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스토리를 음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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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국내에 한 와인 테이스팅 클럽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르끌로(Le Clos). 프랑스어로 ‘담장에 둘러싸인 포도원’이라는 뜻이다.전 삼성물산 영국법인 사장 박흥규(56) 대표와 부르고뉴 와이너리 소유 가문의 프레데릭구베(Frederic Goubet·45) 대표가 공동 창업했다. 이들이 의기투합한 이유는 뭘까.
박대표와 구베 대표를 6월 11일 만났다.와인은 이미 친숙한 술이다. 와인 애호가가 늘면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귀한 와인일수록 가격은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활성화되는 것이 각종 테이스팅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에서 ‘어떤 와인을 마시는가’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누구와 어떻게 마시는가’이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가 곧 사교와 친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누구와 어떻게 마시느냐가 중요르끌로의 박흥규 대표는 “제대로 된 클럽문화를 구축하고 싶다”며 “성숙한 와인문화를 통해 시장도 덩달아 성숙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멤버·비멤버를 위한 정기적 테이스팅 디너와 프라이빗 테이스팅 컨설팅, 그리고 프랑스 베스트 소믈리에 도미니끄 라뽀르뜨(Dominique Laporte)와 함께 하는 올드 빈티지 디너 등이 현재 르끌로의 주 사업내용이다. 와이너리 투어와 셀러링 서비스등도 계획하고 있다.
“르끌로는 파인 와인(fine wine)을 둘러싼 비지니스다. 내가 생각하는 파인 와인은 스토리가 중요하다. 포도밭과 생산자의 역사가 깊고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와인. 그리고 장인정신이 드러나는 와인이어야 한다.”르끌로는 박 대표에게 제 2의 도전이다.그는 “삼성은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며 “근 30년간 쌓은 인맥이 지금 이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와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가 프랑스와 영국에 주재할 당시 생겼다. 그러다 와인공부를 본격 시작한 것은 2004년 삼성물산런던 지사장으로 발령 나면서다. 경험에 비해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처음엔 베리브라더스의 테이스팅 행사에 다녔다. 베리브라더스는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와인상으로 영국왕실에 와인을 공급하는 회사다.
100회에 달하는 테이스팅에 참여한 박 대표는 “베리브라더스의 와인문화 사업을 벤치마킹하고 싶었다”며 “2009년 말 퇴임 후 2년간 와인 공부에 전력했다”고 말했다.미국 UC Davis에서 와인마케팅 전문가과정,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과 프랑스와인교육기관 OIV를 거쳤다. OIV 마스터 프로그램은 15~20명의 학생들이 2년간 24개국을 돌며 와인산지와 시장을 견학하는 코스이다.
거기서 지금의 동업자 프레데릭 구베를 만났다. 구베 대표는 “OIV를 통해 글로벌한 입맛을 가지게 되었다”며 “이는 각 시장에 알맞은 와인을 선별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베 대표도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광고계에 20년간 종사하며 한 때 업계 정상까지 올랐다. 세계적인 광고회사 오길비&매더스를 시작으로 WPP 그룹의 프랑스 지사장을 지냈다. 구베 대표는 2년 전 자신의 열정을 따라가기로 결정, 와인사업으로 커리어를 전향했다.
그는 “집안이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어 업계 진출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의 삼촌은 부르고뉴 뽀마르 지역의 도멘 드 꾹셀(Domaine de Courcel)의 소유주이다. 이 와이너리는 17세기부터 7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어 업계 인맥이 돈독하다.
구베 대표는 현재 프랑스에서 고급와인을 취급하는 와인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품질이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이 좋은 와인을 발굴해 시장에 소개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밝혔다.
프랑스 와인뿐만 아니라 좋은 품질의 이탈리아, 스페인산 와인도 거래하고 있다. 보르도·부르고뉴 와인 가격 상승으로 프랑스 소비자들조차 이탈리아, 스페인 산 와인을 많이 찾고 있다는 것이다. 구베 대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생산 와인 중에서도 남다른 스토리를 가진 와인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친구들과 함께 스토리를 공유하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문화 중 큰 기쁨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와인을 진정 사랑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6월 7일 르끌로는 신라호텔 라 컨티넨탈에서 보르도 5대 샤토 올드 빈티지 디너의 첫 회를 가졌다. 샤토 무통 로쉴드(1960년산), 라투르(1971), 라피트 로쉴드(1975), 오브리옹(1984), 마고(1986) 등 기라성 같은 와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디저트 와인으로
는 디켐(1986)이 등장했다.
주목할 점은 이 와인들의 출처다. 각 샤토에서 직접 공수해 항공운송 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이 과정을 총괄한 구베 대표의 말이다.“디너 전 와인들을 오픈 했을 때 상태가 완벽했다. 진동은 올드 빈티지 와인에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와인들은 몇 십년간 저장고에서 흔들리지 않고 보관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라피트 3병 중 한 병은 버려야 했다. 일반인은 감별하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손상이었지만 디너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 과감히 버렸다.
이후 참가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니 라피트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하더라. 만약 버리지않고 서빙했다면 다른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박 대표와 구베 대표는 최고급 와인을 최상의 서비스로 제공하려면 최고의 소믈리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OIV 후배이자 2004년 프랑스 베스트 소믈리에 타이틀을 거머쥔 도미니끄 라뽀르뜨를 객원 소믈리에로 영입했다.
라뽀르뜨는 6월 7일 올드 빈티지 디너에서 베스트 소믈리에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와인 디캔팅과 서빙 시기, 음식과의 마리아주를 총 지휘했다. 디너 도중에는 각 코스마다 친절하고 디테일한 설명으로 참가자들을 가이드했다. 라뽀르뜨는 올드 빈티지 디너 외에 ‘도미니끄의 와인스쿨’이라는 커리큘럼으로 일반 테이스팅 수업도 진행했다.앞으로 지속적으로 방한하여 르끌로와 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올드 빈티지는 보존 상태가 관건박 대표에게 올드 빈티지 디너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3개월 동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과정은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자들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참가 비용만큼이나 기대치도 높았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올드 빈티지 디너는 르끌로를 고급 클럽문화 브랜드로 키우는 데 중요한 행사이다.”이 날 참가자들은 “세계적인 퀄리티를 경험해 그동안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에 들어온 것 같다”, “일반 와인 동호회에서 여는 올드 빈티지 테이스팅과 차원이 다르다”라는 소견을 보였다.
구베 대표는 한국 와인 시장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다.“보통 시장에 와인이 처음 소개되면 부유층을 위한 고가 브랜드들이 먼저 들어온다.그리고 대중적인 저가 와인들이 들어온다.그 사이에 폭 넓은 중저가, 중고가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중국의
와인시장은 돈은 많지만 문화가 성숙하려면 한참 멀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너무 앞서 있다. 한국은 아직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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