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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안해지는 ‘인간적인’ 규모

마음이 편안해지는 ‘인간적인’ 규모



1996년 난 컬럼비아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이수 중이었다. 캘리포니아주의 집을 떠나 맨해튼 친척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당시 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돌아다녔다. 파티에 갔다가 밤 늦게 집에 돌아와 워크맨으로 카세트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밤을 지새는 날도 있었다. 마음이 너무 들떠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too revved up to drift off to sleep). 일요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빈둥대다가 첼시 쪽으로 몇km 걸어 내려갔다 돌아오곤 했다.

도시의 빌딩 창문에 비친 내 표정 없는 얼굴과 추위로 웅크린 몸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들었다.그해 봄 브루클린 코블 힐에 사는 한 급우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 받았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놀라게 한 건 주변의 조용한 분위기였다. 도시가 갑자기 내게 속삭이기 시작한 듯했다. 또 모든 것이 아담하고 인간적인 규모(human-sized)였다. 3~4층 이상 되는 빌딩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햇빛이 낮게 내려앉아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거리에선 하늘거리는 초록색 나뭇잎들 아래로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아이들 사이로 평소처럼 서두르지 않고(less hurriedly)천천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버건가에 있는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쯤엔 반짝거리는 표면으로 내 모습을 비추던 도시의 빌딩 숲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 집은 정원이 딸린 아파트였는데 내 또래의 사람들이 집밖에 음식을 차려놓고 앉아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내 은밀한 안식처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서둘러 다니지 않고 내 앞길을 가로막지도 않았다. 햇빛 찬란한 봄날 목가적인(idyllic) 코블 힐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in the completely unself-conscious act of being) 완전히 자유롭게 그 순간을 즐겼다. 뉴욕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몇 달 후 브루클린의 양지 바른 집으로 이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침실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저녁이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황량한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개척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살았겠지만 그런 건 문제가되지 않았다. 또 내가 친구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며 졸업하면 캘리포니아주로 돌아가게 되리란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난 나 나름의 신세계(New World)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소속감과 가능성을 찾은 나 자신과 마주쳤다.

2000년 7월 두 번째로 브루클린으로 이사했다. 결혼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5년 후엔 그 결혼에서 벗어났다. 결혼 당시 남편과 나는 서른 살도 안 된 애송이였다. 남편은 그림을 그렸고 난 시를 썼다.

우리는 여름이 끝날 무렵 달랑 300달러를 들고 캘리포니아주를 훌쩍 떠나 브루클린 이스트 플랫부시의 싸구려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그때 느낀 브루클린의 분위기는 즐거우면서도 낯설었다. 모퉁이 식료품점에서 파는 상품들은 나를 열대지방으로 데려다줬다.

비둘기콩(pigeon peas)과 소금에 절인 대구(salty bacalao), 커다란 파파야, 매끈한 초록색 아보카도 등. 동네 조리식품점에서는 살아있는 푸른색 게를 흰 세탁물 통에 담아놓고 팔았다. 지나가는 소형 버스(jitney vans) 창문에선 칼립소(카리브해 지역의 음악)와 무도장 음악이 흘러나왔다.

새틴으로 된 파티 드레스와 가정용품, 멋진 가발을 파는 상점들을 지나 처치가로 걸어갈 때면 과거 브루클린의 흔적들이 엿보였다. 교회의 첨탑들과 18세기의 공동묘지들은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당시 브뢰켈렌(브루클린의 옛 이름)의 모습을 떠올린다.

시간과 장소가 오락가락하는 듯한 이곳의 분위기가 내게 맞았다.그것은 어쩌면 내 삶을 이끌어가던 더 큰 모순과 일맥상통했는지도 모른다. 난 행복하면서도 슬펐고, 방향을 잃었다 싶다가도 길을 찾은 듯했고, 특권층에 속하면서도 미국 땅에 막 도착한 이민자처럼 살았다. 난 이전과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나 자신조차 낯설게 느낄 만큼 다른 구석도 있었다.

그리고 5년 뒤 혼자서 브루클린을 다시 찾았다. 그곳으로 이주하는 배우와 유명 소설가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할 때였다.당시 난 진정한 작가의 길에 막 들어섰기 때문에 그런 브루클린이야 말로 내가 찾던 곳이었다. 브루클린은 나처럼 지독하게 외로운(나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사람에게 딱 맞는 곳으로 보였다.

지금은 또 다른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다. 현재 이곳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게 하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엔 브루클린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현재 브루클린이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게 되자마자 갑자기 또 다른 모습의 브루클린이 내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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