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마구잡이 인가에 하늘이 비좁다
정부의 마구잡이 인가에 하늘이 비좁다
최근까지 국내 저비용항공(LCC) 시장은 5각 구도였다. 2006년에 제주항공이 취항한 이후 진에어(대한항공 계열),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계열),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이 가세했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데 경쟁자는 더 늘었다. 올 상반기 일본의 유명 LCC인 피치항공에 이어 하반기에는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도 국내 항공시장 진입했다. 업계관계자는 “외국계 LCC의 등장이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쟁 치열한데 경쟁자 더 늘어올 들어 글로벌 LCC가 국내에 진입하면서 관련 업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일본 전일본공수(ANA) 계열의 피치항공은 5월에 오사카와 인천 노선에 취항했다. 이어 10월 28일과 11월 28일에는 일본 ANA와 아시아 최대 LCC인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가 합작 설립한 에어아시아재팬이 도쿄 나리타를 기점으로 인천과 부산에 각각 취항했거나 취항 예정이다.
이밖에 일본 일본항공(JAL)과 호주 콴타스항공이 합작 설립한 제트스타재팬, 싱가포르항공의 자회사인 스쿠트 등 거대자본을 앞세운 자회사형 LCC의 한국 취항이 잇따를 예정이다. 그간 국내 항공업계에선 1988년 아시아나 항공 취항으로 명목상 복수민항 체제가 시작된 이후 줄곧 ‘공정경쟁’ 논란이 뜨거웠다.
LCC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독점노선인 괌과 사이판 노선의 취항과 운항 중단이 대표적 사례”라고 전한다. 1992년 3월에 대한항공이 가장 먼저 취항한 괌 노선에 아시아나항공이 1995년 4월 취항했다가 2003년 10월 중단했다. 반면 1992년 5월 아시아나항공이 먼저 취항한 사이판 노선에는 대한항공이 1995년 12월 취항했다가 아시아나항공의 괌 노선 운항 중단 1개월 전에 운항을 중단했다. LCC 관계자는 “자사 이익을 둘러싼 반목과 암묵적 합의에 따른 사실상의 시장 통제상황이었던 것”이라며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2012년 국내 항공업계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그동안 정부의 운수권 배분 결과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대응했으나 대부분 패소했다. 2010년 4월 대한항공은 정부가 아시아나항공에 이원 제 5자유 운수권을 주 3회 배분한 것이 적법하지 않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균형성장을 통한 국민 편익 증진이라는 취지에 부합한다”며 대한항공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제주항공 관계자는 “정부의 기본 원칙과 법원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균형정책’이 궁극적으로는 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대표적인 사례로 올해 초에 논란이 됐던 김포~대만 쑹산 노선의 배분을 꼽는다.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이 각각 주 4회, 주 3회씩 배분받은 이 노선의 탑승률은 올해 9월 기준 50%를 밑돌며 80%에 육박한 대만 에바항공의 절반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간 국토해양부는 노선 배분 배경에 대해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 저가항공사의 자생력 강화 명분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 노선을 중화항공과 에바항공 등에 배분한 대만 정부의 결정 그대로 따랐고 이들 두 항공사의 경쟁 상대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을 선발 투입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다양한 네트워크 구성이 가능했던 대만 국적항공사와는 달리 김포~쑹산 노선만 보유함으로써 연계 가능한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다는 게 제주항공의 입장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이들의 회생 지원을 목적으로 국제노선권이라는 국가 재산을 배분함으로써 결국 전체적인 노선 경쟁력만 상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국제항공 운수권은 우리 정부와 해당국 정부가 합의에 의해 얻어낸 결과물로, 국가 재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영속적으로 국가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항공사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균형성장이라는 대원칙은 타당하지만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시혜적 배분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애초 국내 LCC 시장에는 ‘항공사를 찾는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이 내포돼있다. 따라서 노선 배분에서도 국민의 편익을 증대하는 게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피치항공이나 에어아시아와 같은 해외 LCC들은 자국의 각종 LCC 지원책을 무기로 국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 LCC 출범 이전부터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쿄 나리타공항과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LCC 전용 터미널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원책 마련에 분주했다. 이 LCC 전용 터미널은 피치항공과 에어아시아재팬의 한국시장 진출에 때를 맞춰 완공돼 나리타공항에는 올해 9월, 간사이 공항에는 10월 각각 문을 열었다. 항공료 안에 공항이용료가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계 LCC의 전체적인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제주항공은 “반면 우리 정부는 2006년 제주항공 취항 이후 국제선 취항 준비 시점부터 ‘국내선 2년 2만회 무사고 운항’ 조건을 신설하는 등 지원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지적했다. 또 2011년 인천~나리타 노선 등 주요 노선에 대해 ‘LCC의 균형성장’을 이유로 매각을 진행 중인 항공사에 주요 노선 운수권을 배분하는 등 일본과는 달리 업계 성장을 저해하는 정책을 운용해왔다는 게 제주항공의 주장이다. 내년까지 중국과 일본에서 각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하에 초저가 운임 등의 경쟁력을 갖춘 LCC들이 한국 진출을 가속화하는 만큼 우리 정부도 이런 관점에서 정책적 지원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국가대표 LCC 육성해 상향평준화해야”제주항공 관계자는 “국내 항공정책은 우후죽순으로 LCC 설립 인가를 내줘 부실 LCC를 양산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정부도 최근에는 LCC 정책 초점을 균형성장에 맞추고 있지만 일부 후발 항공사의 경우 매각설과 실제 공개매각 진행에 휩싸이는 등 자생력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LCC 균형성장 추진 정책이 LCC 업계 전반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외국계 LCC와 경쟁할 수 있는 항공사를 선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JAL과 ANA 등 거대항공사의 노하우를 앞세운 일본 LCC의 공격적인 시장 진입이 우리나라 항공시장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며 “정부도 국가대표 LCC 육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과 함께 옥석을 가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LCC한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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