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환시장에 ‘통화 카오스’
글로벌 외환시장에 ‘통화 카오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로 유로존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됐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으로 불안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글로벌 외환시장이다. ‘유로화 약세-달러화 강세’로 대표되는 변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통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통‘ 화 카오스’ 현상이 벌어졌다.
유럽계 은행이 글로벌 외환시장의 혼란을 부추긴 진원지다. 유럽계 은행 중심의 선진국 자본이 국제적으로 투자 자금을 급격히 회수해 글로벌 달러 수요가 큰 폭 확대됐다. 불안한 유로화 자산을 팔고 좀 더 안전한 미 국채에 투자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이면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처럼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통화는 강세를 보이고, 한국원화를 비롯한 각종 이머징 통화, 브라질 헤알화 중심의 ‘원자재 통화’는 약세로 들어섰다. 특히 세계 경기 둔화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원자재와 연관된 나라의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6월까지 유로화 약세 전망지난해 유로존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유럽 위기가 촉발되자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국이 국가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위기감에 휩싸였다. 미국 자산도 안전하지않다는 판단에 따라 달러화도 약세로 돌아섰다. 유로화와 달러화 모두 약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의 충격이 완화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그래도 달러 만한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을 것이란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화 강세 현상은 좀 더 이어질 전망이 우세하다.
이진우 NH농협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은 각국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위해 현찰을 확보해야 하는 시기여서 글로벌달러 수요가 어느 때보다도 많다”며 “유럽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달러화 강세는 2014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와 달리 급락한 유로화 가치는 맥을 못 추고 있다. 2월에 글로벌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커질 때 1유로는 1.34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5월 24일 그리스 위기가 재점화되면서 유로화는 1.26달러로 떨어졌다.
5월 31일 현재 1유로는 연중 최저치인 1.2367달러로 떨어졌다. 2010년 이후로도 최저치다. 유로화 하락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유로화가 6월말까지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계 71개 은행 중 자본이 부족한 31개(그리스 은행 제외) 은행이 유럽은행감독청 지침에 따라 6월 말까지 자기자본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71개 유럽계 은행에서 핵심자기자본비율 9% 기준을 충족하려면 모두 1147억 유로가 필요하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유럽 은행들은 6월까지 각종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신종자본증권을 보통주로 전환하고, 신주를 발행하고 사업부를 매각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이들이 처분할 자산 대부분이 남미와 중동부 유럽지역에 있는 재산일 것으로 추정했다.
투자금이 회수되는 지역의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며, 유럽 은행의 자금 회수가 유로화 약세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유로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5월 24일 열린 유럽연합(EU) 비공식 특별정상회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EU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비하라고 각국에 통보해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회의 결과를 본 유럽의 대형 펀드들은 기대했던 정상회의에 실망하며 유로화 자산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유럽의 2위 사모펀드 운용사 아문디, 영국의 대형 펀드 운용사 스레드니들 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유로화 자산을 팔고 미국 달러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
독일의 BMW와 영국항공의 모기업인 인터내셔널 에어라인 그룹도 유로화 급락에 대비해 유로화 표시 자산을 처분하고 있다. 전승지삼성선물 연구원은 “각국의 달러 자산 비중이 2008년 56%에서 최근 65%로 확대되면서 달러화 수요가 더욱 늘고 있다”면서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점도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의 상황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판석 우리선물 연구원은“그렉시트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탈퇴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의견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며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
장분석팀장은 “유럽계 은행의 자금 회수 등 (유로화에 대한) 역송금 수요가 줄고,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부양
책을 내놓으면 유로화 악세가 중단될 수도 있다”면서 “6월 17일 그리스 선거와 스페인 불안이 하반기 유로화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까지 달러화 강세”유럽계 은행의 역송금에 따라 한국 증시에서도 유럽계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이에 따라 원화값도 급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원화가치는 3월 5일 연중 최고치인 달러당 1114.5원(기준 환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들어 유럽계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가면서 원화값은 급락세로 돌아섰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마련한 돈을 달러로 바꿔가면서 원화값이 큰 폭 하락한 것이다. 5월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는 달러당 1180.4원에 거래됐다. 연중 최저치로 2011년 하반기 미국과 유럽 재정위기가 복합적으로 불거진 10월 5일 1199.5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연말 원화값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외환선물은 원화값이 1120원 수준을 유지하다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져 1200원에 도달할것으로 전망했다. NH농협은 지금의 흐름만 놓고 보면 원화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삼성선물은 6월 중 1200원, 연말 1080원으로 원화값이 차츰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선물은 구체적인 원화값 수준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하반기 원화값이 다소 회복될 것으로 봤다.
유럽 위기의 진정 가능성에 따라 각기 다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전승지 연구원은 “원화에 대한 수요가 적어 당장은 원화값이 회복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의 외환건전성과 외환보유고, 해외 건설 수주에 따른 무역 수지 등을 감안하면 원화값은 차츰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세계적인 경기 둔화에도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어가던 브라질의 헤알화도 약세다. 약세 강도 역시 강하다. 헤알화 가치는 지난해 8월 달러당 1.5603 헤알이었지만 최근 2.1헤알 수준까지 급락했다. 브라질중앙은행은 5월 22일 21억9000만 달러어치의 통화파생상품을 매각한 달러를 시장에 내놓으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세계경기가 침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헤알화값이 더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급등해 브라질 산업기반과 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헤알화는 캐나다달러, 호주달러, 인도 루피화와 함께 ‘원자재 통화’로 분류된다. 무역에서 원자재 거래 비중이 큰 나라의 통화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 나라의 통화 가치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것이다.
‘원자재 통화’ 가치도 급락인도 루피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루피화는 지난해에 비해 19%나 급락했다. 5월 24일 달러당 루피화는 장중 56.37루피를 기록하면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석 달 만에 13% 넘게 가치가 급락했다. 인도 중앙은행은 일주일동안 18억 달러를 쏟아 부으며 루피화 가치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루피화 가치 하락은 인도 물가 불안으로 이어졌다. 2010년 1분기 인도 물가는 15%까지 치솟았으며, 4월의 물가상승률은 7%를 웃돌았다. 이에 더해 인도 정부의 재정 사정이 악화되면서 인도의 국가신용등급도 ‘안정적’에서 ‘부정적’(S&P 기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루피화 가치 하락과 함께 유럽 재정위기로 선진국의 안전자산 회귀현상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인도에서 발을 빼고 있다.
지난해 인도에서 외국인 투자는 2010년 대비 5분의 1로 줄었다. 최근 5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5월 25일 하루에만 364억 루피(한화 8000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다. 인도 뭄바이 증권거래소의 센섹스 지수는 올해 2월부터 하락세로 전환해 5월 들어서만 5% 가까이 급락했다. 전승지 연구원은 “브라질과 인도 경제는 국내외 경기에 주로 좌우되는데 해당국 통화가 이미 약세로 전환된 상황에서 유럽과 중국의 경기 둔화 여파를 크게 받은 것”이라며 “당분간 이들 나라 통화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이른바 안전통화로 분류되는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엔화값은 경제 침체에도 오르고 있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를 사들이는 글로벌 수요가 늘고 있기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에 대한 반짝 기대가 있던 3월 1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값은 83.79엔에 거래됐다.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에 몰렸을 때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경제 불안감이 엄습한 뒤 엔화값은 지속적인 강세다. 5월 3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1달러에 79.095엔에 거래됐다.
일본 입장에서는 통화 강세가 큰 문제다. 엔화값이 오르면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 정부는 달러를 대량으로 풀어 엔화를 약세로 반전시켰다. 그러나 최근 엔화 강세로 환율 방어 효과가 사라져 버린것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도 달러당 80엔선을 엔화 강세의 지지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기관의 엔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달러당 80엔 선이 무너졌다. 올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던 일본 정부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스위스 프랑 역시 일본과 비슷한 처지다. 유로존에 바짝 붙어있는 스위스의 스위스 프랑은 유러화가 약세일 때 강세로 전환되게 마련이다. 스위스 프랑 역시 엔화와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스위스중앙은행(SNB)는 지난해 8월 유로당 프랑화값이 1.03프랑까지 치솟자 9월 1유로당 1.20프랑을 환율 지지선으로 잡고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스위스 프랑은 강세로 돌아섰다. SNB 토마스 요르단 총재는 5월 27일“지난 몇 주간 스위스 프랑에 대한 절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면서 “비상시기라고 판단되면 외화예금을 비롯한 자금통제에 나설 수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엔과 프랑이 지금보다 더 강세를 보이면 이들 통화 보유국들이 그렇지 않아도 나빠진 경기 상황을 우려해 환율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위안화는 현재 다소 약세를 보이지만 다른 통화에 비해서는 비교적 무덤덤한 모습이다. 최근 위안화 변동폭 확대 이후 이미 일정 부분 위안화가 절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중국이 부동산 시장과 내수 등을 위한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다면 위안화가 급격한 강세로 돌아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선물은 위안화가 연말에 가치가 상승해 연내 2% 내외 절상되는데 그칠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경팔 팀장은 “중국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것에 대응해 중국이 이미 지준율을 내렸기 때문에 최근 위안화 변동폭이 적었다”며 “중국은 올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일정 부분 따라 주고 있어 위안화는 완만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통화 가치가 급변동 하고 있는 요즘은 새로운 투자기회일수 있다. 각 선물사의 FX마진거래(개인이 직접 외국 통화를 거래)나 한국 증시에 상장된 통화 선물을 이용할 수도 있다. 1개월 후 원화값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 달러선물 상승에 배팅하면 된다. 통화선물은 일정 정도의 증거금만으로도 몇 배에 달하는 달러를 미리 사둘 수 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달러 가치가 하락반전하면 증거금 이상으로 마이너스 수익이 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지금처럼 원화가 약세일 때는 투자하는 지역 통화의 환율 상승효과를 노린 ‘환노출형 상품’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국 달러선물가격을 추종하는 KOSEF 달러선물 ETF 등이 대표적이다.KDB대우증권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엔화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해 엔-달러 환율 상승률의 2배의 수익을 추구하는 ‘엔화약세 배팅 랩’을 내놓고 있다. 최소 가입금액은 1000만원이다.
통화 관련 DLS는 상품 내용 꼼꼼히 살펴야각국 통화 가치가 급변락할 때는 수익률 변동을 줄이는 방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증권사의 자산배분형, 절대수익추구형 상품이나 ELS 등을 찾는 게 낫다. 달러와 엔화, 위안화 등 외국 통화와 관련된 DLS 상품 등은 수시로 출시되지만 상품마다 수익률과 조건들이 천차만별이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안화연계 DLS상품’은 원금이 보장되면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1% 상승하면 연 9%의 높은 수익을 내기도 한다. 해외 펀드 중에서도 달러나 엔화표시 펀드 등에 투자하면 수익률 외에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
브라질 국채에 투자했다면 떨어진 헤알화 가치 때문에 손해를 볼수 있다. 브라질 국채의 수익률 자체는 유지되지만 이를 원화로 환산해서 회수할 때 떨어진 헤알화 때문에 절대 수익률이 낮아진다. 반대로 헤알화 가치가 떨어진 지금이 브라질 국채를 더 싸게 살 수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까지 브라질 국채를 사둔 투자자라면 헤알화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 헤알화값이 급락했다해도 바로 원화로 환매하지만 않는다면 헤알화 수익률은 그대로 보전된다. 나중에 헤알화가 안정화되거나 오히려 헤알화 가치가 올랐을 때 이자수익을 원화로 받으면 지금의 악재를 피할 수 있다.
정경팔 팀장은 “그리스 위기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위험통화인 유로화를 팔고 글로벌 달러를 사는 스탠스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며 “6월 17일 그리스 선거와 22일 유럽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유럽 위기가 진정되면 유로화에 저가 매수세가 몰릴 수 있지만 지금은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진우 센터장은 “현 상황으로 보면 달러 강세에 배팅해 통화 선물이나 FX마진거래를 시도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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