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우 마루한 회장] 돈 갖고 저승가나 돕는데 아낌없이 쓰렵니다
[한창우 마루한 회장] 돈 갖고 저승가나 돕는데 아낌없이 쓰렵니다

한창우 마루한 회장이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다. 가난한 소작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16살에 밀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밥 세끼를 챙겨 먹는 게 호강이던 시절이다.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50년 후 그는 일본의 빠찡꼬 대부가 됐다. 마루한은 250여 개 점포에 1만5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연간 벌어들인 돈이 30조원에 이른다. 그는 올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일본 억만장자 11위에 올랐다.세계적인 갑부가 됐을 땐 부모는 세상에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성공한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게 한(恨)스러울 뿐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돌에 새겨 부모의 묘소 곁에 세웠다.
그가 8월8일 가족과 함께 고향 사천시를 방문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다. 2010년 그는 사재 60억원을 털어 고향에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을 만들었다.지난해부터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했다. 그에겐 재단이 하나 더 있다. 1990년에 사고로 잃은 장남의 이름을 딴 한철문화재단(현 한창우·철문화재단)이다. 개인 돈 3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포브스아시아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심히 기부한 그를 ‘2012 아시아의 기부 영웅’에 선정했다. 기부왕 48명 중 한국인은 손창근씨, 이종환 삼영화학 회장, 가수 하춘화, 야구선수 박찬호가 포함됐다. 포브스코리아는 온 가족을 데리고 고향을 찾은 한 회장과 1박2일간 동행했다.
삼천포까지 종소리 울릴까첫 일정은 정만규 사천 시장과의 약속이었다. 8월8일 오후 12시 김해공항으로 입국한 한 회장은 다시 자동차로 갈아탔다. 둘째 아들인 한유 마루한 사장만 데리고 시청에 들어선 건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나머지 가족은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큰 키에 체격이 좋은 한 회장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오랜 시간 이동한 탓에 얼굴에 주름이 짙어졌다. 피곤한 기색을 빼곤 팔십이 넘은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강건해 보였다.
그가 도착하자 정 시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사천시는 내년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다. ‘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지 600년 되는 해다. 기념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시민으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날 한 회장은 사천 6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됐다. 정 시장은 “기념 상징물로 시청 앞 마당에 시민의 종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들려줬다. 한 회장은 “시청보다는 삼천포 망산공원이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한 회장은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사천시로 통합됐음에도 여전히 삼천포 지명을 고집한다.정 시장은 옛 사천군과 삼천포시 중간에 들어선 사천시청이 사천의 중심인 데다 공원은 관리에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했다. 묵묵히 얘기를 듣던 한 회장이 “그런데 여기서 종이 울리면 삼천포까지 들릴까요?”라고 묻는다. 그의 머릿속엔 태어난 고향 삼천포 뿐인 것 같았다.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해사천시장과 만남 후에 한 회장은 잠시 남일대 엘리너스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6시 무렵 따가운 볕이 조금 누그러지자 호텔 로비가 북적였다. 한 회장 가족과 친척들이 모였다. 세 대의 차로 나눠서 출발했다. 차가 바닷길을 따라가다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그러더니 한 회장의 차가 산 속으로 사라졌다. 동네 사람이 아니면 찾아가기 어려운 산 속에 도로가 나 있었다. 길 폭도 좁아 차 한대씩 만 올라갈 수 있다. 산 정상에 이르자 붉은 노을을 머금은 삼천포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한 회장이 경치에 반해 부모의 산소를 옮겨온 곳이다.
간단히 싸온 과일과 술을 올린 후 식구들이 일렬로 서서 절을 올렸다. 한 회장은 세 아들이 차례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술을 올리고 인사 드리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는 속으로 “얘들다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참 후에 들려줬다.“셋째는 출장이 있어서 못 왔어요. 아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쭉 일본에서 자랐어요. 국적도 일본이고요. 하지만 세계 어디에 살든지 뿌리는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삼천포에 올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뵙지요. 그때마다 아이들을 꼭 데리고 옵니다.”
이 날은 동생 한창도씨도 함께했다. 몸이 불편한 동생은 10년 만에 부모님을 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에겐 형 한창우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는 “형은 백두산은 아니어도 한라산 정상까지는 오른 거 같다”며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산소 다음으로 찾은 곳은 조카 한지흔씨가 운영하는 코오롱스포츠 매장이다. 그는 창도씨의 장남으로 실질적인 한씨 가문의 장손이다. 지흔씨는 “큰아버지는 사천에 오면 으레 매장을 방문한다”고 들려줬다.
“매장을 한번 쭉 둘러보고 조언을 해주세요. 매장 디스플레이도 꼼꼼하게 챙기시고요. 빈틈이 없으세요. 어렸을 땐 큰아버지에게 많이 혼났어요(웃음). 생각해보면 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100원, 200원 벌어서 10원 쓸 생각하지 말고 1000원,2000원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시더군요.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도전하라고요.”

아들과 자신의 ‘꿈’ 이뤄준 기부다음 날 오전 10시반 호텔 1층 비즈니스 룸에서 한 회장을 다시 만났다. 한국 오기 전에 미리 잡아둔 인터뷰 시간이었다. 사실 그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유쾌한 사람이다.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이야기의 절반은 호탕한 웃음이다. 유리창 너머로 그가 밀항선을 탔던 코끼리 바위가 보였다. “삼천포 생선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습니다. 하하하. 한국의 가장 남쪽 바다인 이곳은 전통적인 어촌 마을이었어요. 옛날엔 고기 말곤 먹을 게 없었지요. 아버지는 아주 가난한 소작농이었고요. 어머니가 밤새 치마저고리를 바느질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한 회장은 공부를 잘 했다. 초등학교 내내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졸업식 날엔 일본 천황의 이름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은 학생은 다니고 싶은 중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었다. 문제는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학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듣고 삼천포에서 정미업으로 성공한 손경섭씨가 그의 부모를 찾아왔다. “그 분이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똑똑한 아이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학비를 마련해 주셨죠. 덕분에 지역 명문인 구제중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빠찡꼬 기업으로 성공한 한 회장은 수소문해서 은인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손 씨는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 그때부터 한 회장은 자신이 받은 고마움을 다음 사람에게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10년 고향 삼천포에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이 설립 된 배경이다. 더불어삼천포 교육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학습 기자재, 학술연구비 보조 사업 등에 재단기금을 사용한다.그가 장학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큰 아들 한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삶에 가장 큰 시련을 준 사건이 그 아들을 잃었을 때다. 키 180cm에 유도 초단이었던 한철은 총명한데다 리더십이 뛰어나 한 회장의 기대가 컸다. 후계자로 점 찍었던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홈스테이를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 회장은 2년 동안 슬픔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쓴 문집 ‘내가 지역의원이 되는 꿈’을 발견했다.
“읽다 보니 미네야마에 공공 야구장을 세우고 싶은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대신 이뤄주고 싶은 마음에 10억원을 미네야마에 기부했습니다. 당시엔 사업이 어려웠을 때라 10억원은 무척 큰 돈이었어요. 하지만 액수보다 수십 배 값진 일이었어요. 실제로 96년 철이가 꿈꿨던 야구장이 완성됐습니다.” 한 회장은 90년엔 개인 돈 30억원을 내서 아들의 이름딴 한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일본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리는 일을 했다.

돈 버는 건 기술, 쓰는 건 예술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끝나자 점심 무렵이 됐다. 한 회장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호텔 1층 식당에서 기자가 새우볶음밥을 시키자 한 회장은 짬뽕를 주문했다. “볶음밥하고 짬뽕하고 같이 먹게 반반으로 나눠 주세요.” 식사를 하면서 화제로 떠오른 건 한 회장의 넷째 아들이었다. “글쎄 오전 10시에 넷째가 택시를 불러 부산을 갔더라고요. 아내 줄 선물을 산다고 면세점을 간다고 하더군요. 왕복 네 시간은 걸리니 택시비가 15만원은 나올 겁니다. 그 돈을 주면서까지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부할 땐 흔쾌히 수십억원 씩 내더니 왜 그러시냐”고 묻자 그는 “기부하는 돈은 아깝지 않은데 허투루 쓰는 돈은 낭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돈은 가치 있게 쓸 줄 알아야 해요. 돈 버는 건 기술이지만 쓰는 건 예술이지요. 좋은 예술이 영원히 남듯 돈을 좋은 데 사용하면 그 돈의 가치는 계속 남게 됩니다. 돈 갖고 저승 갈 순 없잖아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곳에 아낌없이 쓰렵니다.”오후 4시 호텔 1층 연회장에서 열린 장학금 수여식엔 재단 관계자를 비롯해 학생과 학부모 200여명이 모였다.초·중·고등학교 학생 47명에게 모두 690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지난해 2월엔 53명 학생에게 5400만원이 수여됐다. 한 회장은 이날 학생들에게 “삼천포의 유능한 인재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보다 열심히 살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공부만 잘하기 보단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세요. 요즘 눈을 감으면 삼천포 골목 곳곳을 누비며 친구들과 뛰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부디 여러분이 성공해서 아름다운 고향 삼천포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둘째 아들인 한유 마루한 사장이 맡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에서 부모님 이름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나 회사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며 “앞으로 아버지의 뜻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장학금 수여식이 끝난 후 축하공연과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장학금을 받은 조혜운 한국농수산대 학생은 “한창우 회장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 동안은 저만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역경을 딛고 일본에서 성공한 얘기를 듣고 보니 힘이 되고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꼭 성공해서 한창우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습니다.”한 회장은 요즘 삶을 조금씩 되돌아보고 있다. “당장 내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내년에 시민의 종이 완공되는 걸 볼 수 있으려나. 혹시나 죽거든 뼈 가루를 종 만들때 조금만 넣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종소리가 삼천포까지 울려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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