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 샷은 절대 쇼가 아니다
드라이버 샷은 절대 쇼가 아니다
입스(Yips). 흔히 골프에서 퍼트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증세를 말한다.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확대해서 퍼트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미스 샷을 날리는 경우 드라이브 샷 때도 ‘드라이버 입스’라는 표현을 쓴다. 이같은 입스는 선수를 ‘멘붕(멘탈 붕괴)’ 상태로 몰고 가기 때문에 슬럼프의 장기화를 초래한다. 골프에서 입스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국내 프로골퍼 가운데 드라이버 입스 때문에 크게 고생한 선수는 최진호(28·하이스코, 통산 3승)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2006년 데뷔 첫해 우승을 차지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그러나 2008년 심각한 드라이브 입스에 시달렸다. 한 라운드에서 OB를 5~6개씩 내면서 15경기에서 단 한 번도 컷을 통과하지 못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상금도 한 푼 벌지 못했다. 그러다 클럽을 몇 개월간 아예 잡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각고의 노력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2010년 다시 우승컵을 따낸 최진호는 올 6월 한국프로골프투어(KGT) 메리츠 솔모로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통산 3승을 올렸다.
볼이 2개로 보이기도10월 한국오픈에서 프로 통산 8승을 올린 김대섭(31·아리지 컨트리클럽)도 드라이버 입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선수다. 김대섭은
2006년 5월 메리츠 솔모로 오픈 마지막 날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가 드라이브 샷 난조에 이어 스코어 오기로 실격 당하면서 드라이버 입스에 시달렸다. 그는 이후 2년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김대섭은 “드라이버를 잡으면 마치 쇳덩어리를 든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티에 올려놓은 볼이 2개로 보일 때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입스는 100% 심리적인 문제다.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해도 결국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입스에 걸리면 한동안 클럽을 내려놓는 게 낫다”고 했다. 이제 최진호와 김대섭에게 드라이버 입스는 옛 말이 됐다.
올해 하반기 국내 남녀 프로골프 무대에서 두드러진현상은 장타자들의 화려한 귀환이다. 남자 프로골퍼 김대현(24·하이트)과 여자 프로골퍼 장하나(20·KT), 이정민(21·KT) 등이 차례로 부활 샷을 터트렸다. 공교롭게도 세 선수는 모두 가을 시즌에 우승했다. 이 중에서 김대현은 1년 동안 입스성 드라이브 샷의 공포에 시달렸다.
주니어시절 300야드 장타를 날려 ‘여자 존 댈리’로 통했던 장하나는 드라이브 샷 입스였다. 장하나에 못지않는 파워 히터인 이정민은 왼쪽 어깨 근육의 부상으로 드라이브 샷 난조에 빠져 2년 가까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세 선수 모두 비슷한 시점에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컴백했다. 그래서 ‘가을은 장타자의 계절인가’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들 다섯 선수들의 사례를 놓고 보면 ‘드라이버 샷은 쇼이고, 퍼팅은 돈이다’라는 골프의 오랜 금언에 대해 의문이 든다. ‘퍼팅은 돈이다’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드라이버 샷은 쇼이다’는 명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골프는 크게 드라이버 등 롱게임과 퍼팅 등 쇼트게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비중 여하를 떠나서 어느 한쪽이 망가지면 골프게임의 전체 틀(리듬)이 깨진다는 점이다. 입스를 경험한 선수들은 “드라이브 샷은 절대 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9월 KGT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홍순상(31·SK텔레콤)을 꺾고 2년4개월 만에 통산 2승을 거두며 우승 가뭄을 해소한 김대현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김대현은 2010년 메이저 대회 매경오픈에서 우승하고 상금왕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2011년을 우승 없이 보냈고 올해도 우승 전까지 세 차례밖에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2011년에 해외 대회에 자주 나가면서 연습을 제대로 못했다”며 “그러다 보니 스윙도 변화가 생겨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김대현이 샷 감각을 회복한 것은 상반기 대회가 끝나고 찾아온 두 달간의 대회 공백기였다. 김대현은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등산을 했고, 밤 9시까지 하루 600~700개의 공을 때렸다. 김대현은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며 “아버지가 24시간 붙어서 연습 스케줄을 관리해 주셨다”고 말했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연습밖에 없더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게 김대현의 얘기다.
장하나도 10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KB 스타 금융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 2년 만에 우승해 화제가 됐다. 그의 가능성으로 보면 너무 늦은 우승이었지만 심각한 드라이버 입스를 극복한 케이스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크고 작은 대회에서 45승을 거뒀다. 300야드가 훌쩍 넘는 파4 홀에서 1온을 하고, 공식 대회에서 310야드를 기록한 적도있다.
그랬던 장하나는 2010년 프로로 전향한 뒤 가장 자신 있었던 드라이버가 골칫거리가 됐다. 특히 장하나는 지난해 정규 투어 19개 대회에서 세 차례 밖에 톱 10에 들지 못했고 상금랭킹 32위에 머물렀다. 한 대회마다 평균 2~3개의 OB를 냈고, 한화금융 네트워크클래식에서는 마지막 날에만 무려 7개의 OB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입스를 극복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근무하는 김병현 박사를 찾아가 양궁·사격 선수들과 함께 심리 훈련을 받았다. 양궁과 사격은 침착함과 순간적인 집중이 중요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의 옛 스승인 김창민 프로는 “장하나가 프로가 된 뒤 체중을 10kg나 빼고 자신의 캐릭터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체중을 15kg 늘리고 장타자의 캐릭터를 찾도록 했다”고 말했다.
“내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11월 4일 KLPGA 투어 부산은행-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2년6개월 만에 우승한 이정민도 드라이브 샷 때문에 혹독한 시련기를 보냈다. 2007~2008년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280야드의 장타가 특기인 선수였다. 롱게임이 좋았던 이정민은 2010년 5월 데뷔 첫해 루키 신분으로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꺾고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해 갑자기 드라이버 샷 난조에 빠지면서 상금랭킹 66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정민은 부잣집 딸이어서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정민의 부진은 그러한 수군거림과는 거리가멀었다. 오로지 어깨 근육 손상으로 인한 부진이었다. 이정민은 “쉬는 게 최선이었지만 선수가 시합에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며 “재활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 루머가 있었지만 그러한 얘기에 개의치 않고 내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며 “또다시 우승이라는 목표 하나를 이루고 나니 내 자신이 더 대견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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