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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다 망해도 신용불량자는 되지마라

사업하다 망해도 신용불량자는 되지마라



요즘 젊은이들 중 이용태(79) 삼보컴퓨터 창업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우리 나라 컴퓨터 산업의 산증인이다. 국내 최초 PC 양산,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서울시 신호등 시스템 및 정부전산화 시스템 구축 등 큰 획을 긋는 일을 많이 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퇴계학연구원을 찾았다. 11월 2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이 이사장을 만났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넘쳤다. 국내에서 처음 출시될 때 산 그의 아이폰3GS는 두 번째 만날 때 갤럭시S 3로 바뀌어 있었다.

“컴퓨터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 합니다. 이동 중에는 하버드대에서 서비스하는 철학과 심리학 강의를 들어요. 러닝머신으로 매일 운동을 할 때도 동영상을 봐요. 오디오북도 듣고요. 한 번은 부산에서 노인들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법을 강의한 적도 있습니다.” 이 이사장은 1980년 청계천의 한 가게를 인수해 삼보컴퓨터(당시 삼보전자엔지니어링)를 설립했다.

삼보컴퓨터는 1981년 1월 철판을 구부려 만든 박스에 모니터 대신 TV 세트를 얹어 처음 컴퓨터를 만들었다. 좀더 실용적으로 보완해 만든 PC는 같은 해 캐나다에 수출까지 했다. 국내 최초 PC 수출이었다. 이후 미국 등에서도 선전하며 승승장구 했다. 전 세계에 7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었고 2000년 매출은 4조원대에 달했다.

그는 1982년 문을 연 한국데이타통신(데이콤)의 초대사장이 됐다. 여기서 그는 정부전산화를 진두지휘했다. 이로써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주소지까지 가고,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정부 각 부처를 돌아야 하는 불편이 일거에 해결됐다.

이 이사장은 국내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망 서비스도 제공했다. ‘두루넷’을 통해서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고압송전선이 늦게 깔렸다.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한전은 당시 선진국에서 쓰던 알루미늄 접지선 대신 새로운 소재인 ‘광섬유’를 바로 도입했다. 선진국보다 먼저 전국적인 광섬유 통신망을 갖게 된 배경이다. 한전이 이 망을 활용해 통신사업을 하려고 하자 한국통신이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 중재로 한전의 통신망을 활용하되 한전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통신회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한전은 통신회사 지분을 10% 넘게 가질 수 없었다. 때문에 민간 회사의 지분 출자를 받기로 했다. “1996년 한전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삼보에서 ‘두루넷’을 맡아달라고요. 한전 담당자에게 커피 한 잔 사준 일이 없는데 하늘에서 공짜로 복이 떨어졌구나 싶었죠.”

그는 인터넷의 성장 가능성이 무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승승장구하던 두루넷은 1999년 국내 기업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됐다. 이 후 주가가 계속 올라 시가총액이 현대차보다 높을 정도였다. 두루넷은 모든 직원에서 스톡옵션을 줬다. 스톡옵션 역시 가치가 높아져 모든 직원이 아파트 한 채 값을 챙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제한하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 탓에 한전의 통신사업이 어려워졌다. 두루넷은 직접 외화를 빌려다 선을 깔아야 했다. 악재를 딛고 두루넷은 2001년 5월 100만 가입자를 넘었다. 한 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 등이 싼 값에 경쟁적으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가열됐다. 여기에 한전의 통신 자회사가 생기면서 악재가 겹쳤다. 나스닥에서 주식은 폭락했다. 2003년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삼보컴퓨터도 휘청거렸다. 결국 2005년 삼보컴퓨터까지 법정관리에 내몰렸다.

1 1991년 삼보컴퓨터 회장 시절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 이사장. 오른쪽 컴퓨터와 왼쪽의 붓이 대조적이다. 2 지난 9월 서울송전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하는 이용태 이사장.


90년대 초 태블릿PC 만들고도 실패이 이사장은 자신이 일군 기업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첫째는 기술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보는 이미 90년대 초에 태블릿PC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포터블 워크스테이션(이동식 서버)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제품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 이사장은 “경영을 잘못해서”라고 밝혔다.

“태블릿PC만 해도 개발만 했지 그걸 전담해서 팔 태블릿PC 영업팀도 꾸리지 않았어요. 이것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생산팀도 없었어요. 기존 PC와 같이 팔다 보니 판매직원들은 잘 팔리는 PC에만 치중했죠. 따로 생산팀이 없다 보니 생산직 직원들도 공을 많이 들여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태블릿PC보다는 데스크탑 생산을 선호했습니다.

시장에서 성공할 때까지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영업과 생산까지 지원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제품을 만들 때 새 회사를 차리듯이 예산을 확보해놔야 합니다. 재벌들이 사업하면 잘 된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풍부한 예산을 가지고 하니까. 이제 삼보가 다시 출발을 하는데, 어서 이익을 내서 그 돈으로 신제품 개발을 해야겠죠.”

둘째는 CEO가 직접 중요한 것은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나는 큰 그림만 그렸지 세세한 것은 담당자들에게 맡겨버렸다”며 “일을 하면서 중요한 요소들은 직접 CEO가 챙겨야 한다”고 밝혔다.

“비전도 세우고 먼 장래 이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물건이 손님을 행복하게 해줘야 되잖아요. 기업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 하는 걸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그렇다고 과장이 할 일, 대리가 할 일을 모두 CEO가 하라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벤처 사업이 우리 경제에 활력소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환경에서 한 번 잘못되면 집도 차압 당하고, 보증 선 친구도 잃습니다. 물론 새로운 제품이나 방식을 도입하는 모험은 필요하죠. 대신 열심히 발로 뛰어서 투자처를 찾든, 가지고 있는 돈을 쓰든 사업을 하다 망해도 신용불량자가 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생산 설비 없이도 승산 있다이 이사장과 장남인 이홍순 당시 부회장이 물러난 삼보컴퓨터는 2008년 법정관리를 끝냈다. 하지만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지난 8월 이 이사장의 차남인 이홍선 대표의 나래텔레콤(현 TG나래)이 삼보의 영업과 서비스권을 인수했다. 7년 만에 창업주 일가가 ‘삼보’라는 브랜드를 되찾은 것이다. 삼보컴퓨터의 생산설비 등은 모두 채권단에 의해 매각된다. 브랜드만 가지고도 승산이 있을까. 이 이사장은 “요즘은 IT회사가 밥집처럼 됐다”고 말했다.

“더 이상 IT는 천재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흔한 일이 됐죠. 밥집이 흔하지만 잘 되는 밥집은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면서 감동적인 서비스를 하면 잘 됩니다. 삼보도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가 감동받게 만든다면 방법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방법에 대해 이 이사장은 ‘시스템 인테그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통찰력을 가지고 시장을 분석하고 원하는 제품을 동업자들과 함께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적인 예다. 이 이사장은 “삼보는 이미 ‘이머신즈’같은 시스템 인테그레이션 제품을 만든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삼보는 미국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갖춘 ‘이머신즈’라는 PC를 499달러에 출시했다. 출시 9개월 만에 미국 소비자 시장(CM)에서 점유율 3위에 올랐다. 2위 부품업체를 모아 “지금 당신들이 파는 것의 몇 배를 팔 수 있다”며 “그러면 당신들도 1위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해 만든 제품이었다.

그는 7년째 ‘인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시간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면서 좋은 습관을 정해 실천하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동안 강의를 들은 사람만 17만명이나 된다. 100여명의 강사들이 전국에서 인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올해 그는 직접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돌며 50회 이상 강의했다. 그는 앞으로 ‘인성교육’ 운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기업이 잘 되려면 ‘인성’이라는 밑거름이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양심적으로 일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등 작은 것들이 몸에 베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기업도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죠. 앞으로 ‘인성교육’이 유행이 되고 풍속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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