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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열정을 마신다

탱고의 열정을 마신다

세계 5대 생산국으로 역사·규모에서 칠레 와인 압도



“아르헨티나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를 못해요. 와인도, 음식도, 심지어 라이프 스타일까지….” 아르헨티나 멘도사 공항에서 만난 휴버트 웨버는 스위스인이었다. 유럽에서 와인을 공부한 그는 1990년대 중반 ‘호기심’ 차원에 멘도사의 유서 깊은 양조장 와이너트(Weinert)에 인턴십을 지원했다. 그 후 17년째 멘도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와이너트의 총책임자가 된 그는 “와인 생산에서 멘도사만큼 뛰어난 자연 환경을 갖춘 곳이 없다”며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함께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을 마실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고 입을 열었다.

웨버를 따라 찾은 곳은 와이너트 양조장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르헨티나 전통 스테이크 아사도를 주문했다. 아사도는 과거 아르헨티나 유목민들이 소를 잡아 장작불에서 장시간 동안 통째로 구워먹었던 것에서 유래된 음식. 웨버는 “멘도사에선 쇠고기를 숙성시키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멘도사 아사도를 맛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는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나라로 꼽힌다. 그만큼 목축업이 발달했다. 오랜 연구를 통한 품종 개량으로 아르헨티나의 쇠고기는 연하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한다. 웨버는 “아르헨티나 축산업자들은 소를 잡은 후 가장 좋은 부위는 가족이 먹고, 그 다음 좋은 부위는 마을 정육점에 판매한다. 그렇게 하고도 남으면 수출한다”며 웃었다.

와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5위의 와인 생산 대국이다. 생산량이 많지만 자국 소비량도 많아 한국을 비롯한 해외 와인 애호가들에겐 아직 생소한 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와인 중 아르헨티나 와인은 금액 기준으로 8위에 그치고 있다. 반면 같은 남미권인 칠레의 경우 프랑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국 소비량 많아 한국선 낯설어두툼한 소갈비가 등장하자 웨버는 익숙하게 저장고에서 와인을 차례로 꺼내왔다. 화이트 와인인 2011년산 소비뇽 블랑을 시작으로, 2006년산 메를로(Merlot), 2005년산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그리고 2000년산 말벡(Malbec)까지. 하나같이 높은 산도가 특징. 웨버는 “아르헨티나 포도 품종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며 “안데스 산맥이 가져다 주는 신선함과 유럽 스타일의 양조 기법에서 나오는 숙성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와인업계에서 미국, 호주, 칠레 등과 함께 와인의 신대륙으로 꼽히지만 사실은 신대륙도 아니다. 16세기 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포도 경작 방법이 유입됐고, 당시 현지 토착민을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와인 생산도 시작됐기때문이다. 이후 유럽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와인산업이 꽃을 피웠다. 웨버는 “외국의 와인 바이어들이 종종 우리와 칠레 와인을 비교하지만 사실은 칠레에서 와인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헨티나에서 이주했다”고 밝혔다.

현재 아르헨티나 와인은 안데스 산맥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대부분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 건조한 토양과 연중 일정한 온도, 250㎜ 미만의 적은 강수량으로 포도 재배에 최적의 기후를 자랑한다. 여기에 인공 관개 수로를 활용해 안데스 산맥에서 녹아 내리는 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안데스 산자락에 위치한 멘도사는 남미 와인의 메카로 꼽힌다. 식사를 마친 후 웨버를 따라간 곳은 지하 저장고. 프랑스 보르도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춘 저장고엔 수십년된 와인 수만병이 숙성되고 있었다. 웨버가 이중에서 자신있게 꺼낸 와인은 1977년산 말벡이었다.

와이너트의 설립자는 베르나르도 카를로스 와이너트다. 브라질 태생의 운수업자였던 그는 아르헨티나 와인을 브라질에 유통시키면서 와인 비지니스에 발을 디뎠다. 양조장까지 사들인 그는 멘도자의 유명 양조가인 라울 데 라 모타를 고용, 최초로 100% 말벡 와인인 ‘와이너트 에스텔라 말벡’(Weinert Estella Malbec) 1977년산을 선보이며 일약 와인업계 스타가 됐다.

전세계 유명 와인 평론가들로부터 ‘신대륙과 구대륙의 조화’라며 아르헨티나 와인으로선 유례없는 호평을 받았다. 이승훈 소믈리에는 “1977년산 말벡의 경우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맛이 생생할 정도로 잠재력이 뛰어나다”며 “아르헨티나에서 이렇게 오래된 와인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말벡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이다. 프랑스 남부가 고향이지만, 병충해에 약해 전세계에 널리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고산지대이면서 건조한 기후 때문에 병충해 피해가 적어 말벡 생산에 뛰어나다. 특히 아르헨티나산 말벡은 그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해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은 물론 초보자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사도와 같은 고기와 절묘한 궁합을 자랑해 미식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웨버는 “요즘 와인 산업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아르헨티나 와인의 수출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라며 “과거 싸구려 와인들이 주목받았다면 지금은 고가의 와인들이 더 많이 수출된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에서도 아르헨티나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아르헨티나 와인은 금액 기준으로 전년대비 50% 이상 늘었다. 국내 수입 와인 중 가장 증가세가 높다. 와인21닷컴의 최성순 사장은 “국내 와인 시장의 경우 칠레나 프랑스 중심에서 다변화되고 있는 게 특징”이라며 “그중에서도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아르헨티나 와인이 주목 받고 있다”고 밝혔다.





가을과 어울리는 아르헨티나 와인 - 말벡 와인 초콜릿 무스 머금은 맛일본 와인만화책 『신의 물방울』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아르헨티나 말벡을 마시면 왠지 탱고를 추는 정열적인 남녀가 떠오른다”며 “와인을 마시는 내내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 가을엔 남미의 열정과 여유가 물씬 담긴 아르헨티나 와인을 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와이너트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보석같은 아르헨티나 와인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 특히 허브향과 매콤함으로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아르헨티나 와인은 맛과 향이 강하지만 타닌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 좋은 말벡 와인의 경우 초콜릿 무스를 머금은 듯 입안을 감싸돈다. 불고기나 등심 등 고기류와 함께 마신다면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안데스의 보석, 트라피체국내 수입되는 대표적인 아르헨티나 와인. 특히 ‘이스카이’의 품질은 프랑스 고급 와인에 뒤지지 않는다.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만큼 좋은 산도와 함께 부드러운 타닌을 느낄 수 있다. '트라피체 말벡 싱글 빈야드‘의 경우 올해 열린 ‘코리아 와인챌린지’에서 베스트 레드 와인에 선정됐다.



▶남미의 떠오르는 강자, 트리벤토칠레 최대 와인 생산자인 '콘차이 토로'가 멘도자 지역에 설립한 와이너리. 트리벤토 골든 리저브 말벡의 경우 80년 이상된 포도나무에서 직접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조했고, 프랑스산 오크통 숙성과 병 숙성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밸루 와인의 대명사, 도나 파울라국내에서 유명한 칠레 와인 카르멘과 산타 리타를 소유하고 있는 클라로 그룹이 1997년 아르헨티나에 설립한 와이너리. <와인스펙테이터> , <디캔터> 등 세계적인 와인 잡지를 통해 높은 평가를 받으며 급부상하고 있다. 부담없는 가격에 아르헨티나 와인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와인 대부, 카테나 자파타아르헨티나 와인의 대부로 불리는 니콜라스 카테나가 세운 회사. 100년 전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와인을 생산해온 카테나 집안은 니콜라스 카테나가 양조를 맡으며 세계적 와인 회사로 발돋움했다. 로버트 파커가 펴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와이너리> 에 남미에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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