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후원 70%, 3개월 전에 예약해야
기업 후원 70%,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국씨티은행 임직원 100여 명은 매년 여름,두 차례에 걸쳐 ‘해비타트 집 짓기 봉사활동’에 나선다. 올해로 15년째다.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일하기 일쑤지만 참가한 직원들은 운 좋게 추첨으로 선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해외여행보다 값진 여름휴가’라는입속문이 퍼질만큼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한국씨티은행은 1998년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해비타트와 파트너십을 맺은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해비타트 활동에 10회 넘게 참여한 권오상 명동중앙지점장은 “내가 작업을 했던 해비타트 주택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내가 흘린 땀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서 “이런 점이 해비타트 활동에 애착을 갖고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해비타트 활동은 요즘 소위 ‘사회공헌 활동 좀 한다’ 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인기다. 5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화~토요일에 진행하는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전에 사전 예약이 필요할 정도다. 7월 초 해비타트 봉사활동에 참가한 한 기업관계자는 “올해 초에 신청을 하고 기다렸다”며 “11월 봉사활동에도 참여할 계획인데 지금 신청하면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해비타트는 ‘모든 사람들이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전세계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국제 비정부기구(NGO)다.
해비타트는 1976년 미국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후 현재 세계 95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비타트가 짓는 집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의 땀으로 지어지고, 해비타트에 입주할 가정도 집이 완성될 때까지 현장에서 공평하게 땀을 흘려야 한다. 입주 후에는 건축비를 15년 이상 장기간 무이자로 상환하고 이 비용은 또 다른 해비타트 주택을 짓는데 보탠다.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 지어진 집은 50만 채가 넘고, 250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집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국내에는 1992년에 도입됐지만 2002년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 부부가 참가한 지미카터특별건축사업(JCWP)이 한국에서 개최되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외서는 개인 후원 비중 커
기업후원으로 이뤄지고, 한해 참가하는 기업만 100여 곳에 달한다. 올해는 그 수가 더 늘어 상반기에만 123개 기업이 참가했다. 신예은 한국해비타트 협력개발본부 과장은“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해외 해비타트 활동은 개인 후원 비중이 높은 편”이라면서“기업 단위로 봉사를 왔던 직원 가운데서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개인 봉사자 자격으로 다시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빙그레가 해비타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2001년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이 장남과 함께 해비타트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김 회장은 일반인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이후 직원들 사이에서 동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이듬해인 2002년부터 지속적인 후원을 해오고 있다.경북 경산과 강원 강릉 등지에서 주로 활동하던 빙그레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로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다. 당시 빙그레 측이 4만2000달러를 들여 몽골에 지은 현대식 주택 11채는 아직까지도 현지인들이‘코리안 타운’으로 부를 만큼 의미가 깊다.
가장 만족도 높은 봉사활동최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경향은 임직원,고객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돈만 주고 끝나는 후원이 아닌 직접땀 흘리고 체험하는 봉사를 선호하는 것이다. 라파즈한라시멘트는 국내 해비타트 건축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시멘트 전량을 매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2000년부터 올해까지 임직원과 가족,협력업체 임직원들, 신입사원 등의 자원봉사자가 매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10년 넘게 이어온 해비타트 활동은 이제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내문화로 정착됐다. 특히 신입직원의 경우 기업문화를 체험하는 필수코스로 해비타트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여기에 임직원 자녀의 방학과 휴가 시즌이 시작되는 7월 하반기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춘천 해비타트 현장에 참여한 김함래 라파즈한라시멘트 수출팀 부장은 “그동안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해비타트 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한층 가까워진 것 같다”면서 “내년에도 아들과 함께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기가 많다고 해서 결코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봉사자들은 참가 기간 동안 전체 공정의 1~2%만을 소화하지만 결국 집 한채를 짓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작업은 주로 목구조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 외부마감 사이딩, 아스팔트 슁글 마감작업, 내부단열재와 석고보드 부착 등으로 나뉜다. 단계별로 진행되는 일이라 봉사활동을 경험이 많은 참가자는 본인이 원하는 작업을 선택해 참여하기도 한다.2006년부터 매년 참가하고 있는 대한주택보증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해비타트 활동이 가장 힘든 봉사활동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만족도는 그 어느 활동보다 높다.
대한주택보증 봉사단 관계자는 “6월 실시한 사회공헌 관련 내부 설문조사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봉사활동으로 해비타트 건축 봉사활동이 꼽혔다”면서 “힘든 일로 알려져 있어 의외의 결과였지만, 직접 건축현장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봉사활동을 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다, 힘든 만큼 뿌듯함은 배가 되었다고 적어낸 직원들의 의견을 보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한국해비타트 사무국 관계자는 “봉사 활동을 경험한 후 다시 참여하는 비율이 70%이상”이라면서 “대부분의 봉사자가 봉사하는 그 순간은 힘들어도 하고 나면 다시 오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가 도움을 주러 왔다가 오히려 무언가 얻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해비타트 참여율이 높아지는 요인”이라면서 “직급을 막론하고 함께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서 단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 기업에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장 건축팀장이 말하는 ‘회사 유형별 CEO 봉사활동 방식’
직원보다 일 더 많이 하는 CEO 많아한국해비타트 춘천지회에서 현장 감독을 맡고 있는 최성열 건축팀장은 10년째 해비타트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못질하는 소리만 들어도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자부할 만큼 해비타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10년간 태백·화성·양평·춘천지회에서 일하며 그가 만난 최고경영자(CEO)만 해도 수십 여명. 회사 유형별로 CEO들이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그의 말을 빌어 회사 유형별 CEO 봉사활동 방식을 알아봤다.
◇IT·제조업 CEO일의 능률을 최우선시한다.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니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정해진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업무량을 끝내고 '더 할 일 없느냐'고 다그치기 일쑤다. 일이 일찍 끝나면 없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할 만큼 열정이 넘친다. 너무 열심히 하는 탓에 종종 도구가 망가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사비를 들여서라도 사놓고, 다음 봉사자를 위해 두고 간다. 직원들보다 일을 많이 하고 가는 CEO가 많다.
◇금융권 CEO망치질은 서툴러도 자로 재고, 자르는 일처럼 세심함을 요하는 일에 뛰어난 편이다. 일은 잘 못해도 무조건 열심히 하고 보는 유형의 CEO가 많다. 같이 온 직원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열심이다. 금융계에는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CEO가 많아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를 요한다.
◇건설업계 CEOCEO가 나서서 현장을 진두 지휘한다. 사장이 지시하고 직원은 지시에 따라 일하니 현장 감독이 나설 일도 별로 없다. 업무 특성상 현장 일이 익숙하다 보니 일을 가장 잘한다. 일에 능숙한 만큼 현장 분위기도 좋다.CEO뿐만 아니라 직원 대부분이 자기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가만히 있는 걸 못 참고, 자투리 시간에도 쉬기보다는 일하는 걸 선호한다.
◇외국계 기업 CEO해외에서 이미 해비타트 활동에 대해 알고 있거나 참여해 본 CEO가 많다. 봉사활동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명확히 파악한다. 일을 하기 전, 철저한 분담을 통해 자기가 맡은 일만 하는 게 특징이다. 남이 잘하든 못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일 자체를 즐기려는 분위기다. 임원과 사원 간에 격차가 느껴지지 않아 행동만으로는 누가 사장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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