묶는 건 문제가 있어요. 단적으로 대기업들이 골목상권 어지럽히고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는 걸 출총제 부활한다고 막을 수 있습니까? 신규 성장동력 확충 등 기업의 건전한 투자를 막아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시장이 개방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개별 시장별로 맞춤식 처방을 내리는 게 타당합니다. 출총제는 규제 효과보다 수반하는 비용이 더 커 폐지된 제도예요.”

공정위에 따르면 10대 기업집단의 평균 출자 비율은 19.6%(2011년 4월 기준)이다. 민주통합당이 출총제의 기준으로 제시한 30%에 크게 못 미친다.또 출자 여력이 큰 계열사가 출자한도를 초과한 회사를 대신해 출자하면 출총제의 규제를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대 기업집단 계열사가 30%를 초과해 출자한 금액은 모두 10조8000억원으로 30%에 미달하는 회사들의 출자 여력 합계액의 23.7%에 불과하다.

그는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계열사를 동원한 대기업집단의 지배력 확장을 차단하는 효과가 다소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건 아니고,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 출자를 통해 우회할 경우 실효성이 떨어지고 지배력 확장과 무관한 순환출자까지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벌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야 한다고 보나요?“경제성장 과정에서 계열사 수 증가 등 대기업 집단의 규모가 커지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대기업에 걸맞지 않은 영역에 진출하거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편법적으로 부의 승계를 꾀하는 게 문제죠. 이런 문제는 규제를 하기보다 맞춤형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서 풀어야 합니다. 대기업 집단의 불합리한 행태는 사회적 감시 시스템을 확충해 주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6월엔 재벌의 지분도와 주식 소유현황을 공개했고 이어서채무보증, 내부 거래, 지배구조 순으로 현황을 분석해 공개할 계획입니다. 대기업에 관한 정보 공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거죠.”


대기업들이 단기 실적 위주인 현행 성과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요?“대기업 오너들이 너무 단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경향을 지적한 겁니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배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향후 어떤 풍랑이 일지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단일 기업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에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라면 수천 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과 호흡을 맞춰고 수익도 나눠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동반 성장의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하는 까닭이죠. 도요타가 부품업체들을 쥐어짜다 리콜 당하고 세계시장에서 몰락하지 않았습

니까?”


이 같은 단기 성과주의는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주주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 이윤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도 기업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은 계열사 수가 평균 30개입니다. 오너가 매년 단기 성과를 기준으로 CEO를 평가하면 그 밑의 임원들은 6개월 단위, 부서장은 분기 단위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부서장들은 협력업체 대표에게 분기 결산서를 가져오라고 해 단가를 낮춥니다. 그러니 협력업체로서는 작업환경을 개선할 수도, 자동화를 할 수도 없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를 바꿀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너들에게 중장기 전망도 따져보고 CEO들에게 2~3년 기회를 주라는 겁니다. 그게 대기업 집단도 살고, 우리 산업이 단단해지는 길입니다. 생태계 간 경쟁에서 을을 죽이면 갑이 생존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의 경영권은 안정시켜 주고 대신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게 하자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기업집단을 다루는 관련 법규가 있습니다.이해관계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면 이 법을 활용하면 됩니다. 그룹 차원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으면 포괄적인 규정을 강화해 대응하면 됩니다.”인터뷰 다음 날인 19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지도』에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체제의 경쟁력을 살리되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2009년부터 2년 간 한국수출입은행장을 지냈다.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였다. 당시 중소 수출업체들은 주문 감소,재고 누적에 금융권의 대출 회수로 3중고를 겪었다. 그는 이때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발굴해 정책 금융을 제공하는 한편 비금융 지원도 주선했다. 세계를 호령할 호랑이로 클 새끼 호랑이들을 키운셈이다.

“2년 간 전국의 수출입은행 지점을 68회 돌았습니다. 공정위원장 코스웍을 제대로 한 셈이죠. 대기업 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 허용이 골자인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는 물건너갔습니까?SK네트웍스가 현재 보유중인 SK증권 지분을 기한내에 매각 못할 경우 검찰에 고발되는 겁니까?“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 18대 국회의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됐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사 주식을 보유한 14개 지주회사가 주식매각 등을 통해 위법성을 해소해야 합니다.SK네트웍스의 경우 약 50억원의 과징금을 냈고 12월 2일까지는 SK증권 주식을 팔아야 합니다. 아직 4개월 남았고 기한 내에 공정위의 시정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6월 하순 기획재정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에 대해 추가적인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미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위원장의 박사 논문(한국의 생산효율성에 대한 민영화의 효과)은 민영화를 다뤘다. 그에게 인천국제공항 등의 민영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문제는 저의 소관은 아닙니다만 정부가 인천국제공항을 민영화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 정부가 과반의 주식을 소유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한 여전히 공기업입니다.그런 만큼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지분을 얼마나 파느냐가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합니다. 얼마가 됐든 인천국제공항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 재정 수요를 충당하는 효과가 있고, 주식을 사들인 쪽에서도 이 지분이 유인이 돼 인천공항을 경유 공항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지분매각 문제는 이런 점들도 감안해 실익을 따져봐야 합니다.”


재임 중 대표적인 성과를 하나만 꼽아주시기 바랍니다.“성과보다, 약자가 서러워하지 않도록 동반성장의 드라이브를 지속적으로 걸 겁니다.대형 유통업체들과의 판매수수료 인하 합의, 대기업집단의 경쟁입찰 확대 선언 등이 좋은 예죠. 이해관계자들에게서 만족스럽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강행군할 겁니다.그래야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 생태계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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