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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하는 ‘물천지’

아프리카 지하는 ‘물천지’



교복을 차려 입은 마사이족 어린이들이 전통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모두 30㎝ 정도 되는 하얀 막대처럼 생긴 물건을 목에 걸고 있다. 다른 어린이들도 똑같이 생긴 ‘막대’를 받아들고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본다.

입에 대 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본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다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활짝 웃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작은 하얀 ‘막대’ 때문이다. 하얀 막대는 미국 구호단체 월드서브(WorldServe)가 선물로 나눠 준 ‘생명빨대(LifeStraw: 휴대용 정수기)’다.


더러운 물 마시는 아프리카 인구 3억명어린이들이 선물로 받은 생명빨대는 1인용으로 한 사람이 1년간 먹기에 충분한 용량인 700리터의 물을 정수할 수 있다. 수인성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99%까지 제거한다. 15마이크론(μ, 1마이크론은1000분의 1mm) 이상의 작은 입자도 걸러낼 수 있다. 이를 사용하기위해서는 아무런 전기적 장치도 필요하지 않다. 부품을 교체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다니면서 목이 마르면 깨끗하지 않은 물이라도 이 막대를 물에 넣어 빨아들이면 된다. 깨끗한 마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자녀들에게 귀한 선물을 해준 월드서브 관계자에게 마사이족 어른들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울긋불긋한 의상을 입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즉석 축제를 베푼 것이다. 월드서브는 5월에 찍은 이러한 축제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선물 전달은 월드서브가 맡았지만, 사실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생명빨대를 기증한 사람은 또래 미국 어린이들이다. 2008년 미국뉴욕 시라큐스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더러운 물 때문에 매년 수많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깨끗한 물을 선물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이러한 소식이 입소문을 타고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수백 개의 학교가 동참했다. 2009년까지 5만달러가 모였다. 미국 어린이들은 이 돈을 월드서브에 전달했고, 월드서브가 그 돈으로 1만개의 생명빨대를 구입해 이날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월드서브의 한 고위관계자는 “어린이들로부터 큰 돈을 기부 받아 정말 감격스러웠다”며 “생명필터 1만개로 정말 많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필터는 말 그대로 갖가지 세균으로부터 아프리카 어린이의 목숨을 지켜준다. 4~5달러에 불과한 1인용 생명빨대 한 개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천상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월드서브에 따르면,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도국에서 수인성 질병이 유아 사망의 최대 주범으로 꼽힌다. 심한 설사로 숨지는 어린이들만 매년 180만 명에 이른다. 5세 미만 어린이들의 생존율에도 물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지구촌에는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11억 명에 달한다. 월드서브는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물 개발을 통해 지속적으로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매일 일정한 양의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농사도 제조업도 물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구촌에서 인간이 쓸 수 있는 물은 유한하다. 지구에 있는 물의 총량은 대략 14억㎦이다. 이는 지구 전체 표면을 3000m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빙하를 제외하고 강·호수·지하수 등 인류가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담수의 양은 이 중 0.8% 에 불과하다. 그래서 댐과 같은 저수시설을 만들어 비로 내리는 물을 잘가뒀다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해야 한다.

상황이 여의치 못한 곳에서는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대륙이 그렇다.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비해 물을 저장하는 다목적 댐 같은 시설은 상대적으로 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적도가 대륙 중앙을 횡단하고 있어 그 뜨거움으로 인한 갈증도 만만찮다. 하지만 아프리카 주민 10억 명 중 3억 명 이상이 깨끗한 식수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천과 호수는 매년 홍수와 가뭄을 번갈아 겪으면서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제한이 많다. 현재 경작 가능한 토지 가운데 관개시설로 물이 공급되는 곳은 5%에 불과하다.

그래서 때로는 물을 둘러싸고 무서운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2003년부터 8년여 동안 30만명이 숨지고 27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수단 다르푸르 분쟁의 원인 중 하나도 물이었다. 북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서쪽으로 900㎞ 가량 떨어진 다르푸르 지역은 원래 북부 아랍계주민과 남부 흑인이 이질적인 문화에도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다.

그때 이들이 누렸던 평화는 비가 충분히 내려 식량 자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기가 되면 북쪽 아랍 유목민들이 남부 흑인들이 사는 다르푸르 목초지에 들어와 가축을 먹였다. 그러다 1979년 사하라 사막 남쪽 가장자리 지역인 사헬(Sahel)에 큰 가뭄이 시작됐다. 가뭄은 사헬지역에 속해 있는 다르푸르에도 대기근을 초래했다. 1983~84년 가뭄으로 숨진 사람만 10만명을 넘었다. 막상 먹고 살 것이 부족해지자 다르푸르 흑인 부족들도 각박해졌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아랍계 유목민들의 목초지 진입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쳤다. 자연히 아랍계 유목민과 다툼이 생겼고, 이것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북아프리카에 지하수 풍부지금도 아프리카에는 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일강 상·하류 국가간에 댐 건설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 그것이다. 에티오피아가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그랜드 르네상스(Grand Renaissance)’ 댐에 대해 나일강 하류에 위치해 있는 이집트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공사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랜드 르네상스댐은 ‘Grand Ethiopian Renaissance Dam’이 정식 명칭으로 나일강 지류인 청나일강의 상류 베니샨굴-구마즈(Benishangul-Gumuz)에 건설 중이다. 완공되면 아프리카 최대이자 세계 7위 규모의 댐이 된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지금까지 에티오피아를 비롯, 케냐·탄자니아·르완다·우간다·부룬디 등 상류쪽 나라들이 나일강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수단과 이집트만 혜택을 누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랜드 르네상스 댐을 확장함으로써 청나일강 물을 최대한 많이 가둬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나일강 수자원은 1959년 이집트-수단간 협정에 의해 이집트 75%, 수단 11%, 에티오피아 등 나머지 7개국은 14%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상태다.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는 앞으로도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 I: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48개국에서 28억명 가량이 물 기근이나 물 부족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PAI는 강우 유출량을 인구수로 나눠 연간 1인당 물 사용 가능량이 1000㎥ 미만은 물 기근(water scarcity)국가, 1000㎥ 이상에서 1700㎥미만은 물 부족(water stress) 국가로 분류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장차 물 부족과 물 기근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아프리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물 기근’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그런 아프리카 대륙에 최근 거대한 물이 발견됐다. 영국의 BBC 방송은 4월 “대륙 전체의 대수층에 함유된 물의 양이 지표수의 100배나 된다”고 보도했다. 영국 지질탐사단과 런던대 연구진이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가진 수리(水理)지질 지도와 283건의 대수층(帶水層)연구를 토대로 환경연구지(ERL)에 발표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지하수가 가장 많은 곳은 리비아·알제리·차드가 위치한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이 지역 지하에 거대한 퇴적층 분지가 형성돼 있으며 여기에 다량의 지하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분지에 담겨 있는 담수의 양은 전체 면적에 평균 75m 깊이로 고여있는 것과 같은 분량으로 추정됐다. 이들 지역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지역으로 PAI가 물 기근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나라들을 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실 물이라도 뽑아서 사용할 수 있다면 타 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아프리카 지하수 개발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수백 년간 사하라 지역을 사막으로 변모시킨 기후 변화에 따라 이 지역의 지하 대수층 가운데 상당 부분은 5000여년 전을 마지막으로 이후에 물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관정을 사용하면 지하수가 급속히 고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주의를 기울여 이용한다면 식수와 농수 등 소량의 물을 공급하는데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물 이용할 기술이 관건이러한 대규모 지하수의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3년 리비아에서 행한 석유 탐사 때, 내륙부의 사하라 사막 지하 깊은 곳에서 1만년 이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 지하수를 퍼 올려 해안부의 트리폴리·벵가지 같은 대도시나, 주변 농경지대에 공급하는 관개 공사 계획이 1984년 발표됐다. 한국이 수주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다. 리비아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다피는 이 계획을 놓고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리비아 대수로는 계획된 공사가 완공되면 대략 35조t의 물을 뽑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나일강의 200년 유수량과 맞먹는다.

결국 이렇게 풍부한 지하수를 잘 이용한다면, 아프리카의 물 부족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르푸르 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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