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집단 융단폭격은 곤란”
“대기업 집단 융단폭격은 곤란”
“선진국 기업처럼 행동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기업의 행태 특히 오너의 행태는 몇 십 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너들이 선진국처럼 더 도덕적이어야 하고 상생하려는 자세를 갖춰야합니다. 그래야 글로벌 시장에서 존경 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의 소비자들이 우리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선택합니다.”
이한구(67)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는 “대기업에 어떤 주문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애정 어린 질책을 쏟아냈다. 행정고시 출신인 이 원내대표는 과거 16년 간 대우그룹에 몸담았다. 그중 11년 동안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 있었다.“대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거둔
성공이 물거품이 될 거로 봅니다.
경영권도 능력 없는 2,3세에게 넘기지 말고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2,3세의 부를 유지할 수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물론 2,3세를 무조건 배제하라는 건 아니에요. 능력이 있는 후손들의 경우 수업을 시켜 경영에 참여시킬 수도 있죠. 지금처럼 전문경영인을 종 부리듯이 해서는 회사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계이다. 그는 “선거 때마다 대기업 집단 때리기가 유행하는 건 대기업 총수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대기업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굉장히 나빠지면서 기업 활동을 과거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이런 풍조가 정치 행사와 연결되기에 경제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국민들이 ‘대기업 집단이 우리에게 더 이상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국회로서는 규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중장기적으로 국민들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런 결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 바보 같은 선택이지만 국회라는 데가 본래 그런 곳이에요.”6월 12일 오전 국회의사당 본청 239호실에 자리잡은 집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그와 만났다
이른바 재벌 개혁론을 어떻게 봅니까?“그런 용어 자체가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않습니다. 대기업 집단 총수들의 행태는 고칠 점이 많고 당연히 시정이 돼야 합니다. 불공정 경쟁, 불공정 거래, 불법 상속 같은 것들이죠. 이런 행위는 마땅히 엄하게 처벌하고 수시로 실태를 파악해 국민들에게 정보공개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집단의 경제활동 전반을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경영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하는 건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에요?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정밀 타격을 해야지 감만 갖고서 융단폭격을 하면 안 됩니다.”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을 추진중입니다만.“출총제는 과거에도 실패한 제도입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죠. 순환출자 금지는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순환출자를 너무 쉽게 생각해 자꾸 가공자본을 만드는 행태는 기업의 건전성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게사실이죠.”
공기업 민영화도화두입니다. 매각을 하면야 국가재정에 도움이 되겠지만.“고민거리입니다. 공공부문이 갖고 있자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민간에 넘기자니 대기업집단의 행태로 미루어 국민경제에 과연 득이 될지 판단이 안 섭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대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돼요. 이러다 자칫 외국 자본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어요. 중요한 기업이 외국에 넘어가면 나중에 우리가 정책적으로 레버리지로 쓸 수 없는 문제가 생기죠. 결국 케이스별로 따져볼 수 밖에 없어요.”이 원내대표는 경제통이다. 경제관료 출신 경제학 박사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었고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정책위 의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발전하지는 않더라도 실물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럴 경우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유럽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이게 중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시간이 더 흐르면 미국에도 영향을 미칠 거로 봅니다. 국내에서는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고 대기업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나빠졌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어느 기업이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전후방에 있는 다른 기업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해야죠. 그런데 중소기업은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업 쪽에서자칫 무시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죠. 그렇다고 착취를 했다가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혼자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착취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뿐더러 전략적으로도 타당치 않다는 거죠. 그래서 평소 이익이 나면 거래 기업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공동으로 연구·개발(R&D)도 하고 사람도 키우고 그래야 합니다. 그걸 안 하니까 외부에서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대기업 집단이 스스로 알아서 솔선수범하면 외부에서 간섭할 일도 없거니와 그게 바로 성숙한 기업의 모습이죠.”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정부 안에서도 부처 간에 입장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성과공유제는 좋다고 보지만 이익공유제는 실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내부적으로 야 이익이 어떻게 났는지 거래 기업 간에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테니 시도해 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외부에서 강요하면 배분이 잘못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해당 기업끼리 마음을 열고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면서 실천해 나갈 일이라고 봅니다.어쨌거나 협력업체와의 공유에 대한 세간의 기대를 계속 무시하면 외부에서 개입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거고, 이것이야말로 걱정스런 사태죠.”
경제민주화도 이슈입니다. 앞서 경제민주화 달성이 자유시장경제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셨는데요?“이 문제에 대해서는 학계가 정리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정치권이 그걸 먼저 공부하고 나서 이를 구체화하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어떻든 지금까지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킬 겁니다.”
그는 학계의 성과로 5월 한국선진화포럼의 월례토론회 ‘경제민주화, 무엇을 말하는 가’를 지목했다. 이 자리에서 이승훈 서울대명예교수는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1항)는 조항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도 “강자를 규제하기보다 약자가 경쟁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4년여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시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정부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당 쇄신 후에도 이런 보수 정당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을까? 마침 대선을 앞두고 복지수요가 분출하고 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노무현 정부 때하도 원칙도 없이 여기 저기 끼어들어 정부에 어지간한 건 손을 떼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작은 정부’와 ‘줄푸세’(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17대 대선 공약으로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고 내세운 것)를 이야기한 거고요. 다시 세계경제 위기가 닥쳤으니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작은 정부로는 안 됩니다.”
상황논리군요? 당 정체성도 그렇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나요?“그래도 민주당보다는 우리가 작은 정부를 지향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커질 수밖에 없지만 민주당의 구상보다는 덜 큽니다.”
올 연말 대선 때도 줄푸세 공약은 유효한 겁니까?“규제를 푸는 것과 법치 강화는 조금 더 해야 하지만 복지 등으로 재정에 대한 수요가 커져 감세는 앞으로 몇 년 간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 가정교사로 통한다.
이른바 ‘박근혜노믹스’의 골격은 어떻게 짜고 있나요?“모든 국민이 골고루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비전입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만족을 포괄하는 개념이죠. 물질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성장을 추구할 겁니다. 정신적 만족의 토양은 공평 사회,공정한 경제체제죠. 도덕, 상생, 박애, 환경과 자연을 중시하는 새로운 컨셉트의 자본주의를 지향할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 집단이 변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또 국민 갈등 해소에도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성장과 고용 내지는 복지의 선순환구조는 어떻게 만드나요?“성장을 하면 복지 재원이 마련되고 고용이 많이 늘어나면 복지 수요가 줄어들죠. 복지관련 산업 쪽엔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요양병원, 보육 같은 일은 민간에 넘겨야죠. 또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을 높여 복지재정을 건전화하고 복지 체감도를 높여야 합니다.”
성장과 고용 내지는 복지의 선순환구조는 어떻게 만드나요?“성장을 하면 복지 재원이 마련되고 고용이 많이 늘어나면 복지 수요가 줄어들죠. 복지관련 산업 쪽엔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요양병원, 보육 같은 일은 민간에 넘겨야죠. 또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을 높여 복지재정을 건전화하고 복지 체감도를 높여야 합니다.”
저성장 기조에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싱가포르는 10%대의 성장을 한 20년 지속했습니다. 가능한 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요. 우리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게 문제죠.”
국가부채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감춰진 부채가 많습니다. 국민연금·공기업과 연관된 부채,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의 부채 같은 것들이죠.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수자원공사도 감당 못할 만큼 빚을 졌어요.국가부채를 가장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20~40대인데 이 사람들이 국가부채를 마구잡이로 늘리려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성장과 고용을 많이 늘려 갚으면 좋겠지만 이게 쉽지 않으니 결국 아껴 쓰는 수밖에 없죠.”
가계 빚 문제도 심각합니다.“가계 빚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나라가 세계 3위권에 듭니다. 고리채쓴 것을 이자율이 낮은 부채로 전환해 주는 처방 마련, 신용불량자 재활 프로그램 강화 등 정책적으로 힘써야겠지만 가계도 절약을해야 합니다.”
지난 18대 국회에 성적을 매긴다면?“제가 4선째인데 3선 하는 동안 최악이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국회였죠. 새누리당은 국민들이 다수당을 만들어 줬지만 한 일이 없고 당 지도부는 계속 말썽을 일으켰어요.민주당은 허구 헌 날 발목을 잡아 국정을 마비시켰고요. 국회에서 무엇 하나 되는 게 없었어요.”
국회의원 겸직 금지 등 새누리당 6대 쇄신안에 우선순위가 있습니까?“없습니다. 여섯 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고 다 할 겁니다.”
새누리당은 6월 14일 쇄신안의 핵심 내용인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19대 국회는 5월 30일 임기를 시작했지만 주요 쟁점현안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로 개원을 못하고 있다.
올 대선에서 승리하면 차기 정부에 참여할 겁니까?“우리가 집권하면 참여해야죠. 우리가 하면 지금보다 나을 겁니다. 집권한 후 옳은 길로 가면 다소 마음에 안 들더라도, 설사 고통스럽더라도 지지를 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죠. 정치인들이라고 일부러 잘못된 길로 가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적인 꿈, 정치인으로서의 꿈이 뭡니까?“그런 거 없습니다. 하루 하루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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