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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인 줄 알면서 왜 빠져드나

저질인 줄 알면서 왜 빠져드나

랩가수 카니예 웨스트의 여친 킴 카다시안과 그 자매에게 미국이 열광한다. 시청자는 그들의 리얼리티쇼를 보면서 지위 상승 욕구와 지적 우월감을 느낀다


지난 12월 30일 랩가수 카니예 웨스트는 애틀랜틱시티 공연 도중 긴급 뉴스를 전했다. “음악을 멈춰 주세요”라고 웨스트는 외쳤다. “나의 베이비 마마를 위해 함성을 질러주세요.” 베이비 마마(baby mama)란 결혼한 배우자는 아니지만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라는 뜻이다. 카니예의 여자친구이자 새 노래 ‘Perfect Bitch’의 주제인 모델 겸 배우 킴 카다시안이 임신했다는 이야기였다. 팬 5000명이 기꺼이 열광적인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선정적인 대중매체는 군침을 흘렸고, 트위트계는 각종 추측과 축하 메시지로 들끓었다. 그러면서 우리 중 일부(사실 몇 명 되지 않는다)에게는 카다시안이 왜 그렇게 대중의 주목을 끄는지 또다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영국에 지지 않으려고 미국 왕족인 카니예 웨스트와 카다시안이 후계자를 우리에게 주려고 한다”고 보도했다(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는 지난 12월 초 임신을 발표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카다시안을 거의 몰랐다.

나의 알레르기 같은 민감성은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선정적인 대중매체가 나보다 수준이 낮은 건 절대 아니다. 내가 키플링(영국 소설가 겸 시인)과 키츠(영국 낭만주의 시인)를 좋아한다고 카다시안 자매들(킴, 클로에, 코트니)을 좋아하지말라는 법은 없다. 또 리얼리티 TV가 천박하며 포르노 장르라고 생각하는 것도 결코아니다. 실제로 나는 선정적이라고 하는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포스트와 데일리 메일의 충실한 독자다.

10년 전 헤비메탈 가수 오지 오스번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The Osbournes)’도 즐겨 봤다. 물론 영양가는 없었지만 오스본은 재능이 뛰어나고 때로는 아주 웃겼다. 하지만 미모의 백인 전처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전설적인 흑인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의 변호사였던 고(故) 로버트 카다시안의 딸들에게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

카다시안의 임신 소식과 언론의 열띤 보도 때문에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카다시안 가족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카다시안의 TV 쇼를 보고, 책을 읽고, 가십 잡지와 유명 인사 블로그를 샅샅히 뒤졌다. 카다시안에 관해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점은 두 가지 연관된 사실로 요약된다. 첫째는 그녀가 상당히 풍만한 엉덩이를 가졌다는 사실이고(사진에 찍히고, 무인항공기 공격 표적보다 더 자세히 분석됐다), 둘째는 카다시안은 수많이 다운로드된 섹스 테이프로 배우에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나온 광고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카다시안 카드(Kardashian Kard)’는 직불카드로 코네티컷주 검찰총장이 터무니없이 비싼 수수료에 이의를 제기하자 시장에서 곧바로 퇴출됐다. 킴, 클로에, 코트니 카다시안 세 자매가 광고에 나온 다이어트 제품 ‘퀵트림(QuickTrim)’은 건강과 관련된 ‘거짓, 오도, 근거 없는(false, misleading, and unsubstantiated)’ 주장으로 집단소송에 걸렸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박식하기를 원한다. 이제 미국이 또 다른 카다시안(태어날 아기)으로 축복받게 됐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광기에 참여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

카다시안 가족이 명성을 얻은 이유를 파헤치려고 2007년부터 방영된 인기 최고인 그들의 리얼리티 TV 쇼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를 전편 섭렵했다. 그 쇼는 인기가 대단해 세가지 속편이 제작됐다.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 맨 첫 회에 나온 첫 대화는 그들이 명성을 얻게 된 이유를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킴이 이 쇼의 스타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그녀가 가장 예쁘며, 리얼리티 쇼에선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 킴의 ‘풍만한 엉덩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공식 소개됐을 때 우리는 킴이 ‘의상 스타일리스트(wardrobe stylist)’라고 들었다. 그러나 쇼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녀의 이력서도 길어졌다.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그녀의 이력은 새로운 직업을 이렇게 압축한다. “킴 카다시안은 미국의 사교계 명사, TV 유명인사, 여성 사업가, 패션 디자이너, 모델, 저술가, 배우다(socialite, television personality, businesswoman, fashion designer, model, author, and actress).”

하지만 실제 장기와 선전된 재능은 거꾸로 배열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패리스 힐튼의 위키피디아 소개는 “사교계 명사, TV 유명인사, 여성 사업가, 패션 디자이너, 모험기업가, 모델, 배우, 제작자, 저술가, 가수(socialite, television personality, businesswoman, fashion designer, entrepreneur, model, actress, producer, author, and singer)”로 나와 있다. 순서가 거꾸로 돼야 옳지 않겠나?

대다수 리얼리티 쇼처럼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에 나오는 드라마는 연출됐다. 용서해줄 만한 일이지만 매일의 일상사를 보여줘야 한다는 원칙은 거의 무시된다. 유튜브 사용자 50만 명이 카다시안 자매들이 “애완동물 가게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짓는” 비디오를 본 이유가 뭘 까? 확실치 않다. 어쩌면 이런 대화 때문일지 모른다.

“근데 엄마가 새로운 가족(애완견)을 환영할까?” 킴 카다시안의 데이트 상대(스포츠 스타와 가수들이 계속 바뀐다)를 제외하면 이 리얼리티 쇼는 그저 그런 연속극(a soap opera of the commonplace)에 불과하다.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와 여러 속편을 수십 편 훑어본 다음엔 픽션 세계에서 그 자매들을 추적했다. 그들은 작가로서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소설 ‘돌하우스(Dollhouse)’를 합작으로 써냈다.

그 소설에서 코트니, 킴, 클로에는 야심만만하고 똑똑한 로메로 가족으로 변신한다. 그들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쓴 편지에서 작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로메로 자매 중 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진다. 잡지 표지에 등장하고, 패션 아이콘이 되며,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파파라치가 늘 따라붙고, 모든 레드카펫 행사에 초대받는다. 그녀는 할리우드 왕족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문학 세계에선 카다시안 자매가 더 심한 허구화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내면의 약점을 고칠 수 있다. 카다시안 자매 중 한 명의 대역인 극중 인물 카스(사실 난 그녀가 킴인지, 클로에인지, 코트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난해한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세계화에 관한 책을 찾아보려고” 도서관에 가는 도중에 멋진 남자를 만난다.

소설에서 카다시안 자매의 다른 대역은 이전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으면 졸음이 왔지만 최근엔 그가 “약간 흥미롭고 똑똑하며 기이하게 심리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적어도 카다시안 자매는 자신들의 지적인 평판을 자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소설화된 카다시안 자매는 대부분 TV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아사이베리(아마존 열대우림 야자열매) 스무디를 마시고, 결혼한 뒤 곧바로 이혼하고(그런 일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면 갑자기 모든 사람이 그녀가 누군지 알게 돼 경력에 도움이 된다), 늘 남자 이야기를 끝없이 한다. ‘돌하우스’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그 소설을 읽어도 카다시안 자매를 더 잘 알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카다시안 자매만 지목해서 못마땅해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리얼리티쇼 세계에는 킴 카다시안보다 더 경박한 유명인사들이 있고,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보다 도덕적으로 더 의심스러운 쇼가 있다. 리얼리티 쇼에 나온 모든 바보 같은 말과 부적절한 의상을 모아 소개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웹사이트 데일리 메일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카다시안 자매는 도덕적 실패(10대 임신, 난잡한 관계, 일부다처제 등)를 다루는 인기 리얼리티쇼들보다는 수준이 높다.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의 줄거리는 비교적 밝다. 뉴스 웹사이트의 헤드라인을 보면 경박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기 있는 다른 리얼리티쇼 주인공들보다는 카다시안 자매가 낫다.

미디어는 자유시장 원칙을 따라선 안 되며 독자와 시청자가 좋아하는 콘텐트를 제공해선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미국의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런 탐닉이 상당히 거슬릴 것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감시단체 ‘미국의 미디어 문제(Media Matters for America)’는 “지난 1년 반 동안 미국의 주요 뉴스 매체들은 카다시안 자매를 ‘해양 산성화’ 같은 자연 재앙보다 40배 이상 다뤘다”고 질책했다. 미국이 피상적인 대중문화를 도려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사회 변화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실제로 카다시안 자매는 미국 문화 쇠퇴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된다. 미국인들은 과거 진지함을 중시했지만 사회가 ‘지나치게 단순화되면서(dumbed down)’ 그 진지함을 저질 오락으로 대체했다는 지적이다. 드라마 ‘매드멘’에서 주인공을 맡은 존 햄은 패리스 힐튼과 킴 카다시안을 미국에서 “어리석음이 찬양되는(stupidity is certainly celebrated)” 증거로 지목했다.

“미국 문화에서는 확실한 멍청이 행세가 돈이 되는 상품(Being a f--king idiot is a valuable commodity in this culture)”이라고 햄은 영국판 엘 잡지에 말했다. “큰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다시안 열광은 새로운 현상도, 특별히 미국적인 현상도 아니다. 영국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최근 ‘세기의 왕가슴’으로 불리는 영국의 섹시 슈퍼모델 케이티 프라이스를 모델로 한 소설 ‘라이오넬 아스보’를 발표했다)는 영국인들이 “실리콘 자루 두 개(성형으로 확대한 가슴을 뜻한다)를 숭배한다(worshiping two bags of silicone)”고 개탄했다.

또 다른 영국 소설가 린다 라 플랜트는 프라이스가 대필 작가를 동원해 펴낸 베스트셀러 소설 8권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자들보다 더 많은 책을 판다고 한탄했다. 에이미스는 프라이스의 소설 재킷에 인쇄된 ‘최고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이 “그 안에 든 내용보다 더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가 카다시안 자매에게 도취되기 오래전인 2001년, 스티븐 라이스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리얼리티 TV 스타들에 대한 미국의 집착을 연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리얼리티쇼를 좋아하는 시청자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해주는 가장 뚜렷한 태도는 지위를 향한 욕구(the desire for status)다. 리얼리티쇼 팬은 다른 사람들보다 ‘내겐 명망이 중요하다’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 더 좋다’는 언급에 동의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런 감정은 특별히 미국적이지도 않고 현시대에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동물농장’과 ‘1984년’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40년 에세이 ‘보이즈 위클리즈(Boys’ Weeklies)’에서 영국 청소년을 매료시키는 비싼 엘리트 사립학교를 무대로 한 모험 소설의 인기를 비판했다.

오웰은 “이런 싸구려 통속소설은 의도적으로 독자를 부자가 되는 상상의 세계로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또 ‘엘리트’ 학교 생활을 멋지고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그런 소설은 그런 생활을 염원하고 상상하고 정신적으로 거기서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미국인들도 ‘부자가 되는 상상’을 자주한다.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상류층을 향한 부러움에는 좀 덜 시달린다. 카다시안 자매나 브라보 TV에 방영되는 ‘리얼 하우스와이브즈(Real Housewives)’라는 시리즈 주인공들은 물질적인 부는 많이 갖고 있지만 귀족적인 갑갑함이나 엘리트 의식은 없다.

그 두 가지는 신분상승을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나 ‘리얼 하우스와이브즈’는 부자가 특별한 재주 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지만 우린 그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도덕적이라고 느낀다.

그 많은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를 다 봐도 킴 카다시안에게 연대감을 가질 수 없었다. 여전히 그녀의 사생활에 관심이 가지않았다. 물론 그녀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특별히 좋지도 않다. 그녀는 가수로도 활동하지만 노래는 전문가들이 만들어주고, 목소리는 소프트웨어로 수정된다. 그녀는 소설을 낸 작가지만 전문 대필가의 도움이 있었다. 그녀는 사업가지만 힘든 일은 다른 사람이 해준다. 그러나 점차 나는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흥미로운 부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킴 카다시안은 삶의 모든 이점을 누리지만 할리우드엔 그런 사람이 많다. 기자들이 인정할 만한 특별한 재능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은행계좌에 쌓인 돈을 보면 많은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제품을 그녀가 만들어내는 게 분명하다. 고급 막대사탕 광고에 출연시키려고 그녀의 은행계좌에 막대한 돈을 왜 퍼붓는지(슈거 팩토리라는 회사가 그랬다)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시장은 시장 가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한다(But the market pays market value). 그냥 반사적으로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은 예를들면 추상화를 보고 “내 아들도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무시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나?

카다시안 자매는 대단한 소설을 내지도 못했고, 특별히 볼 만한 TV 쇼도 못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옥시전 네트워크가 어느 애틀랜타 래퍼의 여자 10명과 자녀 11명을 다루는 리얼리티 쇼 ‘올 마이 베이비스 마마스(All My Babies’ Mamas)’를 방영한다고 발표한 시점에서 카니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이 곧 태자를 생산할 것이라는 뉴스는 거의 천연기념물처럼 진기할 정도다.

나로서는 카다시안의 세계에 완전히 취한 뒤에 군중의 광기, 아니 미국인의 의지에 따라 카니예의 ‘베이비 마마’를 위해 마지 못해 ‘함성’을 질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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