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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한국 첩보영화의 격을 높이다

Culture - 한국 첩보영화의 격을 높이다

북한 특수요원과 국정원 요원의 베를린 추격전…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의 절묘한 조화
남한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오른쪽)는 작전 중 표종성(하정우)이 끼어들며 일이 틀어지자 그를 표적으로 쫓기 시작한다.



영화 ‘베를린’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부당거래’(2010년)를 먼저 떠올려보자. 류승완 감독에게 ‘액션 키드’라는 별칭이 따른 작품이다. 액션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액션’만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데뷔작부터 그의 액션 연출력과 액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이미 공인 받은 터였다. 하지만 이 ‘액션 사랑’은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언제나 류승완의 액션은 새롭고 훌륭했다. 하지만 인물 구성이나 드라마의 밀도보다 액션에 대한 평가가 항상 앞섰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에 대한 고정관념을 날려버렸다.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몸짓이 그대로 액션이 되는 유려한 연출,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부‘ 당거래’가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베를린’을 통해 류승완 감독은 최고작이라는 수식이 너무 일찍 터져나왔음을 입증한다. 현재까지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은 ‘베를린’이다. 아마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바뀌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와 액션의 조화기대했던 대로다. ‘베를린’은 ‘초대형 액션 프로젝트’라는 수식에 부합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완성도의 첫 번째 요소는 배우다.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네 배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베를린’ 속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마치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 상대의 움직임 하나에도 예민하게 영향 받는 존재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상대의 미묘한 심리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네 배우의 리액션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한다.

이야기의 중심엔 표종성(하정우)이 있다. 그는 베를린에서 불법 무기거래를 주도하는 북한 최고의 특수요원이다. 남한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는 작전 중 표종성이 끼어들며 일을 틀어지자 그를 표적으로 쫓기 시작한다. 베를린 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는 련정희(전지현)는 표종성의 아내이자 역시 비밀요원이고, 김정은 정권의 비밀 작전 임무를 숨기고 내려온 비밀요원 동명수(류승범)는 표종성을 견제하고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해 내려왔다.

류승완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분명하게 캐릭터와 배우의 시너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각 배우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를 살리는 범위에서 새로운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상당히 상업적으로 영리한 계산으로 보이는데 그 결과가 훌륭하다.

한석규는 ‘쉬리’(1999)의 10년 뒤를 연상케 하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석규의 트레이드마크인 신경질적인 추적자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하정우는 ‘추격자’(2008) ‘황해’(2010) 등을 통해 쌓아온 쫓기는 자의 절박한 냄새를 한층 더 진하게 풍기고, 류승범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광기를 표출한다.



냉전의 기운 간직한 낯선 공간발군은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자신의 아이콘으로 완성한 여성스러움과 섹시한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세 남자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전지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작품인 ‘4인용 식탁’의 식물적인 이미지를 되살리면서 동시에 견고한 힘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사이에서 이토록 강건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미션이지만, 역시 전지현은 해낸다. ‘도둑들’(2012)이 ‘전지현은 살아있다’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면 ‘베를린’은 ‘전지현은 계속된다’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베를린이라는 낯선 공간도 영화의 감상을 자극한다. 냉전의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한 베를린의 유령 같은 공간감은 이 영화의 중요한 정서적 축이다. 차가우면서도 아스라한 화면의 톤 앤 매너는 위기에 처한 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훌륭한 장치다. 류승완표 액션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날것의 액션 대신 마치 리듬을 타는 듯한 절제된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 영화의 싸움은 길거리 개싸움이 아닌, 고도로 훈련 받은 요원들의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막처럼, 이야기의 분기점을 정해주는 액션 신은 이야기와의 조화가 탁월할 뿐 아니라 그 자체의 완성도도 흠잡을 데 없다. 이젠 한국 관객이 ‘본’이나 ‘제임스 본드’를 마냥 부러워할 일은 없겠다. 다만 빠른 속도로 영화가 전개되는 터라, 초반에 인물들의 사연과 관계를 한 눈에 정리하긴 다소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퍼즐 맞추기 대신 심리 변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곧 이야기가 한 축으로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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