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중독된 이탈리아
도박에 중독된 이탈리아
어느 화창한 금요일 오후, 로마 교외에 있는 슬롯 하우스 유로파 카지노가 시장바닥처럼 흥청거린다. 거의 모든 슬롯머신에 사람이 붙어 있다. 입구 근처에는 스크래치 복권(scratch-card lotteries)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뒷방에선 비디오 포커 게임기가 다양한 효과음을 내며 돌아가는 동안 가끔씩 잭팟을 터뜨린 사람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카지노 사장들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이 비디오 포커 게임기를 더 많이 들여놓고 싶어한다. 나란히 늘어선 게임기 측면에 붙은 경고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이탈리아에서 도박중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도박은 병적인 중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면허를 발급하는 도박 협회는 이 스티커 문구 부착을 의무화시켰다.
그 깨알 같은 글씨는 도박과 관련된 경제적·심리적 위험을 설명한다.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상담 전화번호와 함께 단 두 개의 질문으로 이뤄진 간단한 자가 테스트를 제시한다. “도박할 때마다 돈을 더 걸고 깊은 충동을 느끼는가?” “가족 몰래 도박을 하는가?”
다이애나는 도박을 끊겠다고 약속한 뒤 다시 카지노를 찾은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성을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도박 경고문이 답배갑의 경고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흡연이 건강을 해친다고 겁을 주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운다. “끊기가 힘들다. 돈을 약간 딸 때마다 다음에는 크게 한번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잃었던 공과금을 되찾고 싶다.”
유럽 금융위기가 이탈리아인들을 무겁게 짓누르면서 도박이 공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국 각지의 카지노와 커피 바에 슬롯머신과 비디오 포커 게임기가 늘어난다. 길거리 가판대, 주유소, 담배가게에서도 스크래치 복권을 판매한다. 그에 따라 도박중독도 증가했다.
“이탈리아에 미국 서부개척 시대를 연상케 하는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메타오 이오리가 말했다. 도박 중독자들을 돕는 전국적인 단체(Coordinamento Nazionale Gruppi Per Giocatori d’Azzardo)의 회장이다. “이탈리아인들이 경제위기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이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확천금을 꿈꾸게 됐다.”
심각한 도박의존증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인이 80만 명을 웃돈다. 도박 실태를 추적하는 단체 리베라의 통계다. 이탈리아의 1인당 도박 지출액은 유럽 1위, 세계에선 싱가포르와 호주의 뒤를 이어 3위다. ‘도박과 새로운 중독(Azzardo e Nuovo Dipendenza)’ 단체의 조사 결과다.
대부분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연금생활자나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도박, 비디오 포커, 전자 슬롯머신 게임에 빠져 도박 중독자가 된다. “진짜 도박중독자는 대박 환상에 빠져 좀 더 베팅하려는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고 비영리단체 아스펜센터의 심리학자 모니카 모나코 박사가 말했다. 그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중독과 도박업의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한 업계 감시단체에 따르면 도박산업은 규모면에서 이탈리아 3위다. 도박산업이 커지면 이탈리아 정부는 얻는 게 많다. 2012년 도박산업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80억 달러를 넘었다. 게다가 도박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3년 사이 도박업 전체 수입이 25% 증가했다. 이탈리아 도박업계의 80% 이상을 대표하는 시스테마 지오코 이탈리아 연합의 통계다. 지난해 이탈리아 도박업계의 수입이 무려 1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슬롯머신 보급률은 주민 150명 당 한 대꼴로 계속 증가세를 보인다. 2010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통과된 법 덕분이다. 2월 치열한 경합을 거쳐 비디오 포커 카지노 사업면허 1000건이 추가로 승인될 가능성이 있다. 도박중독자 지원단체들이 면허 승인을 저지하려 애쓰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탈리아 보건부가 도박의존을 사실상 중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약물의존을 다루는 지원단체들이 치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원단체 SERT의 전문가 구글리엘모 카발라리는 도박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기본으로 돌아가 도박을 중독으로 보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의식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지출억제를 도우며 ‘노’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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