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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해운업 버리고 조선업만으로 승부 건다

Issue - 해운업 버리고 조선업만으로 승부 건다

그룹 매출 28% 차지하는 STX팬오션 매각 추진…임원도 20% 줄여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한다.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해 중견그룹 오너 자리에 올랐다. 그런 두 사람이 위기를 맞았다. 모두 무리한 M&A 후 경기 침체라는 복병을 만나서다. 윤석금 회장이 이끄는 웅진그룹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STX그룹도 계열사를 팔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STX그룹이 지분 일부 매각을 추진 중인 중국 다롄시 장흥도 소재의 STX다롄 조선해양종합생산기지 전경.



STX그룹의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유럽발 금융위기로 세계 조선업계가 휘청거리면서 찾아왔다. 작년부터 상황은 더 악화됐다. 주력인 조선업에서 핵심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의 작년 영업이익은 1039억원으로 전년 대비 43.1% 감소했다. 조선업종과는 이와 잇몸의 관계인 해운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운업종 주력 계열사인 STX팬오션의 작년 매출은 5조7422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230억원이었다.

중국과 유럽에서 잇따라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사업규모를 키웠던 것도 업황이 침체된 요즘 들어서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현재 STX그룹의 은행부채는 10조원에 달해 연 이자부담만 해도 만만찮다. 특히 내년에만 1조 28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돼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결국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강 회장은 최근 KDB산업은행을 방문해 재무구조 개선책의 일환으로 그룹 내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STX팬오션을 매각할 뜻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지원 요청을 위해 산업은행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매각 의사도 같이 전했다는 것이다. 이는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조선 사업만을 주축으로 삼아 그룹 전체의 사업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다. STX 관계자는 “이미 국내외의 주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매각 협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강 회장이 2004년에 범양상선을 인수하며 이름을 바꾼 STX팬오션은 9월 기준 자산 규모가 7조4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벌크선(석탄 등 원자재를 나르는 건화물선) 해운업체다. 국내 해운업계 3위 회사로 세계 해운 경기가 좋던 2008년 한때 연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700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4월 기준 STX그룹 전체 매출(18조 4000억원) 가운데 28%를 차지했다. STX조선해양(옛 대동조선)과 함께 STX그룹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계열사로 꼽힌다.



부채 10조원 부담STX그룹이 이 회사의 매각 추진에 나선 것은 조선과 해운 두 업종 모두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더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돼서다. 내년과 내후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여기에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태에서 주력인 조선업을 유지하고 끌고 가려면 해운업 정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애초 그룹 내에서 STX팬오션은 중심축인 STX조선해양과 시너지를 추구하는 계열사였다. STX팬오션이 STX조선해양에 선박을 발주하면 STX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이나 STX엔진에 핵심 기자재를 발주해 서로 이익을 나눈다. 경기가 좋을 경우 이는 시너지로 나타나지만 반대면 모든 계열사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해운업은 주 거래처인 유럽의 경기 전망이 내년에도 어두워 타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STX팬오션의 주력인 벌크 물량은 컨테이너 쪽보다도 시황이 더 안 좋다.

2012년 3분기 기준 STX팬오션의 부채는 5조3700억원. 누적 영업손실은 2750억원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STX그룹은 조선업과 해운업이 주축인데 STX팬오션 매각은 향후 (전망이 더 안 좋은) 해운업 대신 조선업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 회장은 “앞으로 그룹 사업구조를 조선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플랜트와 에너지 분야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해외에서 전개하고 있는 조선 사업 일부도 정리 대상이 된다. STX그룹은 STX팬오션 매각을 결정한 직후인 12월 13일에 “중국 내 조선소 STX다롄 지분 일부도 매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STX다롄은 STX그룹이 보유한 STX차이나홀딩스의 자회사다.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키웠던 중국 내 조선·해양 생산기지다. 그룹 측에 따르면 매각 대상은 STX다롄 지분 중 30~40%다. 다만 일부 지분 매각이 여의치 않으면 아예 경영권을 파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STX그룹은 중국과 홍콩의 여러 투자자들과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STX다롄의 모기업인 STX차이나홀딩스의 현금가치가 1조원선인 것으로 보고있다. 즉 지분 30~40%를 예정대로 매각하면 3000억~4000억원 조달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위기를 극복하려는 STX그룹의 행보는 올해 들어 계속됐다. 5월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STX중공업 등 계열사 상장을 통한 1조원 현금 마련 등을 골자로 하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다. 이어 7월에 대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급한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후로는 STX OSV, STX에너지 매각 등에 나서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STX에너지는 12월에 일본의 금융그룹인 오릭스에 3600억원 규모의 지분(43%) 매각을 완료했다.

이탈리아 조선업체인 핀칸티에리와 협상이 진행 중이던 STX OSV 매각은 12월 21일에 합의가 완료됐다. 지분 50.75% 전량 매각으로 STX그룹은 배당 포함 768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밖에 임원 20%를 줄이는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이미 (주)STX와 STX팬오션 임원 여러 명에게는 해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작업 이뤄지면 재계 20위 밖으로STX그룹의 이런 발 빠른 움직임에 산업계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는 강덕수 회장이 과거 금호그룹이나 최근 웅진그룹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더 적극적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강 회장이 같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인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업황이 안좋은 사업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으로 풀이했다.

다른 하나는 덩치가 큰 STX팬오션의 매각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인데 업계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황이 계속 침체된 상황에서 매수자가 선뜻 나타날 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을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 M&A 전문가는 “STX팬오션은 알짜 회사이지만 업황이 바닥인 이 시점에서 매각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성기종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STX팬오션 매각이 이뤄지면 1조2000억~1조3000억원의 자금이 추가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2000년 쌍용중공업을 인수했고 10년 만에 매출을 100배 넘게 끌어올리는 신화를 썼다. STX그룹은 임직원 수만 5만4000명에 이르는 재계 12위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계열사 일부를 잇따라 정리하게 되면서 이 순위는 내려갈 전망이다. 이번에 매각 합의가 완료된 STX OSV에 이어 STX팬오션 매각도 예정대로 이뤄지면 재계 순위는 20위권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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