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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암에 걸리지 않고 지극히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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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두더지쥐의 미스터리 속속 밝혀져…심근경색·뇌중풍 예방·치료에 단서



아프리카 동북부의 땅속을 누비고 다니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미스터리의 동물이다. 길이 8cm, 무게 35g에 불과한 이 설치류는 20~300마리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간다. 몇 ㎞에 이르는 터널을 뚫어 휴식처와 화장실을 만들고 식량이 되는 식물뿌리를 찾아낸다. 놀라운 것은 포유동물이면서도 개미나 벌과 동일한 사회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지배자인 여왕 한 마리가 번식을 도맡는다. 그 아래에 여왕의 교미 상대인 1~3마리의 수컷, 전사 계급, 가장 덩치가 작은 일꾼 계급이 차례로 포진한다.

전사들은 굴에 침입하는 뱀과 싸운다. 이빨로 밀어내고 흙으로 굴을 막는다. 소속이 다른 개체들과도 싸운다. 두 군집이 파고 들어간 굴이 우연히 맞뚫리면 양측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일꾼들은 굴을 만들고 식량을 구하고 여왕과 새끼들을 돌본다. 이들의 사회성은 워낙 강해서 동물원에서 한 마리를 격리시켜 놓으면 죽고 만다. 미국 국립동물원의 데이비드 케슬러는 “집단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고 말한다. 포유류 중 이 같은 진(眞)사회성 동물은 다마라랜드두더지쥐를 포함해 2종뿐이다.



새로운 진통제 개발의 단초도 제공이들은 생리도 유별나다. 포유류 중 유일하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능력이 없는 변온동물이다. 땀샘이나 피하지방이 없는 점은 파충류와 동일하다. 피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염산이나 캡사이신(고추의 매운 성분)으로 문질러도 끄떡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의학적 관심이 집중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첫째, 엄청나게 장수한다. 설치류의 수명이 3년 안팎인데 비해 이들의 수명은 30년에 가깝다. 둘째 암이 없다. 전 세계의 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사육했지만 암에 걸린 개체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셋째, 노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생존 기간 내내 매우 활동성이 크고 뼈가 건강하며 번식 능력과 인지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넷째,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특별히 많이 포획하는 능력이 있다.

설치류는 전반적으로 유전자의 85%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의 노화와 장수, 통증과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이 벌거숭이두더지쥐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1년 10월 한·중·미 합동 연구팀은 그 유전자 2만2561개를 모두 해독했다. 지놈(유전체 전체) 지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차적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인간 및 생쥐의 지놈과 비교한 결과 장수, 암 저항능력, 저산소 환경 적응능력과 관련된 일부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연구를 주도한 ‘베이징지놈연구소(BGI)’는 지놈 지도를 온라인으로 무료 개방 중이다.

그 연구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이들이 산성이 강한 지하터널의 공기 속에서 멀쩡한 비결은 무엇일까. 2012년 9월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 저널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대학 팀의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이들 쥐를 산성 연기에 노출시켰다. 이런 경우 여타의 포유동물은 콧물을 흘리며 도망간다. 코에 있는 특별한 신경섬유가 활성화돼 3차 신경핵이라 불리는 뇌간의 신경 집단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성 연기에 노출된 들쥐나 생쥐는 이 부위가 고도로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연구팀은 신경세포가 발화할 때 흔히 나타나는 신경활동의 간접표지인 특정 단백질(c-Fos )을 측정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산성화에 끄떡없는 능력은 새로운 진통제 개발의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이 상처를 입었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은 상처 부위가 산성화되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2012년 6월에는 장수의 비결이 일부 드러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과 미국 텍사스대학, 뉴욕 시립대학의 공동연구 결과를 보자. 연구팀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기니아 피그, 들쥐 등 다른 6종의 친척 설치류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NRG-1 이란 단백질이 장수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단백질은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에 집중돼 있었는데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서는 다른 설치류에 비해 그 함량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생후 1일된 갓난 새끼나 26세의 고령을 가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지속적으로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는 말이다. 연구팀은 그토록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단백질과 장수와의 관계는 다른 설치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설치류의 공통된 형질과는 관련이 없는 독특한 형질이란 말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세포 노화(Aging Cell)저널에 발표됐다.

그에 앞서 5월에는 손상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능력이 유난히 뛰어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텍사스대학의 ‘바숍 장수 및 노화연구소’가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발표한 내용을 보자. 연구팀은 이 쥐의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ome)의 숫자가 다른 설치류에 비해 훨씬 많으며 간에서 이 같은 분해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에 앞서 2009년 이 쥐의 단백질은 평생토록 온전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었다. 이번에 그 이유를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손상된 단백질을 세포 내에서 좀더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면 세포기능이 지속적으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면서 “건강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속성”이라고 말했다.

이 쥐는 또한 간에 면역단백질 분해효소가 특히 많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효소는 면역계에서 생산된 후 기능을 다한 항체를 분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쥐의 간 조직에서는 유해산소에 의한 손상이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면역단백질 분해효소는 산화로 인해 손상된 단백질을 처리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2012년 2월에는 산소결핍증에 끄떡없는 이유도 일부 드러났다.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비결은 칼슘 차단이었다. 칼슘은 기억의 형성을 돕는 등 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지만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치명적이다. 문제는 뇌세포에서 산소가 고갈되면 칼슘 유입을 조절하는 평소의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심장 근육의 일부가 죽거나(심근경색), 뇌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뇌중풍)뇌세포가 죽는 이유가 이것이다. 혈액이 산소를 운반해주지 못하면 칼슘이 과다유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산소가 희박해도 칼슘 통로를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에 진화적으로 적응인간도 신생아 때는 이런 능력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없어진다. 일리노이대학 연구팀은 “빈 구두 상자 속에 200마리를 집어넣고 지하 1.2m에 파묻어 놓으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서 “이 쥐는 이런 환경에 진화적으로 적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능력은 심근경색과 뇌중풍의 예방과 치료법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연구하면 할수록 배울 것이 더욱 많아지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계속 되고 있다. 암을 원천 봉쇄하고 수명을 10배로 늘리는 유전자를 발견하는 날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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