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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preneurship - “부러지지 말고 휘어져라”

entrepreneurship - “부러지지 말고 휘어져라”

지오매직의 CEO 핑푸, 고아였을 때 겪었던 고난이 회사 경영과 삶에 끼친 영향을 털어놓는다


핑푸는 상하이에서 자영업을 하는 가정에서 마냥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여덟 살이 됐을 때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가족들이 한 명씩 ‘반동’으로 몰려 “산으로 올라가거나 시골로 내려갔다”고 그녀는 말했다. 공산당 노동개조농장으로 끌려갔다는 뜻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도 홍위병이 찾아왔다. 그들은 핑푸에게 지금까지 숙모와 삼촌에게 입양됐었다며 강제로 기차에 태워 고향 난징으로 보냈다. 핑푸는 네 살 난 친동생과 함께 엄격한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다. 갑자기 고아가 된 자매는 ‘검은 피’로 분류돼 새로 등장한 공산당 엘리트의 박해를 받았다.

최근 나온 핑푸의 회고록 ‘부러지지 말고 휘어져라(Bend, Not Break)’는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로 시작된다. 문화혁명의 어두운 시절부터 돈 한 푼 없이 영어 세 마디(thank you, hello, help)만 알고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한 일, 그 다음 컴퓨터 프로그래밍계에서 두각을 나타내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업가 중 한 명이 된 인생 궤적을 돌이킨 책이다.

현재 핑푸는 지오매직(Geomagic,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에 활용되는 3D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설립자 겸 CEO다. 오바마 대통령의 혁신·기업가정신 국가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핑푸를 만나 인내심과 결코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정신, 어떤 어려움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고록에서 문화혁명 당시 상하이에서 성장하다가 여덟 살 때 홍위병에 의해 부모와 헤어져 난징에서 어린 동생과 살아간 대목을 읽으면서 그 어린 나이에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린이는 적응력이 뛰어나다. 우리는 어릴땐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닥치는대로 해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어렸기 때문이었다. 요리는 늘 할 줄 알았다. 어릴 때 엄마 따라 부엌에서 많이 지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그냥 하면 됐다.

문화혁명 당시 공개처형이나 집단 성폭행 등 참상을 돌이켜 볼 때 과거 청산과 화해 작업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나?

중국 내부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초 개방 바람이 불면서 문화혁명 참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문학운동이 일어났다. 베트남전 후 일어난 문학운동과 아주 비슷하다. 그로 인해 전쟁과 평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중국은 외부에는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체면을 중시하고 ‘집안의 흠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개념 때문이다. 중국 안과 밖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홍위병을 두고 ‘파리대왕’(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의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들 중 일부가 현재 중국에서 권력을 잡지 않았는가? 그들의 과거 행적을 혁명 열기에 휩쓸린 젊은 시절의 실수로 봐줄 수 있나?

홍위병 출신 중 다수는 현재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그러나 나는 최근 세대교체가 된 지도부에 희망을 건다. 물론 다수는 ‘태자당’으로 불린다. 부모가 권력자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처럼 문화혁명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도 상당수 있다. 그들도 나처럼 그 10여 년 동안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모진 조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으리라 생각한다.

회고록에서 매우 감동적인 대목 중 하나는 그처럼 끔찍한 시절에 사람들이 베푼 작은 선행이었다. 당신이 기차에서 추위에 떨 때 자기 스웨터를 벗어 준 홍위병, 당신이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문밖에 몰래 음식을 놓아둔 사람 등. 그런 친절한 행동이 당시엔 큰 의미가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도 늘 동정과 이해를 실천하려고 한다. 그 끔찍하고 어둡던 시절에는 그런 작은 친절이 주변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우리 인간은 관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에겐 대단한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생명선과 같았다. 요즘 내가 경제적으로든 여러 면에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늘 옛일을 생각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려고 노력한다.

회고록에 나오는 세한삼우(歲寒三友)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상하이 아버지는 앞으로 끔찍한 일이 닥친다고 예측했다. 중국이 혼돈으로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세한삼우(겨울철의 세 친구라는 뜻)를 잘 기억해 두라고 했다. 엄동설한을 꿋꿋이 버텨내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가리킨다. 힘든 시절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용기, 유연성, 인내를 상징한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나가 그 나무들을 보여 줬다. 그 이후로 세한삼우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철학이 됐다.

홍위병이 일기를 태웠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한 결과가 이 책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나?

책 끝부분에서 현재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보잘것없었던 나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난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일기가 내 친구였다. 그들이 내 일기를 태우자 그 충격으로 피부에 발진이 돋았다. 오랫동안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책도 2006년부터 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핑계거리도 있었다. 내 딸이 너무 어렸다. 딸이 18세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잠재의식에서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무엇인가 생각날 때마다 기록했다. 딸을 위해서였다. 출판할 생각은 없었다. 책을 내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중국에선 출간되지 않았나?

펭귄 출판사 중국지사는 내 책이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중국 지도부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지도부는 더 진보적이기를 기대한다. 기회가 온다면 그들이 중국을 더욱 개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1년 정도 지나 새 지도부가 자리 잡힌 다음 중국에서 책을 내도 괜찮지 않나 싶다.

이제는 중국에 갈 수 있나? 중국의 강제낙태 실상을 파헤친 대학 논문 때문에 추방됐었는데 그동안 당국의 정책이 완화됐나?

미국 시민이 된 뒤에야 중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에 살면서 자신이 너무 중국적이라고 느꼈는데 중국에 가면 너무 미국적이라고 생각된다고 책에 썼다. 이중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운가?

기업가와 지역사회 지도자가 되면서 사람들에게 중국의 진정한 면모를 알려야 할 책임을 느꼈다. 그러나 중국에 있을 때는 중국을 연구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었다. 공산당 자료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자료와 책으로 진지한 연구가 가능하다. 공부를 하다 보니 문화혁명 시절은 진정한 중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은 수천 년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졌다. 유대인대학살이 독일을 정의하지 않는 것처럼 문화혁명이 중국을 규정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 얻은 교훈이 나중에 CEO가 됐을 때 처신에 큰 도움이 된 듯한데.

여덟 살 이전에 배웠던 것들이 내 인생관을 형성했다. 사업에 사회의식 적용하기는 공산주의에서 얻은 교훈이 바탕이 된 것 같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개념이다. 자본주의 천국인 미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사회의식 운동이 부흥했다. 많은 사업가가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 후세대, 지구, 인류 전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또는 녹색당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결점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의식을 가진 자본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도 충분히 좋은 면이 있고 자유시장은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에서 거부감을 갖는 요소는 불평등과 이기주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좋은 개념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다. 사회의식을 가진 자본주의 운동이 나의 믿음이다.

세계가 평평하지 않고 3차원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철학이 매우 독특하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일자리 창출을 자문하면 뭐라고 조언하나?

미국에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려면 첨단 제조업에 역점을 둬야 한다. 국가경제의 근간은 제조업이다. 혁신과 일자리가 거기서 나온다. 물론 지금은 정보기술 시대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비트(정보량의 최소단위)로 바꾸려 했다. 많은 기업이 디지털로 옮겼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그 산업을 주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e-음식을 먹지 않고, e-침대에서 자지 않으며, e-자동차를 몰지 않는다. 따라서 유형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을 포기할 수 없다. 지금 와서 원자재 분야나 저비용 노동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순 없다. 제조를 가능케 해주는 첨단기술에 초점을 맞춰야 일자리를 만들 수있다. 전통 제조업에 인터넷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또 현지 생산도 의미가 크다. 탄소발자국이 더 작고,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이든 멀리서 설계된 뒤 현지에서 찍어 만들어질 수 있다. 내가 관여하는 모던 메탈이라는 회사는 3D 프린팅(디지털 설계 모델과 3차원 프린터를 사용해 원하는 대로 바로 찍어내는 맞춤형 생산 방식)으로 가죽과 육류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도살장도 필요 없고 가축을 기를 필요도 없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는 30억 인구에게 고단백질 식품을 실제 육류로 제공하는 일은 지속 불가능하다. 그들을 위해 소를 더 많이 사육하면 오염이 8배나 늘어난다. 그래서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분야에서 일하면 신나겠다.

어렸을 때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그 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결국 난 NASA를 위해 우주비행사를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내가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중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도 없이 완전히 억압 받았지만 지금 나는 자유의 여신상 보존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라디오나 만들었지만 지금 나는 제2의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곳에서 일한다. 내가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지오매직이라는 회사를 세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산맥이다’는 격언이 바로 나의 이야기다. 인생에는 봉우리가 많다. 각 봉우리마다 전망이 다르다. 그런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또 다른 봉우리에 오르기 전에 내려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난징으로 간 여덟 살짜리 소녀에게 ‘내가 너의 미래’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신 말을 믿을까?

[웃음] 아마 믿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난 늘 꿈을 꿨다. 어렸을 땐 꿈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 아이에게 꿈을 계속 꾸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중 일부는 실현된다.

여성에게 높은 직위보다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진전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한다고 했는데.

미국에 와서 많은 훈련을 받았다. 훈련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등록했다. 그들은 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민족과 여성의 고용차별 철폐 정책), 유리천장(glass ceiling, 여성이나 소수민족의 고위직 승진을 가로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 사내 서열(corporate ladder)을 이야기했다. ‘유리천장’이나 ‘사내 서열’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너무 제한적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올라가기는 아주 어렵다. 고소공포증도 있다. 또 ‘위로’ 올라가면 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다. 그러나 ‘앞으로’전진하면 세상에 못할 게 없다. 기회가 무한하다.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자꾸 나아가도 문제가 없다. ‘위로’보다 ‘앞으로’ 가면 갈 수 있는 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여성에게 ‘위로’보다 ‘앞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생각에 따라 삶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을 두고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는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경험과 느끼고 싶은 기분은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당신은 CEO로서 나약함을 보여준 뒤 그것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은 여성에게 그와 정반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강조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나약함을 드러내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어렸을 때 얻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 물론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그런 꼼수를 써선 안 된다. 나약하다는 것이 반드시 약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에 온 후 브레네 브라운 박사의 TED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나약함이 사랑, 유대감, 창의성의 발원지라고 말했다. 나약함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다면 실패가 인정되지 않는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젊은 어머니였다는 사실이 도움이 됐는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는 아기를 두고, 좌절하고, 어쩔 줄 모르다가 그 아이가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면서 리더십, 나약성, 배려 등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 달라진다. 거기에다 회사 운영까지 더하면 모든 것의 차원이 달라진다. 직원들이 당신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CEO가 되면 매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잘된 결정인지 모를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대개 상당히 자신감을 보인다. 그래도 속으로는 불안하다. 단지 드러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개최한 여성 리더십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멜트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천하를 얻은 느낌이다. 자신감 넘치고 세계를 정복할 듯하다. 저녁에 귀가해서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야 나의 나약함이 드러나도록 놔둔다.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게 아니라고 인정하고 눈물을 보이도록 자신을 허용한다.” 그의 말은 아주 진실되게 들렸다.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물었다. “회장님,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신 밑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출근했을 때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출근해서 천하를 얻은 느낌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느끼고 그런 생각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래도 괜찮은가요?” 이멜트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출근할 때 자신감이 충만하고 무엇을 할지 아는 것 같은데요.”

무슨 이야기일까?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채용하거나 아니면 원래 사람들은 지도자를 모방하게 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난 온정과 이해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나의 약함을 드러내 보여준다. 직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직원들은 내가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도 그들의 도움을 환영하고 나도 그들을 도와준다. 그런 일터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다른 회사들은 달리 생각할지 모른다. 옳고 그름의 차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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