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심이 단죄보다 더 많은 죄 치유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성을 갖춰야 인간이다. 동정심은 인간성의 출발점이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데카메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다움은 불행한 사람을 동정하는 데 있다(Human it is to have compassion on the unhappy).”측은지심(惻隱之心)은 하나의 느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도덕이라는 체제를 구성하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이렇게 말했다. “동정심은 모든 도덕의 기초다(Compassion is the basis of all morality).”동정심은 인간성의 시작일뿐만 아니라 인간성이 완성되는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형태의 이해는 웃음과 동정심이다(The highest forms of understanding we can achieve are laughter and human compassion).”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 한 말이다.
동정심은 정의와 충돌할 수 있어발전과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동정심이라는 여정을 이해할 수 있다.“인간이 평화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동정심의 대상을 모든 살아 있는것들에게로 확장해야 한다(Until he extends his circle of compassion to include all living things, man will not himself find peace).” 독일 철학자·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가 한 말이다.‘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동정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를 미국 가톨릭 작가 토머스 머턴(1915~1968)은 이렇게 표현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는 것, 서로가 서로의 일부분이라는 것,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는 게 동정심의 기초다(The whole idea of compassion is based on a keen awareness of the interdependence of all these living beings, which are all part of one another, and all involved in one another).”
토머스 머턴은 불교·도교 등 동양 종교에 대한 이해를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앙에 깊이를 더한 가톨릭 수사다. 머턴의 말은 3세기부터 대승불교가 발전시킨 ‘인드라 망(Indra's net)’의 개념과 밀접하다. ‘인드라의 보석(Indra's jewels)’ ‘인드라의 진주(Indra's pearls)’라고도 불리는 ‘인드라 망’은 우주 만물이 한 몸, 한 생명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개념이다. 인류는 하나라는 인식을 통해 먼 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이라면 육식을 중단하고 생명 파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 또한 가능하다.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인륜과 천륜을 어기는 악행에 대한 처벌 문제는 무한 가속하려는 동정심에 브레이크를 건다. 철저하게 모든 생명을 동정하려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도 동정해야 한다. 동정심이 없는 게 특징인 사이코패스를 동정해야 한다는‘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프랑스 극작가 장 아누이(1910~1987)은 무차별적인 ‘묻지마 동정심’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아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 전체를 위해 울 수는 없다. 인간의 능력 밖이다. 선택해야 한다(One cannot weep for the entire world. It is beyond human strength. One must choose).”저니어스라는 필명으로 18세기에 활동한 한 영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독한 범법자를 동정하는 것은 사실상, 법을 지키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에 대한 잔혹행위다(Compassion to an offender who has grossly violated the laws is, in effect, a cruelty to the peaceable subject who has observed them). 동정심은 정의와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 언론인 러시 림보는 이렇게 말했다. “동정심으로 정의를 대체할 수 없다(Compassion is no substitute for justice).”
동정심도 과유불급이다. 조건 없는 동정심을 제한하는 것이 또 있다. 동정심 대상의 마음과 입장이다. 동정심은 동정심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하다는 것은 불운의 반에 불과하다. 비참함을 완성하는 것은 동정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Tobe unhappy is only half the misfortune. to be pitied is misery complete).”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동정심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를 빌미로 자신의 동정심을 발전시키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동정심은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도 중요하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동정심을 발휘하라.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동정심을 발휘하라(If you want others to be happy,practice compassion. If you want to be happy, practice compassion).”
동정심은 너와 나의 행복 비결달라이라마는 이런 말도 했다. “동정심이 우리 시대의 급진주의다(Compassion is the radicalism of our time).”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꾀하는 것은 주로 이념이었다. 이념의 중요성이 엷어진 지금, 동정심은 이념이나 종교를 초월한 긍정적인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는 게 달라이라마의 주장이다.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엄격한 법의 집행도 중요하지만 동정심으로 충만한 사회가 범죄 없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관점도 있다. “동정심이 단죄보다 더많은 죄를 치유한다(Compassion will cure more sins than condemnation).” 미국 회중교회 목사 헨리 워드 비처(1813~1887)가 한 말이다.
유대 속담에 따르면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미치게 된다(He who feels no compassion will become insane).” 동정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다. 동정심이 약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작가 어슐러 K. 르귄에 따르면 상상력을 발휘하면 된다. 르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각, 동정심, 희망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상상력이다(It is above all by the imagination that we achieve perception, and compassion, and hope).” 르윈의 말은 상상력은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것을 지각하게 해 주고,지각하게 되면 동정심을 갖게 되고, 동정심을 발휘하면 우리 희망의 실현이 더 가깝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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