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스가 돌아왔다
도대체 체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72년 미국의 체스 명인 바비 피셔와 러시아의 대가 보리스 스파스키 간에 벌어진 ‘세기의 대결(Match of the Century)’을 기억하는가? 전 세계가 그 대국을 숨 죽이고 지켜봤다. 냉전이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스릴 넘치는 세계선수권대회로 승화하는 순간이었다(It had the world transfixed as the Cold War was distilled into a world championship as intense as the Cuban missile crisis).
또는 1986년 성난 청년 개리 카스파로프와 공산당 관료 아나톨리 카르포프 간의 대국은 어땠었나? 극적인 페레스트로이카 드라마의 축소판인 듯했다(a confrontation that seemed to encapsulate the great drama of perestroika). 카스파로프가 승리했을 때 우리는 소련 제국의 붕괴를 예견했다.
20세기는 체스의 세기였다. 러시아 출신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무한한 조합을 연구하다가 광기에 빠져드는(calculating infinite combinations until they toppled into madness) 천재들을 소설 소재로 다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여겼다(왕을 죽여라!). 블라디미르 레닌은 거기서 정치를 배웠다. 아바는 뮤지컬 ‘체스’를 만들었고,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에 등장하는 체스 대결에선 인간이 사신을 눌러 이겼다(Man faced down Death).
체스는 단순한 게임의 차원을 뛰어넘었다. 정치의 표현이자 천재의 정의이며 인간의 경험을 상징하는 은유였다(was an expression of politics, a definition of genius and a metaphor for the human experience). 1997년 카스파로프가 IBM 컴퓨터 디프 블루와 대국을 벌이면서 체스의 세기가 절정에 달했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 벌어진 지상 최대의 대결이었다. 대국은 기계의 승리로 끝났다. 그랜드 마스터(최고 수준의 체스 선수) 보리스 겔판드의 말마따나 “체스의 신비로움이 사라진 듯했다(It was as if the mystique went out of chess).” 알고 보니 체스는 인간이 지닌 천재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여느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듯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정치적인 색깔도 사라졌다.
21세기 초 체스는 더 큰 문화에서 무단 가출했다(went AWOL from the larger culture). 체스를 즐기지 않는 애호가들은 세계체스연맹(FIDE) 내부의 다툼에 관해 어렴풋이 들었을지 모른다. 세계 선수권 대회가 둘로 갈라지고 자금난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이 기간 중 키르산 일륨지노프가 FIDE의 총재가 됐다. 그는 최근까지 러시아의 가난하고 먼지 날리는 오지 칼미키야 지방의 주지사를 지냈다. 그리고 외계인과 대화를 했다고 주장한다(claims to have communicated with aliens). 외계인들이 그를 자신들의 우주선으로 데려가 함께 체스 게임을 했으며 그에게 원래 자신들이 지구에 체스를 들여왔다고 귀띔해줬다고 한다.
일륨지노프는 러시아 언론으로부터 칼미키야를 개인 소유물인 양 통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is accused by Russian journalists of ruling Kalmykia as his personal fiefdom). 그는 체스를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이끌고 다녔다(took chess on a surreal peregrination). 칼미키야의 주도 엘리스타에 체스 디즈니랜드를 건립하는 계획을 세우고, 친구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위를 맞추려고 2004년 월드 체스 챔피언십을 리비아에서 주최하기도 했다. 이때 세계 정상급 선수 중 몇몇 이스라엘인은 출전이 허용되지 않았다.
일륨지노프는 체스를 자신의 명함으로 계속 유용하게 사용하며 관심 있는 국가 수반들과 어울린다(continues to use chess as a useful calling card to hang out with interesting heads of state). 10월 초에만 해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만났다. 공식적으로는 시리아의 학교에 체스를 홍보하려는 목적이었다.
체스계의 많은 사람이 일륨지노프의 자금, 그리고 체스계의 질서를 회복한 조직력을(organizational skills in bringing order to the game) 고맙게 여긴다. 하지만 체스는 체스 칼럼 독자들에게서 점차 멀어졌다. 또는 인기 스포츠가 거의 없어 국민이 체스 그랜드 마스터들을 영웅시해야 하는 나라에서 갈수록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지 모른다.
지난 9월, 체스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 일어났다(marked the inflection point in the history of chess). 9월 20일, 미국인 사업가 앤드류 폴슨이 체스를 관객이 많은 관전 스포츠(a spectator sport), 말하자면 새로운 골프로 탈바꿈시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의 출범식 파티에서였다. “전 세계에 체스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폴슨이 물었다. “6억 명이다. 하지만 체스는 무대와 매력을 잃었다(has lost its theater, its allure). 이제 내가 그것을 되찾고자 한다.”
예일대 출신의 폴슨은 체스의 전성기를 되돌릴 수 있는 인물로 일륨지노프에게 소개됐다. 탐미주의자(aesthete)이자 모험가인 폴슨은 뉴욕의 극장 기획자(조디 포스터의 첫 연극 제작)이자 파리의 패션 사진가였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로 건너가 가장 비중 있는 고급잡지들과 개성 있는 인터넷 회사들을 만들었다(creating its most important glossy magazines and edgy Internet companies). 그는 일륨지노프를 설득해 세계체스선수권대회 운영에 관한 전권을 얻어냈다. 지금은 사실상 체스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출범식 파티는 일종의 선언식이었다(was a statement of intent).
런던 서머셋 하우스 건물의 쾌적한 홀은 마치 영화 시사회장 같은 느낌을 줬다. 런던의 러시아계 부호들이 눈부신 외모에 따분한 표정의 측근들을 거느리고 대거 몰려나왔다(The London Russian rich were out in force with their bored, stunning satellites). 영화배우들과 TV 출연하는 방송인 부류였다. 수퍼모델 릴리 콜은 세계 13위 체스 명인 베셀린 토팔로프와 속기 대국(a blitz game)을 가졌다. 그명인은 콜의 외모에는 무관심한 듯 “수비가 제법 좋았다(She’s pretty good in defense)”고 말했다.
TV 프로듀서들은 일류 선수들과의 인터뷰에 여념이 없었다. 폴슨의 계획 중에는 체스를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TV 포맷의 개발 방안도 있다. 선셋&바인이 그 임무를 맡았다. 크리켓과 포커 게임을 볼 만한 구경거리로 만든(responsible for sexing up cricket and poker shows) 회사다. 따분한 호텔 컨퍼런스룸 대신 이젠 이색적인 장소에서 챔피언십 대전이 열린다. 내년 3월의 그랑프리 대회는 포르투갈 수도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선수들의 얼굴을 근접 촬영해 긴장을 나타내는 미세한 떨림까지 잡아낸다(The players will be shot in close-up to catch everywhisker of tension). 성공확률을 나타내는 그래프와 보조도구를 동원하고 해설자들이 정보를 제공하며 흥미를 유발한다. 선수들에게 생체측정 장치들을 부착해 심박수와 발한 패턴을 측정한다(The players will be fitted with biometric devices to measure heartbeat and sweat patterns).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서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선수들을 스타로 만들고, 인지도를 높이며, 갈등구도를 조장하려는 목적이다.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른다. 많은 체스 선수가 대체로 현실과 유리된 듯하다(appear largely detached from reality). 하지만 약간 자폐증적인 시선 뒤에 불타는 야망이 숨어 있다. “머리 싸움에서 상대를 깔아뭉개는 게 목표(The objective is to crush the opponent’s mind)”라고 언젠가 바비 피셔가 말했다. 그러나 폴슨의 새 구상에서 가장 기대되는 요소는 소셜 미디어다. 인터넷과 체스는 천생연분인 듯하다(the Internet and chess seem to have been made for each other).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든 수를 평가하고 분석하며, 가능한 판도 변화에 내기를 걸고, 수의 진행과정을 휴대전화로 트위터에 올릴 수 있다.
이 모두가 체스 팬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체스가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폴슨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히 숫자놀음이 아닌 문화적 상징과 결부되려는 기업 후원사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노력이 핵심을 이룬다(is built around appealing to corporate sponsors who want to be associated with a cultural signifier, not just a numbers game).
“더 이상 인공지능이 인간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랜드 마스터 레이먼드 킨은 주장한다. “체스가 인간 지능의 시금석이라는(is the touchstone of human intellect) 사고가 다시 힘을 얻는다. 새로운 조사 결과 체스 게임을 하면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기타 형태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나타났다. 체스가 부활했다.”챔피언십의 브랜드 홍보를 담당하는 펜타그램의 데니얼 웨일은 사회 변화로 체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believes social changes could make chess relevant).
“19세기 말~20세기 초 1차 세계화 물결 때 체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살롱 문화에서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능과 교양의 보편적인 지표가 필요했다(educated salon culture needed a universal marker of intelligence, of sophistication). 요즘의 훨씬 더 큰 새로운 세계화 추세에서 체스가 그 역할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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