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그노시스 시대 열린다
테라그노시스 시대 열린다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진행하는 첨단 의학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21세기의 의학혁명이라 일컬어지는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다. 질병이 나타나는 환부에만 나노 입자가 축적돼 약효가 발휘되도록 하는 이 기술은 현재 나노 의학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테라그노시스를 2012년 ‘10대 미래유망기술’중 하나로 선정했다.
테라그노시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영어 단어를 합한 신조어다.형광물질로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여기에 약물을 붙여 동시에 치료도 하는 신개념 진단·치료 기술을 말한다. 분자 영상과 나노의학을 하나의 기술로 접목해 몸 속의 효소나 바이오 마커(질병의 발생·진행과 연관되는 중요한 지표), 유전자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난치성 질병의 유무와 진행 상태를 판단한다.
나노 단위 암세포 추적관리 가능의학이 덜 발달했던 시대에 의사들은 환자의 겉모습만 보고 병을 파악했다. 또 정확한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신체를 절개하지 않으면서 사람의 몸 속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20세기 의학 기술 발전사는 이것이 관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즘은 MRI(자기공명영상촬영)나 CT(컴퓨터 단층촬영) 같은 다양한 첨단 영상의학기기가 발달해 우리 몸을 칼로 가르지 않더라도 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가능하다. 심장 등의 조직까지 쉽게 볼 수 있다. 물리학의 X선이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 등과 만나 의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기술이 바로 ‘분자영상기술’이다.암 진단에 주로 사용되는 X선, CT, MRI촬영은 종양 크기가 1㎝ 이상, 무게 1g 이상이어야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는 암세포 수가 이미 10억 개를 넘은 상태기 때문에 다른 정상 기관에도 전이가 일어날 수 있다.암으로 인한 사망은 대부분 암의 전이에 의한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암의 조기진단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첨단 기능을 갖춘 영상기기를 이용해 검사하면 암세포의 존재를 좀더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분자영상은 몸 속 세포 활동이나 대사 상태 등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대표적으로 환자의 몸 안에 있는 난치성 암세포의 위치와 구조를 눈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3차원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술이 있다. 이렇게 작은 단위에서 생물학적인 변화를 보면 유전자 발현, 단백질 상호작용, 신호전달, 세포이동, 분자구조, 혈류, 대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CT, MRI 등 기존 의료 영상을 통해서 몸 안의 장기구조에 이상이 있는지를 판별했다면, 분자영상은 몸 속에서 어떤 활동이 어떤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변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병 유무를 곧바로 진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지금까지의 기술은 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분자영상은 핵의학 방사성 추적 영상, 광학 영상, 자기공명분광(MRS), 초음파 영상 등의 기술을 이용해 얻을 수 있다.
질병이 진단되면 나노의학 기반의 융합소재를 투여해 암세포만 공격하는 치료를한다. 나노의학은 나노 기술을 이용해 분자와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응용하는 첨단기술이다. 암환자의 치료는 통상적으로 흐릿하게 얻어진 암 위치의 사진을 토대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자의 몸을 절개해 종양 위치를 확인해야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노 기술을 도입하면 매우 손쉽게 진단과 치료를 할 수있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건강한 다른 세포에 비해 다량의 영양분, 즉 몸 속의 포도당을 섭취한다. 이 포도당에 몸 밖에서 영상화가 가능하도록 추적물질을 붙여 주사한 뒤 환자의 몸을 촬영하면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몸 속의 암 위치와 크기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그 후 나노 캡슐에 항암제를 담은 다음 캡슐에 나노 자석을 달아 암세포에만 항암제를 전하는 기술이 연구 중이다.
지금의 암수술은 항암제를 투입한 후 암세포가 얼마만큼 줄어드는지 엑스레이로 변화를 감지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암세포가 줄어들려면 약 1달 정도기다려야 한다. 또 암세포가 몸 속에 남아있을 것을 우려해 주위의 정상 세포 조직까지 도려내므로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
하지만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이 접목된 테라그노시스를 이용하면 항암제가 암세포에 달라붙어 얼마만큼 암세포를 저해시키는지의 효소 활동 영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있다. 그만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테라그노시스로 치료제를 내장한 형광나노입자 단백질을 체내에 주입할 경우 딱암 조직에만 축적되어 형광빛이 돈다. 활동이 활발한 암세포일수록 형광이 더욱 빛난다.
따라서 축적된 부위에서 약물을 방출해 부작용 없이 항암치료가 가능하다. 형광조직만 떼어내면 되기 때문에 정상 세포까지 더 많이 도려낼 필요도 없다. 이 또한 바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또 환자가 약을 복용했을 때 환자의 몸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이를 잘 연구하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나노 입자들이 장기와 세포 단위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의 융합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테라그노시스 기술은 큰 힘을 발휘한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예를 들어 항암제를 만들 때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나 단백질을 먼저 찾고 그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런 다음 동물실험과 임상실험까지 거쳐야 제품으로 나올 수 있다.
시간이 10년 이상 걸리는 게 당연하다.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소요된다. 하지만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응용하면 약물의 복용 전과 후 몸 속의 치료효과를 간단한 영상을 통해 눈으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생생한 영상으로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과신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약 개발에도 큰 힘 발휘테라그노시스 기술을 통한 질병의 조기 진단이나 표적 치료 기술은 차세대 유망 고부가가치 창출 분야로 꼽힌다. 분자영상과 나노의학은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각축을 벌이며 연구 중이다.2011년 표적지향 항암제 치료제 시장 규모는 1300억 달러에 이르렀고, 2016년에는 1750억 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분야의 선두주자에 속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과학연구센터 권익찬 박사팀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3차원으로 영상화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나노입자형 스마트센서 치료제를 개발해 임상 시험 중이다. 몸속에서 약물의 이동과 치료 과정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테라그노시스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것이다. 머지않아 암과 알츠하이머와 같은 난치성 질병을 정확하게 조기에 발견하고, 환자에게 적합한 맞춤 치료와 예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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