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roversy]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트루 라이즈’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한 일 중에 작고 사소한 건 없었다. 그가 키운 근육과 그가 출연한 영화, 그리고 그가 벌인 혼외정사(extramarital affairs)를 생각해 보라. 슈워제네거는 오는 10월 1일 방대한 자서전 ‘토털 리콜(Total Recall: My Unbelievably True Life Story)의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그 전날 밤엔 ‘식스티 미니츠’에 출연할 예정이다(책의 상세한 내용은 그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요즘 그는 “다시 오겠다(I’ll be back, 영화 ‘터미네이터’ 중 슈워제네거의 대사로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말이다)”가 아니라 “내가 돌아왔다(I’m back)”고 외치는 듯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옛 친구 중 그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다. 슈워제네거는 오랫동안 자신의 집 가정부로 일해 오던 여성과의 사이에 십대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이혼할 위기에 처했다. 이 일은 그에게 좀
처럼 회복하기 힘든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It has dealt him a body blow no amount of hours in the gym can fix). 그의 오랜 친구 한명은 이렇게 말했다. “아놀드는 자신의 저택에 혼자 남겨졌다.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지난날의 영광을 말해주는 사진과 기념품들뿐이다.”
하지만 마케팅과 홍보의 귀재인 슈워제네거는 정치운동처럼 치밀한 전략으로(as calibrated as any political campaign) 대대적인 자서전 홍보에 나섰다. 몇 주 전 그는 점심식사를 함께하자는 나의 청을 받아들였다. 단 그의 ‘식스티 미니츠’ 인터뷰가 방영되기 전엔 그가 한 말 중 어떤 부분도 직접적으로 인용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슈워제네거의 자서전을 읽은 사람들은 내게 “‘토털 리콜’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책에서 혼외정사로 아들을 두었다는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이자마지막으로 털어놓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신의 이름을 배우자에 대한 성적 배신의 상징(a symbol for sexual betrayal)으로 만든 그 스캔들을 자기 방식대로 설명해도 괜찮다고 믿는 듯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실된
인생 이야기(unbelievably true life story)’를 털어놔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슈워제네거는 얼마 전 할리우드로 돌아갔다. 그는 올 여름 65세의 나이로 ‘익스펜더블 2’에 카메오로 출연해 늙은 액션 배우 역을 연기했다.그 또래의 배우들은 주연급 캐스팅의 희망을 버린 지 오래지만(His contemporaries have long stopped hoping to land starring roles) 그는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꿈꾼다. 26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켜줬던 부인 슈라이버의 도움도 없이 말이다. 슈라이버는 그의 외도와 관련된 수많은 소문 속에서도 자신이 더는 무시하지 못할 명백한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until she could no longer ignore the obvious) 꿋꿋이 남편 곁을 지켰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내가 만난 슈라이버의 친구들과 케네디가 사람들[슈라이버는 존 F 케네디(JFK) 전 미 대통령의 조카다]은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는 아놀드가 가정부와의 외도 사실을 털어놓은 다음 그와 별거에 들어간 뒤에도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아놀드에게 함께 테라피를 받자고 제안했다.” 슈라이버의 측근 한 명은 “아놀드는 테라피를 딱 한번 받은 뒤론 다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결혼생활 유지 여부가 달린 문제인데도 말이다(despite the fact that it would cost him his marriage).”
슈라이버는 ‘토털 리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현실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JFK의 누이인 유니스와 사전트 슈라이버의 딸인 마리아는 체면과 품위를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슈워제네거가 왜 지금 이런 책을 쓰고 가정부와의 외도 이야기를 털어놓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 폭로는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네 자녀와 그녀의 친지들에게 상처를 줄 뿐인데도 말이다.그녀는 또 슈워제네거가 대중의 주목을 다시 받기 위해서라면(to climb back into the public spotlight) 고통스러운 개인사를 포함해 무엇이든 이용하려 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슈워제네거는 슈라이버에게 이 책의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만난 슈라이버의 가족 중 한명에 따르면 슈워제네거에게 그런 배려를 바라는 것 자체가 지나친 기대일지 모른다.
슈워제네거는 슈라이버가 이혼을 요구하자 화를 내며 “난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자가용 비행기도 있으니 친구들이 날 버리지 않을 것(I have the money, the power, and the plane, and I will have the friends)”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난 슈 워제네거의 전기 ‘팬태스틱(Fantastic: The Life of Arnold Schwarzenegger)’을 쓰던 2004년 이후 그를 만나지 못했다. 베벌리힐스의 카페 로마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는 보디빌딩을 하던 당시나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왜소해 보였다.한때 울퉁불퉁했던 근육들은 사라졌지만(He is devoid of his once-bulging muscles)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his face looks as if a master taxidermist has been at work). 1980년대에는 카페 로마 뒤편의 특별석에서 동료 보디빌더들과 수다를 떠는 그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는 엽궐련을 피우며(smoking a stogie) 전문가 같은 말투로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평했다. 슈워제네거는 지금도 카페 로마의 단골이다.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염색한 뒤 그곳에 들르곤 한다. 하지만 예전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슈워제네거의 오랜 친구 한 명에 따르면 스캔들이 터지고 난뒤 이 식당을 찾은 그에게 한 여성이 “돼지(pig)”라고 소리쳤다. 슈워제네거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 그에 대한 혐오감이 확산됐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다. 여성들은 부인을 그렇게 야비한 방식으로(in such a spectacularly sordid fashion) 배신한 그에게 분노했다.
과테말라 출신의 가정부 밀드레드 바에 나는 슈워제네거가 슈라이버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대부분을 그 집에서 일했다.그 집에 자주 드나들던 손님들은 네 자녀를 둔 이혼녀 바에나가 무뚝뚝하고 땅딸막하며 매력 없는 여자(a dour, chunky,uninviting woman)였다고 기억한다. 남편의 바람기를 걱정하는 부인이 옳다구나 하고 고용할 만한 유형(the sort of employee a wife might shrewdly hire if she were worried her husband had wandering hands)이었다.슈워제네거가 중년의 바에나와 잠을 잔 이유는 조지 맬로리가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이유와 같다. “거기 그녀가 있었기 때문(because she was there)”이다.
슈워제네거는 섹스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 자신이 갖고 싶은 건다 갖고, 만지고 싶은 건 다 만지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간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철부지 소년 같은 유머 감각을 발휘했다. 여자들에게 손을 뻗치면서 끊임없이 농담을 했다(endlessly joshing as his hands move forward).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혐오스러웠겠지만 슈워제네거의 경우에는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정도로 비쳐졌다. 그는 자신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는 그 게임의 흥을 깨는 사람(a spoilsport)으로 여겼다.
슈워제네거와 바에나는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사는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넓은 저택에서 은밀한 관계를 지속했다. 슈워제네거 부부의 네 번째 자녀인 크리스토퍼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바에나는 아들 조셉을 낳았다. 슈라이버는 그 아이가 슈워제네거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바에나의 출산을 축하해줬다. 바에나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돼 슈워제네거와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그녀는 스캔들이 터진 후 영국 잡지 ‘헬로!’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 아이를 가졌을 때 전 남편의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바에나는 전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뒤에도 성관계를 가졌다(she’d had a bon-voyage liaison with her ex-husband)].“하지만 그 애가 태어나자 곧 슈워제네거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자리에 오른 뒤 조셉이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일에 관해 잘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 이 이야기가 알려져 주지사 생활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Fearing that if the story came out it would become the main issue of his governorship) 슈워제네거는 바에나를 가까이 둬 비밀을 발설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부인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슈워제네거는 자서전에서 이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슈라이버의 친구들은 내게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재직한 7년 동안 이들 부부의 관계가 꾸준히 나빠졌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슈워제네거는 권력과 특혜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빠져들었다. 권력중독은 슈라이버가 나서서 조절이 가능한 문제였는지도 모른다(Addiction to power was a problem Maria probably could have handled). 하지만 그녀는 개인적으로 그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뭔가를 감지하기 시작했다.조셉이 태어난 후 처음 몇 년 동안 바에 나는 아들을 슈워제네거의 집에 자주 데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집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초대받았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아들을 데려가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슈워제네거의 가족은 슈라이버가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바에나에게서 조셉 같은 금발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처음 이상하게 여겼던(she first noticed the blond little boy looked like a strange offspring from his dark-complected mother) 때가 그런 파티 중 하나에서였다고 말했다.
슈라이버는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심은 슈워제네거의 친구인 코미디언 톰 아놀드의 농담으로 한층 더증폭됐다. 톰 아놀드는 나중에 하워드 스턴에게 자신이 “어린 조셉이 슈워제네거를 닮았다”는 농담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난 슈워제네거에게 ‘이봐! 저 아이 DNA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 자네를 꼭 닮았어’ 라고 말하곤 했다.” 슈라이버의 가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가 슈워제네거에게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슈워제네거가 주지사직에서 퇴임하기 몇 달 전 슈라이버는 눈앞의 엄연한 현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다(she could not help but see what stood so starkly before her). 이들 부부와 가깝게 지내는 이들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2010년 7월 슈라이버는 남편의 63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실베스터 스탤론, 그리고 슈워제네거의 보디빌더 친구인 스벤-올 토슨과 프랑코 콜룸부를 비롯해 약 60명의 손님이 참석했다.
당시 손님 중 한 명은 슈워제네거와 슈라이버가 파티 내내 서로 반대 쪽에 뚝 떨어져있었으며 슈워제네거는 많은 손님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슈워제네거가 퇴임한 다음날인 2011년 1월 4일 슈라이버는 그에게 이 문제를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 슈워제네거의 측근들에 따르면 마침내 그는 조셉 바에나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부인에게 사과했다. 슈워제네거의 설명을 따르자면 그 날 두 사람의 대화는 감정보다 예의를 중시한 교양 있는 대화였다(it was a civilized encounter, where manners trumped feelings). 하지만 슈라이버의 분노를 몸소 느꼈던 사람들은 그 분노의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고 말한다.
이 일이 있은 뒤 슈라이버는 바에나를 찾아갔다. 바에나는 ‘헬로!’와 가진 인터뷰에서 TV 드라마 같은 이야기(a tale that couldhave come out of a telenovela)를 들려줬다.슈라이버가 사실 여부를 따져 묻자 바에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슈라이버는 그녀에게 일어서라고 말했고 두 여인은 서로 끌어안았다. 바에나는 “아놀드의 잘못이 아니에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잖아요(it takes two)”라고 말했다.그 후 몇 달 동안 슈워제네거와 슈라이버의 행동은 두 사람의 판이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줬다. 가족과 친구들은 슈라이버가 남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전히 사랑하며 결혼생활에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케네디가와 슈라이버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녀는 가문의 체면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고(never to bring shame to the family) 교육받았다.게다가 그녀는 상황 판단이 빠른 정치적인 여성(a shrewd political woman)이다.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듯이 슈라이버는 기꺼이 남편의 곁을 지킬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And beyond anything she needed this matter to stay private).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그녀와는 딴판이었다. 그는 고통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일을 피했다. 그는 왜 슈라이버가 자신을 용서하고 아무일 없었던 듯 살아갈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또 가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슈라이버가 시험별거(a trial separation)를 원한다고 밝히고 슈워제네거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을 때 그는 거절했다. 그 집은 자신의 소유이니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슈라이버는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과 한집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 집의 모든 침대와 소파에서 남편의 외도 흔적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남편의 사진과 기념품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녀는 호텔로 이사했고 자녀들이 그녀를 보러 호텔로 왔다. 슈라이버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고, 결혼생활까지 파국을 맞았다.
2011년 5월 초 이들 부부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별거 사실을 발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혼을 고려하는지 자세한 내용은 둘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 반이 지난 뒤 타임스는 “슈워제네거가 오랫동안 집안의 가정부로 일하던 여성과 십여 년 전 아들을 낳은 사실을 슈라이버가 안 뒤 이들 부부가 별거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실었다. 슈워제네거는 자신의 측근들에게 슈라이버의 남자 형제들이 누이에게 망신을 줘서 자신과 아주 헤어지게 하려고 이이야기를 새나가게 했다(leaked the story to shame their sister into leaving him for good)고 말했다. 하지만 슈라이버의 남자 형제들은 그 기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누이에게 슈워제네거와의 이혼을 종용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녀 스스로 앞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그녀를 응원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측근들에 따르면 슈워제네거가 테라피를 딱 한번 받고 그만두자 슈라이버는 이혼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가족 중 한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슈워제네거가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것이다(If he had character, he would have done what had to be done). 테라피를 계속 받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직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마리아와 다시 합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남편을 정말 사랑했다. 남편에게 돌아갈 근거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근거를 마련해 줄 능력이 없었다.” 이들 부부의 이혼소송은 현재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슈워제네거의 한 친구에 따르면 그는 선밸리의 한 이웃에게 평소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주는 말을 했다. “마리아와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일이 잘못 된다면 스무 살짜리 애인을 얻겠다.”슈워제네거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이제 그의 곁엔 할리우드 배우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로 자신을 이끌어준 부인이 없다. 슈워제네거를 잘 아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감정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자녀 사랑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큰 아들 패트릭은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이름을 ‘패트릭 슈라이버’라고 올리기시작했다. 또 가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두딸은 아버지가 자신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하려 들지 않을까 걱정한다(fear that he wants to use them as part of his campaign to rehabilitate his image). 슈워제네거는 여전히 자녀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슈워제네거는 ‘식스티 미니츠’에서 그의 자녀들을 인터뷰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동기를 의심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슈워제네거는 인생 문제를 의논할 만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친구 여러 명에게 등을 돌렸고 지금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듯하다. 물론 영화배우로서 그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몇 주 전 토요일 슈워제네거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샌타모니카의 어두운 거리를 달리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지금은 슈워제네거를 만나지 않는 그의오랜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지금은 그 점이 더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자신도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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