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심바’
돌아온 ‘심바’
라이언킹(The Lion King)’의 막이 오르면 맨 먼저 거대한 오렌지색 원이 눈에 들어온다. 무대 배경에 태양처럼 떠오른다. 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연출가인 줄리테이머(59)는 의도적(intentional)인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에서처럼 하나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시간의 진전이나 극의 발전에 따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적 요소)다.
‘삶(생명 또는 생태계)의 순환(Circle of Life, 이 뮤지컬의 첫곡 제목이기도 하다)’을 상징한다. 우리가 서로 주고 받으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다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그다음 두 시간동안 끔찍한 일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새끼사자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뒤 왕국에서 쫓겨나 먼 길을 떠난다. 심바는 낯선광야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뒤 결국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방법을 터득한다(how to fight back and claim his place at the top of the food chain).
“삶과 죽음의 순환(It’s the circle of life and death)”이라고 테이머가 말했다. “처음 시작할 때 떠올랐다가 엄청난 질풍노도의 사건과 암흑의 시기를 거친 뒤 마지막에 지는 태양이다(The sun that rises at the beginning and sets at the end after an incredible tempest of events and dark times). 그런 경험이 없다면 삶은 그리 풍요롭지 못할 듯하다(If you don’t have those experiences your life is probably not as rich).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같다(And now I’m beginning to talk about myself).”일리 있는 이야기다.
테이머는 같은 세대중 가장 유명한 브로드웨이 연출가 중 한명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2011년 3월 ‘스파이더맨: 어둠을 물리치다(Spider-Man: Turn off the Dark)’의 연출가에서 해고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왕따’ 신세로 추락했다(Taymor found herself a pariah). 테이머는 마블사의 만화책을 뮤지컬로 만든‘스파이더맨’에 9개월 동안 공을 들였지만 제작진의 내부 불화와 무대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결국 중도 하차했다.테이머는 ‘스파이더맨’의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으면서 언론에서 희화화됐다(became a caricature).
막강한 여성이 무릎 꿇는 수모를 당하는‘고소한’ 모습으로 그려지면서(a powerful woman brought to her knees for our enjoyment) 연극계의 ‘마사 스튜어트’에 견주어졌다(‘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는 스튜어트는 출판계를 군림한 여성 사업가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 됐지만 주식 부당거래로 징역형을 살았다). 테이머는 그 비유가 부당하다며 펄쩍 뛰었다.
“마사 스튜어트는 범죄 행위로 처벌 받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그러나 1년 이상 광야에서 지낸 테이머는 이제 차근차근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간다(But after more than a year in the wilderness,Taymor is clawing her way back). 우선 ‘라이언킹’이 지난 4월 브로드웨이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the highest-grossing Broadway show ever).
1997년 11월 초연 이래 8억5000만 달러 이상의 입장료 수입을 올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이 올린 흥행 기록을 깼다(‘오페라의 유령’이 그보다 10년 전부터 공연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개가다). 한편 ‘스파이더맨’의 프로듀서인 마이클 콜과 제러마이어 해리스는 공연 연출 및 안무가 협회와 합의해 테이머에게 연출가 보수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합한 보수가 100만 달러에 이른다(대본의 로열티 문제는 아직 승강이 중이다).그래서 테이머는 몇 달 만에 첫 인터뷰에응했다. 우리는 그녀가 한동안 보지 못했던‘라이언킹’의 낮 공연에 함께 갔다. 그녀는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라이언킹’은 언제나 새로운 조율(a tuneup)이 필요한 데다 제작진(일부는 작품 구상 때부터 있었다)을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이언킹’은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고 테이머가 말했다. ‘스파이더맨’을 가리키는게 분명했다. “이 팀 전체가 너무도 마음에
든다. 내게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실험적이고, 선구적이며, 위험한 일을 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Why does something work that’s experimental, that’s trying to break ground, that did break ground, that was risky)? 끝까지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떠받쳐 줘야 한다(You have to have a group of people behind you who are going to be there for the long haul).”
테이머는 ‘방황하는 더치맨(The Flying Dutchman, 바그너의 작품으로 테이머는 현재 그 오페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중이다)’과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같은 실험적인 오페라 연출로 명성을 얻었다. 셰익스피어 전문인 테이머는 오벌린대에서 신화와 민속학을 공부한 뒤 일본 아와지(淡路)섬에 가서 인형극을 연구했다. 그녀는 ‘라이언킹’과 ‘스파이더맨’ 둘 다의 제작에 그 경험과 신화 지식을 동원했다.
“난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파) 출신”이라고 테이머가 말했다. “나의 미적 취향은 아주 특이하다(My aesthetic was very different).”디즈니 만화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라이언킹’이 브로드웨이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고, 토니상을 여섯 개(최고 작품상과 최고 연출상 포함)나 탄 데는 그런 미적 취향이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라이언킹’이 결코 순산은 아니었다(But it was hardly an
easy birth). 테이머를 고용한 디즈니 공연사업부 대표 토머스 슈마허는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이미지가 주류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We didn’t know if this imagery was going to work with a mainstream audience)”고 말했다.
테이머가 작품에서 사용한 정교한 인형극을 두고한 말이다. 초기의 워크숍에서 디즈니 임원들은 배우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그
들이 머리 위에 쓴 가면이나 풀 같은 형상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테이머와 슈마허의 생각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았다. “열띤 토론(spirited discussions)을 많이 했다”고 슈마허가 돌이켰다. “무대 위의 모든 것은 그녀의 창작물이지만 그녀가 창작한 모든 것이 무대에 오르진 않았다(Everything on that stage is created by Julie, but everything Julie created is not on that stage). 타협의 과정이 있었다. 그녀는 멋진 협업자다(She’s a fantasticcollaborator).”
라이언킹’의 지방(미니애폴리스) 프리뷰공연 때는 제작 과정을 꼬치꼬치 캐는 가십칼럼니스트가 없었다(there were no gossip columnists to run a blow-by-blow)는 사실도 도움이 됐다. “프리뷰 공연을 잘 활용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슈마허가 말했다. “언론의 도마에 끊임없이 오르지는 않았다(It wasn’t being written about constantly). 테이머는 최근 작품에서는 그런 안전망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 같다(I think Julie missed out on the safety of that in the last outing).”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경우 정교한 비행 장면과 예산 확보의 어려움때문에 지방 프리뷰가 불가능했다(Indeed,Spider-Man’s elaborate flying sequences and difficulties raising cash made an out-oftown tryout impossible).
2002년 테이머는 ‘프리다(Frida,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그린 전기영화)’의 촬영을 마칠 때쯤 뮤지컬 ‘스파이더맨’ 제작에 록밴드 U2의 보노와 에지를 끌어들였다. 이론적으론 환상의 콤비였다(The pairing seemed great on paper).가벼운 뮤지컬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고(who could take a popcorn musical and turn it into art)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unconventional) 연출가와 로큰롤계에서 상업성에 가장 밝은 쇼맨들(rock and roll’s most commercially savvy showmen)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참여자들의 일정 문제와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제작이 지연됐다.
그러다가 2005년 ‘스파이더맨’ 제작이 본궤도에 오를 즈음(just as things were getting off the ground) 프로듀서 토니 애덤스(테이머, 보노, 에지의 콤비 결성에 주역을 맡았다)가 뇌졸중(stroke)으로 사망했다. 애덤스가 빠진 상황에서 예산 확보의 책임은 데이비드 가핑클에게 돌아갔다. 가핑클은 연예계 변호사로서 브로드웨이 제작에는 경험이 전무했다. 이미 3000억 달러 정도를 지출한 상태에서 예산은 바닥이 났고 제작은 진전이 없었다.
2009년 보노가 끌어들인 마이클 콜이 가핑클을 역할을 대신 맡았다. 연예 기획사 라이브 네이션 엔터테인먼트 회장을 지낸 콜은 연줄을 이용해 수천만 달러를 유치했다.하지만 그와 파트너 제러마이어 해리스 역시 가핑클처럼 브로드웨이 제작 경험이 전무했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2010년 11월 ‘스파이더맨’의 브로드웨이 프리뷰를 강행한 장본인은 콜이었다. 입장료에서 나오는 현금이 필요했고, 마블사의 판권 유효 기
간이 만료되기 직전(the rights from Marvel were about to expire)이었기 때문이다.
첫 프리뷰부터 문제가 확연히 드러났다(Problems were apparent from the first preview). 관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대본에 원작 만화에선 주변 인물이었던 아라크네(Arachne, 거미를 뜻하며 그리스 신화의 직조 기술이 뛰어난 여성으로 ‘거미 여인’으로 불린다)라는 새로운 악당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테이머는 아라크네를 중심 인물로 삼았다. 피터파커를 유혹해 새 생명을 잉태한 다음 그의 머리를 물어뜯어 죽이려고 작심한 인물로 나온다. 또 관객들은 기억에 남는 멜로디도 없다고 불평했다(They also said the music was not memorable).
그렇다면 음악을 담당한 보노와 에지는 그때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U2 투어 공연 때문에 프리뷰 대부분을 놓쳤다. 테이머는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 팀이 분열됐다”고 말했다.배우들이 공중을 나는 장면에서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수없이 많았다(Technical difficulties with the flying sequences abounded). 그 때문에 공연 도중 지체되는 시간이 길어졌고 배우들의 부상도 잦았다.
공중 곡예를 하는 스턴트맨 크리스토퍼 티어니는 약 10m 공중에서 무대 뒤의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인터넷에서 널리 퍼졌다.2011년 2월 프리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으면서 배우 네 명이 부상하고 공식 개막이 다섯 차례 연기되자 프리뷰 비평을 금기시하던 비평가들이 더는 볼 수 없다며 칼날을 세웠다(critics decided it was time for Taymor & Co. to be critiqued). 뉴욕타임스의 벤 브랜틀리는 그 작품을 두고 “국가적망신(national joke)”이라고 극단적인 평을 서슴지 않았다.
테이머는 1990년대 초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가 뮤지컬 연극으로 제작될 당시를 돌이켰다. 당시 프로듀서들은 그 작품을 지방에서 프리뷰 공연을 했다. 전설적인 연출가 할 프린스가 비평가들 앞에서 공식 막을 올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관객들의 사전 반응을 원했기 때문이다. 테이머와 그녀의 오랜 파트너인 작곡가 엘리엇 골든탈은 프린스를 생각해서 프리뷰의 비평을 자제해 달라고 비평가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유명한 할 프린스 아닌가(Well, it’s Hal Prince)?관객들을 위해 제대로 평을 해줘야지(We owe it to the public)’라고 말했다. 그의 명성때문에 비평가들은 그에게 프리뷰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입장에 처하기가 싫었다(I kind of don’t like being in that place).”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프리뷰 비평이 나온 지 한달 만에 테이머는 해고됐다. “내가 희생양이었다(I was the scapegoat)”고 테이머가 말했다.그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자 테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the people you’re working with are on the same page). 하지만 난 그 사람들을 잘 몰랐던 것 같다(I don’t think I knew who I was getting involved with).”
테이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 취향이 브로드웨이 관객의 80%와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실수라고 말하긴 싫다. …이 일에서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신이 나서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작품(groundbreaking or envelope-pushing stuff)을 원하지만 막바지에 가면 불안해 한다(then at the 11th hour, they get nervous)는 사실이다.
그들은 너무 예술적으로 나가지 않아야 성공할 수있다고 생각한다(They smell more success if we don’t go too artistic).”테이머는 ‘스파이더맨’을 향한 비평가들의 적대감이 그토록 높다는 사실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Taymor remains mystified by the level of hostility leveled at the show).
“이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고용돼 무대를 만들고 공중 곡예를 하고 춤을 추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대규모 작품이 실패하는 게 좋은 일일까(Is it a good thing for a big show like Spider-Man to fail)? 그렇지 않다. 실패하면 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된다(Then a lot of people are unemployed).”
얼마 전 토니상 후보작이 발표됐을 때 ‘스파이더맨’은 테이머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주요 부문에서 전부 떨어졌다. “내가 연출에서 쫓겨났지만 ‘스파이더맨’에서 가장 성공한 부분이 내 작품이라는 점이 참 흥미롭다(It is interesting that I got bumped,when what’s successful in the show is what I did). 토니상 후보에 지명된 의상과 무대 장치는 연출가의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남태평양(South Pacific)’으로 토니상을 받은 연출가 바틀릿셔는 이렇게 말했다. “테이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며 용기가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혁신 연출가다.”
그러나 다른 브로드웨이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지 묻자 테이머는 회의적으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 조건에 따라 다르다.”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코미디가 되지 싶다”고 테이머가 말했다. 그녀는 ‘맥베스’를 검토했다가 포기했다. “역모에 관해선 나도 많이 알지만 그걸하고 싶진 않다(I know a lot about treason,but I’m not going to do it).” 테이머는 영화두 편도 촬영 중이다. 그중 하나는 토마스만의 소설 ‘뒤바뀐 머리(Transposed Heads)’를 바탕으로 한다.
훌륭한 ‘머리’를 지닌 한 남자와 ‘몸’을 지닌 다른 한 남자가 자신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인을 위해 서로 머리를 베어 죽었다가 몸이 바뀌어 환생하는 이야기다.다른 하나는 오페라 ‘방랑하는 더치맨’을 개작한 ‘폭풍 속의 방랑자(Riders on the Storm)’다. 테이머는 그 작품의 무대를 현대로 옮길 생각이다. 죽지 않고는 사랑할 수없는 남자(a man who cannot love without dying)가 고집 세고 강인하며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테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여주인공이 어울리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함투성이다(I think the times are right for a woman, a lead woman role, where she’s enormously fla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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