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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금지 신청 불사” 해 바꿔 이어지는 법정공방

“판매금지 신청 불사” 해 바꿔 이어지는 법정공방

5개월 사이 5번 소송…가전·디스플레이 과점 심화로 의미 없는 소모전



자유시장 경제에서 비즈니스 경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나 다름 없다. 모든 기업은 다른 기업을 이기거나 앞서 더 큰 이익을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깎아 내리고 기업 비밀을 몰래 훔치는 ‘반칙’을 불사하기도 한다. 게다가 겹치는 사업이 많은 두세 기업이 과점을 형성한 시장이라면 담합 못지 않게 물밑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유통산업의 롯데와 신세계가 그렇고, 통신 시장의 SK와 KT가 그렇다.



사업 포트폴리오 겹쳐 과열 불가피하지만 그 어떤 ‘맞수’도 삼성과 LG, 두 그룹 앞에선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 것이다. 두 회사는 반세기에 걸쳐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우리나라 전자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왔다. 전자산업을 비롯한 주요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도 세웠다. 그러나 너무 닮은 게 문제였다. 디스플레이·가전·휴대폰·IT부품·화학 등 주력 사업마다 첨예한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때문에 경쟁은 쉽게 과열 양상을 보였다.

특히 최근 두 회사의 경쟁은 도를 넘어선 극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단순한 감정 싸움에서 시작해 특허 침해 소송, 나아가 상대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소송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두 기업의 ‘브레이크 없는 대결’은 정부까지 중재에 나설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은 디스플레이 분야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양분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지난 5개월사이 서로 주고 받은 소송은 총 5건이다. 싸움의 양상은 특허침해 소송과 맞소송, 특허 무효 심판 청구 등 삼성과 애플이 벌이는 소모적 특허전쟁의 모습을 닮았다.

발단은 지난해 4월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당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부문 임원급이 LG디스플레이로 이직하면서 기술 유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때부터 ‘빼갔느냐, 나갔느냐?’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논란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당사자들의 기소로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9월 법정공방으로 확대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OLED 기술 유출 관련 기록 21종과 세부 기술 18종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며칠 뒤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의 갤럭시S 시리즈, 갤럭시 노트, 갤럭시 탭 등에 사용된 OLED 패널 설계기술이 자신들의 핵심 특허 7건을 침해했다고 판단,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은 약 두 달 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OLED 관련 특허 7건에 대해 특허심판원에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하며 방어에 나선다. 그리고 한달 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LCD 제조 관련 AH-IPS 기술 등 관련 특허 7건에 대해 특허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범위를 OLED에서 LCD로 확대시키며 공세에 나선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이에 맞서 지난해 말 IPS 특허 3건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10.1’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완제품에 대한 판매금지신청은 특허공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응으로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자 삼성은 지난 15일 이 3건의 특허에 대해서도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을 청구한다.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이 갤럭시노트10.1에 채택한 PLS LCD 기술은 IPS 기술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삼성 측은 “삼성이 보유한 PLS라는 고유의 기술을 LG디스플레이가 ‘AH-IPS’라는 이름으로 LG중소형 LCD 패널에 임의적으로 적용했다”고 맞서고 있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마냥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며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냉장고 시장에서의 싸움도 이에 못지 않다. 이 역시 감정 싸움에서 시작돼 소송과 손해배상 청구,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7월이었다. 삼성전자는 당시 900ℓ 냉장고를 내놓으면서 ‘세계 최대용량’이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하지만 한달 만에 ‘세계 최대’ 타이틀을 뺏겼다. LG전자가 910ℓ 냉장고를 출시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유튜브와 인터넷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동영상을 게재했다. 삼성전자의 지펠 857ℓ 냉장고와 LG전자의 디오스 870ℓ 냉장고의 실제 용량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냉장고를 눕힌 후 물을 부었더니 삼성전자의 냉장고에 더 많은 물을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발끈한 LG전자는 삼성전자에 ‘해당광고 즉각 중지, 사과 의사 표시와 관련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내용증명으로 발송했다. 삼성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광고를 추가로 공개한다.

이번엔 세게 최대 용량을 다투는 삼성의 900ℓ 냉장고와 LG의 910ℓ 냉장고에 물·캔커피·참치캔 등을 넣어 용량을 측정했더니 삼성전자 냉장고에 물 8.3ℓ, 캔커피 68개, 참치캔 90개를 더 넣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격분한 LG전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삼성전자에게 해당 동영상 게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성은 나흘 뒤 동영상을 삭제했다.



냉장고 용량 다툼, 감정싸움 극에 달해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LG전자는 1월 11일 삼성전자 허위광고로 브랜드 가치가 최소 1% 이상 훼손됐고, 반박광고비로 5억여원이 소요됐다는 점을 들어 서울 남부지법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광고가 유튜브에 3개월 간 게재돼 조회수 267만건을 기록했다”며 “이 영향으로 전략 제품이었던 910ℓ 냉장고 판매에 차질이 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못 참겠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동영상 내용이 사실임에도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LG가 소송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모든 법적인 수단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두 회사가 다툰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삼성과 LG의 창업주인 이병철·구인회 전 회장은 원래 막역한 사이였다가 1969년 삼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하면서 관계가 서먹해졌다. 금성사(현 LG전자)가 장악한 국내 전자산업에 삼성이 뛰어든 것이다. 이때부터 두 회사는 1970~80년대 TV, 1990년대 반도체와 휴대전화, 2000년대 디스플레이 가전 등 꾸준히 전선을 확대하며 ‘40년 전쟁’을 이어왔다.

물론 경쟁의 순기능은 컸다. TV가 대표적이다. 브라운관TV에서 평판TV로 넘어가는 시기 두 회사는 LCD 패널에서 TV 판촉전에 이르기까지 숱한 경쟁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2006년 세계 TV 시장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분야에서도 같은 식으로 세계 1위 싸움을 하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 대한민국 상위 10개 그룹 가운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삼성과 LG가 유일하다. 서로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득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분석은 과점 현상의 심화다. 현재 두 회사는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디스플레이 같은 부품까지 제품군이 겹치는데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품목이 많다. 특히 국내에서 두 회사를 제외하면 전자·IT분야에서 경쟁 상대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상대 회사를 겨냥한 전략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툼이 격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점 시장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격차가 벌어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별다른 분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의 마케팅에 일일이 대응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또 다른 갈등 원인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바로 LG전자의 달라진 전략이다. LG는 최근 몇 년 사이 삼성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를 앞세워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사이 스마트폰 대응이 늦었던 LG는 실적 부진으로 수모를 겪었다. 결국 지난해 말 구본무 LG회장은 ‘시장 선도’를 화두로 제시하며 공격경영을 선포했다. 삼성과의 갈등이 심화된 것도 LG의 이 같은 분위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디스플레이와 냉장고 모두 법정 소송이란 공세를 먼저 취한 것은 LG였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타산지석으로 삼은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 선구자인 애플과 소송을 벌이면서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선두 기업과의 분쟁을 하는 것은 2등 입장에서 밑질 것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OLED TV 등 일부 기술에서 LG가 앞서나가면서 삼성이 다급해진 것을 분쟁의 원인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LG전자가 차세대 TV인 OLED 패널에서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루면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삼성이 조급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소모전 자제해야” 목소리싸움이 격렬해지자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계와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두 회사가 ‘내전’에 힘을 소진하면 글로벌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진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은 “중국이 빠르게 추격해 오고 있고, 일본이 재기를 꿈꾸는 시점에서 연구개발(R&D) 경쟁을 하기보다는 마케팅과 소송전에 힘을 쏟는 집안 싸움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협력사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자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이나 LG가 싸우면 그 아래 협력사들은 양쪽 눈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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