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NB opinion _ 러시아 변호사의 유산

NB opinion _ 러시아 변호사의 유산

관료들의 세금횡령 밝혀냈다가 경찰 손에 목숨 잃어 … 미국 등 범죄자들 제재하는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법 채택


러시아의 젊은 변호사가 대규모 세금횡령으로 보이는 사건을 적발해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은 범죄혐의를 조사하기는 커녕 변호사를 감금하고 고문을 가한다. 변호사가 횡령혐의로 고발한 관료들과 경찰이 한 통속이었다. 변호사는 고소 취하를 거부하다가 결국 구타당해 숨진다. 게다가 조작된 일련의 범죄로 사후 기소를 당한다. 한 편 그를 잡아넣은 경찰은 승진하고 포상을 받는다. 러시아 공직자들의 제 식구 감싸주기다.

러시아 법원이 죄인을 재판대로 끌어내지 않는다면 누가 할까? 미국 의회는 최근 미국이 그 일을 떠맡기로 표결했다.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법은 3년 전에 사망한 그 37세 세무 변호사의 이름을 따서 제정한 법이다. 마그니츠키의 구금, 학대 또는 사망에 연루된 모든 사람의 미국 방문, 부동산 소유 또는 은행계좌 개설을 금지한다. 상원은 이 법안을 곧 통과시킬 예정이다. 캐나다와 서유럽에서도 유사한 법이 이미 채택됐다.

그런 제재는 살인에 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하지만 마그니츠키 법은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법들은 확대적용이 가능하다. 마그니츠키 사건의 용의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인권 침해자들까지 대상으로 한다. “고문이나 초법적인 살인에 의존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러시아·시리아 등의 불량 정권 관계자들을 표적으로 삼을 기회다.” 영국 보수당 의원 도미닉 라브의 말이다.

“그들이 킹스 로드를 마음대로 활보하며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러시아 당국은 마그니츠키가 적발했다고 밝힌 2억3000만 달러 규모의 세금환불 사기범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모스크바 정부는 러시아 상원의원단을 워싱턴으로 보내 마그니츠키 법 저지 로비를 벌이도록 했다. 그중 한명인 비탈리 말킨은 캐나다 당국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로 밝혀졌다. “조직범죄 또는 초국가적 범죄”와 연관된 혐의가 있다고 리스트에 기록됐다.

캐나다 일간지 내셔널 포스트가 공개한 법원 문서자료 내용이다. 그런 망신을 당하고도 러시아는 지난 7월 유럽회의 청문회에 드미트리 클루예프를 러시아 공식 대표단으로 파견했다. 사기 전과자이자 마그니츠키가 세금횡령 사기의 주모자로 지목한 인물이다.

마그니츠키 법은 러시아 실력자들에게 위협을 준다. 그것은 “오랫동안 나라 안팎에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활개치던 크렘린의 비리 정치인들에게 지속적인 악몽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블라디미르 리츠코프 전 러시아 의회 의원이 말했다. 러시아에선 부패가 널리 퍼져 거의 어떤 관료라도 표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러시아 국내문제에 외부의 개입을 반대한다”고 리츠코프가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패 관료가 세계 정·재계 엘리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반대한다.”

제재가 주효할 가능성이 있다. 1974년 미국의 헨리 M 잭슨과 찰스 바닉 상원의원이 발의한 무역법 수정안은 소련이 반정부 유대인들의 국외이주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최혜국대우 지위를 거부하는 내용이다. “자국민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이웃들의 권리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물리학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경고했다. 잭슨-바닉 법안을 지지한다고 KGB는 그를 반역자로 낙인 찍었다. 하지만 결국 리퓨즈니크(refuseniks, 국외이주가 허용되지 않는 유대인들) 수천 명의 이주가 허용됐다.

백악관은 마그니츠키법을 저지하려 애썼다. 시리아와 이란 문제에서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역학관계는 1974년에도 거의 비슷했다. 당시 미-소 화해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가 국무장관이었다. “키신저는 지정학적 파이를 초강대국끼리 원만하게 배분하려는 계획을 잭슨의 수정안이 저해하려 한다고 간주했다.”

리퓨즈니크였다가 이스라엘 국민이 된 나탄 샤란스키가 쓴 글이다. “사실이 그랬다. 사하로프는 긴장완화가 초강대국 관계개선의 이름 아래 소련의 인권유린 기록을 카펫 아래로 숨긴다고 항상 믿었다.” 오늘날 러시아 개혁파들은 국제제재의 위력을 인식한다.

“서방이 러시아 당국에게 인권을 존중하라고 상기시킬 때가 됐다”고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뉴 타임스 잡지 편집자 조야 스베토바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서방의 행동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배반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부패 지도자와 고문 경찰의 입국금지 조치가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의 출발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여보, 신세계 본점 가자”...12년만의 최대 규모 리뉴얼

2“오픈런 필수” 크플, 연 12% 수익률 ‘단기투자’ 후속 상품 출시

3김성태 기업은행장, 중소기업 대표 20명 만나 “중기 위기극복 지원” 약속

4아직도 줄 서서 기다려?…자녀 셋 낳으면 공항 '하이패스'

5"국내 제약·바이오 인수합병 상당수 1000억원 미만"

6“회장님 픽” 농협은행 ’밥심예금’…최고 3.1% 금리 눈길

7부모가 자녀 ‘틱톡’ 사용 시간관리…팔로우 목록도 확인

8취준생 10명 중 6명 공채보다 수시 선호, 그 이유는?

9네이버 AI 쇼핑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오픈…쿠팡 와우멤버십과 본격 경쟁

실시간 뉴스

1“여보, 신세계 본점 가자”...12년만의 최대 규모 리뉴얼

2“오픈런 필수” 크플, 연 12% 수익률 ‘단기투자’ 후속 상품 출시

3김성태 기업은행장, 중소기업 대표 20명 만나 “중기 위기극복 지원” 약속

4아직도 줄 서서 기다려?…자녀 셋 낳으면 공항 '하이패스'

5"국내 제약·바이오 인수합병 상당수 1000억원 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