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당신에게 쉼과 사색이 명약
숨가쁜 당신에게 쉼과 사색이 명약
이시형 박사는 2007년 74세의 나이에 산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들렀다 마음을 뺏긴 이 곳 강원도 홍천 산골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세웠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건강한 생활습관과 환경을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삼겠다”며 세로토닌문화원을 만들었다. 2010년부터는 삼각산 인수봉 아래 ‘병원 없는 마을’을 건립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모든 활동의 화두는 ‘쉼’과 ‘산’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여든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줄 알았더라면 인생설계를 분명 달리했을 것”이라며 “살다 보니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은 후회할 시간조차 없더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꿈과 열정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산에서 배운 지혜를 담은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를 펴냈다.
대구 출신인 이시형 박사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 박사를 받았다. 강북삼성병원장·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을 지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홧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들었다. 『이시형처럼 살아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 60여권의 책을 냈고, 수많은 강연으로 대중과 만났다.
자연 속에서 병 고치며 인생 공부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여정이지만 그는 “돌아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참으로 힘든 질곡의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5세 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열세 식구의 가장 노릇을 했다. 의사가 된 후 앞만 보고 달려 국내 정신의학계의 권위자가 됐다. 그런데 몸에 이상이 왔다. 46세 때였다. 무릎에는 퇴행성 관절염이 와서 지팡이 신세를 졌고 앉지도 못할 만큼 허리 디스크도 심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이 박사는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 수술도 거부하고, 약을 끊었다. 대신 생활습관을 개선해 스트레스와 병을 극복하려 했다. 자연의학·생활습관의학 공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가 세운 힐리언스 선마을에는 고압전선도, 안테나도 없다. 출구가 완전히 가려져 있어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다.
휴대전화는 안 터지고 TV·라디오·인터넷·신문도 볼 수 없다. 이 박사는 “힐링 파워를 키우기 위해서는 슬로우(slow)·심플(simple)·스몰(small) 이 3S만 지키면 되는데 선마을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쉬엄쉬엄 올라가 바위도 보고 나무 냄새도 맡고 물소리도 들으면서 그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다”며 “현대인들에겐 멈춤과 사색이 필요한데 산이야말로 최적의 무대”라고 말했다.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환자들이 ‘죽으려고’ 산에 갑니다. 모든 걸 체념한 채 산속에 묻혀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소박한 생활을 하지요. 제 손으로 지은 채소밭에 신선한 야채를 먹고 살다 보니 죽기는 커녕 10년, 20년 기적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산속에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보면 결코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산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채소와 함께 우주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곤 합
니다.”
그는 자연에서의 힐링을 통해 ‘뇌 온도’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기계도 과열되면 고장이 나는 법인데 휴식 없이 달리는 현대인들의 뇌가 성할 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뇌 온도를 측정한 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뇌에 열이 나면 정교하게 얽혀 있는 뇌신경망이 제대로 돌아가질 못해 주의집중은 물론 계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처방이 휴식입니다. 자동차 엔진을 냉각수로 식히듯이 뇌를 식혀야 하는 것이죠. 뇌과학에선 ‘쿨 다운(Cool Dow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열 받는다’며 찬공기를 쐬거나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일종의 쿨다운 기법입니다. 아무 일 말고 그냥 멍하니 산만 바라보고 있어도 됩니다.”
뇌 온도를 낮추기 위해선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더, 더, 더’를 외치는 사람은 언제나 부족감·불만감·결핍감과 함께 항상 거지 근성으로 쫓기고, 쪼들리며, 시달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도파민’이다.
휴식으로 ‘뇌 온도’ 낮춰야“뇌 속의 이 호르몬은 뭔가를 이루고 싶을 때, 갖고 싶을 때 가슴이 설레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목표가 생기면 도파민 분비가 시작됩니다.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도파민 분비량이 늘고 손에 잡으면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러나 불행히 이런 들뜬 기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큰둥, 당연할 걸로 됩니다. 이게 도파민의 약점, 습관성입니다. 현재 가진 것이 모자라 보이고 결국 더 큰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도파민적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에겐 끝이 없습니다. 결국 늘 굶주리고 부족한 영혼으로 살게 됩니다.”
‘걷기’도 그가 요즘 강조하는 힐링의 한 요소다. 친구와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도 걸으며 하는 게 생산적이고, 아이를 꾸중할 때도 앉혀 놓고 하는 것보다 잔소리가 짧아진다는 것이다. “누구도 걸으면서 언성을 높이진 않습니다. 걸으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뇌과학적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걸으면 평화와 쾌적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걸으면 대지를 밟는 충실감이 온몸으로 전달되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산과 걷기를 통한 휴식, 이게 바쁜 당신에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처방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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