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만드는 외국 셰프 그들이 홍보대사다
한식 만드는 외국 셰프 그들이 홍보대사다
올해로 4회를 맞는 국내 미식축제 ‘서울고메(Seoul Gourmet)’는 첫 회부터 미식가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미슐랭 3스타 셰프를 비롯해 세계 최정상 요리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참석한 셰프들은 일주일 동안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한다. 아침에는 시장방문, 낮에는 강의, 저녁에는 고급호텔에서 갈라 디너를 연다.
디너에서 그들은 시장에서 사온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한다. 오미자, 홍삼, 흑마늘 등이 세계 최정상 셰프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고메는 한식의 창의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해외 미식업계와 교류를 이어가는 장이 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서울고메가 명성을 더하고 있는 이유다.
한식재단과 함께 서울고메를 시작부터 이끌어온 이가 바로 구삼열(70) 위원장이다. 그는 AP통신 유럽특파원, 아리랑TV 사장, 유엔본부 특별기획본부장, 유니세프한·일 겸임대표, 외교통상부 문화협력대사, 여수엑스포 UN 대표, 서울관광마케팅 대표 등을 지냈다. 인터뷰 전날인 9일 그는 국가브랜드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서로 친분이 있는 이참 사장과 구삼열 위원장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남다른 국제 감각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둘은 한식 홍보에 대해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수준 높은 분자요리로 유명한 스페인은 미식의 나라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미식 심포지엄 ‘마드리드 퓨전’은 올해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했다. 이 행사에서 김치를 소개한 사람은 미슐랭 2스타 벨기에 셰프 상훈 드장브르(Sang-Hoon Degeimbre)다.
중요한 것은 그가 2010년과 2011년 서울고메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는 거다. 구삼열 위원장은 “서울고메를 다녀간 셰프들이 해외에서 한식을 전파하고 있다”며 “한국이 세계적인 미식축제 마드리드 퓨전에 초청된 것은 서울고메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서울고메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참 사장이 말했다.
한식 식재료·조리법 외국 셰프에 소개
이참 서울고메는 한식 홍보에 매우 효과적인 행사입니다. 한식 알리기에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우리나라의 수많은 이탈리안 레스토랑들을 보면 대부분 한국인들이 운영하고 있죠. 한국인이 이탈리안 음식을 대신 홍보하는 셈입니다.
구삼열 외국인들이 한식에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전세계 셰프들을 통해 한식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고메는 외국 셰프들에게 한국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소개합니다. 세계 미식 트렌드는 요리에 국경이 없다는 것이지요. 프랑스 셰프가 와사비·샤브샤브를 응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듯이 말입니다.
이참 지난 해 참가자인 프랑스 셰프 파스칼 바흐보(Pascal Barbot)는 고추장과 유자젤리를 섞어 스테이크 소스를 만들었어요. 그는 한국에서 3일만에 지난 10년 동안 배운 만큼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어요. 과거 참가자들은 30년 된 간장, 멍게, 오미자 등을 처음 보고 바로 자신의 요리에 접목시켰죠. 식재료의 발견이 서울고메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삼열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한 해외 셰프들은 감탄합니다. 이렇게 활어가 많은 수산시장은 처음 봤다며 말이죠. 우리 나라처럼 건어물과 해산물이 좋은 나라가 드물어요. 그러니 새벽 5시에 노량진에 가자고 해도 거절하는 셰프가 없습니다. ‘츠키지’를 논하던 사람들 입에서 이제 ‘노량진’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참 서울 시내 어시장과 농산물 시장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미식의 새로운 메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호주·독일·브라질 정부는 올해 서울고메에 참가하는 자국 셰프를 100% 후원하기로 했다. 서울고메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구 위원장은 “해외에서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조짐”이라고 강조했다. 셰프들이 한식을 배우기 위해 제 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서울고메가 귀족들을 위한 파티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구 위원장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왜 비엔나 필하모니 내한 공연에 간다고 생각하세요?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접하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거죠. 서울고메가 셰프들의 천재성이 발휘되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외국 셰프 노량진 수산시장에 감탄국내에는 아직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 리스트가 없다. 미슐랭 스타는 세계인이 알아주는 마크다. 영국 레스토랑지(誌)가 10년 전 론칭한 ‘세계 베스트 50 레스토랑’ 리스트는 업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올해 서울고메 참가자 중 미슐랭 3스타 셰프 두 명과 ‘세계 베스트 50 레스토랑’ 리스트 4위 셰프가 포함돼 있다. 이처럼 일단 이름이 올라가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의 패널이 점수를 매기는 평가 시스템을 두고 객관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라는 거다. 레스토랑 지는 내년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 리스트를 론칭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식 랭킹을 둘러싼 구 위원장의 생각을 들었다.
“저는 랭킹에 대한 명암을 처절히 느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는 랭킹과 레이블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 문화에 자신감을 갖는다면 랭킹에 신경쓰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의 레스토랑을 외국인이 심사한다고 하면 저는 그가 한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할 겁니다.
예컨대 파리에는 1000개의 일본 식당과 50여 개의 한국 식당이 있습니다. 숫자만 봐도 한식에 대한 서양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한편으로는 반기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가 됩니다.” 이참 사장은 고급스러운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5년 새 한국에 자리 잡은 고급 커피문화를 예로 들었다. 이 사장은 “국내 커피 전문점들의 원두 퀄리티, 인테리어, 프레젠테이션, 가격 등 모두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맛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우리 것도 이에 마땅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국산차의 맛도 커피와 견줄 만큼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국산차를 세련된 인테리어에서 좋은 다구로 서빙 한다면 충분히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위원장의 고민 중 하나는 음식 서빙이다. 그는 “되도록이면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의 음식이 좋다”며 “쌈과 구절판은 한국인도 예쁘게 먹기 힘든데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에겐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한식을 어떻게 서빙 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 위원장에게 매년 서울고메를 개최하면서 가장 염두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는 유니세프와 유엔에 있으면서 쉽게 말해 세계 국회의원들을 포섭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아동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깨달음을 주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장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을 직접 보고도 끝내 동정심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현장 방문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제가 데려간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면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고메에 참가하는 해외 셰프들이 한식에 감명을 받고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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