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업황 예측이 화를 불렀다
빗나간 업황 예측이 화를 불렀다
STX그룹과 웅진그룹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며 중견그룹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STX그룹을 보자.2000년 쌍용중공업 당시 2605억원이던 매출액이 2010년 32조원으로 늘었다. 현재 19개 계열사 가운데 6개사가 상장했고, 임직원수만 5만여명에 달한다. 재계 순위는 현재 14위다. 웅진그룹도 1980년 7명의 직원과 자본금 7000만원의 웅진출판으로 시작해 웅진코웨이를 비롯한 15개 계열를 둔 자산 8조원의 재계 순위 32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 20여년 간 신흥 기업이 대기업으로 정착한 사례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이들은 업계에서 수많은 후발 기업의 벤치마킹대상이 됐다. 그랬던 이들이 경기 침체와 확장의 후유증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내 기업중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며 가파르게 성장한 중위권 기업이 대기업의 문턱에서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위기 배경은 경영학 용어로 ‘휴브리스(managerial hubris)’로 불리는 경영자의 과욕에 따른 ‘오버슈팅(overshooting)’과 성장에 따른 환경과 경영모델 간 부적합성에서 찾을 수 있다.
빠른 성장이 실패 위험 높여CEO의 과욕은 급성장한 기업에게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업을 성장시킨 CEO의 대부분은 기업가 정신이 대단하다. 이들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식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따
라서 한 가지 사업에서 성공하면 그것을 자신의 경영역량에 대한 증거로 믿기 때문에 다른 사업도 실패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
신감에 차 있다.
그 결과 이른 시일 안에 성장 시키겠다는 욕심에 무리한 성장전략을 추구하게 된다.이런 경영자의 과욕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역량과 자원 수준을 넘어서는 시도를 남발하는 오버슈팅을 하게 만들고, 당연히 실패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여기에 이들은 성장전략 실행의 다양한 대안들 중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내부개발 보다는 단기간에 급성장하는데 M&A를 선호했다. M&A는 불확실성과 실패의 위험이 높은 전략이다.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짐콜린스는 “기업 경영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무사안일주의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절제한 과욕이다”라고 경고한 바있다.
실제로 STX그룹이 성공과 동시에 위기에놓인 이유도 바로 무리한 M&A였다. 강덕수STX그룹 회장은 2001년 STX로 사명을 변경한 후 그 해 10월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을 인수했다. 이어 2002년 산단에너지(산업단지관리공단, 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2007년 아커야즈(STX유럽)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면서 STX그룹의 주력 사업인 해운과 조선업황이 크게 악화됐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중국에 초대형 조선소를 건설한 데 이어 STX유럽을 인수하고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데 총 1조원을 썼다.
결국 주력 계열사의 수익성은 나빠지고 재무구조도 크게 악화됐다.웅진그룹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매출액 6조1000억원, 영업이익4300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약 20% 성장했다. 하지만 교육출판과 환경생활 사업중심의 웅진그룹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2007년 극동건설을 시작으로 2008년 웅진케미칼, 2010년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했지만 건설경기 부진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커지면서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극동건설의 부채비율은 2010년 173%에서 올 1분기 338%로 급증했다. 서울저축은행도 현재 자본금 93.6%가 잠식됐다. 결국 무리한 욕심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무조건적인 벤치마킹은 ‘독’대기업으로 성장함에 있어 시장 환경과 경영모델간 불일치도 위기를 겪는 하나의 이유다. 즉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모범
사례)’ 경영모델이 있어도 모든 기업에서 항상 높은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하고 각 기업이 각 상황마다 처한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경영모델이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기업은 다른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 경영모델을 벤치마킹 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의 요구에 대한 정확하고 자신의 경영모델을 그 환경에 적용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각 기업의 환경은 다른 기업의 환경과 다를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성장단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업은 성장단계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각 단계별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이나 제도, 문화등 시기별로 경영모델도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면 경쟁의 범위가 국내에서 세계 무대로 넓어지고, 사회적 책임까지 요구되는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각조직별 자율성과 전사적 통합조정이 동시에가능한 성숙한 경영모델이 필요하게 된다.그러나 성공한 기업의 CEO는 자신이 창업기의 도전과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게 해주었던 성공공식에 집착하다 성장단계에 따른 새로운 경영모델로의 전환에 실패하는 수가 많다. 이런 현상은 경영학에서 ‘성공의 덫(success trap)’으로 불리는데 그 이전 단계의 환경 적응에 효과적이었던 경영모델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그 다음 성장단계의 환경 적응의 실패의 원인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웅진그룹과 STX그룹의 경우도 중위권기업 단계까지의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CEO의 경영역량과 M&A 중심의 성장전략이라는 성공공식이 성공의 덫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이렇게 볼 때,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역량과 자원 수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성장전략의 실행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역량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별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과 자원의 양과 수준, 무엇보다 적용 가능한 범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성장 시도는 위기를 초래하게된다.
또 각 성장단계마다 그에 적합한 경영모델의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기업의 전통이나 핵심 가치, CEO의 철학 등의 핑계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초기 단계의 경영모델에 집착하는 것은 성공의 덫에 따른 위기를 자초하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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