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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휘발유 줄고 짝퉁 경유 늘었다

가짜 휘발유 줄고 짝퉁 경유 늘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가짜 휘발유는 줄고, 가짜 경유는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제품 관리·유통을 담당하는 한국석유관리원이 지난 300일간 ‘가짜(유사)석유와의 전쟁‘을 벌인 결과다.석유관리원 정길형 품질총괄팀장은 “적발률 기준으로 가짜 휘발유는 예전 같은 기간에 비해 90% 정도 줄었지만 경유는 조금 늘어났다”고 말했다. 경유차 운전자는 자신도 모르게 가짜 제품을 주유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걸까.

요즘 가짜 휘발유 제조·판매업자들은 시쳇말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단속이 워낙 심할뿐 아니라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주원료인 용제를 구입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용제(솔벤트)는 페인트나 시너·접착제 제조,전자제품·기계류 세척, 드라이클리닝 등에 쓰이는 유기화합물을 말한다.

석유관리원은 지난해부터 주유소나 제조장 위주로 단속하던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용제가 가짜 휘발유 제조업자로 유입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데 주력해왔다. 마약 수사로 치면, 마약을 투입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게 아니라 대형 마약 공급책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짜 휘발유는 보통 휘발유 30~40%에 다른 석유화학제품을 60~70% 섞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종류는 많다. ‘휘발유+용제+알코올’ 휘발유+시너’ ‘휘발유+등유’ ‘휘발유+용제+아닐린’ 등이다. 아예 용제와 톨루엔만을 섞어 만든 짝퉁도 있다.

가짜 휘발유에 많이 들어가는 용제의 불법유통 경로는 이렇다. 용제 제조사 중 일부가 신나·페인트업체를 차려 실소비자로 위장해 용

제를 공급받는다. 용제 제조업체는 용제 대리점이나 판매점에 공급한 용제량을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장부상으로만 신나·페인트업체에 용제를 공급한 것으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가짜 석유 제조업체로 빼돌리는 식이다. 가짜 석유 제조업자는 이렇게 확보된 용제를 휘발유나 등유에 섞어 만든 가짜 제품을 전국 주유소나 길거리 판매업소에 넘긴다.


1만3000개 주유소 수시 단속석유관리원은 전국 1만3000여개 주유소를 A~F 등급으로 나눠 수시 단속을 한다. 가짜 석유를 팔다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C~D 등급이 된다. 상습 불법판매 업소나 불법 시설물를 대거 설치한 업소의 경우 F등급으로 분류돼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정유사가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는 대부분 A~B 등급이지만, 임대 주유소나 자가폴(독립) 주유소는 등급이 낮은 경우가 많다.

가짜 석유 브로커들이 정유사가 관리·감독하는 직영 주유소보다는 임대·독립 주유소와 거래하기쉽기 때문이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정유사 직영주유소가 적발되는 사례는 실수로 정품에 다른 제품이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 임대 주유소는 약 2600개, 독립 주유소는 700개 정도 된다. 어떤 주유소가 몇 등급인지는 대외비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매우 중요한 단

속 정보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일부만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단속은 사전 통보 없이 수시로 나간다. 본지가 5월 29일 석유관리원 현장단속반을 동행 취재했더니, 제보가 없거나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 단속은 한계가 있어보였다. 과정은 이랬다. 서울 소재 A주유소에 출동한 현장 단속반(2인 1조)은 먼저 다섯 개 기름 탱크 중 한 곳의 맨홀 뚜껑을 열어 안에 내시경 검사를 했다. 탱크 안에 가짜 석유와 진짜 석유를 나누는 격벽이 있는지, 이중 탱크가 설치됐는지를 검사하기 위해서다. 모니터로 탱크 내부가 보였다. 정상탱크였다.

이후 각 기름 탱크에 기름을 주유하는 주입구 시설을 점검했다. 기름 탱크가 다섯 개면 주입구도 다섯 개여야 한다. 정상이었다. 주입구 설비는 기름을 채울 때 흐르는 기름을 막기 위해 바닥에 모래를 까는데,단속반은 모래 속도 뒤져봤다. 불법 탱크로 들어가는 또 다른 주입구가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기름 탱크 조사를 마친 단속반원은 이후 여러 주유기 중 한 개를 골라시료 채취용 용기에 휘발유를 담아 봉인했다. 이 용기는 석유관리원으로 가져가 진위여부를 검사한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10일정도 걸린다.

A주유소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단속을 비웃는 주유소는 많다. 가장 흔한 것이 이중 밸브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기름 탱크나 주유기에 이중 밸브를 설치하고 리모컨으로 조정해 가짜 석유와 진짜 석유를 구분해 팔 수 있는 장치다. 단속반이 시료를 채취할 때도 리모컨으로 정상 제품이 나오도록하면 그만이다. 리모컨은 전자계산기, 휴대폰 형태도 있다. 최근에는 이쑤시게통 안에 리모컨을 삽입한 주유소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 주유소는 바닥에 자석을 설치하고,주유원의 운동화 안에 다른 자석을 삽입해 발을 갖다대면 스위치 역할을 해 밸브를 조절하는 수법을 쓰다 적발됐다.이런 상황을 감안해 석유관리원은 비노출 현장차량 검사라는 것도 한다. 외관상으로는 일반 2.5t 차량과 같지만, 내부에 가짜석유를 판별할 수 있는 장치를 실은 차량이다. 일반 소비자를 가장해 주유를 하면 5분안에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짜 석유를 판매하는 주유소는 여러 주유기 중 한 두 곳에서만 가짜 석유를 내보낸다. 비노출 차량 검사를 한다 해도 어떤 주유기에서 가짜 석유가 나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운에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폭발사고가 난 경기도 수원 소재 오아시스 주유소가 좋은 예다.

이 주유소는 2010년 5월 품질검사결과 가짜 석유 제품을 취급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후 8차례의 검사에서는 품질적합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비노출 검사 차량을 이용한 3번의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2011년 9월 21일 단속에서는 가짜 석유제품을 취급하는 것으로 나왔고, 사흘 후 폭발사고가 나 7명의 사상자를 냈다. 오아시스주유소 폭발 사고 4일 후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소재 기양주유소도 비슷하다. 이 주유소는 2010년 10월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돼 특별관리대상이었지만, 2011년 실시된 7차례의 수시 검사에서 모두 품질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장 단속에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석유관리원 정길형 팀장은 “단속반원이 모자라 주유소 한 곳 당 연평균 2.5회 정도 단속을 나가는데, 문제가 된 주유소는 7~8번이나 나갔다”며 “석유관리원이 의심하고 있었던 주유소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비노출 차량검사를 세 번 통과한 것은 당시에는 진짜 제품을 팔았거나, 여러 주유기 중 비노출 검사차량이 정품을 파는 주유기에서 주유를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역으로 의심을 하고 특별 관리를 했는데도 현장 적발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짜 석유 1ℓ 팔면 1000원 남아판매 수법도 지능적이다. 일부 주유소는 금요일 밤부터 주말에 집중적으로 가짜 제품을 팔고 평일에는 정상 제품을 취급한다. 단속반이 주말에는 소수만 근무하는 것을 역이용한 것이다. 어떤 주유소는 단속이 뜸한 밤 10시부터 새벽 1~2시 사이에만 가짜 석유를 판다. 석유관리원 단속반 관계자는 “지방 유흥도시 인근에 있는 주유소가 이런 수법을 많이 쓴다”며 “밤 11시에 불시 단속을나가 가짜 석유를 확보한 후 경찰 협조를 얻어 불법 탱크를 적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휘발유 전체 시장 중 7~10%는 가짜 휘발유로 추정된다. 가짜 등유 비율은 더 높아 시중에 유통되는 경유의 15~20%가 정상 제품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탈루되는 세금은 한 해 1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2005~2009년 가짜 석유제품 유통량은

3000만㎘로 탈루세액은 6조 9000억원에 이른다.

가짜 석유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어서다. 휘발유 소비자 가격의 47%는 세금인데, 세율이 낮은 등유나 용제를 혼합하면 섞는 양만큼 부당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짜석유 제품은 ℓ당 1000원이 안 된다. 가짜석유를 정품으로 속여 1ℓ에 2000원에 팔면 1000원 가량의 마진이 남는다.


가짜 경유 식별 어려워처벌도 가벼웠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실에 따르면, 2008~2010년 동안 가짜 석유를 팔다 적발된 업소 1069개 중 등록 취소 처분이 내려진 곳은 1.3%인 13곳에 불과했다. 또한 3년 간 석유관리원이 단속해 적발한 가짜석유 세금탈루 차단액은 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과징금 부과액은 155억원에 그쳤다. 때문에 정부는 최근 법(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을 바꿔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되면 2년 간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못하도록 했다.

과징금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렸다. 지하에 비밀탱크를 묻거나 이중배관을 설치했다 걸리면 바로 등록이 취소되는 원 스크라이크 아웃제도 시행된다. 가짜 석유를 팔다 걸리면 가로5m 크기의 현수막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또한 과거에는 1년에 3번 적발되면 영업정지를 당했는데, 이제는 3년에 세 번 적발되면 주유소 사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과징금 1억원 정도는 2개월 정도 가짜 제품을 팔면 만회할 수 있고,임대 사업자는 행정처분을 받아도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석유관리원이 아예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원료인 용제 수급 감독을 강화한 것이다. 용제 제조사(11곳), 용제대리점(82곳), 용제판매소(257곳) 등으로부터 수급 상황을 일일이 보고받아 수급에 이상 징후가 있으면 집중 단속하는 방식이다.

일단 효과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석유관리원 측은 “가짜 휘발유 제조업자에게 용제가 넘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한 결과 예년에 비해 용제 판매량이 5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유통된 용제의 50%정도가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진즉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을까. 다른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수급 상황을 실시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 얼마 되지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용제를 잡으면 가짜 휘발유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다 알았지만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라고 말했다. 직무유기를 해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가짜 경유는 갈수록 늘고 있다. 가짜 경유는 휘발유와 달리 경유에 등유, 용제, 선박용 경유, 부생연료유 등을 섞어 만든다. 등유와 경유를 섞으면 진위를 식별하기 매우 어렵다. 성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등유는 경우에 비해 ℓ당 500원 정도 싸다.정부는 경유에 등유를 섞어 파는 것을 막기위해 등유에 식별이 가능한 붉은색 착색제와 시험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법정 식별제를 첨가하도록 한다. 하지만 가짜 등유 판매업자들은 등유에서 이 착색제와 식별제를 제거하는 장비까지 개발해 단속을 피하고 있다.

또한 경유에는 바이오디젤을 2% 이상 함유하도록 의무화 돼 있어 가짜 경유인지 판별할 때 바이오디젤 함유 여부를 검사하는데, 이를 역이용해 등유를 섞은 가짜 경유에 바이오디젤을 섞어 유통할 정도다. 최근 900억원 대 가짜 석유를 팔다 적발된 일당도 가짜 경유를 주로 팔았다.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올 1월까지 경기도 이천·화성, 충청도 아산·당진일대 주유소 6곳에서 4만9000㎘의 가짜 경유를 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벌어들인 부당이득은 400억~500억원 대로 추정된다.

석유관리원 측은 “내년에 전국 주유소에 석유제품 매출, 매입, 재고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POS(Point of Sales) 시스템을 구축해 등유와 경유를 혼합한 제품을 원칙적으로 차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POS 시스템을 통해 등유 거래현황을 파악해 급등락이 큰 주유소를 집중검사한다는 것이다.

한편 가짜 석유 처벌이 강화되고, 단속이 심해지면서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가짜 석유를 팔기보다는 정량을 속이거나 무자료 거래를 하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주유소가 많다는 게 석유관리원 측 얘기다. 주유기 내에 메인보드를 설치해 버튼만으로 감쪽같이 정량을 속이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석유관리원 측은 “최근에는 디지털 계량기가 장착된 차량이 많기때문에 소비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정량을 속이는지 알 수 있다”며 “최근 정량문제를 제보하는 소비자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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