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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조 시장의 주인이 바뀐다

3000조 시장의 주인이 바뀐다

영화 속에서나 달리던 전기차가 현실의 도로로 나오고 있다. GM은 전기차 볼트를 앞세워 그간 일본차와 유럽차에 밀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의 닛산과 미쓰비시 자동차도 오래 전부터 전기차 개발을 진행해 왔고 일반인을 상대로 판매를 시작했다. 내년까지 10여종의 전기차가 나온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의 기술론 한번 충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짧은데다 배터리 가격도 차 한대값에 맞먹는다. 그래서 ‘전기차 시대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는 전망과‘전기차의 단점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현재 유가가 물가를 감안하면 1,2차 오일쇼크 때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고효율 친환경의 대명사인 전기차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따져봤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자동차 브랜드의 경쟁 현황과 전기차의 성패를 좌우할 배터리 기술도 살펴봤다.



#1. 4월 28일 세계 3대 레이싱 대회 중 하나인 나스카 스프린트 컵 대회의 패이스카(Pace Car)로 포드의 전기차 포커스 일렉트릭이 등장했다. 패이스카란 자동차경주가 시작되기 전 트랙을 돌 때 가장 앞에서 주행하는 차를 말한다. 다른 자동차가 충분히 속력을 낼 때까지 다른 차를 이끌며 경주의 패이스를 조절하는 차다.이 차가 빠지기 전까지 다른 차는 서로 추월을 할 수 없다. 직접 경주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레이싱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차이기도 하다. 이날 포커스 일렉트릭은 시속 135km의 최고 속력을 내며 멋지게 경주를 이끌었다. 경주용 전기차의 등장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손색이 없었다.


‘BMW i’라는 전기차 브랜드도 등장#2. 5월 25일 부산국제모터쇼 BMW 전시관에 늘씬한 전기차 i8이 등장했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 중엔 “어디서 본 듯한 차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 이 차는 올 초 개봉한 영화 ‘미션임파서블4’에서 주인공 탐 크루즈가 탔던 차다.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한 차로, 최대 속도가 시속 250km다. 2014년 하반기에는 국내 거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양산이 임박했다.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자동차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다. BMW·포드·GM·닛산·토요타 같은 세계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BMW는 ‘BMW i’라는 전기차 브랜드까지 따로 출시해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순수전기차인 블루온을 출시했다. 올 초에는 기아차가 전기차 레이를 선보였다. 현재 판매를 시작했거나 2013년부터 판매를 시작하는 전기차 종류만 10여종에 달한다.전기차 시장의 성장에는 유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 이슈가 부상하는 시기는 항상 고유가와 맞물렸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전기차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극히 작아 잠깐 등장했다 사려졌다. 이후에도 기름값이 폭등할 땐 항상 거론되는 단어가 전기차였다.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휘청거렸고, 석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하자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이번엔 예전과 달랐다. 실생활에서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거기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산업구조를 친환경으로 재편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선언하면서 전기차 시장 확대에 불을 지폈다. 단기적 오르내림은 있겠지만 기름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제통화기금은 현재 유가가 물가를 감안하면 1,2차 오일쇼크 때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환경에 대한 중요성도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한국형 전기차 만들어야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두곤 전문가의 의견이 갈린다. 일본의 시장조사 전문 기관 IIT는 2020년께 전체 시장의 6% 정도인 약

450만대의 전기차가 팔릴 것으로 예측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까지 포함한 수치다. 반면 삼성SDI는 올 초 ‘전지사업의 동향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0년 즈음엔 전 세계 자동차 중 17%가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매킨지는 “2020년엔전기차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로선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2050년은 돼야 전기차 시장이 활짝 열릴 것이란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전기차 자체가 대체 이동수단으

로서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로선 전기차의 단점이 많아서다. 지난해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에 들어간 GM의 전기차 볼트는 2011년 판매량이 7700대에 그쳤다. 애초 목표인 1만대에 못 미친다.

올해도 4만5000대를 목표로 판매에 돌입했지만 3만대를 넘기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올 4월엔 넘치는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4주간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거기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성적 역시 신통치 않아 전기차 시장 성장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비싼 가격, 인프라 부족, 짧은 이동 거리, 긴 충전 시간 등 단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라며 “자동차는 한 번 사면 보통 5년 이상을 타는데 이런 단점을 감수하면서 전기차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 자체가 한국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한국의 도시는 아파트 중심의 밀집 거주형태다. 전기차는 퇴근 후 충전을 해야 하는 데 기존 아파트에는 이런 대규모 충전시설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거주형태를 고려한 전기차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력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자동차에까지 전기가 들어가면 감

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현재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그 때 필요한 전기는 원자력 발전이나 화력발전을 통해 얻어야 하는데 이는 친환경 자동차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선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운전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성능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앙대 이남석 교수(경영학)는 “전기차의 보급이 늘어나기 위해선 현재보다 주행거리를 두 배 이상 끌어 올려야 한다”며 “한번 충전으로 300km 이상 달릴 수 있고, 간이 충전소에서 10분 이내에 급속 충전이 돼야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혁신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게 정부의 지원이다. 전기차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주변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불편할 수 밖에 없

다.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영남대 그린카부품산업단 조계현 교수는 “사회 전반에 전기차가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며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전기차 보급 속도가 예상외로 빨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김필수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배터리 성능이 개선되거나 가격이 떨어지긴 힘들다”며 “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 까지는 정부가 배터리를 리스 형태로 임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유럽·중국 등 거대 자동차 시장 국가의 정책 방향도 중요한 변수다. 이들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올해 대선이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전기차관련 정책도 바뀔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의 특성상 정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환경 관련 정책은 자동차 시장에 항상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이 자동차 배기 가스에 대한 규제를 까다롭게 할수록 전기차 상용화 시점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전기차는 자동차시장에서 고효율 친환경의 대명사다. 아직 시장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수많은 기업이 전기차 투자와 연구를 늘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시장이 앞으로 수십 년간 기업의 매출을 책임질 신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작은 볼트부

터 철장, 전자장치까지 1~6차까지 이어진 부품조립 산업구조다. 이런 구조에 더해 새로운 계열 산업까지 만들어 낸다. 배터리 같은 화

학산업이 그 중심이다. 자동차는 석유와 함께 연간 3000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거대 산업이다. 전기차의 성패에 따라 시장의 주

인이 바뀔 수 있다. 도로 곳곳에서 전기차와 충전소가 들어서는 즈음에는 이미 승자와 패자는 갈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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