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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달라도 돈 굴리는 철학은 같다

걸어온 길 달라도 돈 굴리는 철학은 같다

하루하루 숫자 전쟁을 치르는 금융가. 전문가들은 코스피 지수 움직임을 주시하고 기업 가치를 돈으로 따진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 그들에겐 서로를 이해하는 동지가 큰 힘이 된다. 운용업계에서 유명한 동갑내기 투강(Two Kang), 강방천(52)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과 강신우(52) 한화자산운용 사장이 그런 사이다.



9월10일 오후 5시 서초동 삼성출판사 사옥 1층 레스토랑 아이모에나디아로 푸른색 포르셰 카이엔 터보S가 들어섰다. 차 뒤엔 자전거 세븐(SEVEN)이 실려있다. 한눈에 자전거 마니아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임을 알수 있다. 십분 전에 미리 도착한 강신우 한화자산운용 사장이 차에서 내리는 강방천 회장을 반갑게 맞았다. 성은물론 나이도 같은 두 사람은 13년째 단짝이다. 집도 가깝다. 강방천 회장이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고, 강신우 사장이 지척인 대림 아크로빌에 산다. 자연스럽게 집 근처에서 자주 만난다.

강방천 회장은 도전을 즐기는 모험가다. 35살에 증권사를 나와 부티크를 차렸다. 외환위기 땐 1억원을 투자해 1년10개월 만에 156억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99년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차렸고 10년 후 자산운용사로 전환했다.반면 강신우 사장은 모범생 스타일이다. 운용업계에선 ‘멜빵바지의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멜빵바지를 즐겨입고, 키는 작지만 20조원 이상을 굴리고 있어서다. 그는 한국 펀드매니저 1세대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8년 옛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한 뒤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세 번이나 국내 최우수 펀드매니저로 뽑혔다. 2005년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9월 한화자산운용 경영을 맡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96년 가을 경기도 여주군 이포CC에서다. 정작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했다. 둘은 웃으며 워낙 골프를 못해서 공만 따라 다녔다”고 했다. 초보 골퍼였던 둘은 그 날 이후 친해졌다.강방천 회장은 99년 투자자문사를 세울 때 강신우 사장에게 “같이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강신우 사장과는 투자 철학이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둘 다 좋은 기업의 가치는 반드시 주가로 연결된다고 봤죠. 가치를 찾는 방법이나 수단은 다를 수 있어요. 정신이 중요하죠. 또 운용사에서 고객의 돈을 굴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갔지요.”

강신우 사장도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그는 “강방천 회장이라면 도전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들려줬다. “업계에서 강 회장은 이미 유명했지요. 금융위기 때 과감히 증권주 우선주를 사들여 큰 돈을 벌었거든요. 여러차례 얘기를 해보니 놀랍게도 자산운용의 정신을 정확히 꿰뚫고 있더라구요. 독립운용사에 대한 꿈도 확실했고요.”

하지만 신생 투자자문사가 자산운용사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동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둘은 술 친구가 됐다. 밤새 마시는 날도 많았다. 그 무렵부터 편하게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다. 우선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다. 강방천 회장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암태면 도창리. 목포에서 배로 25Km 떨어진 암태도다. 3남2녀중 큰 아들로 태어난 강 회장은 항상 어깨가 무거웠다. 염전에서 일하는 부모가 다섯 자녀를 공부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강 회장은 무조건 열심히 했다. 호남 명문고인 목포고에 들어갔다. 당시 목포고는 순천고와 함께 전남의 비평준화 명문고였다. 강 회장은 이후 4년 장학금을 받고 한국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반면 강신우 사장은 서울 토박이로 1남2녀의 장남.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강방천 회장은 “우리 집보다 형편이 좋았던 거 같다”고 말하자 강신우 사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60년대엔 다들 궁핍했잖아. 아버지도 말단 공무원이었고. 형제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공부를 할 수있었지. 서울대에 합격 못하면 부산대에 갈 생각이었어.국립대가 아니면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거든.”


둘 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경영학도와 법학도였던 두 사람이 금융가로 들어선 까닭은 뭘까. 두 사람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금융사에서 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강방천 회장은 대학 때도 열심히 공부했다. 7학기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교 추천으로 시험을 본 곳이 동방증권(현 SK증권)이었다. 그는 “의외로 증권업이 재미있었다”고 들려준다.강방천 회장 얘기에 공감하는 강신우 사장. “막상 법대에 들어와보니 저랑 안 맞았어요. 남들처럼 사법고시에 매달렸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했고요. 88년 봄 도서관에서 한 신문 광고를 보고 고시를 접었어요. 한국투자신탁에서 자본시장 자유화 시대를 맞아 인재를 찾는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문장을 읽은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특히 서체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웃음). 다음날 모집에 응모했고 평생 직업이 됐습니다.”

강방천 회장은 “운명이란 알 수 없다”며 “삶은 짜임새있는 계획이 아닌 우연한 계기로 바뀐다”고 덧붙였다.금융업계에 첫 발을 내디딘 두 사람. 하지만 길은 달랐다. 입사부터 강방천 회장은 증권사, 강신우 사장은 운용사를 택했다. 특히 강방천 회장은 회사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는 “고향이 일제 때 유명한 항일농민운동 암태도 소작쟁의가 열린 곳”이라며 “아무래도 타고난 반골 기질이 있다”고 얘기한다. “첫 직장인 SK증권을 그만두고 6개월 쉬고, 쌍용투자증권 다니다 1년6개월을 집에 있었습니다. 직장에 얽매이는 게 싫었어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컸지요. 쌍용투자증권에서 만난 지인들과 이강파이낸셜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그때가 35살이었습니다.”

강방천 회장은 2008년 그토록 원하던 자산운용사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펀드 직접 판매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자산운용사 중 유일하게 판매사를 거치지 않고 펀드를 팔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고객에게 수익률이 아닌 운용철학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서다.올해는 미국 시장에 차이나펀드를 판매한다. 지난해 7월 첼시인베스트먼트와 합작으로 운용사 ‘AC원에셋매니지먼트’ 를 설립했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해외 현지 투자자문사와 합작해 펀드를 판매한 건 처음이다.

강신우 사장은 조직 생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할 때면 과감했다. 첫 직장인 한국투자신탁은 국내 3대 운용사 중 하나였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다. 96년 강신우 사장은 그곳을 나와 동방페레그린투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의 금융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2005년 최고운영책임자(CIO, 부사장)로 친정인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돌아왔다. 강신우 사장은 또 한번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9월 한화투신운용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이 합병해 한화자산운용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강신우 사장이 초대 CEO가 됐다. 그는 “고객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운용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시스템이 정착된거 같아요. 더 이상 제가 기여할 부분이 없을 것 같아요.신생사인 한화자산운용을 원칙을 지키는 메이저 운용사로 키우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두 사람은 시장을 보는 눈도 비슷하다. 한 명이 국내외 시장 상황을 분석해서 얘기하면 다른 한 명은 한 두 마디를 보태거나 정리하는 식이다. 마치 한 사람 얘기 같다.강신우 사장이 먼저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유동성이 높음에도 돈이 돌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방천 회장이 바로 “부동산에 물려 있는 돈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과거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한 경우 집값이 급락하면서 자산가치가 뚝 떨어지고 있어요. 확실히 부동산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부동산을 좋아했던 수요자들이 공급자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예요. 실제로 주택을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받는 역모기지론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 네트워크·중국에 ‘돈’ 몰린다강신우 사장은 아무래도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강방천 회장은 ‘전환기적 불황’이라고 표현했다. 둘 다 비슷한 얘기다. 세계를 이끌 1등기업이 바뀌고 소비 주체가 달라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 우선 업종 사이클의 변화다. 그 동안 철강·중화학·자동차 등 제조업체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이제 IT산업으로 사이클이 바뀌고 있다. 이미 스마트폰이 급증하면서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있다. 소비자 역시 유럽의 중산층 소비자가 무너지면서 중국의 부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강방천 회장은 “앞으로 중국 소비자와 함께하는 기업과 모바일 환경을 잘 이용하는 기업이 각광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신우 사장은 게임 회사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게임시장이 스마트폰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여기에 모바일 네트워크가 결합되면서 모바일 게임을 찾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습니다.”화제는 두 사람의 관심사인 자전거로 이어졌다. 둘 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끌고 양재천에 나간다.

강방천 회장은 한강변을 따라 미사리로 가거나 분당 율동공원 산책길을 좋아한다. 강신우 사장은 양재천에서 과천길을 즐겨 다닌다. 강방천 회장은 나중에 자전거 박물관을 세우는 게 꿈이다. 그가 “옛날에 시골에서 막걸리통을 배달하던 자전거를 구하고 싶다”고 하자 강신우 사장이 바로 “짐바리 자전거를 얘기하냐”며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은 와인을 기울이며 해가 지도록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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