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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투자 소식에 생기 돈다

삼성·LG 투자 소식에 생기 돈다



지루한 비가 이어지던 8월 22일 오전 평택역에서 내려다본 시내의 모습은 평범했다. 그나마 평택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데도 그렇

다. 금방 허물어져도 어색할 것 같지 않은 건물에 전당포나 여관 간판이 어지럽게 매달려있다. 간헐적으로 위치한 유명 프랜차이즈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없다면 영락 없는 시골읍내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200m만 벗어나면 논과 밭이 펼쳐진다. 초라한 건물마저도 쉽게 보기 어렵다.

평택역에서 서쪽으로 뻗은 아파트 촌과 곳곳에 위치한 공장단지를 제외하면 평택은 말 그대로 농촌이다.이런 평택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평택시 모곡동, 지제동,장당동, 고덕면 일대에 3.95㎢(120만평)에 달하는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전자부품과 화학, 비메모리 반도체 등 삼성전자의 신수종 사업을 위한 공장이다. 삼성전자의 공장 중 가장 큰 규모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43만평)보다도 2.8배가 크다. 공장건설 사업비만 2조4751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공장 생산라인 건설, 직원 채용, 기타 부대 시설 마련 등에 100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다.평택시는 “삼성전자 관련해서만 3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협력 업체까지 감안하면 총 4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덕단지 조성으로만 2018년까지 10만명의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인구가 44만명인 평택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5~6년 사이 25%의 인구가 늘어나는 셈이다.

평택의 아파트 곳곳에는 삼‘ 성전자의 고덕단지 공장 유치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평택역 근처에서 만난 김경애

(여·47)씨는 “일자리도 늘고 인구도 는다는데 당연히 좋은 일”이라며 “지금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자라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냐”며 반색했다. 김수철(43)씨는 “사실 평택 하면 그래도 ‘쌍용차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살았는데, 쌍용차가 위기에 처한 이후부터는 도시 분위기가 너무나 안좋았다”며 “요즘 어디를 가든지 평택 주민들사이에선 삼성전자 이야기만 나오면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투자로 인구 25% 늘어날 듯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마음을 졸여야했던 순간이 많았다. 처음 삼성전자 공장이 평택에 둥지를 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2008년이다. 이후 사업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2010년 말 드디어 삼성전자와 평택시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난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부 승인을 얻고, 지원금을 따고 본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또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 2년 동안 ‘삼성전자 들어오는 게 취소됐다더라’, ‘삼성전자 들어와도 원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더라’ 등 일명 ‘카더라 통신’이 끝없이 양산됐다.

심지어는 본 계약이 체결된 올 7월 31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심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우여곡절 끝에 삼성전자의 고덕단지 입성은 확정이 됐다. 시민들의 불신이 쌓여가는 동안 평택시는 전쟁 같은 2년을 보냈다. 김선기 평택시장과 담당 부서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 부처를 드나 들었다. 사업규모가 커 예산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국토해양부 산업입지정책심의회에서 5614억원의 예산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평택시 유기옥 기업정책과장은 “매 순간이 고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평택시에서 이런 대규모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없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한 부처에 문의를 하면, 다른 부처로 가라고 하고 돌고 돌다가 보면 다시 처음 부처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을 반복했어요. 서울 지리를 몰라 회의시간에 지각을 할 뻔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많았죠.”특히 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관련 지원금을 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고덕단지 내 폐수종말처리시설을 만들기 위해 책정한 금액은 2500억원이었다. 관련 자료를 들고 환경부를 찾았지만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폐수종말처리시설 공사를 위해 환경부가 연간 지출하는 비용이 대략3000억원 정도다. 환경부 입장에선 “고덕단

지만 짓고 다른 사업을 안 할 거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유 기업정책과장은 “처음 환경부 관계자를 만나서 2500억원이라는 금액을 꺼냈을 때 당황하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 차례의 만남과 브리핑을 통해 결국 설득에 성공했고, 2516억원의 폐수종말처리시설 관련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삼성전자 공장 입주 소식으로 들떠있는 평택에 또 하나의 호재가 생겼다. 평택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진위산업단지에 LG전자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2011년 9월 6일 경기도와 평택시, LG전자는 진위단지에 80만평 규모의 공장을 짓는 업무상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직 본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의 경험이 있어서다.

물론 이 과정에도 고비는 있었다. LG의 신수종 사업 공장 유치에는 경쟁자가 많았다. 이미 LCD 공장이 들어서 있는 파주시가 가장 유력했고, 적극적이었다. 평택시 한 관계자는 “사실 경기도 입장에서도 파주를 밀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평택

은 이미 삼성전자 공장 유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경기남부에 비해 경기북부 도민들 사이에선

경제적으로 소외를 당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도 이런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택시는 LG전자 공장 유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평택에 LG전자가 들어설 경우, 삼성전자와의 시너지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그때부터 LG전자 관계자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공장건설과 비슷한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평택에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의 항구인 평택항을 가진 것도 장점으로 강조했다.김선기 시장이 공직에 들어서기 전 호남정유에 몸 담았던 인연도 일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적극적인 평택시의 구애에 LG전자도 점차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LG전자가 호의를 보이자, 본사에 찾아가 비밀리에 MOU부터 체결했다. 유기옥 기업정책과장은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다”며 “상대방이 어느 정도 결심이 썼다는 걸 알고는 일단 달려가 서류부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가 지난해 8월 29일이다. 결국 파주시는 LG전자 공장 유치에

서 한발 물러섰고, 같은 해 9월 6일 경기도까지 참석한 가운데 공개적으로 MOU를 체결했다.




490만평이 산업단지로 조성 중이로써 평택은 ‘삼성의 도시’에서 ‘첨단 융복합 산업의 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외에도 현재 평택시에서 조성 중인 산업단지만 6개가 더있다. 이 중 4개가 실시계획 승인까지 받았고, 2개는 사업계획 신청을 한 상태다. 이들 산업단지 조성이 끝나면 평택에는 총 490만평(삼성·LG 포함)의 단지가 생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협력업체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생산시설이 이 곳에 터를 잡게된다. “평택이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김선기 시장의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2016년에는 통합된 미군기지도 안정리에 들어선다. 현재 용산과 동두천 등에 있는 미군 부대의 90%가 이전한다. 평택에 자리를 잡는 미군 6만명에 이른다. 특히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대다수의 복무기간이 2년 이상의 장기 복무자라 가족까지 함께 평택으로 오면 더 많은 인구가 평택으로 유입될 예정이다. 평택시는 미군기지 이전의 직·간접적인 효과를 10조원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2016년에는 미군기지도 들어서평택시는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진행중인 산업단지 조성이 완료되는 2020년 즈음에는 평택시의 인구가 80만명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44만명에서 곱절로 늘어난 수치다. 안산(70만명)이나 부천(80만명) 규모의 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일자리가 늘고, 인구가 늘어나는 자체가 평택시에겐 축복이다. 인구가 늘면 그 만큼의 여가시설이나 복지시설이 생겨나고 서비스 산업이 발달할 것이란 기대가 시민들 사이에서 크다.

물론 곳곳에 걸림돌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개발사업 중 일부는 몇 가지 해결해야 될 과제를 안고 있다. 146만평 규모로 개발되는 브레인시티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민간 시행사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적당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사업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현재 사업성개선안을 만들어 계획서를 재작성 하고 투자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평택호관광단지 사업은 민간개발계획회사가 제출한 제안서가 타당성 부적격 판단을 받아 지연되고 있다. 이에 평택시 측은 “올해 말까지는 이들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만약 추진이 어려울 경우엔 주민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사업이 잘 마무리된다고 해도 몇 가지 문제는 남는다. 파이를 키우고 나면 공정하게 나누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평택의 인구가 80만명이 되면 절반은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다. 자칫 모든 경제효과를 타지 사람들이 누리고, 원주민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상당수의 시민이 마을단위로 터를 잡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10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도 이들과는 무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평택시는 7월 31일 삼성전자와 본계약을 맺을 때, ‘삼성전자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시민들을 위한 신규 일자리창출에 최선을 다할 것’이란 조항을 따로 만들어 넣었다.

급작스러운 도시화로 지역 사회의 붕괴현상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권성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대표는 “시민단체 입장에서도 평택의 변신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형·아우하며 지내던 주민들 사이에 경제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10m 차이로도 어떤 지역은 땅값이 수 천배 오르고 어떤 곳은 버려지는 땅이 될 수 있다”며 “경제적인 득을 얻는 주민과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주민들 사이에 갈등은 대규모 공장이 들어섰던 수원과 탄정 등에서도 겪어야 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평택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노리고 몰려드는 투기 세력도 문제다. 또 이들의 투기를 조장하는 부동산 업자들도 있다. 사무실을 얻어 투자를 유인하는 일명 ‘떴다방’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최근 전국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지만 평택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언론에는 평택의 부동산 가격 상승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서울·부산등 전국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 공인중개사는 “삼성전자가 고덕에 들어온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던 2년 전에 많이 올랐고 최근에도 꾸준하게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2년 전에 많이 올라서 지금은 큰 변동은 없다”며 “전국에서 부동산이 하락하는데 여기는 조금이나마 오르니 사람들의 관심이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평택 곳곳에는 ‘서울손님 환영’, ‘투자상담’ 등의 문구를 내건 부동산이 생기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50~60개의 부동산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 공장이 착공에 들어가면 앞으로 더 많은 부동산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부동산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실제 상황보다 부풀려져 알려진 부분이 많다. 평택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종수 한국공인중개사협회대의원은 “이미 오를 곳은 다 올라서 투자하려고 해도 적당한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고덕단지 부근의 땅의 호가는 평당 220만~250만원 수준이고 실거래가는 180만원선에서 형성되어 있다. 그나마도 매물이 잘없다. 시골 땅 치고는 가격이 상당히 오른 탓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는 이 부근의 땅값이 평당 400만원이 넘어가고, 목 좋은 오피스텔 부지는 평당 3000만원이 넘어가는 곳도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이종수 대의원은“언론에서 난리를 치는 통에 땅 주인들이 ‘250만원은 받아야 된다’며 내 놓지만 거래되는 땅의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3000만원짜리 땅에 대해선, “실제 그 가격에 나온 매물이 있긴 하지만 누가 사려고 하겠냐”며 반문했다.


부동산 투기 세력 몰려땅 거래 단위도 큰 편이다. 지제동 근처의 한부동산 관계자는 “대부분 시골 논 밭이다 보니 최소 400~500평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대강 평당 200만원만 잡아도 10억원이 넘는다”며 “타 지역에서야 시골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2억~3억 들고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택역 근처에 한 아파트(14평 기준)의 경우 2년 전 7000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7800만원까지 거래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기도와 본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100만원 정도가 추가로 올랐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하루 아침에 1000만원이 올랐다’는 등 루머가 돌고 있다. “부동산 문 앞에 내 놓은 가격을 보고 실제 자신의 집 값을 그 정도로 생각한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택은 지금 대변혁기를 맞았다. 김선기평택시장은 “평택을 가족이 살기 좋은 도시,배움이 있는 도시, 풍요롭고 안전하며 농촌과 공존하는 도시로 조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시민들은 그런 청사진이 낯설다. ‘삼성도 오고 LG도 오면서 도시가발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뿐, 그 이후의 그림은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했다. 삼성전자 고덕단지에서는 9월 중순이면 첫 삽을 뜬다. 120만평의 거대한 땅에 펜스를 설치하는 것이 대장정의 시작이다. 평택시 이윤재 공보담당자는 “펜스를 설치하는 데만 수백명의 인부가 달라붙어 두세달을 작업해야한다”며 “그때쯤이면 도시가 북적거리며 시민들도 실감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조용하던 평택이 들썩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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