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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run 타라우마라족의 비운

born to run 타라우마라족의 비운



카밀로 비예가스-크루즈는 행복했던 시절을 못내 아쉬워했다. 멕시코의 무법지대인 시에라 마드레 산악지대의 신포로사 협곡 깊은 그늘 속을 맨발로 달렸던 때 말이다. 민첩함(agility)과 장거리 달리기의 지구력(running endurance)으로 유명한 타라우마라족인 그는 전통 축제인 라라히파리(rarajipari) 경주와 함께 성장했다. 바위투성이 오솔길을 따라 나무로 깎은 공을 차며 달리는 시합이다. 그러나 18세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경주를 시작했다. 마리화나 23㎏이든 배낭을 국경 너머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으로 나르는 일이었다.

올해 21세인 비예가스-크루즈는 모하비사막 부근 캘리포니아주 아델란토의 미국연방 교도소에 갇혀 있다.젊은 피가 끓는 달리기 달인에서 ‘노새(mules, 마약 운반책이라는 뜻이다)’가 된 그의 예기치 않았던 변화는 타라우마라족의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 ‘뛰려고 태어났다(Born to Run: A Hidden Tribe, Superathletes, and the Greatest Race the World Has Never Seen, 국내에서는 ‘본 투 런: 신비의 원시부족이 가르쳐준 행복의 비밀’로 출간)’ 덕분에 무명에서 일약 유명해졌다가 멕시코를 탈진케 한 마약과의 전쟁, 경제 파탄, 무자비한 가뭄이라는 불가항력 때문에 급추락했다.

타라우마라족은 스스로를 ‘라라무리(Rarámuri)’라 부른다. ‘발이 가벼운 사람들(the light-footed ones)’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뛰어난 장거리 달리기 능력은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2009년 ‘뛰려고 태어났다’가 나오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이렇게 적었다. “장거리 달리기라면 그 무엇도 타라우마라족을 능가하지 못한다. 경주마도 치타도 올림픽 마라톤 선수도 그들에게는 못당한다(When it comes to ultradistances,nothing can beat a Tarahumara runner—not a racehorse, not a cheetah, not an Olympic marathoner).” 책에는 700㎞를 내달린 타라우마라족 달리기 우승자, 미국 콜로라도주 레드빌에서 열린 160㎞ 울트라 마라톤에서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우승한 타라우마라족 선수가 등장한다. 맥두걸은 은둔생활을 좋아하는 타라우마라족을 “지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행복한 사람이며(the kindest, happiest people on the planet) 보살처럼 자비롭다(benign as Bodhisattvas)”고 묘사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자연은 인간을 달리도록 만들었다(nature intended human beings to run)’는 주장이다. 그 메시지는 미국인들에게 잘 먹혀 들면서 아마추어 달리기 세계와 연간 23억 달러 규모인 러닝슈즈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맨발달리기 돌풍을 일으키면서 거의 신발을 신지 않은 느낌을 주는 ‘발장갑(foot gloves,고무 양말, 발가락 신발이라고도 한다)’이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가슴 아픈 반전(painful twist)이 있다. 변호사, 법집행 기관의 취재원, 심지어 타라우마라족의 일원까지도 생존에 필수적인 타라우마라족의 지구력을 마약 밀매업자들이 이용한다고 말한다. 마약조직의 행동대원들은 가난한 타라우마라족을 끌어들여 도보로 마약을 국경 너머 미국으로 운반한다.미국 남서부 국경지대의 변호사들에 따르면 의뢰인 중 타라우마라족 마약 운반책이 갈수록 늘어난다. 텍사스주 엘파소의 변호사 켄 델 밸은 2007년 이후 타라우마라족 의뢰인 열댓 명을 할당 받았다고 말했다. 전부 ‘마약 운반’ 혐의였다. 법집행 당국이 타라우마라족과 나머지 멕시코인들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델 밸은 타라우마라족이 장거리 지구력 때문에 마약 운반책으로 선호된다고 말했다. “마약조직이 그들을 사막에 데려다 놓고 ‘출발!’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the cartels can put them in the desert and just say, ‘Go!’).”델 밸에 따르면 그런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미국 법원은 그들을 적절히 다룰 능력이 없었다. 초기의 한 사건에서 판사는 통역사를 찾을 수 없어서 타라우마라족 피고를 석방했다고 델 밸이 돌이켰다. 그러나 이제는 변호사들과 판사들을 돕는 통역사가 대기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관선 변호사 보조인 돈모리슨은 2010년 처음 타라우마라족 의뢰인을 맡았다. “국경 바로 너머에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원시 부족이 있다고 상상도 못했다(I had no idea that right across the border there was a tribe of people who lived like this)”고 모리슨이 말했다. 타라우마라족 남성 다수는 지금도 손수 만든 샌들과 스커트 같은 샅바(skirt-like loin cloths), 호화로운 색채의 튜닉을 착용한다. 모리슨은 “타라우마라족까지 마약과의 전쟁에 휩쓸린다면 그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If the drug war can start involving the Tarahumara, then no one is immune)”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타라우마라족은 시에라 마드레 산맥이라는 험준한 지형 덕분에 외부로부터 격리됐다. 이곳의 지형은 환상적이다. 주추와 바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돌출 등. 협곡은 거의 2㎞ 위로 뻗어 있지만 타라우마라족은 절벽을 마치 계단처럼 쉽게 오르내린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동안 목동, 광부, 벌목꾼, 마약 밀매꾼이 타라우마라의 전통적인 거주 지역에 점점 다가갔다. 이 지역을 다룬 최근의 여행책 중 하나는 2008년 영국 작가 리처드 그랜트가 쓴 ‘신의 가운데 손가락(God’s Middle Finger)’이었다. 널리 찬사를 받은 이 책은 무장 강도와의 만남을 그리면서 이런 다짐으로 끝맺는다. “다시는 시에라 마드레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I never wanted to set foot in the Sierra Madre again).”

현지인들이 말하는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사정이 좋은 시절에도 타라우마라족은 대부분 먹고 살기에 빠듯할 정도로 경작하며 각박하게 살아간다. 이제 이들은 가뭄 때문에 작물을 재배하지 못한다. 지난해 겨울의 이례적인 혹한으로 그나마 심었던 작물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해줄 ‘노새’를 찾는 마약 조직의 ‘봉(easy prey)’이 됐다.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80km를 달리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들은 지난 1만 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의 운반책으로 단련이 됐다(they’ve been indirectly training for [cross-border smuggling] for 10,000 years)”고 ‘뛰려고 태어났다’의 저자 맥두걸이 말했다. “비극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이런 지저분한 일에서 가능한 한 담을 쌓으려 했다(This is a culture that has tried its best to stay out of this mess). 속세의 지저분한 일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지저분한 일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멕시코 북부도시 치와와에서 활동해온 미국인 랜디 깅그리치는 “마약 산업이 타라우마라족에 미치는 문화적 영향은 측정조차 불가능하다(I can’t even weigh the cultural impact of what the drug industry is doing to the Tarahumara)”고 말했다. 그는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가 운영하는 비정부기구(NGO) 티에라 나티바는 광부, 벌목꾼, 마약 밀매꾼, 관광객이 타라우마라족 등의 원시 부족에게 가하는 위협에 맞서 싸운다. 깅그리치는 한 마약조직 두목이 1800m 높이의 신포로사 협곡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아스트로투르프 스키장을 건설하려고 타라우마라족을 주거지에서 강제로 내쫓았다고 말했다.

그 건설계획은 마약 두목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면서 무산됐다.과초치 마을에 사는 타라우마라 여성 아나 셀라 팔마는 마약 운반책으로 국경을 넘어간 부족민 네 명을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약속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돌아오긴 했지만 진짜 엉망진창이었다. 몸도 망가졌고, 돈도 없고,분노만 가득했다.”팔마의 안내로 노리가치라는 작은 정착지에서 벌목꾼이 깎은 능선 오솔길을 따라 작고 조용한 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의 동쪽 면으로 좁다란 오르막길을 지나자 타라우마라 무당 호세 마누엘 팔마가 돌무더기위에 앉아 있었다. 82세로 팔마의 먼 친척이었다.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이 과거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유명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서도 경주가 거의 열리지 않는다. 지금은 주로 꿈을 통해 병자를 치료한다고 그가 말했다. 호세 마누엘 팔마는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영혼이 있으며 그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illness is the result of souls losing their balance)고 믿는다. “시에라 마드레 지역 최고의 샤머니즘”이라고 깅그리치가 설명했다. “그들은 ‘소나데로스(sonaderos)’로 불린다. 꿈을 대신 꿔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세 마누엘 팔마는 “마약 밀매꾼들이 타라우마라족 지도자들에게는 접근하지 않았지만 젊은이를 유인하고 그들이 친구들을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그의 조카 알프레도 팔마도 그랬다. 그의 친구가 마약 운반을 같이 하자고 했다.미국 법원의 기록에 따르면 알프레도 팔마(29)는 마약을 국경 너머로 운반하면 800달러를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타라우마라족의 개인당 평균 1년 소득보다 많다. 팔마와 7명의 다른 운반책들은 추운 밤에 사막을 통과해 국경을 넘어 미국 뉴멕시코주로 들어갔다. 그때 적외선 레이더가 그들을 포착했다. 4명은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팔마와 동료 두 명은 관목 뒤로 숨으려는 순간 국경순찰대에 붙잡혔다.

그들의 배낭에서 나온 멕시코산 마리화나는 120㎏나 됐다.호세 마누엘 팔마가 앉아 있는 곳으로부터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한 남자가 말이 끄는 쟁기로 메마른 땅을 갈았다. 그의 아들중 한 명이었다.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의 다른 아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치와와로 갔다. 카밀로 비예가스-크루즈도 가뭄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It was the drought that also drove Camilo Villegas-Cruz to look for work elsewhere). 그의 아버지는 손바닥만한 밭에 콩, 완두콩, 옥수수를 재배하지만 가뭄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졌다. 2009년 1월 초 한 낯선 남자가 비예가스-크루즈와 동생 한 명에게 찾아와 물건을 운반해주면 각각 1500달러씩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곧바로 승낙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그들은 국경 부근의 작은 농가에서 출발했다. 경비가 없는 황량한 국경까지 도보로 30분이면 족했다. 그들은 각각 마리화나가 든 23㎏짜리 배낭을 지고 음식과 물을 담은 작은 배낭은 가슴 앞에 멨다. 밤새 사막을 걷다가 해가 뜨면 마리화나가 든 배낭을 적당한 곳에 숨기고 잠을 잤다.지루하고 힘든 여정이었다. 사흘째 그들은 미국 국경순찰대 헬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체포된 뒤 마약 유통 의도를 가진 모의 혐의로 기소됐다(charged with conspiracy with intent to distribute). 최고 20년 징역형에 처해질지 모를 혐의였다. 그러나 뉴멕시코주 로스 크루세스의 판사는 그들에게 감호 없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멕시코로 돌려 보냈다.비예가스-크루즈가 집으로 돌아가자 부모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흐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갔다. 그는 타라우마라족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전통 옥수수 맥주축제에 갔다. 80㎞ 타라우마 경주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부족의 전통 방식으로 밤새 나무 공을 차며 달리는 선수들을 위해 횃불을 들고 길을 밝히는 일이었다. (그 경주는 전설적인 울트라마라토너 마이카트루가 주최했다.

‘카발로 블랑코’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인인 그는 타라우마라족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고 ‘뛰려고 태어났다’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지난 3월 뉴멕시코주에서 달리는 도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58세였다.)그러나 비예가스-크루즈의 가족은 여전히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일을 찾아나섰다. 처음엔 한 농장에서 칠리를 재배하며 타오르는 여름 열기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하루 10달러를 벌었다. 그러던 중 달콤한 제의가 들어왔다. 비예가스-크루즈에 따르면 “괜찮은 맞는 일거리가 있다”고 촐로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말했다. “사흘이면 된다.”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돈의 유혹이 너무 컸다. 마약 밀매꾼은 그를 데리고 시내 가게에 가서 옷가지와 신발, 그리고 추운 사막의 밤을 견딜 수 있도록 코트까지 사주었다. 함정이었다(There was a catch, however). 그 비용이 1500달러 보수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마약 밀매업자에게 빚을 진 비예가스-크루즈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발을 뺄 수 없었다.그는 픽업 트럭의 뒤에 타고 미국 국경 부근의 작은 농장으로 갔다. 배낭은 미리 준비돼 있었다. 압축한 마리화나를 가득 채우고 테이프로 밀봉한 마대자루였다(heavy burlap sacks taped tight, full of compressed packages of marijuana). 비예가스-크루즈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다른 몇 명과 함께 새 신발을 신고 안내자의 뒤를 따라 밤에 걸었다.

30분 만에 국경을 넘어 뉴멕시코주의사막으로 들어섰다. 비예가스-크루즈는 너무도 불안해 돌아가고 싶었다고 돌이켰다.“슬프고 겁났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안내자가 없으면 신포로사 협곡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사흘째가 되자 비가 내렸다. 마리화나가 가득한 무거운 배낭을 지고 터덜터덜 걷다가 미끄러졌다.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지만 계속 걸어야 했다. 그때부터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고 그가 말했다. 나흘째 아침 국경 수비대가 그와 다른 두 명을 붙잡았다. 안내자는 그가 이끄는 ‘노새’들보다 짐이 가벼워 쉽게 달아날 수 있었다.

비예가스-크루즈는 유통 의도로 마약을 소지한 모의행위와 미국 불법 재입국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번에는 4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죄수복 차림으로 앉아 말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Someday I’ll get home and I’ ll never come her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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