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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곧 돈이다

가족이 곧 돈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를 거쳤다. 이 사이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세계적 인 기업이 나왔지만 청년실업과 중산층 붕괴 등으로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에 정신적 불안함까지 겹치면서 ‘결국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때마침 주5일 근무제와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됐다. 가족과 보낼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 중심의 여가 활동이 증가할 여지가 커졌다. 불황에 지갑은 얇아졌지만 가족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 법. 쇼핑·숙박·패션·금융·통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에서 가족을 연결시키는 상품과 마케팅 활동이 늘고 있다.



1~2년 사이 들어선 도심의 대형 복합쇼핑몰이 가족 비즈니스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보다 다양하고 편리한 시설을 갖춰 가족 단위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서울 마포에 사는 워킹맘 김윤지(38)씨는 요즘 주말이면 남편·아이들과 함께 서울의 ‘몰 투어’에 나선다. 엄마는 쇼핑하고 아이들은 키즈 파크에 간다. 그 사이 아빠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신도림에 자리한 디큐브시티의 정혜원 타운매니지먼트실 실장은 “방문객 중 가족 고객 비율은 평일에 40~50%, 주말엔 60~7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벤트 참여도에서도 이런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몰 안의 각 층에 위치한 VP 디스플레이 공간에서 펼쳐지는 포토존 콘테스트 이벤트의 응모 현황을 살펴보면 가족 단위 참여 작품이 60%가 넘는다. 가을 문화센터강좌의 등록인원 중 45.6%가 엄마와 아기가 함께 참여하는 ‘가족 수강생’이다


도심 대형 쇼핑몰에는 ‘가족 화장실’도 등장디큐브시티는 가족 손님을 위해 ‘가족 화장실’도 설치했다. 4개 층의 남녀 화장실 사이에 있는 가족 화장실은 부모와 아이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인 변기와 아기 변기를 함께 배치했다. 남자 화장실에 아이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 베이비 시팅룸을 만든 것도 요즘 가족 세태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젊은 부부라면 대부분 아빠가 아이를 앉고 다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강서구 방화동에‘가족 쇼핑몰’을 표방하며 오픈한 롯데몰 김포공항도 ‘가족 동반 화장실’을 마련했다. 8월 30일 여의도에 문을 연 IFC몰도 고급스러운 베이비 시팅룸 10곳을 여자 화장실 마련하고 유아휴게실도 별도로 구성했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지출을 주도하게 마련인 엄마를 위한 쇼핑공간은 백화점 못지 않게 꾸몄다. 또 가족의 옷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SPA브랜드(패스트 패션)를 집중 배치했다. 가족 고객이 선호하는 유니클로, 갭, 자라, H&M 등이 눈에 잘 띠는 곳에 있다. 여성과 남성, 키즈로 구분돼 쇼핑도 ‘가족의 놀이’처럼 만들었다. 롯데몰 김포공항은 식음료 매장에 키즈존을 만들었다. 롯데몰 김포공항의 임형욱 홍보마케팅팀장은 “영유아를 동반하는 가족 단위 고객은 멀리 여행을 떠나기 어렵다 보니 유모차를 끌고 쇼핑몰로 몰리고 있다”며 “복합쇼핑몰은 대부분 넓고 편리한 공간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쇼핑과 휴식을 즐기는 가족 나들이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도 가족 고객을 잡으려고 힘을 쏟고 있다. 가족 중심의 소비 패턴에 맞춘 금융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삼성카드는 가족 나들이가 많은 주말에 음식점이나 주유소, 백화점에서 삼성카드7로 결제하면 평일보다 최대 6배까지 포인트를 더 적립해준다.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가족이 많으면 금리를 더 얹어준다. 외환은행은 적금상품명을 가족이 직접 만들고 가족과 함께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주는 적금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현재 고객인 어른뿐만 아니라 미래 고객인 아이까지 확보할 수 있어 가족 전체를 하나의 고객으로 잡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기존 프라이빗뱅킹 서비스를 가족 또는 가문 단위로 확장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도 잇따라 내고 있다. 삼성생명은 2

월에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열었다. 지금까지 초부유층(VVIP) 100여명이 방문했다. 단순한 투자 자문을 넘어 상속이나 가업 승계까지 이른바 ‘가문 관리’를 한다. 최경락 삼성패밀리오피스 부장은 “부모의 가업이나 부를 물려주는 사례가 많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며 “내년엔 서울 강북권,2014년엔 부산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과 신영증권도 가문 관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과거 법률이나 세무, 상속 등 자문 컨설팅 중심에서 컨시어지(개인비서) 서비스는 물론 자녀 결혼문제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VVIP인 고객인 김성준(65)씨는 요즘 혼기가 찬 아들의 배필을찾는 게 가장 큰 관심사다. 김씨는 증권사에 도움을 청했고 증권사는 VVIP 고객 자녀 중 김씨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대상자를 찾아 맞선 자리를 마련해줬다.비즈니스맨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특급 호텔도 가족 고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호텔도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인식이 달라지면서 가족 단위 고객을 잡기 위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객실 크기다. 콘도처럼 객실 하나만 빌려도 4인 가족이 편안히 묵을 수 있게 공간을 넓혔다.

4월에 객실 개선 공사를 마친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은 가족 단위 고객 대상의 ‘디럭스 킹&싱글베드룸(패밀리룸)’을 선보였다. 더블침대 아니면 트윈침대가 대부분인 일반 특급 호텔의 객실과 달리 가족 단위 고객의 수요를 반영했다. 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을 위해 하나의 객실에 더블침대와 싱글침대를 함께 배치했다.아이를 위해 따로 침대를 요구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아이들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돌출형 가구도 없앴다. 박인선 앰배서더 호텔 홍보실장은 “어린 자녀를 둔 신세대 부부의 눈높이에 맞춰 객실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특급 호텔에 만화 캐릭터 활용한 객실 늘어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활용해 가족 단위 고객을 끄는 곳도 있다. 서울 잠실의 롯데호텔월드의 ‘캐릭터 룸’은 가족형 객실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과 방학 시즌에 이용하려면 6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은 캐릭터 상품 뽀로로를 활용해 가족 단위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 호텔 관계자는 “어린 자녀와 함께 방문한 가족 단위 투숙객의 80%가 디큐브시티 백화점에 위치한 ‘뽀로로 파크’에 들른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해 12월부터 ‘뽀로로와 놀자! 패키지’를 마련했다”며 “4개월 만에 패키지로 뽀로로 파크를 방문하는 고객이 80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2006년부터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완구회사 마텔과 손잡고 ‘바비 컨셉트 룸’을 내놓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객실을 이용할 수 있는 ‘포에버 바비 패키지’의 경우 연말까지 주말 예약율이 90%가 넘는다. 가족형 리조트호텔인 롯데호텔제주는 지난해 5월 일본 최대의 캐릭터 회사인 산리오사와 손을 잡고특급호텔 객실에 국내 최초로 ‘헬로키티 캐릭터 룸’을 만들었다. 호텔본관 4층의 총 11개 객실과 복도, 모든 비품을 헬로키티 캐릭터로 꾸몄다.

가족 단위 이용객이 늘면서 호텔의 서비스 진화는 객실을 벗어난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은 호텔 로비에 키즈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푹신한 쿠션으로 만든 키즈 코너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이곳의 미니 도서관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고, 블록 쌓기 놀이도 할 수 있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도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해 어린이 놀이방을 개방했다. 투숙객은 물론 호텔 레스토랑 이용객도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길 수 있다. 이 호텔은 최근 출산을 앞둔 가족을 위한 ‘디어 마이베이비 패키지’ 상품도 내놓았다. 스위트룸에 묵으며 기저귀를 이용한 3단 다이퍼 케이크(Diaper Cake)와 D.I.Y 오가닉 배냇저고리, 모자 세트 등 아기 용품을 제공받을 수 있어 젊은 부부에게 인기다. 제주신라호텔은 3대가 편하게 묵을 수 있게 온돌 테라스룸을 선보였다.

바닥이 온돌로 되어 있어 노부부는 물론 어린 아이를 둔 투숙객에게 인기다. 호텔 측은 “5월이나 여름 성수기에는 최소 한 두 달 전엔 예약을 해야 원하는 날짜에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야구장과 극장도 불황 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극장가는 올해 사상 최초로 관객 2억명, 매출 2조원 돌파를 노리고 있다. 프로야구도 역대 최소인 419경기 만에 600만 관중을 돌파했다. 레저 업계의 비즈니스 방식도 변했다. 캠핑 열풍에 이러한 변화상이 잘 나타나 있다. 고진헌(41)씨는 올 봄 승합차로 차량을 바꿨다. 400만원 가량을 들여 개조했는데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고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캠핑은 해외에서나 즐기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맘 먹고 실천해보니 가족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오토캠핑뿐만 아니라 커다란 배낭을 메고 중·고생 자녀와 길을 떠나는 ‘백팩커스(backpackers) 아버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관련 업계는 국내 캠핑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시장 규모도 올해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캠핑장 조성사업에 뛰어들고, 캠핑용품 시장은 국내외 브랜드의 격전지가 됐다. 3~4년 새 일어난 변화다.


골프대회 때 ‘키즈존’ 만들어 어린이팬 배려철저히 남성의 영역이었던 공간이 가족의 휴양지로 탈바꿈하는 일도 흔해졌다. 골프장이 대표적이다. 9월 13일부터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 챔피언십 경기가 열린 아일랜드 CC에는 가족 관람객이 유난히 많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학생이 늘어나면서 골프장 측은 키즈존까지 마련해 미래의 고객을 대접했다. 골프가 비즈니스의 수단뿐만 아니라 가족의 여가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가족회원에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골프장도 늘었다. 신원은 본인의 회원권으로 배우자와 자녀 2명에게 회원 혜택을 준다. 정회원의 그린피는 2만4000원, 배우자와 자녀의 그린피는 5만7000원이니 4인 가족이 함께 라운딩 해도 20만원이 채 안 된다.

88, 강남300, 김포시사이드, 뉴스프링빌, 중부 등도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골프장 별로 가족회원을 등록할 때 추가적으로 등록비나 연회비를 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점이 더 많다.낚시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에서 느껴지는 음산하고 칙칙한 분위기 대신 다양한 편의시설을 구비해 가족 휴양지로 변신한 낚시터가 늘었다. 공정태(38)씨는 얼마 전 단골 낚시터를 바꿨다.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공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낚시터의 수상좌대는 냄새가 심하고 화장실 시설도 좋지 않아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깔끔한 분위기 에어컨이나 위성TV 등을 갖춘 가족형 낚시터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족형 낚시터들은 인천 강화도, 강원도 춘천, 충남 예산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데 펜션과 함께 운영하는 복합형 낚시터도 많아졌다. 바다의 경우 경남 통영 일대의 선상낚시가 잘 알려져 있다.


가족 체험 프로그램 - 봉사로 기쁨 나눈다바쁜 일상에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무리해 시간을 내고 가족이 외출을 하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가 부담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가족이라면 여성가족부의 건강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www.familynet.or.kr)를 방문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2004년부터 ‘행복한 가족 만들기’를 목표로 건강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나 품앗이 행사, 자녀교육과 육아와 관련한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전국 138개 센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지역과 시간을 살핀 후 참가 신청을 하면 참여할 수 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환경 캠프, 심리미술치료교실, 아동학대예방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고, 캠프나 농촌체험 행사 같은 일부 행사에 한해서는 참가비를 받지만 2~3만원 수준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센터 이용자 수도 크게 늘었다. 2004년 1만1740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29만645명이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특히 최근에는 가족상담을 신청하는 사람이 많다.

여성가족부 김윤경 사무관은 “가족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있지만 터놓고 이야기 할 만한 마땅한 곳도 없고, 있다고 해도 가격이 비쌌다”며 “돈을 들이지 않고 말 못할 가족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또“센터에서 마련하는 프로그램에 남성 참가자가 늘고 있다”며“과거에 비해 이제는 남성도 가족간의 화합이나 관계를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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