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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는 테러조직, 바다에는 해적

땅에는 테러조직, 바다에는 해적

알카에다 기승에 마약 밀매도 성행…서부 아프리카 해적은 원유도 노려



9월 2일, 북서부 아프리카 국가 말리에서 급진 이슬람 반군이 알제리 외교관 한 명을 납치한 지 5개월 만에 살해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해 활동 중인 무장반군 ‘서부아프리카의 통일과 지하드를 위한 운동(MUJAO)’은 이날 “알제리 협상대표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질 석방을 위한 합의를 거부했다”고 비난하며 살해사실을 공개했다. MUJAO는 앞서 4월 5일 말리 가오시(市) 주재 알제리 영사관을 습격해 7명의 직원을 납치한 뒤, 1500만 유로(약 210억 원)의 몸값과 구금 중인 동료 3명의 석방을 요구해왔다.



조직범죄와 테러단체 기승북서부 아프리카는 테러세력 알카에다의 주 활동무대다. 과거 알제리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들은 인근 사헬(Sahel) 지대로 세력을 넓히면서 관광객·외교관·국제구호요원 등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사헬 지대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가장자리 지역을 가리킨다. 모리타니 남부에서 말리 중부~니제르 남부~차드 중남부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띠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건조한 사하라 사막에서 열대아프리카로 옮아가는 점이지대(漸移地帶)이기도 하다.

유목민의 생활무대인 사헬지대는 과거 유목민들이 일정 지역에 장기간 머무르지 않고 이동했기 때문에 초원이 자연적으로 복구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가축의 과다한 방목으로 초원이 황폐화 되면서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여기에 자연적인 가뭄이 겹쳐 사헬지방은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변했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그곳에 범죄가 들어왔다.

사헬지대의 치안 공백을 노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대마초 밀매업자들이다. 그들은 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모로코에서 재배된 대마초를 이곳에서 거래했다. 그러다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다양한 종류의 마약이 거래되고 거래 금액이 커지면서 조직범죄단체가 가세했다. 이슬라믹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나 안사르 딘과 같은 테러집단도 무기와 마약 밀매, 돈세탁에 개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모라 같은 유럽 마피아 조직도 사헬에서 활동 중인 테러단체 및 마약밀매업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알카에다 조직이 위조문서를 만드는 과정에 카모라가 도와준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이렇게 일단 들어올 수 있는 ‘조직’은 다 들어온 느낌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은 이들 조직의 협력이 강화되면 유럽의 코밑에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 같은 강력한 마약범죄테러조직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마약과 무기 밀매 외에 담배 밀거래도 사헬지역에서는 짭짤한 돈벌이 사업이다. 주로 나이지리아에서 생산된 짝퉁 담배가 사헬과 마그레브, 그리고 중동과 유럽에 밀수출된다. 테러단체들에도 짝퉁담배 판매는 주요 수익원이다. 그들은 짝퉁담배를 만드는 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밀수입자들을 보호하는 범죄 조직에 ‘통과세’를 받아 이익을 챙긴다. 제조·밀수업자 위에 그들을 보호하는 범죄조직이 있고, 그 범죄조직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또 돈을 받아 챙기는 이중의 먹이사슬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거래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는 테러단체는 AQIM이다. AQIM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모리타니·말리·니제르·차드·알제리·나이지리아·리비아·모로코·튀니지로 마약 밀거래가 일어나는 장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르몽드는 AQIM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밀수입자와 범죄 집단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돈만 챙기는 것으로 돈 외에는 다른 공통된 이해관계가 없다”고 보도했다. AQIM이 종교적인 이상을 내세우며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은 인질 몸값을 챙기거나 밀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사헬은 이제 수많은 범죄조직의 허브가 됐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단체와 남미 마약 카르텔 간에,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지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약 거물 간에도 이곳 사헬지대를 중심으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사회·경제적 문제와 수많은 갈등 요인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헬지대는 그야말로 무법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헬지대에서 세력을 키운 범죄 조직들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통제선이 뚫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주로 유통되던 마약이 최근에는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적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헬지대는 범죄와 테러의 온상사헬 지대가 무법지대가 된 데는 인근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리비아 정권 붕괴로 국경이 허술해지면서 무기를 운반하는 일이 쉬워졌고, 이러한 상황은 테러단체와 마약거래업자들에게 그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헬지대 국가들의 통제력이 약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경찰력이 부족하고 국경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군과 세관·경찰 등 국가조직에는 부패가 만연해 있다.

지역주민들이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지는 것도 문제다. 가난과 가뭄, 기아, 정치권의 부패 등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어쩌면 마약업자들의 달콤한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마약을 운반하거나 보관하는 일을 도와줌으로써 범죄의 뿌리가 더 깊이 내리는데 이용당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9월 11일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리비아 주재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국 대사의 사망은 오바마 행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 대사가 업무 중에 사고로 사망한 경우는 지금까지 모두 6건이다. 이번 사건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범에게 납치된 미 대사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대사가 사망한 이후 33년 만에 발생했다.

이러한 충격은 미국으로 하여금 ‘아랍의 봄’ 이후 혼란을 틈타 급성장한 AQIM을 정면으로 겨냥하게 만들었다. 스티븐스 대사 피습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조직은 원리주의 무슬림 집단 ‘안사르 알샤리아’지만그 뒤에는 AQIM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건 이후 미국 대테러 활동의 축이 북아프리카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미 북아프리카 지역 대사관을 중심으로 미군 최정예 부대인 델타포스 대원들이 배치돼 있다고 전했다.

AQIM은 올 들어 세력이 급격하게 확장됐다. WP는 ‘아랍의 봄’ 사태 때 궐기한 용병 중 상당수가 이후 AQIM에 흡수됐다고 분석했다. AFP통신은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몰락 이후 정권이 보유하고 있던 살상무기가 대량 유실됐는데, 국경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AQIM이 이 무기들을 대거 확보했다고 전했다. AQIM은 올 초 말리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재빨리 말리 북부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다. 

AQIM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도시에서 민간인이 피격되는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10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중국인 근로자가 총격을 받아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0월 19일 나이지리아 북부의 한 도로 공사 현장에서 중국인 근로자 1명이 무장 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앞서 6일에도 중국인 3명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다가 무장 괴한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은 소말리아 앞바다를 지날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했다. 동부 아프리카 연안국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해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가 주요 해상 수송로인 소말리아 앞바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자 이곳에서의 해적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9월 27일 세계 해운의 날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의 선박 납치 건수는 2010년 47건에서 2012년 5건(9월 현재)으로 크게 줄었다. 2012년 인질을 붙잡아 받아낸 몸값도 2011년 대비 급격히 감소했다. 2011년 한 해 소말리아 해적들은 약 1억7000만 달러(약 1900억 원)를 인질 몸값으로 받아냈다. 이에 비해 2012년 들어서는 9월까지, 전년도 실적에 한 참 못 미치는 2500만~3000만 달러(약 280억~330억 원)의 몸값을 챙기는데 그쳤다.

그런데 이쪽 두더지를 때리니 다른 쪽에서 두더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소말리아 반대편, 서부 아프리카 기니만이 그 무대다. 올 들어 이곳에서 해적활동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르몽드에 따르면 10월 15일 나이지리아 연안을 항해하던 프랑스의 석유시추 지원 선박이 해적의 공격을 받아 선원 16명 중 7명이 납치됐다.

해당 선박의 운영사인 브루봉은 10월 2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브루봉 리버티 249호가 나이지리아 앞바다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러시아 선원 6명과 에스토니아 선원 1명 등 모두 7명이 납치됐다”고 확인했다. 사고 지점은 나이지리아 남부 해안 도시인 브라스에서 약 40해리(약 74km) 떨어진 곳이었다.



해적 주무대는 서부로 이동나이지리아 연안에서는 앞서 8월에도 몸값을 요구하는 정체불명의 무장 괴한 공격으로 인도네시아인 등 4명의 석유 생산 현장 근로자들이 납치됐다. 기니만 해적들은 선원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원유수송선이 싣고 가는 석유도 함께 노린다. 유전이 많은 기니만은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좋은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기니만 국가 나이지리아는 현재 아프리카에서 원유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르몽드는 기니만 해적들이 인질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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