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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국수 한 그릇 말아준 분 생각하며 나눠요

어린 시절 국수 한 그릇 말아준 분 생각하며 나눠요

부의 환원은 지역사회에 해야 한다. 노동일 민코코리아 대표의 지론이다. 그 대상에 그는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포함시킨다.
1953년 출생, 1981년 전남대 법대 졸업, 1982년~ 민코코리아(주) 창업, 대표이사, 2011년 보건복지부장관 나눔실천유공자 표창



“이것저것 새로운 복지사업을 벌이는 건 그래야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도와 군에 예산이 책정돼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해나갈 수 있죠.” 노동일(59) 민코코리아 대표는 “사업의 터전인 전남 곡성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방치하면 나중에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문제를 개인 기부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회와 국가에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고, 그와 별개로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이 행복합니다.”

2010년 그는 필리핀에서 곡성군으로 시집 온 카멜라씨 가족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다섯 가족 열여덟 명을 고향에 보냈다. 아이들로서는 첫 외갓집 방문이었다. 항공료 등으로 그는 1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에 기탁했다. 반응을 보고 곡성군이 다문화가정 고향방문사업 예산을 책정했다.

“불과 몇십년 전 우리나라 여성이 재일교포에게 시집가서 겪었던 일입니다. 그 시절엔 같은 동포니까 말이라도 통했죠. 이벤트성으로 벌이는 다문화가정 사업이 적지 않은데 그 나라 문화를 이제 이쪽의 배우자들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인 다문화가정의 갈등을 줄일 수 있어요. 곡성군에만 9개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꾸린 210여 개의 다문화가정이 있습니다.”

수녀회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쉼터로 마련한 ‘친정집’이 폐쇄 위기를 맞았을 땐 사재를 털어 조립식 주택을 지어주려고 했다. 친정집은 국적이 다른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모여 회포도 풀고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다. 엄마를 따라나선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런데 폐가에 꾸민 친정집이 명소가 되자 임대수입을 노린 집주인이 방을 빼라고 요구했다. 친정집을 꾸밀 때 보수 비용을 댔던 그가 대안으로 조립식 주택을 짓겠다고 나서자 이번에도 군이 그 일을 떠맡았다.

노 대표가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그의 회사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다문화가정 여성의 사정을 알고 나서다. 대학까지 나온 그녀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친정집 나들이 한 번 못했다.

“사실상 사기결혼을 당한 사람, 정신장애가 있는 남편에게 시집온 여성 등 딱한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 다문화가정 여성이 친정집에 못 가는 건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남자 쪽에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안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돈 받고 팔려왔다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건 예삿일이죠.”

한국말이 서툰 엄마 밑에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말이 어눌하다. 그 바람에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이 일도 도에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가 다문화가정의 자립만 돕는 건 아니다. 곡성경찰서 아동안전보호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 초등학교 여학생을 위해 조립식 주택을 짓고 있다. 경찰관과 1대1 결연을 맺은 아이다.

“다른 아이들과 광양제철소 견학을 갔는데 머리에 생긴 이 때문에 함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병사했고 아빠는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죠. 두 오빠 중 큰 오빠는 군에 입대했고 중학생인 작은오빠와 한방을 씁니다. 그런데 한방 쓰는 이 오빠가 정신장애가 있어요. 이 때문에 아빠는 물론 결연을 맺은 경찰관이 마음을 놓지 못했죠. 마침 LH공사에서 12월 20일까지 집을 지으면 화장실 달린 욕실을 제공해 준다기에 공동모금회 전남지회에 조립식 주택을 지어달라고 건축비 800만원을 지정 기탁했어요.”

모교인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엔 5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법학도와 후원자를 1대1로 맺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도 한다. 도움을 받을 학생 선발은 학생회에 일임했다. 4년째 그는 전남대 법대 동창회장도 맡고 있다. 전남대 의대에도 후원금을 냈다.

노 대표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생계를 떠맡은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남에게 신세지지 말라”고 가르쳤다. 조선대 부속중학교 2학년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장학금을 받았다. 전남대 법대 재학 시절엔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일주일에 1000원씩 집에서 용돈을 타 쓰는 다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학 때 상경해 서울시 7급 공무원(당시는 4급을) 시험을 치른 일도 있다.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대학을 마치기 위해 공무원의 길을 포기했다.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시험은 치르지 않았다. 취업보다 창업을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이듬해 그는 민코코리아를 창업했다. 민코코리아는 용광로용 소모형 온도계와 용광로에서 성분 측정을 위한 시료를 뽑아낼 때 쓰는 샘플러를 만든다. 그가 생산해 수입품을 대체했다. 이들 제품을 그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납품한다. 연간 매출액은 90여 억원, 직원 수는 17명이다. 그는 직원들은 모두 자신과 동반자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0입니다. 어느 여직원은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남편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습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직원들의 삶의 질에 더 신경을 쓰게 됐죠.”

한번은 1년 근무한 인도네시아인 직원이 퇴근 후 잔업이 있는 직장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잔업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도 동의했다. 그 후 다른 공장을 알아보더니 그냥 눌러앉았다. 거기서 다리가 절단되는 산재 사고가 난 것을 알고 마음을 돌린 것이었다. 그 직원과는 영어로 소통한다. 그는 “서로 다름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할 때 소통도 잘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나이 쉰 넘어 번 돈이 내 돈노 대표는 어음 거래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은행 돈도 쓰지 않는다. 젊은 날 회사를 키우겠다는 욕심에 외국에서 무리하게 기계를 들여왔다가 부도를 맞은 후 그렇게 결심했다. 은행 빚을 갚는데는 꼬박 7년이 걸렸다. 그 덕에 곧 이어 닥친 외환위기 때 오히려 돈을 벌었다. “쉰 넘어 번 돈이 진짜 내 돈이라는 소리를 실감했습니다. 젊어서 돈을 벌면 유혹도 많고 아무래도 한눈을 팔게 마련이죠.”

2006년 성실 납세자로 뽑혀 국세청장 표창을 받은 그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정이 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세청의 우리 회사 담당 직원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포스코와의 상생도 잘 이뤄져 저는 광양제철소에 일년에 한 번도 안 들어갑니다. 가장 중요한 거래처지만 선물 하나 주고받을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만큼 투명해진 거죠.”

중학생 시절 그가 어머니와 단칸방에 세들어 살 때의 일이다. 그 집에 문원회라는 세입자가 살았다. 그보다 10여 년 위였던 문씨는 작은 상회에서 일했다. 그때까지 그가 만난 어른 가운데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다.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한 문씨는 공부 잘하는 그를 퍽 아꼈다. 귀가해 야참으로 국수를 말 때면 그의 부인이 꼭 어린 동일을 챙겼다.

한여름 밤 누런 설탕을 얹은 시원한 국수는 별미였다. 상회 주인의 신임을 받은 문씨는 훗날 그가 설립한 사립중고교의 재단 이사를 지냈다. 노 대표는 어린 시절 그와 맺은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반듯하게 자란 그의 자녀들은 노 대표를 동기간처럼 따른다.

“저에게 나눔의 멘토 같은 분이죠. 그 어렵던 시절 국수 한 그릇엔 그 아저씨의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배려는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하죠. 아저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그런 저를 그 집 동생들이 따랐습니다. 아저씨가 저의 멘토였다면 제가 그 집 동생들의 모델이 된 셈이죠.” 노 대표는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당시 익명 회원이었으나 나중에 실명으로 전환했다.

“저 자신을 홍보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러웠습니다. 여기 저기서 기부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달갑지 않았고요. 그런데 5억원을 기부한 전남대에서 홍보 좀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 응했죠. 이를 계기로 아너 쪽도 실명으로 전환했습니다. 부탁 전화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얼굴드러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자녀에게는 유산의 일부만 물려줄 생각이다. 그가 세상과 나누는 것에 처음엔 반대하던 아내도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관심이 있다면 회사일을 가르쳐 물려줄 생각입니다. 가업 승계는 리스크도 있어요. 지역사회에 2대를 못 가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자식한테 줄 줄만 알았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죠. 무엇보다 지역 어른들을 섬기고 남들과 나누는 걸 가르쳐야 해요. 어렵사리 1000억원대 재산을 일구고 남을 위해서는 한 푼도 못 쓴 채 파산하는 사람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100억원을 대학에 기부했다면 회사는 망하더라도 장학기금은 남지 않습니까.”

그의 마지막 꿈은 곡성 땅에 노인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노인들이 청결한 환경에서 무료로 식사를 해결하고 문화적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곳이다. “이를테면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친정집’ 같은 곳이죠. 일손은 자원봉사자들이 돕게 하려고요. 이곳에 들어와 돈을 벌었으니 부의 환원도 여기에 해야죠.”

그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증이 도를 넘은 것 같아요. 대학 1학년 때부터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꿈도 꿀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부모 세대 탓도 있습니다. 자녀의 꿈을 부모가 만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아이의 취미마저 부모가 정해 주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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